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2/131)

“저기요. 괜찮으십니까?”

광장을 지키고 있던 경비 에스퍼가 낌새를 눈치채고 지한에게 다가왔다.

“아는 에스퍼입니까?”

“네. 저희 팀 에스퍼인데….”

“저기요. 들리세요?”

“…….”

“혹시 이 에스퍼 불안정기였습니까?”

“아마 아닐 겁니다.”

경비 에스퍼가 지한을 흔들고 귀에 가까이 대며 말해도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이드가 정신계 에스퍼와 가이딩 하기를 꺼린다고 해도, 매칭팀에서 매칭되면 가이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절권은 S급에게만 있었고 나도 웬만하면 매칭팀에서 매칭해 주는 에스퍼와 가이딩 했다. 그러니 지한이 불안정기일 확률은 희박했다.

“저기요. 대답해 보세요. 어디 아프십니까?”

“…쳐.”

“네?”

경비 에스퍼가 여러 번 말을 건네자 드디어 지한이 목소리를 냈다. 아주 자그마한 소리였지만 어딘가 삼엄한 분위기가 흐르는… 잔뜩 억눌린 음성이었다.

“도망치라고.”

지한이 갑자기 고개를 들며 정확한 발음을 구사했다. 수정체는 어둠에 삼켜진 듯 새카맸고, 맹수처럼 번뜩이는 노란 홍채가 번뜩였다.

“으아악! 저게 뭐야!”

“크리먼이야!”

탕, 탕!

앞에 있던 경비 에스퍼가 허리에서 총을 꺼내서 곧바로 지한을 쐈다. 너무 놀라서 제대로 조준을 못 했는지 그 총알은 뒤에 있던 수호 나무에 박혔다.

“어떻게 좀 해 봐요! 여기 크리먼이 있어요!”

“꺄아악!”

“아, 씨. 무슨 갑자기 센터에 크리먼이…!”

사람들은 혼비백산 소리를 질렀고, 나는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구사월 가이드! 여기서 물러나십시오!”

“네. 근데….”

‘왜 갑자기 지한이 크리먼이 돼 버린 거지?’

그의 눈동자는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살갗이 악어의 가죽처럼 단단해졌고 툭 하고 꼬리가 튀어나왔다. 몸이 점점 비대해지며 3m에 육박하는 크기로 자라났다.

명백한 폭주 중인 크리먼의 형태였다.

“끼에에에에엑!”

“어서요!”

지한이 하늘이 쪼개질 듯 크게 포효했다.

탕탕!

“악!”

동시에 총을 쏜 경비 에스퍼를 한 손으로 쳐냈다. 분명 이번에는 명중했는데 지한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센터 각성자들은 에스퍼의 파장이 깃든 총알을 쓰기 때문에 어딜 맞혀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당장 픽 쓰러지진 않아도 적어도 경직되긴 해야 했다.

그런데 지한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케에엑!”

지한의 시선이 그 뒤에 있던 내게 꽂혔다. 지한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내게 돌진했다.

“젠장!”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뒤돌아 앞만 보며 뛰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총이라도 쏴 봐! S급 가이드 죽게 놔둘 거야?!”

“쐈잖아요! 저 크리먼 이상하게 총이 안 먹힌다고요!”

“그럼 육체계 에스퍼들 어딨어. 빨리 제압해 보던가! 너 육체계지!”

“저는 D등급이라 크리먼한테 물리면 감염된단 말이에요!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구하세요!”

“나는 지능계라고! 무슨 육체계가 이렇게 겁이 많아?”

“그건 피차일반 아닙니까! 당신 B등급이잖아! 어서 가이드 좀 구해 봐!”

“저 크리먼 뭔가 이상해. B등급도 감염되면 어떡해!”

내가 도망 다니는 사이 주위에 있는 각성자들은 다가오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관망하고 있었다.

