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빨아들일 때마다 가죽을 억지로 뜯어내는 것처럼 빡빡한 소음이 났다. 무는 부위가 목이어서 그런지 그 소리는 더욱 적나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지난번 습격 때 받은 충격 때문인 것 같았다.
이안이 한번 빨아들일 때마다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끔찍한 느낌이었다.
“피라도 마실래요? 조금이지만 진통제 효과가 있을 텐데.”
내가 너무 아파 보였는지 이안이 목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오랫동안 뜨거운 점막이 감싸고 있던 살결에 공기가 닿자 오한이 들었다. 어느새 식은땀을 잔뜩 흘려 몸 전체가 축축했다.
이안은 처음에 피의 순환이 가장 잘 되는 심장 부근을 물겠다고 했다. 당연히 미친놈 취급하며 안 된다고 말했다.
차선책으로 목을 제안했다. 나도 자주 유건의 목을 물었기에 말을 꺼낸 건데, 이러고 있자니 뒤늦게 후회가 됐다.
“됐어. 네가 주는 건 안 먹어.”
“계속 움직이니까 안쓰럽잖아요.”
“네가 무슨….”
안쓰럽다고 말하는 이안의 눈이 유려하게 휘어졌다. 같잖은 위선이었다. 저놈의 속을 모르긴 몰라도 이안이 내가 겁먹은 걸 좋아한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나는 그가 이렇게 기만할수록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렇게 괜찮은 척하는 것도 귀엽고. 제 발로 찾아온 것도 기특하고.”
그는 장난을 치듯 물었던 부위에 입을 맞추며 사설을 늘어뜨렸다. 크리먼이어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이안의 체온은 유독 서늘했다.
그래서 그가 피를 마시면서 목을 쥘 때마다 뱀이 몸을 타고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입술은 무척 부드러운 반면 이빨은 가차 없이 살을 벌리고 들어왔다.
“상이라도 주고 싶은데 안 받는다고 하니까 너무 속상해요.”
“머리 아프니까 제발 개 같은 소리 좀 그만해. 떠들 시간에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고 끝내라고.”
정신력이 흐려져서 말이 필터 없이 뱉어졌다. 이안과 사이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센터에 있을 때는 허울뿐인 예의나마 갖췄었는데.
그가 조직을 나가니 이런 점은 눈곱만큼 좋았다. 이렇게 격식 없이 말해도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이가 없었다.
솔직히 그가 내게 한 행동만 보면 내가 쌍욕을 하더라도 이안은 수긍할 만한 상황이었다.
“알겠어요. 빨리 먹어 줄 테니 보채지 마세요.”
나는 기분 나쁜 언행에 눈을 찢으며 그를 노려봤다.
“왜요? 구사월 가이드가 원하는 대로 맛있게 먹어 준다는데. 틀렸나요?”
“후….”
저 새끼는 아마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것이다. 지능계 에스퍼가 이안으로 인해 내게 평생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될 것 같았다.
쿠궁, 쿵.
“키에엑!”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사이,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서지는 파열음과 크리먼의 비명. 침입자가 나타난 것 같았다.
“뭡니까?”
“잠깐.”
이안은 지한을 보며 물었다. 지한이 바깥에 있는 세뇌당한 크리먼들을 살피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설마 센터예요?”
나는 혹여 센터에서 이안을 찾아낸 것일까 봐 불안했다.
‘그 주축에는 한결이 있을 텐데…!’
내가 여기서 피를 내주고 있단 사실을 들키면 한패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여기는 지하고 비상문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유건이가… 온 것 같아.”
“백유건이요?”
이내 지한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다행히 침입자는 한결이 아니었지만, 유건 또한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백유건 에스퍼뿐입니까?”
“어.”
“흐음….”
이안은 묘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늘이며 나를 쳐다봤다.
“꼬리는 안 달고 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은 이안의 본거지다. 단순 연구실이 아니라, 크리먼들도 함께 있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들켰다간 당장 고발당할 것이다. 유건이 저렇게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오는 걸 보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찾아온 건 아닐 터였다.
“이러면 곤란한데.”
쾅!
뜻밖의 상황에 난감해하고 있는데, 유건이 곧바로 들이닥쳤다. 빗물과 크리처의 피, 체액으로 얼룩덜룩한 모습이었다.
전장을 방불케 하는 형형하고 날 선 분위기가 유건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여기 어떻게 왔어?”
“잠깐.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내가 유건을 발견하고 베드에서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키자, 상처가 벌어져 목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유건의 시선이 목에 닿았다가, 내 옷으로 내려갔다가 나를 제지하는 이안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내 피가 묻어 있는 그의 입술에.
퍽!
“이 개새끼가!”
아차 할 타이밍도 없었다. 유건이 이안의 얼굴에 주먹을 내다 꽂았다. 이안이 중간에 무슨 말을 하려는데도 사정 봐주지 않고 배에 올라타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이안이 곁눈질로 뭐라도 해 보라는 듯 지한을 쳐다봤지만, 어느새 연구실의 날카로운 수술 도구들이 공중에 부유해 지한의 목 끝을 위협적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지한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유건의 염력으로 인해 곧바로 날아들 것이다.
“크윽, 큭.”
“자, 잠….”
