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2/131)

그러나 이 이상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참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입을 맞춰 댔을 때보다 접촉이 줄어들었다.

그때보다 지금 더 마음이 커졌고 서로의 마음도 확인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그를 밀어낼 이유도 없어서 내심 기대하고 있는데 그는 갑자기 성욕이 사라진 사람처럼 굴었다.

“못 참을 것 같아서 그래. 이런 곳에서 너랑 처음 할 순 없잖아.”

“난 상관없는데. 그리고 여기가 어때서? 흔한 호텔 스위트룸보다 훨씬 나아.”

“그런 게 아니라….”

얘기가 길어지자 유건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내가 먼저 하자고 재촉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별로 부끄럽진 않았다.

‘좋아하면 더 가까이 있고 싶고 자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가 멀리 돌아온 만큼 주저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상황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고… 하는데 필요한 용품도 없고….”

“피임 기구?”

“아니, 그거 말고. 젤 같은 거도 없잖아.”

“…그게 꼭 필요해?”

에스퍼는 대부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정관 수술을 했다. 직업 특성상 스킨십을 할 수밖에 없는 직군이고, 그들이 파장이 낮을 때는 이성을 못 차리는 경우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각성자들은 이런 특성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성교육을 철저히 받았는데 피임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피임 기구를 꼭 착용하라고 배운다.

그러나 젤 같은 건 필수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그건 아닌데….”

경험이 없어 내가 모르는 다른 게 있는 건가 물었는데, 유건은 얼굴이 점점 빨개지며 더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너 나랑 하기 싫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 보면서 얼마나 허벅지 찔러 가며 참아 왔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하, 됐어. 못 들은 거로 해.”

유건이 순간 흥분해서 쏟아 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줄였다.

‘하기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핑계를 대지?’

그의 의중을 좀처럼 알 수 없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건은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눈을 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준비된 곳에서 잘하고 싶어서 그래. 너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

“무슨 애주 단지 모시냐?”

“비슷한 느낌 같기도 하고…. 다른 얘기 하면 안 될까?”

그는 말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지 이내 고개를 흔들며 화제를 전환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 위에 올라가 있으니 몸이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져 이대로 지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너 이러면 더 괴롭히고 싶은 거 알지.”

“사월아. 나 좀 살려 주라.”

“안 할 거잖아. 나도 안 할 거야.”

그의 티셔츠를 돌돌 말아서 목 위로 고정시켰다. 그는 살려 달라고 하면서 막상 내가 적극적으로 굴면 밀어내지도 못했다.

“끝까지 참아 봐. 재밌겠네.”

혀를 내밀어 연한 살을 길게 핥아 올렸다. 유건의 뱃가죽이 홀쭉해졌다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하… 차라리 내가 해 줄게. 누워 봐.”

“싫어. 내가 할 거야.”

그가 자세를 역전시키려는 걸 막았다. 크리처화까지 개방해서 어깨를 누르자, 그는 순간 멈칫거렸다.

“피 마시라고 했잖아. 나 피 마시려고 하는 건데?”

가슴 위쪽을 콱 깨물자, 유건이 앓는 소리를 냈다. 반대 손으로 허리를 쓸며 이를 더 깊게 밀어 넣었다. 언제 마셔도 훌륭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쭙,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자 그의 숨이 금세 거칠어졌다.

“아파?”

“아니….”

유건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뭉근한 파장이 흘러나왔다.

마치 피를 빨리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눈을 주시한 채 손톱으로 생채기를 건드리자 눈 아래가 바르르 떨렸다.

숫제 물기까지 어린 얼굴이 너무 야해 보여서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너만 취향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

유건이 고통을 느끼거나 쾌락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을 보는 게 좋았다. 그럴 때면 유건은 미간이 조밀하게 좁혀지고 아랫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열기가 몰리면 금세 눈가가 발갛게 붉어졌다.

손가락으로 생채기 가장자리를 누르며 혀로 할짝거렸다. 부드럽게 빨아들이다가도 불시에 아프게 깨물자 내 허리를 쥐고 있는 유건의 손아귀 힘이 강해졌다.

나는 일부러 난잡한 소리가 나게 피를 마셨다. 츱, 쭈웁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고 살에 마찰시켰다.

그의 허리가 튈 때마다 엉덩이에 무게를 실어 내리눌렀다. 위아래로 은근히 문지르자 유건의 입에서 달뜬 숨이 터졌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그의 손이 서서히 허리를 타고 굴곡진 곡선을 따라 내려갔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어 그의 손바닥이 맨살에 닿았다.

그는 말랑한 살덩이를 손안에 가두고 내 움직임에 맞춰 탐욕스럽게 쥐었다 풀었다. 조여들다가 해방되는 느낌이 묘한 음심을 자극했다.

“너 흥분하면 이렇게 문대던데.”

“하… 쪽팔리게 별짓을 다 했네.”

내가 경험이 없으니 지금 하는 입맞춤이나 움직임은 모두 유건의 행동을 모방하는 거였다. 유건이 이렇게 했을 때 나도 좋았으니까 그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좋았어. 나도 흥분했었으니까.”

