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4/131)

“약하게 태어났으면 뭔 짓을 해도 약한 거야. 주제를 알고 방구석에 찌그러져 있던가,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지.”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심장병을 앓았다. 반면 같이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인 남동생은 에스퍼로 태어났다.

이안은 동생에게 자신이 그를 대신해서 아픈 거라 억지를 부리곤 했다. 동생은 그런 그의 말에 한 번도 반박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아픈 몸 때문에 항상 예민하고 열등감에 가득 찬 이안은 그마저도 위선이라 느끼고 그를 미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장 이식의 행운이 찾아왔다. 이안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몸이 건강해지니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일반인 신분으로 센터에 연구원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이안은 발현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들어가기만 한다면 에스퍼보다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루하루 희망으로 가득 찬 하루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3년을 채 가지 못하고 박살 났다. 심장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어렵사리 잡은 희망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이안은 나날이 난폭해졌고, 부모님마저 자식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유일하게 그의 동생만 이안을 저버리지 않았다.

“형, 살 수 있어. 조금만 참으면 내가 건강하게 살게 해 줄게.”

“네 심장이라도 떼 줄 거야?”

“그건 안 되는 거 알잖아…. 줄 수 있다면 당장 줬을 거야.”

동생은 이안과 혈액형도 체구도 달랐다. 그래서 애초에 이식할 수 있는 조건조차 성립되지 못했다.

“위선 부리지 마. 됐어도 나한테 심장 안 줬을 거잖아.”

“아니야. 거의 다 완성됐어. 내가 형에게 새로운 심장을 선물해 줄게.”

동생은 의미 모를 말을 하며 오랫동안 이안을 찾아오지 않았다.

‘새로운 심장이라니. 누굴 죽여서라도 가져오겠다는 건가?’

스스로 생각했지만 어이없는 상상이었다. 동생은 그런 잔인한 짓을 할 그릇도 못 됐다.

무엇보다 심장 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몸은 마르고 병약했다. 핏기 없는 거칠거칠한 피부는 이미 죽은 사람 같았다.

과거에 그가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처음 약하게 태어났을 때부터 이러한 미래는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다.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도 이 상황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짙은 패배감이 이안을 짓눌렀다. 간병인으로부터 동생이 센터 연구원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어서 빨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지금껏 살아온 것도 시간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체념하던 중 새벽에 동생이 찾아왔다.

“이, 이제 이것만 넣으면….”

동생은 이안이 잠든 사이 주사기로 어떤 약물을 투여하고 있었다. 동생 또한 끝끝내 이안을 포기하고 안락사 주사를 놓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삶에 미련이 없는 이안은 모두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침묵했다.

“컥, 큭….”

그때 몸이 부글부글 끓으며 발작이 일어났다. 몸 안의 장기가 재배열되듯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이 잇따랐다.

‘죽일 거면 곱게 죽일 것이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핏발 선 눈으로 동생을 직시하자, 동생은 곱게 눈을 휘고 있었다.

“형, 새로운 심장이야. 느껴져?”

미약하게나마 뛰던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동시에 눈앞의 생물을 죽여야 한다는 지독한 살기가 끓어 올랐다.

누군가가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냐며 동생의 심장을 파서 먹으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게 하면 너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아주 달콤한 제안을 해 왔다.

“혀, 형….”

이안이 동생의 것을 먹는 동안 이성이 아예 없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는 항상 동생의 심장을 탐해 왔다.

자신과 다르게 팔딱대며 움직이는 건강한 심장을. 버석하게 느껴지던 몸 전체에 생명력이 감돌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몸이 가볍고 활기 넘쳤던 적이 없었다. 딱딱한 심장을 동생의 피로 적시며 새롭게 태어났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그의 몫을 제대로 찾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새로 얻은 육체는 한계성이 분명히 존재했다. 주기적으로 흡혈을 해야 이성을 차릴 수 있었다.

또한 건강한 신체와 강력한 힘을 얻었지만, 사람의 심장과도 비슷한 핵이란 것이 생명을 좌지우지했다. 이안은 크리먼이 되면서 지능계 B등급이 되었고 자신의 핵을 지키기 위해 더 특별한 능력과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이 생명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방법을 찾다가 동생의 집에서 자신을 크리먼으로 만든 약물을 발견했다. 연구 일지를 찾아 보니 크리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항생제를 개발 중 폭주를 안정시키는 단계까지만 성공한 약물이었다.