용기를 낸 몇몇 각성자들이 지한에게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지한의 몸은 끝도 없이 커지고 있었고 힘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젠 인간이라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변해 있었다.

센터 한복판에 괴수가 나타난 것이다.

“캬악!”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꼬리가 등을 치고 지나갔다. 도저히 가이드로서 이겨 낼 수 없는 힘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크윽….”

“구사월 가이드! 괜찮으십니까!”

“괜찮겠냐. 제발 에스퍼면 뭐라도 해. 이 쓸모없는 것들이….”

열불이 터졌다. 능력을 가졌으면서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다니. 센터만 아니라면 크리처화를 개방해서 도망갈 텐데.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비록 지한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며 본 적 없는 힘을 뿜어 내고 있었지만 여긴 A지부 센터였다.

어떤 지부보다도 높은 명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각성자들이 모인 중앙 본부.

그런데 크리먼으로 변한 지한이 다른 크리먼과 달라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레 겁을 먹어서 멈칫거리고 있었다.

지들이 혹여 물려서 감염될까 봐.

등급을 막론하고 물려서 크리먼이 될까 봐 무서워하고 있었다.

탕, 탕, 탕!

그때 연이어 총성이 울렸다. 그 탄환은 정확히 지한의 눈과 머리, 심장에 박혔다. 크리처의 몸 중 핵이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부위였다.

“여기가 아닌가?”

탕!

그리고 명치였다. 지한의 핵이 원래 그곳에 있어서인지 그동안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이던 지한도 몸을 움찔 떨며 행동을 멈췄다.

“이상하네. 분명 핵을 맞은 것 같은데.”

어딘가 나른한 분위기인데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압감 있는 목소리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총을 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결이었다.

“다들 제압하지 않고 뭐합니까? 군법 제10조 몰라요?”

군법 제10조는 크리먼을 발견하면 그 즉시 사살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숨겨 주거나 사실을 묵인하는 등 크리먼을 도와주는 행동 적발 시 공범으로 간주해 크리먼과 함께 즉결 처분 당한다.

“하, 합니다!”

탕, 탕탕, 탕탕탕.

공범 취급당하기는 싫었는지 그제야 하나둘 다시 총을 들고 명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지한이 명치를 맞으면 확실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 기세를 몰아 육체계가 달려들어 몸 곳곳을 공격했다. 몸이 이제 5m가량으로 커져 버린 지한이 기우뚱, 중심을 잃었다.

그 기세를 몰아 화염을 쓰는 자연계 에스퍼는 그의 등을 지글지글 태웠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지한의 몸을 로프를 이용해 결박했다.

“케에엑!”

마지막으로 한결이 맨손에 파장을 모아 단단한 그의 뱃가죽을 꿰뚫었다.

“쿨럭….”

지한이 새빨간 피를 토해 냈다. 빠각,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한의 눈동자가 느리게 한결을 향했다.

“백… 하….”

뭉개진 발음이지만 폭주한 크리먼이 지한이라는 걸 모를 수 없는 음성이었다. 그런데도 한결의 눈동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보는 것처럼 무감각한 시선이었다.

쿵!

이윽고 지한이 뒤로 쓰러졌다. 광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에 흠집이 난 수호 나무는 육중한 지한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파장을 실은 손에 배가 뚫린 지한의 위로 수호 나무의 나뭇가지가 삐죽 튀어나왔다. 마치 지한의 몸을 양분 삼아 자란 나무처럼 다소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저… 구사월 가이드. 괜찮으십니까?”

바닥에 엎어져 있던 내게 누군가 손을 건넸다.

‘멀리서 관망할 때는 언제고 이제야 다가오다니.’

그 손을 무시하고 나 스스로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잠깐. 구사월 가이드…?”

“어머, 저게 뭐야?”

“피가… 아니 저건….”

등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각에 눈이 찌푸려졌다. 참느라 이를 강하게 깨문 턱이 뻐근해질 정도로 강렬한 고통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등에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연기가 나는데?”

