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6화 (6/102)

1권 1장. 장검의 밤-(6)

히데 소위의 대응은 빨랐다. 대대원들 중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가 방독면을 집어 들었다. 순식간에 착용을 완료한 뒤 거의 몸을 던져 넣다시피 하면서 하의를 입고 지퍼를 잠근다.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은 히데 소위가 하의를 입기 시작할 때쯤에야 비로소 보호의를 입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미처 숨을 참지 못하고 최루가스를 들이켜 숨넘어가도록 기침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방독면을 착용한 뒤 재빨리 하의를 입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끈이 제대로 묶이지가 않았다. 상의는 그럭저럭 잘 묶였다. 나는 온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끼며 착용을 완료했다.

대대원의 삼분의 일 정도는 방독면을 착용하는 타이밍이 늦었다. 아마 그 안에서 온갖 분비물이란 분비물들은 다 흘리고 있을 것이었다.

“정렬! 이것들이 아주 빠져가지고.”

방독면 너머로 답답한 요한나 중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한나 중령은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지적한 뒤 동기부여를 시켰다. 방독면을 쓴 채로! 나도 하의의 끈이 덜 묶여서 동기부여를 받았다.

요한나 중령이 한 바퀴 돌고 나자 서 있는 사람은 클로리스 중위와 히데 소위밖에 없었다.

요한나 중령은 클로리스 중위를 대충 보고 지나간 뒤 히데 소위의 주변을 맴돌았다. 사소한 트집 하나만 걸리면 잡아내겠다는 듯이. 그러나 히데 소위는 완벽하게 해낸 모양이었고, 나는 방독면과 보호의 안에서 울려 퍼지는 내 숨소리 사이에서 요한나 중령이 쯧 하고 혀를 차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최루 가스가 다 사라지고 우리는 방독면을 벗었다. 최루가스를 마신 바람에 눈물 콧물범벅이 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방금 받은 동기부여 때문에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요한나 중령이 말했다.

“방금은 예비연습이었다. 제군들의 상태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군. 추가 훈련에 들어간다.”

그 말에 최루가스를 마셨던 인원이 사색이 되었다.

진짜 정식 화생훈련이 시작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괴로운 시간이었는데, 사관생도 때와는 다르게 삼십 분이나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였다. 해산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더 이상 최루가스 입자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엉엉 울며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건 아니야, 싫어, 돌아갈래. 울지 않는 다른 사람들도 참담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알비.”

나는 소곤거렸다. 알비 소위가 돌아보자 나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말했다.

“평소에도 대대장님이 이래?”

화생훈련 때는 대대장이 직접 안에 들어가 교관 역할을 했는데, 정말 사소한 것까지 꼬투리를 잡아서 제3편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알비 소위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들어와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훨씬 이전부터 제3편대원들을 싫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왜?

사실 짐작 가는 건 있었다. 이 비행대대의 유일한 이종족 둘이 전부 한 편대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제1비행대대가 독신 장교 숙소로 들어가자 1층의 로비에 있던 이들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알비 소위가 투덜거렸다.

“으아아··· 병균 취급 받았어요.”

“어쩔 수 없지. 털어낸다고 털어냈는데 입자가 아직 남아있을 거야. 더 민폐 끼치기 전에 빨리 씻어야겠지.”

“대위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하세요?”

“잘 하긴 뭘. 나도 기합 엄청 받았는걸.”

“그치만 처음 들어갔을 때 엄청 침착하셨잖아요!”

“그거야 처음 겪는 게 아니니까···. 사관학교에서도 했는걸. 이렇게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와, 사관학교···. 아참, 친위대에서 오셨지. 그럼 당연히 사관학교 나오신 건데, 계속 깜박하네요.”

“너흰 안 나왔지?”

“네네. 감응력 테스트 받고, 육군 항공대에 소위로 바로 임관됐어요. 거기서 기초훈련 받는 도중에 루프트바페로 왔어요.”

내가 짐작한 그대로였다. 알비 소위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음··· 히데는 안 그런 경우지만, 대부분은 저처럼 이럴 거예요.”

“그렇구나. 그럼 들어가 봐.”

“네, 대위님도요! 히데 너도 잘 들어가.”

알비 소위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건너편 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도 우리 숙소로 향했다. 히데 소위는 3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트리나가 야옹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가 질색하며 나와 가장 먼 쪽으로 뛰어갔다. 히데 소위가 말했다.

“대위님이 먼저 씻으십시오.”

