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연락 있어?”
내가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걸 눈치챘는지 한결이 물었다.
“어… 백유건이 좀 아픈 것 같아서요.”
“유건이가? 어디?”
한결 역시 금세 심각한 표정을 했다.
“아픈 것 같은데 말을 안 해 주네요.”
“유건이가 병원을 좀 싫어해”
그러고 보니 유건은 주삿바늘도 싫어했다. 설마 주사가 무서워서 나한테 숨기는 건가? 내가 병원에 가라고 할까 봐? 무슨 애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아픈 거 다른 사람한테 숨겼어. 가족들이 대부분 에스퍼라 약해 보이는 게 싫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이유라면 저한테까지 숨길 건 없잖아요. 나는 가이드인데.”
유건은 매번 입버릇처럼 뭐든 괜찮다고 말했다. 코피가 날 때도 잠을 잘 자지 못할 때도 이 정도는 에스퍼라면 흔히 겪는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그저 에스퍼들의 건강에 대한 자만, 무신경함에서 비롯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에스퍼이기 이전에 괜찮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됐던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에스퍼의 건강을 관리하는 가이드다. 나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 집안 사람들은 유건이가 그런 거 알아서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병원 데려갔거든. 다행히 아프면 티가 잘 나서.”
“어떻게요?”
“생각 많아 보이고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져. 유건이가 평소에는 거의 웃는 낯이잖아.”
한결의 얘기를 듣자마자 이안의 연구실에서 대화 도중 딴생각을 하는 것처럼 행동한 것과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그가 잠깐 인상을 굳히더니 숙소로 돌아간 것이 떠올랐다.
부산스럽다가도 어딘가 고장 나 보이던 그 행동들이 아파서 그랬던 것일까.
“저 잠시 통화 좀 할게요.”
“그래.”
아무래도 목소리라도 들어야 그의 상태를 알 것 같아서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다섯 번 정도의 신호음이 울리다가 연결됐다.
- 응… 구사월….
“너 괜찮은 거 맞아? 목소리가 왜 그래?”
유건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단 네 글자밖에 말하지 않았는데도 좋지 않은 건 알 수 있었다. 불안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 크흠, 자다 깨서 그래. 왜. 무슨 일 있어?
“아까 왜 안 따라 나왔어?”
-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서운했어?
유건의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그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이 들렸을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아니…. 평소에 매일 따라왔으니까 이상해서 그러지.”
- 이상할 것도 많다. 데이트하러 가는 건데 방해된다며. 그래서 안 간 거야.
“네가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는데.”
이번에는 더 선명하게 웃었다. 목소리가 커지니 유건의 음성과 숨소리가 평소답지 않은 것이 더 잘 느껴졌다.
숨을 가쁘게 쉬고 음성이 갈라졌다. 확실히 상태가 이상했다.
“가슴 답답하거나 어지럽지 않아? 호흡하는 거 불편하면 혼자 참지 말고 센터 의무실에서 검사받아. GS동 기숙사에 있는 알파 팀 가이드라도 부르든가.”
-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거 아니야. 내 말 믿고 지수라도 부르라고.”
- 걱정되면 빨리 와. 나 네 숙소에 있어. 너 없으니까 집이 휑해. 좀 추운 것 같아.
유건은 어느새 자신의 숙소에서 내 숙소로 옮겨간 것 같았다. 자기 집이 아무래도 더 편할 텐데 왜 내 숙소에 있는 건지.
내가 집에 없어서 돌봐주지 못해 더 미안했다.
“에어컨 온도를 올려.”
- 에어컨 안 틀었는데…. 구사월, 나 근데 좀 졸려. 더 잘래.
“에어컨을 안 틀었는데 왜 추워? 안 돼, 너 이상해. 자지 마.”
- …….
“야, 백유건.”
- …….
“백유건!”
통화는 끊기지 않았는데 유건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정말 잠이 든 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선배. 미안한데 밥은 다음에 먹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데이트를 중단했다.
“그래. 알았어.”
한결은 곧바로 차를 돌려 센터로 향했다. 마음이 불안했다. 항상 괜찮다고 말하던 녀석이니까 더 자세히 살펴봤어야 했는데.
그것도 내가 과도하게 파장을 쏟아부어서 유건이 아픈 거였다. 에스퍼를 아프게 하는 가이드라니. 가이드로서 완전 실격이었다.
***
한결과 가려던 식당이 센터와 꽤 먼 곳에 있어서 센터에 도착했을 땐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나는 차가 멈추자마자 급하게 차에서 내렸다.
“잠깐, 사월아. 유건이 쓰러진 거면 나도 같이 갈까? 너 혼자 유건이 못 업을 것 아니야.”
“아니에요. 지수한테 연락해서 미리 봐 달라고 했는데 잠들었대요. 제가 확인해 보고 심각한 상황이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네.”
“그리고 이거.”
한결은 GS동 기숙사 앞에 나를 내려 주고 창문 너머로 종이 백을 하나 건넸다.
“생일 축하해, 사월아. 초라도 불면서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마지막 데이트가 미묘하게 마무리됐다. 나도 밥 먹으면서 확실히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애매한 끝맺음이었다.
‘혹시 오늘 데이트를 카운트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지금 이야기를 꺼내기엔 말이 길어질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곤 기숙사로 돌아갔다. 일단 유건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백유건 이거 잠든 거야?”