나는 유건을 말리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피떡이 되고 있는 이안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안이 내가 아파하는 걸 볼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특히 저 재수 없는 말만 지껄이던 입술이 터질 땐 웃음기가 돌 뻔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내 여유로운 태도로 고상을 떨던 이안이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하고 맞고 있는 것이 내심 통쾌했다.
“때리면 계약 파기라고 말하려는데 말할 틈을 안 주네요….”
유건이 한참이나 성질을 부리다가 숨을 고르자, 이안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 상황에 저렇게 웃다니. 기분 나쁘고 생각보다 더한 미친놈 같았다.
“아직 안 끝났어.”
유건도 짜증 났는지 고개가 반대편으로 홱 돌아갈 정도로 세게 한 방 더 먹였다. 이윽고 다시 주먹질이 시작됐다.
흥분이 묻어 난 유건의 파장이 불안정하게 사방으로 튀었다. 그로 인해 연구실 벽면에 금이 가고 철로 된 기계들이 찌그러졌다.
더불어 이안의 킥킥 웃는 소리가 유건을 더 자극했다. 이러다간 지하 건물이 내려앉을 것 같아서 급하게 입을 열었다.
“백유건, 그만해.”
“참 빨리도 말리시네요.”
뒤늦게 상황을 무마하려 하자 이안이 빈정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며 유건에게 말을 이었다.
“그거 놔.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마.”
“이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 했어! 흡혈하는데 왜 옷까지 피에 젖냐고!”
“무슨 소리야. 내 옷에 묻은 건 다 네 피야.”
내 옷에 묻은 피는 이미 빗물에 한차례 씻겨 나가 흐릿했다. 반면 방금 목에서 흘러 옷깃에 묻은 피는 선명했다.
“내 피…?”
“그래. 숲에서 네가 나한테 피 먹였잖아. 그것보다 너는 어떻게 깨어난 거야?”
유건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화를 냈다가 의아해하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와중에 한 손은 여전히 이안의 목을 부러뜨릴 기세로 쥔 상태였다. 다소 폭력적인 행동과 그렇지 않은 표정이 기묘한 감상을 낳았다.
자제력을 잃은 아이가 이리저리 사고를 치는 모습. 다만 그 아이가 힘이 핵폭탄급이라 문제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이런 작은 연구실 따위는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으리라.
“됐으니까 말하지 마. 다시 돌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왔는지 몰라도 유건이 여기서 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이안에게 유건은 위험 요소라서 제외하고 만나는 것이 거래 조건이었다.
흡혈 중에 난입하여 이안을 폭행하다니. 잠시 통쾌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는 이 거래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안 가.”
“야.”
“당장 그만둬. 네가 크리먼이어도 상관없다고!”
“내가 상관있어! 더 이상 내 일에 끼어들지 마!”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잠깐만요.”
“너는 빠져!”
상황이 여기서 더 아수라장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른 방식으로 나빠졌다. 우리는 큰소리로 말싸움을 벌였고, 이안이 끼어들자 동시에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다들 진정하시고. 지금 백유건 에스퍼는 제가 구사월 가이드에게 흡혈 말고 다른 짓을 할까 봐 불안해서 찾아온 것 아닙니까?”
이안은 방금 전까지 구타당한 사람치곤 꽤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피 주는 것도…!”
“백유건 에스퍼가 구사월 가이드에게 피를 주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그것도 꽤 난잡하게 마신 것 같은데.”
이안은 내 옷에 묻은 유건의 피를 보며 쯧쯧 소리를 냈다.
“너는 구사월한테 협박으로 얻어 내는 거잖아. 나는 아니야.”
“그러니까 저는 강제로 마시는 거고 구사월 가이드는 당신이 스스로 내준 피를 마신 거니까 괜찮다?”
“그래.”
이안은 이전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이 일그러졌다.
“저는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네요. 서로 원하는 게 있으니까 주고받는 거잖아요. 저는 피를 마시는 대신 항생제를 주고, 구사월 가이드는 피를 마시는 대신 가이딩을 해 주고. 똑같은 거 아닌가요?”
“가이딩 받으려고 주는 거 아니라고.”
“어쨌든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주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니까 나는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니까? 얘 원래 이렇게 말이 안 통해?”
“…….”
유건은 이안과 대화하다가 답답해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둘은 오늘 처음 대면한 거였다.
서로 존재를 알았지만, 그동안 이안이 유건을 피한 건지 대화할 일이 없었다.
내게는 둘 다 이해 안 되긴 마찬가지여서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안에 빗댈 바는 아니지만, 유건이 내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일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것도 맞으니까.
그가 당최 어떻게 내 위치를 알고 계속 쫓아오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내 몸에 GPS를 심은 게 아니고서야….
‘설마….’
이상하단 생각을 하며 습관적으로 목덜미를 살피는데 무언가 딱딱한 것이 잡혔다. 엄지손톱만 한 패치가 있었다. 그걸 뜯어내자 거기엔 익숙한 물건이 붙어 있었다.
“너….”
위치 추적 기능이 있는 도청기였다. 순간 숲에서 유건과 키스할 때 그가 내 목덜미를 강하게 붙잡은 것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치켜뜨며 유건을 노려봤다.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그런 걸 붙였겠어. 네가 뻔히 위험한 짓을 하러 가는 거 알면서 어떻게 두고 보냐고.”
유건은 약간 곤란한 시선을 보내더니 불리한 입장이라고 느꼈는지, 되려 적반하장으로 몰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