내가 더 상급자이니 먼저 씻으라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네가 먼저 씻어.”

그러자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히데 소위에게 말했다.

“!파라는 정말 강하고 민첩하지만··· 동시에 예민한 감각도 가지고 있지. 그래서 !파라는 아픔을 참으며 자라난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게 안 아픈 건 아니니까. 우리보다 몇 배는 더 아프잖아.”

나도 아직 조금 따끔거린다.

“힘들었을 테니까 너 먼저 씻어.”

히데 소위의 보라색 눈동자가 깜박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히데 소위는 나를 지나쳐 가 화장실로 향했다.

“···고맙습니다.”

속삭이듯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히데도 나도 빨리 씻었기 때문에 식당에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히데 소위는 머리를 반만 말린 채였기 때문에 머리를 길게 풀어헤쳐 늘어뜨리고 있었다.

식당에는 알비 소위가 먼저 와 있었다. 우리는 그쪽으로 향했다. 알비 소위의 옆에는 회색 머리칼의 여자가 있었다. 아까 화생훈련에서 군가를 부르게 되었던 사람이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대위님도 빨리 나오셨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옆쪽으로 돌린다. 내 시선을 받은 회색 머리의 여자가 말했다.

“소위 라인스 윈터입니다.”

“저랑 방도 같이 써요!”

알비 소위가 쾌활하게 말했다.

순간, 나는 어떤 두근거림을 느꼈다. 두근거림이라기에는 미묘했지만, 라인스 소위를 향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특별한 존재를 알아본 듯한 느낌. 라인스 소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 역시도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에야 비로소 나는 라인스 소위에게 말했다.

“아까는 놀랐어. 노래를 무척 잘 하던데?”

“감사합니다. 제 유일한 자랑거리 중 하나죠.”

“으엑, 라인스. 그게 왜 ‘유일한’ 거야. 네가 얼마나 잘 하는 게 많은데! 대위님, 라인스는 되게 똑똑해요. 마법학 배우는데 벌써 교수님보다 잘한다니깐요?”

그렇다면 정말로 머리가 좋은 것이다. 나도 마법학을 배웠기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마법학은 얼핏 보면 무작정 암기해야 하는 과목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외가 많기는 했지만 마법학은 중심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그 법칙을 이해한다면 다른 응용마법도 쉽게 외울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마법을 고안해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마법학은 수학에 비유되고는 했다. 뛰어난 수학자들이 취미로 마법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기본적인 마법과 중급 단계의 응용마법을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저번 쿠데타 사건 때의 마법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정도만 해도 4년밖에 마법학을 공부한 사람치고는 괜찮은 성과였다. 그 이상은 무리다.

지금은 아직 1년도 안 되었으니 간단한 과정만 배우고 있겠지만 그 중심원리를 깨우친다면 천재가 교수를 앞지를 수 있다. 라인스도 그런 부류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대단한데. 연구원을 할 생각은 없었던 거야?”

그러자 라인스가 살짝 웃었다.

“하늘을 날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는 숨길 수 없는 열의가 있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는 군인으로 거듭나기 어렵더군요. 아마 제가 제1비행대대에서 가장 뒤떨어진 것 같아요. 여러모로 민폐를 많이 끼쳤어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냥 아직 덜 익숙해진 거야.”

“항상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알비.”

나는 밥을 먹으면서 제1비행대대 구성원들의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편대장부터 외우고, 그 다음에 각 편대원들을 외우고. 사람 이름 외우는 건 자신 있었기에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히데 소위가 숙소로 돌아가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벌써 들어가게?”

“···딱히 밖에 볼일은 없습니다.”

얼핏 둘러본 것에 불과했지만 여기엔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었다. 육군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사람들끼리 어울려 놀기 좋은 곳이었다. 히데 소위는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도깨비’와는 어울리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근처를 잘 몰라. 안내를 부탁하고 싶어서.”

히데 소위는 잠시 주저하더니 승낙했다.

물론 비행단을 전부 둘러볼 수는 없었다. 비행단은 그 어떤 육군 기지보다도, 친위대 본부보다도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용이 머무를 면적과 도약할 장소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제1전투비행단의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그곳이 용이 도약하는 장소였다. 그 도약광장을 원형으로 둘러싼 형태로 축사가 있다. 바로 용이 지내는 곳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그 도넛 모양의 축사 바깥쪽을 원형으로 빙 둘러서 거주하고 훈련을 받는다.

