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7화 (7/102)

1권 2장. 공조수사-(1)

칼레샤 소령까지 포함해 제3편대원들은 본부로 끌려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게 어제 보았던 비놀라 소령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심각하다는 것도. 전대장이다. 전대장인 엘리자베트 대령이 직접 나설 일인 것이다.

우리는 본부로 향했다. 헌병들이 우리를 에워싼 채로 걸어갔다. 흡사 연행되어가는 범죄자와 마찬가지였다. 본부의 전대장실에 들어가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전대장은 자리에 앉고, 요한나 중령은 책상 앞에 서서 뻣뻣하게 선 우리를 노려보았다.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때에, 요한나 중령이 입을 열었다.

“4~5일 전, 저번 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요한나 중령의 시선이 칼레샤 소령에게 닿았다. 칼레샤 소령이 말했다.

“소령 칼레샤 알트하우스! 제3편대 단체휴가로 쉬고 있었습니다! 목요일에는 제2비행대대 근처의 시설을 이용했으며 금요일에는 바이어 시내로 나갔습니다.”

“그동안 네 행적을 증명해 줄 사람은?”

“목요일은 극장 티켓과 카페 영수증이 있습니다. 금요일은 없습니다.”

요한나 중령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했다.

“대위 헤르만 예거! 그때는 친위대원으로서 프로이센에서 복무 중이었습니다.”

“바이어에 온 때는 언제였지?”

“저번 주 일요일이었습니다.”

요한나 중령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좋아. 넌 더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다음.”

차례로 알비 소위와 히데 소위에게도 질문이 돌아갔다. 다들 휴가를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대답했다. 알비 소위는 칼레샤 소령처럼 바이어로 나갔다 왔고 히데 소위는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책을 하루 종일 읽었다고 했다.

요한나 중령이 말했다.

“자, 종합해보면, 여기 우리의 신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틀간의 알리바이를 완벽히 제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군?”

알리바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시점에서 우리가 용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의? 그러나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용이 죽었다.”

그러자 다들 숨을 헉 하고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비놀라의 파트너 프리데리케가 어젯밤 쇠약사했다. 은퇴를 앞둔 늙은 용이었지만 타살임이 명백하지. 프리데리케에게는 마력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제야 왜 비놀라 소령이 어제 울면서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파트너 용이 죽었다. 그것도 타살.

“마력은 용을 이루는 근간. 고갈되면 버티지 못한다. 물론 용도 생물이기에 자연회복할 수 있지만, 용이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갔다면 용의 신체가 붕괴하기까지 약 4~5일. 용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사람들은 용유지관리전대. 하지만 그들의 감응력은 보통보다 살짝 높은 정도다. 그들은 용의 마력을 빼낼 수가 없다.”

요한나 중령이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니,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용기사밖에 없다. 이 근방에서 최고로 높은 감응력을 가진 인간들이니까. 내 대대와 제4비행대대는 그때 장거리 행군 중이었기 때문에 제외. 제3비행대대는 그 이틀간 기지방호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외. 그 시간동안 행적을 알 수 없는 사람은 그때 휴가를 나간 너희들밖에 없다.

자, 다시 한 번 묻지. 정말로, 자기 행적을 증명할 만한 수단이 없나?”

그 말에 침묵이 감돌았다.

용을 왜 죽였을까? 용은 국가의 재산이다. 즉 용을 죽인다는 것은 국가시설에 테러를 하는 것과 동급의 행동이었다. 도이체스 제국에게 타격을 입히고 싶은 나라가 뭐 있을까? 도이체스 제국과 앙숙인 옆 나라 브리타니아? 최근 공화정으로 바뀐 섬나라 프랑크 공화국? 도이체스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식민지? 도이체스 제국의 범게르만주의에 대항해 범슬라브주의를 펼치고 있는 키예프 연방? 아니면 샤이 반도의 슬라브 계열 국가들? 아니면 반정부단체?

알 수 없었다. 도이체스 제국은 정말 큰 나라였다. 그만큼 적도 무수히 많았다.

“너희들이 위험분자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야, 이 정도로 큰 일을 벌일지는 몰랐다고. 지금이라도 자수해. 그러면 군법회의에서 사형은 안 받을 테니.”

요한나 중령은 그렇게 말하면서 히데 소위와 알비 소위의 눈을 응시했다. 알비 소위가 울먹이며 말했다.

“저,저는 결백합니다.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믿어주세요.”

그러자 요한나 중령이 성큼 다가와 알비 소위 앞에 선다. 지나치게 좁은 간격. 알비 소위는 요한나 중령보다 키가 컸지만 요한나 중령의 기세는 몹시 위압적이다.

“시치미 떼지 마라.”

