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이렇게 부드러워? 손안에서 녹을 것 같아.”
“잠… 깐.”
“좋은 거 맞지? 딱딱해졌는데.”
“제발 입 좀 가만히… 흐읏.”
노골적인 언사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가 쇄골의 움푹 팬 부위를 미끈한 혀로 유린했다.
단단한 손에 잡힌 살집이 난잡하게 문질러졌다. 조금 더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만했으면 하는 두려움이 충돌했다.
눈앞이 어지럽고 생각이 어긋났다. 배꼽 아래가 저릿거려 억눌린 신음이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습한 열기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눈으로 보고 싶은데.”
“안 돼!”
“이미 늦었어.”
옷을 움켜쥐려 할 때는 그의 말대로 이미 앞이 풀어 헤쳐진 상태였다. 내가 그의 손과 입술에 정신을 놓고 있어 단추가 풀어지는 소리도 못 들은 것 같았다.
내가 뒤늦게 팔로 몸을 가리려 하자 그가 양손에 깍지를 껴 내리눌렀다.
“이거… 놔.”
유건이 할 말을 잃은 채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내 몸을 시야에 담았다. 이내 그의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미치겠네…. 생각보다 더 예쁜데.”
유건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며 인상을 조밀하게 찌푸렸다. 언뜻 난처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그는 한숨 같은 숨을 내쉬더니 다시 나를 품에 안았다.
“싫으면 발로 차. 기절시키든가.”
“잠깐…!”
뭔가 엄청난 짓을 할 거라는 경고 같아 본능적으로 멈칫거렸다.
“이걸 보고 어떻게 참아.”
입맛을 다시던 입술이 성급하게 다가왔다. 쇄골과 어깨, 팔과 이어지는 손등, 허리와 배꼽 위까지 입술이 닿으며 흔적을 남겼다.
마찰할 때마다 들리는 물기 어린 소음이 분위기를 더욱 질척하게 달궜다. 참기 힘든 열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유건의 머리칼을 엉망으로 흐트러뜨리며 할퀴었다. 그의 향기와 파장이 정신을 달게 마비시켜 머리가 뜨거워졌다.
뾰족하게 세워진 혀가 구석구석 집요하게 비벼졌다. 숨이 가쁘게 터졌다.
“거긴… 건들지 마.”
기어이 그의 손이 바지 속까지 침범하려 할 때였다. 단단한 그의 몸이 와 닿는 느낌에 내몰린 이성이 간신히 기능했다.
유건은 마치 한참 동안 굶주린 짐승처럼 핏줄까지 선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이미 열락에 지배된 눈이었다.
그가 순간 멈추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이 이상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내 바지춤을 잡고 있던 손을 끌어와 입을 맞췄다. 마치 아양이라도 떠는 듯한 간지러운 행동이었다.
효과가 있는지 그가 주저하는 게 느껴졌다. 이 기세를 몰아 혀를 내어 손가락을 빨아들이자 선명한 안광이 스쳤다.
유건이 다시 올라와 입을 맞췄다. 혀뿌리까지 뽑아낼 것 같은 거친 키스였다. 계속해서 차오르는 타액을 갈급하게 삼켰다.
숨이 모자라 밀어내자 투명한 선이 길게 늘어졌다. 유건이 내 입술을 애틋하게 문질렀다.
“알았어. 이 이상은 안 해.”
그가 다행히 어느 정도 수그러든 것 같았다.
“대신 허락한 데까지는 가질 거야.”
그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했던 건 애들 장난이라는 듯 그의 움직임이 더욱 농밀해졌다.
“너무 달아…. 진짜 뭐 이런 게 있어. 좋아서 돌 것 같아.”
유건은 입술이 닿는 부위마다 감탄하며 내 몸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다정하고 상냥하면서도 도망갈 여지를 주지 않는 행위에 궁지로 내몰렸다.
그만하라고 거절할 법도 한데 나는 끝까지 받아들였다. 그가 주는 감각이 못 견디게 좋았다.
유건과의 접촉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왠지 알면 안 되는 영역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복사뼈 아래를 핥다가 마주친 눈은 언젠가는 뼈째로 삼켜지겠다는 예감이 들게 했다. 그날 밤, 온몸이 저리는 감각에 목 놓아 울어야 했다.
***
나는 다음 날 유건을 시켜 에밀리의 친구에게 이안이 준 소량의 항생제를 전달했다. 이안이 복제하기 힘들 거라는 말을 했으니 가볍게 살펴봐 달라는 내용을 함께 전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 사월 씨, 제가 항생제를 좀 살펴봤는데요. 사월 씨 말대로 복제하기 힘든 부분이 있더라고요.
“어떤 건가요?”
- 그게….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복제하려면 유효 성분이 잘 알려진 품목이어야 하는데, 이 항생제는 유효성분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성분까지 처음 보는 게 많아서 복제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 저도 예전부터 크리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항생제에 관심이 있어서 몇 가지는 추려 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로서는 대부분의 성분을 알기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확인차 살펴봐 달라고 한 것뿐이에요.”