숙소로 올라가 유건이 있는 게스트 룸으로 들어가니 지수가 있었다. 유건은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 파장이 불안정해서 안정제 먹고 잠들었어.”
“좀 어때?”
“네 말대로 심장 쪽에 파장이 많이 뭉쳐 있더라. 내가 풀긴 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계속 뭉치던데? 이유를 알아야 해결될 것 같은데.”
유건이 상태가 안 좋은 것은 내가 심장에 무리하게 파장을 주입해서가 맞았다. 대개는 쇼크를 일으켜도 에스퍼는 무탈한 편이지만 심한 경우 두 종류의 후유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첫 번째로 쇼크를 시킨 가이드의 파장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파장을 불편하게 느껴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두통이나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몸이 쇼크를 일으킨 파장을 기억해 몸에 무리가 갈 텐데도 그 정도의 파장을 원하게 된다. 파장이 부족하지 않아도 끝없이 원하는 게 에스퍼의 본능이고 그 자극을 알아버린 것이다.
만약 지속해서 파장이 들어오지 않으면, 자신의 파장으로 틈을 메꾸려고 뭉치게 된다. 그러니 유건은 이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는 말이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파장을 조금씩 주입해서 다시 적절한 양의 파장으로 안정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왜 그런지는 내가 알아. 주말인데 불러내서 미안해. 와 줘서 고마워.”
“아니야. 네가 계속 옆에 있었을 텐데 갑자기 이러는 게 좀 이상하네…. 네 탓하는 건 아니고 진짜 이상해서.”
“나 때문이 맞아.”
마음이 착잡했다. 유건을 내 옆에 두기로 한 순간부터 그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을 것을 예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외부의 요인 때문에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내가 유건한테 위해를 가해서 아픈 거라니….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상황이 급박하고 변수가 생겨 일이 꼬였다. 처음에는 잠깐 기절시키는 건 괜찮겠지, 싶은 마음에 파장을 주입한 거였다.
그런데 유건이 정신력으로 버텨서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높은 농도의 파장에 노출됐다.
아마 이렇게 아픈 걸 보니 유건은 정신력을 다해 끝자락까지 참은 것 같았다. 그런 애를 두고 어떻게든 이안에게 갈 생각밖에 없었던 내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들었다.
‘차라리 설득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요즘에는 내가 꼭 해야겠다고 하면 말을 듣지 않는 녀석도 아닌데….’
유건은 그 사실을 증명하듯 결국 이안의 연구실까지 찾아와 놓고선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겠다고만 했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다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항생제에 눈이 멀어 시야가 좁았던 걸 인정해야 했다. 내 행동에 너무 후회됐다.
“사월아. 뭔가 힘든 일 있으면 오늘처럼 도와 달라고 해. 나 솔직히 연락받고 기뻤어. 너랑 오래 일했어도 이런 부탁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내 표정이 어두워지는 게 신경 쓰였는지 지수가 조심스레 말했다.
“네가 그동안 사람들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굳이 들러붙진 않았는데 나도 너 좋아해. 백유건이랑만 놀지 말고 나랑도 친해지자.”
“어?”
“왜? 나는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군가 직접 대고 내가 좋다고 하는 게 어색했다. 이성에게 고백 같은 걸 받아 본 적은 있었지만, 인간적인 호감은 낯설게 느껴졌다.
내심 내가 팀원들에게 쌀쌀맞게 대했으니 당연히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히려 편했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길 바랐다.
그들의 도움 따위 필요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있더라도 의지하기 싫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유건을 비롯해 규현이나 지수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어느새 손쓸 수 없이 불어나 버렸고,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크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러나 그들의 호의에 익숙해져선 안 됐다. 괜찮다고 가까워지고 싶다고 해도 내가 밀어내는 게 맞았다.
그래서 또 선을 긋는 듯한 말을 했다.
지수는 빙긋 웃고는 상관없다는 듯이 그밖에 소소한 담소를 나눴다. 지수와 내가 공통으로 가까운 사람이 유건밖에 없으니 유건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센터에 유건을 현상 수배했을 때 유건이 주니어동 캡슐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때 지수가 제 마음을 깨닫지 못했던 유건에게 나를 좋아하는 게 맞다고 말해 줬다고 했다.
“그래서 유건이가 그날 고백했어?”
“아니. 고백 비슷한 걸 하긴 했는데… 결국 거리 두자고 그러던데.”
“그럴 것 같더라니. 내가 보기엔 그때 이미 너 좋아하는데 입으로는 엄청 부정하더라. 무슨 한결 캡틴 얘기하던데. 너를 좋아하면 안 되는 게 캡틴 때문이라는 것처럼 말했어.”
그 얘기를 듣자 숲속에서 유건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내가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가 한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유건과 페어를 한 시기에 유건은 나와 한결이 같이 있는 걸 보고 오해했고 충분히 바로잡지 않았었다. 그 후에도 유건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무슨 생각을 하든 내버려 뒀다.
그래서 유건이 내게 거리를 두자는 이유 중에 내가 한결과 연관된 것이 크게 자리 잡은 것 같았다. 한결이 나를 좋아하고 나 또한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자기를 밀어낸다고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닌데….’
“너는 백유건 어때?”
상념에 잠기는데 지수가 직접적으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