요한나 중령이 오른손을 확 치켜든다. 알비 소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타할 것만 같은 그 손길은 알비 소위의 길고 뾰족한 귀를 조롱을 담아 툭툭 쳐댔다.

“길가에서 노래 부르며 구걸해 벌어먹고, 도둑질이나 일삼는 거리의 쓰레기가 명예로운 도이체스 제국의 장교가 되었으면, 제대로 처신해야 할 것 아닌가?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정도가 있지, 안 그래?”

요한나 중령이 히데 소위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네년도 마찬가지야. 곱게 너희 고향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도이체스 제국에 있는 네 동족들처럼, 테러라도 벌일 셈인가? 아니, 이미 벌인 것이나 다름없군. 국가재산을 파괴했으니 말야. 안 그렇나, 이 도깨비 년들아?”

도깨비. 아마 그녀들의 인생에서 수없이 들었을 말이지만 면전에 대놓고 듣자 다들 얼굴이 시뻘개졌다. 알비 소위는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알비 소위가 속한 종족 아랑은 귀가 뾰족한 종족으로, 나라가 없다. 그들은 이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소매치기, 구걸, 노점상 등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간다. 이들 중 극소수에게는 예언 능력이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예언할 수 있는 건 죽음 뿐. 그렇기에 그들은 오히려 죽음을 불러오는 불결한 민족으로 낙인찍혔다.

히데 소위가 속한 종족 !파라의 나라 하르트란트는 도이체스 제국의 식민지이다. 도이체스 제국으로 이주하는 등 제국과 융화되어 제국민이 되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는 세력도 있다. 그들은 정식 전쟁으로는 도이체스 제국을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그들 개인 하나하나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뛰어난 전사임을 알기에, 도이체스 제국을 향해 테러를 저지른다. 그래서 온건하게 살아가는 !파라의 존재는 지워지고 테러리스트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이다.

이 제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그것이 초대 카이저 엘로이 알론조 폰 프로이센의 건국이념이었다. 그러나 현 황제에 다다르며 조금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 우수한 인간이 존재하는 만큼 더 열등한 인간도 존재한다고. 순수한 게르만족만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이 사상은 수많은 사람을 매혹시켰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물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대대장님.”

내면에서 일렁이는 역겨움을 감춘 채, 내뱉는다.

“그 발언은 인종차별입니다.”

어쨌든 도이체스 제국의 건국이념은 그러했다. 식민지나 자국 구성원들끼리의 차별은 금지되어 있었다. 한쪽의 일방적인 착취만으론 결국 제국은 붕괴하기에.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은 엄연히 실존했다.

일순간 정적.

다들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는 상상하기 쉬웠다. 즐거울 정도였다. 요한나 중령은 잠시 말을 잃고 더듬거렸다.

“너··· 진짜··· 헤르만 예거, 넌 정말······”

사납게 뜬 눈이 나를 향한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분노에 찬 요한나 중령이 내 앞에 섰다.

완전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에리히였다면 절대 이러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수많은 부정과 불의를 보고 침묵했으며 그 중 일부는 실제로 저지르기까지 했다. !파라와 아랑을 향해 도깨비라 매도하며 모욕을 주는 일은 그것들에 비하면 하찮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긴 친위대가 아니었고, 내가 내 양심과 도덕을 저버리고서라도 붙어 있어야 하는 조직도 아니었다. 나는 용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요한나 중령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죽여 버릴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것 같았다. 그 침묵은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섬뜩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이런 상황에서 웃고 싶어졌다.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마침내 요한나 중령이 입을 열었다.

“네놈이 옹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나?”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대대장님. 그들은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일 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요한나 중령이 웃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런 인간일 줄 몰랐는데, 예거. 그 친위대에서 온 인간이, 이럴 줄이야.”

친위대가 아니니 이럴 수 있는 거다, 요한나 중령.

요한나 중령이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요한나 중령의 표정이 굳었다. 뒤에서 이 사태를 방관만 하고 있던 엘리자베트 대령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서 있었던 요한나 중령과 더불어 앉아 있었던 엘리자베트 대령도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

“안녕! 헌병대에 넘긴 줄 알아서 찾는 데 한참 걸렸네. 직접 취조 중이었구나? 방해하게 되어서 미안!”