건너편 부대까지 건너가려면 도약광장을 가로질러 가면 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용이 이륙하는 데에 그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사 바로 앞까지 다가가지만 않는다면 용의 진로를 방해할 일도 없다. 대신 광장을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 외의 시간에는 광장에서 용을 산책시키기 때문이었다. 그게 바로 광장이 본래 용도보다 더 넓은 이유였다. 용을 좁은 우리 속에만 가둬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제1비행대대 주위에는 수영장과 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히데 소위의 책장을 가득 메운 책을 생각했다. 히데 소위가 좋아할 만한 장소가 가까이에 있는 셈이다.

원을 시계방향으로 돌면 제2비행대대가 나오는데, 그곳엔 극장과 기타 유흥거리를 제공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반시계방향으로 돌 경우 제4비행대대가 나오며, 그쪽은 온갖 식당이 들어서 있다.

제1비행대대와 가장 먼 대대는 원의 반대편 끝에 있는 제3비행대대였다.

“거기엔 어떤 시설이 있어?”

“옷가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가보지 않은 거야?”

“사실,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그럼 한 번 가보지 않을래?”

그러자 히데 소위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네엣? 하지만···”

“마침 지금은 광장통과가능시간이잖아. 가면서 용도 슬쩍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용······.”

그러자 히데가 갈등했다. 히데 소위는 분명 용을 본 나를 부러워했다. 이 기회에 용도 보면 좋을 것이다. 순간 가기 싫은 사람을 너무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히데가 거절한다면 그 이상 권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히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용, 보고 싶습니다. 같이 가요.”

그래서 우리는 축사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보초를 서고 있던 용유지관리전대의 여군이 황급히 나를 막아 세웠다.

“남성은 광장 출입 금지입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이 분은 용기사다.”

히데 소위가 말했다.

“용과 감응할 수 있는 분이다. 들어갈 수 있어.”

그러자 보초가 곤란한 표정이 되더니, 결국 상부에 무전을 넣었다. 몇 분 기다리자 우리는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로막힐 줄은 몰랐네.”

“오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요. 곧 제1전투비행단 전체가 대위님의 존재를 알게 될 겁니다.”

“하하, 그건 별로 달갑지 않은데 말이지···”

그렇게 떠들며 축사 근처로 갔지만 놀랍게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용은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다. 그런 생물이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닌다면 먹이들은 일찌감치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히데 소위는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말했다.

“이것이 용의 냄새로군요.”

나도 맡아보려 했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깨끗이 단념했다. 히데 소위는 !파라이니 겨우 맡아낼 수 있었던 거다.

광장 전체는 도로에 쓰는 바닥재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도로에 쓰는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대신 시끄러운 재질이었다. 용이야 별 소음을 내지 않을 테지만, 자동차가 지나가면 꽤나 시끄러울 것이다.

제3비행대대를 향해 하염없이 걷고 있을 무렵,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우리 둘 다 뒤를 돌아보았다.

회색의 용이었다. 그 옆에는 병사들이 용의 고삐를 잡고 유도하고 있었다. 남자가 근처에 가면 공격받을 테니 전원 여군이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낯익은 사람이었다.

“제2편대장님 맞지?”

“예. 비놀라 슈베르트 소령님입니다.”

비놀라 소령은 익숙한 동작으로 회색용의 등 뒤에 탔다. 안장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앞에 있는 무언가를 잡았다.

용이 한 차례 머리를 흔들더니 박쥐와 같은 갈퀴날개를 쫙 펼쳤다. 날개가 한 번, 두 번 오므려지더니 점점 횟수가 늘어났고, 용의 두 다리가 바닥과 떨어졌다. 이륙한 용은 광장 주변을 선회하면서 점점 고도를 높였고, 마침내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높이 날아간 용은 저 멀리로 날아갔다.

“저것이 용···”

히데 소위가 중얼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저 정도 크기였군요. 항상 하늘에서만 본 탓에 잘 몰랐습니다.”

히데 소위의 얼굴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렇게나 좋아할 거면서 왜 이쪽으로 얼씬도 안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용을 보면서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그냥 두근거리는 것과는 달랐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까 라인스 소위를 봤을 때 약하게 느꼈던 그 감정과 비슷했다.

‘나도 참, 어린애처럼 들떠가지고.’

마음 한 구석에선 용을 동경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놀라 소령뿐만 아니라 다른 대대에서도 정찰비행을 위해 용이 드문드문 나와 이륙했고, 히데 소위는 그럴 때마다 그쪽으로 다가가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 마침내 제3비행대대가 있는 반대쪽 끝에 도착했을 때에는 꽤나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제3비행대대 쪽으로 가며 히데 소위가 말했다.