“…….”

크리먼은 심한 상처를 입으면 연기와 함께 살이 재생된다. 부글부글 끓으며 살이 차오르는 모습은 마치 작은 애벌레 수만 마리가 득실거리는 것처럼 보여 크리먼인 나조차 아직 익숙해지지 않을 정도로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모습 중 하나였다.

“구사월 가이드. 고개 들어 보세요.”

이 정도 재생력이 발생했다면 분명 크리처화가 개방됐을 것이다. 지한처럼 수정체가 검게 물들었겠지.

내 손톱은 이미 첨예하게 변모해 있었다.

“구사월 가이드. 당신도 크리먼입니까?”

철컥.

총이 장전하는 소리가 유독 서늘하게 들렸다. 내게 손을 내밀던 각성자의 총구가 정확히 내 머리를 향한 것이 느껴졌다.

“하…. 진짜 개같네.”

이런 식으로 내가 크리먼인 게 밝혀질 줄 몰랐다. 내가 흡혈 욕구를 못 참아서 들킨 것도 아니었고, 이안 때문에 강제적으로 밝혀진 것도 아니었다.

지한이 변한 건 급작스러운 사고였다. 하필 그가 변할 때 내가 옆에 있었고, 갑자기 그에게 공격당했다.

불행은 이렇듯 항상 어이없는 이유로 찾아왔다. 내가 조심한다고 멀어지기는커녕 네가 나를 피할 수 있냐고 뒤통수를 내리쳤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고개를 들자 뒤이어 같은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매번 같은 꿈을 꿨었다.

사방에서 오로지 같은 목표물을 겨누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작은 블랙홀로 내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에는 크리먼으로 변한 내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한결이 있었다.

꿈에서는 항상 어떤 표정인지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선명하게 보였다. 눈동자는 커다랗게 팽창되었고 입은 살짝 벌어졌다.

얼굴 근육은 딱딱하게 굳었으며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언뜻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놀라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경멸하거나 연민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탕! 탕탕탕탕탕.

누군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찰나의 순간에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몸이 관통되는 느낌은 아프다기보다는 꽝꽝 언 얼음이 심장을 감싼 느낌이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싸하고 고요했다.

“씨발. 지금 뭐 하는 거야.”

분명 그 수많은 탄환을 맞았다면 적어도 정신은 잃어야 했는데 소리가 들렸다. 분명 시간이 멈춘 것 같았는데 눈앞에 익숙한 발이 느리게 바닥에 착지했다.

“다들 미쳤어?”

그 사람은 나에게 쏟아지는 모든 살기를 억누를 만큼 화가 나 있었다. 온몸이 저릴 정도로 흉흉한 파장이 금세 광장을 가득 메웠다.

“백유건 에스퍼. 그 가이드는….”

“그 가이드가 누군데.”

“그러니까… 그 가이드는 크리먼입니다!”

“그러니까 그 가이드가 누구냐고!”

“구, 구사월 가이드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이 점점 돌아왔다. 손으로 몸을 더듬자 생채기가 난 곳은 한 군데도 없었으며, 피도 튀지 않았다.

나를 향하던 수많은 총구는 마치 수도꼭지가 위를 향해 있는 것처럼 유려하게 휘어 있었다. 유건이 각성자들의 모든 총구를 염력으로 꺾어 놓은 것 같았다.

“지금 S급 가이드를 쏘려고 한 건가? 내가 이해한 게 맞아?”

“하지만 S급 가이드라도 크리먼입니다! 군법 제10조에 따르면 크리먼이라면 즉시 사살… 자, 잠시만요. 왜 다가오십니까.”

유건의 말에 대답한 건 내게 가장 먼저 총구를 겨눈 각성자였다. 유건이 그 사람에게 다가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왜. 계속해 봐. 제10조 뭐.”

“그, 그러니까….”

유건의 파장에 압도된 각성자가 벌벌 떨었다. 농도 짙은 파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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