뒤에서 들려 온 것은 익숙한 목소리. 델 중장의 목소리였다. 엘리자베트 대령이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사령관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긴 저희가···”

“응응, 당연히 알아서 잘 하겠지. 딱히 너희가 못미더워서 이러는 게 아냐. 그치만 이게 워낙 중대 사안이어야 말이지. 한 번쯤은 봐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뒤의 헌병들은···”

“아무래도 얘네들이 그쪽으론 더 전문적이니까? 아, 오해하진 말아 줘. 몸소 중대사건을 수사하겠다는 의지, 나 감동했다구?”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말에 뼈가 있었다. 용 살해는 군 내에서 벌어진 중대범죄이니만큼 헌병이 수사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대대장과 전대장은 우리를 따로 불러내 추궁했다. 처음부터 범인으로 단정 짓고서. 아마 자신들이 빨리 자백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건이 그들 선에서 마무리되면 불이익이 덜할 것이라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아참, 너무 내 이야기만 실컷 떠들었네. 헤르만 예거 최상급돌격지도자!”

“예!”

나는 돌아서면서 델 중장에게 경례를 올렸다. 델 중장이 나를 친위대 계급으로 불렀다. 주위에서 약간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친위대 보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도 못한 것이다. 델 중장은 다른 장교 한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 뒤에는 헌병들이 죽 서 있었다. 옆에 있는 장교는 대령인 것으로 보아 엘리자베트 대령과 마찬가지로 전대장급인 게 틀림없었다.

붉은 머리의 여군이 씩 웃으며 말했다.

“너, 헌병이랑 같이 이 사건 수사해.”

델 중장이 제멋대로 폭탄을 던지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얼빠지게 반문하지 않는 데 성공했다. 반면 엘리자베트 대령은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는지 바로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헌병도 아닌··· 그것도 용기사가···”

“응? 헤르만도 용의자야?”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겠지. 헤르만은 그때 루프트바페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이건 루프트바페의 용기사가 아닌 친위대 최상급돌격지도자 헤르만 예거로서 사건 수사에 참가하라는 의미야. 왜냐하면 이 사건, 친위대의 수사범위에 들어갈지도 모르거든.”

델 중장은 그들을 염두에 둔 것인가. 계몽결사. 그들은 ‘도이체스 제국’에게 ‘테러’를 벌일 만한 동기가 있는 집단이었다. 계속해서 용병기에 집착하기도 했고.

“설명은 이만하면 됐지?”

엘리자베트 대령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얘네들 데려가고, 난 헤르만 좀 빌려간다.”

마지막 말은 헌병들에게 한 것이었다. 헌병들이 칼레샤 소령, 알비 소위, 히데 소위를 에워싸고 데려가는 동안 델 중장은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델 중장이 날 데려간 곳은 사령관실이었다. 문을 닫고 들어간 델 중장이 물었다.

“그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전대장님 아래에서 대대장님이 저희를 취조하셨습니다.”

“에이, 그렇게 간단한 거 말고. 더 있었을 텐데. 걔네들이 H로 시작하는 단어(*도이체스어로 도깨비는 Hämmerlein이다)도 안 썼어?”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리고 용의자도 아닌 널 왜 그렇게 몰아세우고 있었는데?”

내가 뻣뻣하게 굳어 있자 델 중장이 말했다.

“걱정 마. 네가 말한 걸로 걔네들에게 영향 가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이거든. 자, 사령관의 명령이야. 무슨 일이 있었지?”

“개인적인 호기심이시면서 동원하시는 건 사령관입니까.”

“헤헤, 좀 그렇네? 하지만 난 귀여우니까 괜찮아!”

결국 나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내가 한 말에 이르자 델 중장은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하하핫, 너, 하하, 정말, 또라이구나?”

델 중장은 허리를 접어가며 웃었다. 한참 웃다가 눈물까지 살짝 흘린 델 중장은 손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말했다.

“그렇게 원칙 따지는 인물로는 안 보였는데 말이지. 친위대에서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절대 그럴 수 없거든. 그냥 엿먹으라고 던진 거지? 아니면, 이쪽이 네 본성인가? 너 점점 더 맘에 드는데?”

델 중장은 의자를 뒤로 확 젖히며 말했다.

“뭐, 널 부른 이유는 계몽결사 때문이야. 계몽결사가 이번 일에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거든. 사실 너 아녔으면 전혀 생각도 못했을 텐데, 아달베르토가 너 주면서 내게 신신당부를 했으니까. 가능성은 모두 열어두는 편이 나쁘지 않잖아? 넌 앞으로 헌병과 함께 수사를 진행할거야. 단, 훈련을 빼먹을 순 없으니 오전만.”

델 중장이 씨익 웃었다.

“네가 미친 짓을 저질러놓긴 했지만 걔네들이 널 건드리진 않을 거야.”

그럴 것이다. 무려 중장, 사령관이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냈다. 건드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루프트바페에서의 군생활이 고달파질 것을 각오했기에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 놓고 안도할 수만은 없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델 중장이 선뜻 수락했다. 나는 델 중장에게 물었다.

“왜 저를 이토록 신경 써 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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