- 샘플만 있다면 다른 연구원과 공유해서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되는 거죠?
“네….”
- 비밀은 지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모로 정말 감사합니다.”
이안이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일말의 기대를 품었으나 역시 복제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근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 네. 말씀하세요.
“어떤 성분인지 알아 오면 조합할 수는 있는 건가요?”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피를 주러 굳이 이안의 연구실까지 찾아간 것은 다른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싶은 희망 때문이다.
- 네. 그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만 주어진다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음 이안에게 피를 주러 갔을 때 이안은 그 공간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항생제도 거기서 만드는 걸까?’
다른 연구실도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그가 그 장소에서 항생제를 만든다면 부가적인 성분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설치하기 전, 이안이 그 연구소에서 항생제를 만드는지 알아내려면 아무래도 지한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른 연구실의 유무라든지, 만드는 과정을 담기 위해 이안의 곁에서 은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지한이 가장 적합했다.
다행히 지한도 이안에게 항생제를 조건으로 협박받고 있기에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한이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것 또한 도움이 됐다.
잘하면 항생제를 복제하는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 이미 알아보고 있는데?”
“네?”
그러나 지한을 회의실로 따로 불러 이 얘길 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이미 항생제 복제를 진행 중이었다.
“몇 가지 안 남았어. 요새 이안이 너한테 항생제를 나눠 주느라 올 때마다 조합해서 더 수월해졌거든. 아직 불확실한 게 있어서 두세 번 정도 살펴보면 확실히 감을 잡을 것 같아.”
“정말요? 그럼 저도 항생제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항생제 복제에 성공하면 내게도 공유해 달라는 말을 좀 돌려 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성급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 말하기가 뭐 했거든. 너랑 사이가 좀 틀어지기도 했고…. 이거로 나를 용서해 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어.”
이전 같으면 이미 벌어진 일은 변하지 않는다며 한 소리 했겠지만 선뜻 입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절실하게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항생제가 꼭 필요했다. 이안과의 거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인간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럼 제가 도와줘야 할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저도 받기면 하면 찝찝하니까요.”
“그래.”
나는 적대감은 지운 채 어색하게 대꾸했다. 지한은 그것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 사람처럼 안색이 밝아졌다.
게다가 이 일로 내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고 느꼈는지 그 뒤로 종종 센터에서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저 자식 왜 대체 너한테 요새 아는 척해?”
그 모습을 지켜본 유건은 질색했다. 나 또한 지한이 아직도 싫지만 아쉬운 입장이니 유건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뭐? 강지한이?”
“어. 그러니까 너도 대충 넘겨.”
이렇게 된 이상 지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유건은 제삼자이니 너무 싫어하지 말라는 정도만 충고했다.
“그래도 저 자식 괘씸한데. 그럼 둘 다 인간 되면 강지한은 센터에 못 넘기는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지? 만약 넘기면 내 비밀도 불 테니까.”
“진짜 짜증 나네.”
유건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만약 지한이 항생제만 복제해 온다면 가장 잘된 일이라고 하며 자기가 두고두고 소소한 복수를 해 주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
그것까지는 말릴 생각이 없어서 설핏 웃고 말았다. 유건이 가끔 난동을 부릴 때 통쾌한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유건과 나는 요즘 심각하게 성실하지 못한 자세로 센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유건이 가이딩 하러 캡슐에 가자는 걸 싫다고 했더니 막무가내로 비상계단으로 끌고 왔다.
그가 문이 닫히자마자 성급하게 입술을 붙여 왔다.
“혀 조금만 내밀어 봐.”
“야, 백유건! 여기가 어디라고…!”
“진짜 한 번만 빨고 갈게. 응?”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이나 페어를 맺은 각성자, 혹은 각인을 한 각성자들이 그렇다더라, 소문만 들었지 내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얼른. 애타 죽겠네.”
유건은 마치 성에 처음 눈뜬 소년처럼 눈만 마주치면 입을 부딪쳐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숙소에서만 그러더니 이제 센터로 영역을 확장시켰다. 센터에서도 캡슐에서만 그러더니 어느새 비상계단 같은 사각지대까지 포함했다.
“으읍…. 흣.”
여기서 더 심각한 건 나도 영 싫은 게 아니어서 문제였다. 그가 끌고 가면 못 이기는 척 끌려왔다.
입술이 맞닿으면 파장이 먼저 반응해 그를 에워쌌다. 어떤 에스퍼가 느끼기에도 몸이 단 듯한 뭉근한 파장을.
유건은 그에 따라 충실히 반응했다. 깊은 접촉에 금세 숨이 거칠어졌다. 고개를 뒤로 당겨 그의 입술을 더욱 수월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내가 원하는 달콤한 향을 풍기며 매끄러운 혀를 질척하게 얽어 왔다.
“으응….”
그가 주는 쾌락의 파도에 속절없이 떠밀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