압박이 심해질수록 유건의 몸이 단단해지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주머니에 다른 딱딱한 물체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내가 구태여 확인하려고 손을 뒤로 뻗자 그의 흉곽이 크게 오르내렸다. 뜨거운 열 덩어리가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너도 좋은 거 맞지?”

“좋다 뿐이야?”

유건의 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탁한 목소리가 나왔다. 몸이 뜨겁다 못해 탈 것 같은 열기를 뿜어내면서도 인내하느라 관자놀이에는 불룩한 핏줄이 솟았다.

“으, 더 하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

그는 흥분을 넘어서 고통스러워 보였다.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쯤 할까 고민이 들 무렵이었다.

깊게 파고든 유건의 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찰나에 물기 어린 소음이 무척 선명하게 들렸다.

유건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그는 간혹 이렇게 할 거 다 해 놓고 중간에 굳어 버리곤 했다. 당하는 입장에서 이 모습은 혼란을 야기했다.

별로 하기 싫은 건지, 내키지 않는 건지.

하지만 이제는 그가 흥분에 못 이겨 손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고, 여기서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의 스위치가 눌리는 걸 알고 있었다.

단단히 굳은 그의 손가락을 내 손과 겹쳐 다시 문지르게 하자 이전보다 더 적나라한 소리가 들렸다.

“젖었나 보네.”

나는 잔뜩 열이 오른 몸을 하고선 사뭇 단정한 어투로 말했다. 유건의 눈에서 난폭한 불길이 일었다.

“읏, 잠깐.”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내 윗옷을 벗겼다. 아차 할 틈도 없이 내 허리를 잡고 거칠게 침대에 드러눕혔다. 순식간에 자세가 반전됐다.

습도 높은 내부의 공기가 끈적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의 시선이 닿는 내 몸에 점성 높은 액체가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그는 내 볼부터 목, 쇄골을 후끈거리는 손으로 쓸어내리다가 그다음부터는 입술로 살을 빨아들였다. 그가 얼굴을 내려 이로 깨물 때는 터지는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눅눅한 공기보다 더 축축한 파장이 묵직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내 몸을 샅샅이 뒤지며 형체 없는 파장의 흔적을 쫓았다.

애먼 여린 살들이 짓이겨지고 희롱당했다. 내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열감에 못 이겨 헐떡거리자 그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파고들었다.

“이거 물고 있어 봐.”

나는 그의 지시대로 입에 물고만 있었다.

“이 날카롭게 해서 더 꽉 깨물어야지. 그렇게 물면 피 안 나오잖아.”

마치 갓 크리먼이 된 사람을 가르치는 것처럼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였다. 돌연 피를 마시라는 말에 의문이 섞였지만, 그의 뜻대로 이를 날카롭게 하려고 크리처화를 개방했다.

혓바닥 깊숙하게 고인 혈액은 간질거리는 열기를 더욱 부추겼다. 그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정신없이 빨아들일 때쯤, 그가 손을 움직였다.

“그거 계속 물고 있어야 돼. 너 멈추면 나도 멈출 거야.”

그 말을 하면서 내 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천이 떨어지는 느낌이 소름 끼쳐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맨살이 공기 중에 노출돼 춥다고 느끼기 전에 주위의 습도까지 증발시킬 것처럼 더운 체온이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얌전하게 피를 빨아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랑스럽다는 듯 내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다가 아래로, 계속 아래로 내려가 빨아들였다.

“흐으, 백… 유건.”

숨이 뚝뚝 끊겼다. 유건에게선 흡사 감로수를 찾은 사람처럼 갈급함이 느껴졌다.

턱에 힘이 빠질 때마다 그가 금방이라도 그만둘 것처럼 입을 뗐다. 내가 다시 피를 마시면 갈급하게 삼켜 내고 피를 쭉쭉 빨아들일 때마다 비슷한 소리가 아래에서도 퍼졌다.

내가 피를 마시고 있는 건지 뭘 마시고 있는 건지도 의식이 흐릿해질 때쯤이었다. 너무 오래 물고 있어서 입 안에 있는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졌다.

머릿속이 곤죽이 될 정도로 과한 자극에 정신이 마비됐다. 그의 입술이 닿아 있는 부위가 너무 뜨거워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못, 하겠어.”

내가 결국 포기를 선언하며 손가락을 빼내자 유건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마셔 놓고도 굶주려 있는 듯한 사나운 시선에 알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유건은 내가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을 계속해서 개처럼 핥았다. 귀 뒤와 무릎 뒤쪽 여린 살과 복사뼈 위를 괴롭히다가 다시 다리 사이를 차지하고 곤란한 눈을 했다.

“이거로 안 되는데….”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있었다. 그런데 유건은 아직 부족하다는 듯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다.

“후… 근데 나도 이제 못 참겠어.”

살짝 부은 그의 입술이 다시 귓바퀴로 닿았다. 귓불이 가볍게 물리는 사이 이불이 저 밑으로 던져지고,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도 굳은살이 배겨 단단하고 선이 굵은 편이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덜컥 겁이 들 정도로 묵직함이 느껴졌다.

순간 겁이 나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리려고 할 때였다. 그의 손이 아래를 보지 못하도록 내 턱을 그러쥐더니 제 얼굴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너 겁먹어서 이제 와서 내빼면 누구 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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