“언젠간 우리도 저렇게 타고 다닐 수 있겠죠?”

“그럴 거야. 반드시.”

제3비행대대 주변에는 히데 말대로 옷가게가 있었다. 옷가게라기보다는 화장품과 여러 악세서리, 잡화도 함께 파는 소형 백화점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친위대 시절 프로이센에서 산 옷이 많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지나치려는 찰나, 나는 히데 소위가 옷가게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들어가서 구경할까?”

“아,아뇨. 괜찮습니다.”

“잠깐만 해보자고. 혹시나 예쁜 옷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자 히데 소위는 주저하며 따라왔다.

옷가게 안은 사람이 많았다. 용기사는 전부 여자이고 용을 관리하는 용유지관리전대가 여자인 루프트바페의 특성상 군대인데도 마치 일반 사회처럼 여자가 많았다. 아니, 거의 여자밖에 없었다. 나와 히데가 들어가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홱 쏠렸다.

“히데. 뭐가 필요해?”

“···최근 셔츠가 하나 필요하긴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여성복 쪽으로 가서 히데와 같이 옷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도깨비가···”

“징그러워······”

“옆의 남자가 소문의 그 사람?”

“···얼굴에······”

히데 소위가 왜 잘 돌아다니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나에게도 들린다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파라에게는 당연히 전부 들리겠지. 혼자서 저 수군거림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한 명 한 명씩. 수군거림이 잦아들자 나는 웃으며 그쪽을 향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와서 이야기해 봐요.”

그들의 눈동자를 하나하나 바라본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 그러나 이것은 헤르만의 시선이 아닌, 에리히의 시선이다. 그러자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시선을 피하더니 다 같이 자리를 떴다. 그들의 뒷모습을 본 뒤 나는 히데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그 둘 중에 고민하고 있는 거야?”

히데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히데 소위가 말했다.

“예.”

“한 번 옷을 대 봐.”

히데 소위가 두 개의 옷을 번갈아 가며 대어 보았다. 나는 왼쪽 셔츠가 더 낫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래 봬도 옷 고르는 솜씨는 꽤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히데도 동의하는지 결국 그 옷을 골랐다.

내가 계산하자 히데 소위가 당황하며 말했다.

“대위님. 제 옷이니 제가 계산해야 합니다.”

“응? 괜찮아.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줬잖아.”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업무적인 내용이라면 당연한 건데, 지금은 사적인 시간이잖아?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쓴 거고. 입 닦으면 오히려 그쪽이 얌체인거지.”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히데 소위는 결국 옷을 받아들었다. 옷가게를 나오고 나서 주위를 더 둘러보았다. 그 외에 눈에 띄는 건 사격장이었다.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관계로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도약광장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을 빙 둘러 제1비행대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둑한 밤길을 걸으며 투덜거렸다.

“확실히 넓구나. 자전거를 사야겠어.”

이곳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 쪽이 더 편할 것이다. 아까 보았던 백화점에서 자전거를 팔까? 분명 수요가 있을 텐데.

히데 소위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새 둘 사이엔 침묵이 자리했다. 밤의 비행단은 꽤 서늘하고 으슥한 편이었지만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파라와 함께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는가.

제1비행대대에 도착할 때쯤 히데 소위가 불쑥 말했다.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히데 소위가 말했다.

“용도, 옷도··· 그리고···”

히데 소위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때 화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데 소위는 그 말만 남기고 갑자기 뛰어가 버렸다. 나는 사라져가는 히데 소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소등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걸어서 독신 장교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환히 불이 켜진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갑자기, 뒤에서 누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까 보았던 사람이다. 비놀라 슈베르트 소령.

비놀라 소령은 너무 울어서 눈이 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나를 지나칠 때까지도 계속 울었다. 나는 놀라서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기에 나는 별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잠들면서 별 일 아닐 거라며 속으로 되뇌었지만, 내 직감이 경고해주었다. 무슨 일이 있다고.

다음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아침점호는 취소다. 전원 숙소에 대기. 그리고—”

제24전투비행전대 전대장 엘리자베트 아우스트 대령이 직접 와서 말했다. 옆에는 요한나 쿤츠 중령이 뻣뻣하게 서 있었다. 엘리자베트 대령이 말했다.

“제1비행대대 제3편대는 따로 나와라.”

정확히, 우리를 지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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