그래서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 크리먼에게 두 가지 능력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인간이 된 다음, 다시 희귀하고 높은 등급 크리처의 독을 주입해서 크리먼이 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아주 특별한 사실을 알게 됐다. 가이드의 피를 마시면 핵이 작아진다는 사실. 핵이 작아지거나 사라진다면 그가 굳이 강해지지 않아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은 이안이 바라는 이상향, 그 자체였다. 핵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생명에 집착하는 이 순간도 약자의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런 갈증을 병석에서 느껴봤고 이럴 바엔 죽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생명에 대한 광증은 ‘핵’이란 것에 옮겨갔고 ‘핵’이 자기 몸에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안은 자기 몸에서 죽음을 영원히 몰아내고 싶었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너희 주인에게 전해. 거래를 다시 진행할 생각 있으면 다음 주에 새벽 2시, 이 골목길로 찾아오라고.”

이안은 우글우글 모여 있는 쥐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처럼 우르르 찾아오면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테니 조용히 해결하는 게 좋을 거라고도 전해 주고.”

지한이 없는 이안은 전투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서 와인 바에서의 대화로 새로운 방패막이를 구한 것이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홀연히 골목길을 나갔다. 동료의 살해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한 쥐들은 더 이상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

얼마 후 에밀리가 이안을 발견한 것 같다며 찾아왔다. 더불어 그쪽에서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그럼 다른 크리먼들도 있다는 소리인가?”

“허튼짓하지 말라는 경고겠지. 이미 거래가 한차례 틀어졌으니 다른 낌새가 보이면 자기도 다른 크리먼들을 부르겠다는 얘기 같아.”

에밀리는 쥐들에게 이안의 추적을 맡겼다고 했다. 이안은 크리먼들만 오가는 와인 바에서 사월의 피를 노리는 크리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안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찾게 되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서로 언제든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곳에 있던 크리먼은 한둘이 아니었으며, 지금쯤이면 지인의 지인을 통해 더 많은 숫자로 불어났을 것이다.

나는 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그렇게 많은 수의 크리먼을 상대할 수 없었다. 더불어 그 크리먼들은 폭주한 상태가 아니라서 상대하기 더 까다로웠다.

유건이 염력으로 쓸어 버리면 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만약 큰 소란을 일으키면 센터에서 출동할 것이다.

이안을 확실히 잡을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이안이 애매하게 튀거나 관계가 또 틀어지면 영원히 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최악에는 나와 유건만 다시 센터에 잡혀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선배랑 지국현 에스퍼가 도와준다고 했어도 큰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해서 이안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것도 아니니까.”

내 말을 듣고 있던 에밀리와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백유건이랑 나만 이안을 만날게. 이안도 조용히 거래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다시 피를 주겠다는 거야?”

“평소처럼 피를 주다가 제압하는 게 낫겠지. 혹시 모르니까 위치 추적 장치 몸에 달아 놔서 선배한테 위치 공유하고.”

셋이 함께라면 이안을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후 상황이 어떻게 되든 이안만 잡으면 게임은 끝난 거였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는 거지?”

“어.”

“사월아. 혹시 모르니까 내 친구 중에 도와줄 수 있는 애들 있으면 부를까?”

“아니야. 에밀리, 너는 충분히 많이 도와줬어. 거래하고 있단 걸 들키면 센터에서 바로 출동할 수도 있는 일이야. 다른 사람한테 민폐 끼칠 순 없지.”

만약 에밀리 친구들이 나를 도왔다가 들키면 다 같이 센터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멀쩡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크리먼에게 피해를 끼칠 순 없었다.

“그래도… 이안 그 사람 너무 위험해 보여.”

이안을 추적하던 중 쥐 한 마리가 죽었다고 들었다. 쥐들이 에밀리에게 그 사람과는 연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려의 충고도 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지금 상황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나는 사실 다 잘될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싫어했다. 운명에게 자기 삶을 맡겨 버리는 낙관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지금에 와서 깨달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남아 있는 불안감을 떨쳐 내려는 것이다.

여기서 뭘 더 할 수도 없고, 걱정해 봤자 머리만 아플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든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

유건과 나는 오랜만에 산에서 내려왔다. 고도가 높은 곳에 오래 있다가 내려와서인지 귀가 한동안 멍멍했다. 새벽 공기에서 어느새 나무 향이 짙은 가을 냄새가 났다.

모자와 안경, 마스크까지 쓴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지만, 골목길이 차에서 내린 곳에서 멀지 않아 사람을 마주칠 일은 없었다.

새벽 2시에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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