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피를 맛보자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처럼 목구멍이 타들어 갔다. 미각으로 느껴지는 쾌락이 짜릿한 걸 넘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언제 주저했냐는 듯 그의 손을 틀어쥐며 그의 검지, 중지, 약지를 차례로 빨아들였다. 손바닥까지 내려가 손금을 혀로 그리듯 샅샅이 핥아먹었다.
“인간이 되지 않아도 돼.”
칭찬하는 듯한 나긋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흡혈로 인한 지독한 충만감이 신경을 지배했다.
입 밖으로 차마 삼키지 못한 침이 흘러나오고 머릿속이 향기에 짓눌려 곤죽이 된 듯 혼몽했다.
“아니, 평생 내 피 마시면서 크리먼으로 살아.”
‘크리먼’이란 단어를 듣자, 날카롭게 변한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피 맛에 미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리처화를 개방시킨 것이다.
내가 지켜온 인간다움이 서서히 부서져 갔다. 내 양손은 유건의 피로 흥건했고, 지금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람의 피에 미친 크리먼이었다.
“내 피에 중독시켜서 네가 제 발로 오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들 거야. 나 없인 아무 데도 못 가도록.”
헛구역이 치미는데 유건은 개의치 않고 다시 내 입에 손가락을 물렸다. 여린 살을 헤집고 혓바닥 안쪽을 지그시 눌렀다.
어이없게도 뒤틀리던 위장이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몸은 오랜만에 찾은 각인된 대상의 피를 격렬히 반겼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의 손에 선명한 잇자국을 냈다.
몸 구석구석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부피를 키웠다. 한참을 줄다리기하던 이성과 본능이 한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악쓰고 보채는 건 이제 끝났어.”
내내 정신적인 압박감에 떨리던 다리는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쾌락에만 몰두한 눈빛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오로지 크리처의 파괴욕, 살생, 피에 대한 갈증이 나를 이루는 모든 것처럼 느껴졌다.
유건은 그런 내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단도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아직 그의 피가 묻어 있는 손으로 내 이마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끈적한 혈액이 내 얼굴에 붉게 물들었다.
그마저도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너 길들여서라도 지켜.”
유건이 내 먹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관계에는 완벽한 갑이 있었다. 그의 피에 끌리다 못해 복종하고 싶게 된 순간부터 나는 패자였다.
내가 그와 각인하게 된 것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유건은 그동안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경계하지 않았다.
유건은 말로 들어 먹지 않으니 마지막 수단을 쓴 것이다. 머리로는 그만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은 그의 피 한 방울이라도 내 몸에 흘려보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빨아야지, 사월아.”
떨어지잖아. 질책하듯 타이르는 말에 허겁지겁 피를 삼켰다. 누구에게도 주기 싫었다. 흙에 스미는 유건의 피마저 다시 되돌려받고 싶었다. 어떠한 낭비도 안 된다. 모두 내 것이어야 한다.
“들짐승이었나 본데요?”
“괜히 힘 뺐네. 드론 수거해서 어서 들어가자고.”
욕망에 이성이 점점 잠식되어 가는데 유건이 염력으로 따돌렸던 센터 관계자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자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다.
크리처화를 개방해서 피를 마시는 걸 목격한다면 바로 신고할 것이다. 그대로 총으로 쏴 버리거나.
정신을 집중해서 크리처화를 해제하려는데 좀처럼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피를 굶었다가 마셔서인지 흥분감이 잦아들지 않았다.
애써도 되지 않아 곤란한 눈을 하자 유건이 내 손을 잡고 숲 속 더욱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어차피 이거 가져가도 수리 못 할 것 같은데. 안 가져가면 한 소리 듣겠죠?”
“꿍얼거릴 시간에 빨리 움직여.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하네.”
내 뒤에는 커다란 고목이 있고 유건은 사람들을 등지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체구 때문에 나는 다 가려지고도 남았다.
그의 피로 물든 손바닥은 여전히 내 입을 향한 채였다.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피를 취할 수 있었다.
크리처화를 풀지 못하고 그의 피를 할짝대고 있는데 돌연 유건의 새빨간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유건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뒤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채였다. 기척을 예민하게 살피느라 눈을 낮게 내리깔고 있었다.
내 혀의 움직임이 느려져서인지 그의 시선이 서서히 내 얼굴로 돌아왔다. 마주친 눈동자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그의 숨결이 달게 느껴졌다. 목덜미에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그가 목울대를 움직일 때마다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응시하다가 그의 손바닥을 쥐고 천천히 턱 아래로 내렸다. 그때쯤 내 크리처화는 해제되었다.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마주한 얼굴에 짙은 갈급증이 일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달려든 건 순식간이었다. 피가 묻은 내 입술과 그의 뜨거운 입술이 맞부딪쳤다.
“근데 무슨 쇠 냄새 나지 않아요? 비린 냄새 나는데.”
“몰라. 큰 것만 들고 가자. 다른 건 나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갔다. 이윽고 숲 속에 우리 둘만 남았다.
유건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쥐어뜯을 기세로 감쳐물었다. 고개를 기울여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가지런한 치열을 혀끝으로 쓸자 말캉한 혓바닥이 혀의 오목한 부분을 난잡하게 비볐다.
타들어 갈 것 같은 온기가 표피를 물들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오랫동안 삼켜 온 굶주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손이 예민한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자르르 떨리는 전율과 함께 흣, 하고 가느다란 신음이 샜다. 유건은 그 신음과 숨을 남김없이 삼켰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의 직접적인 숨결과 달콤한 타액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내가 열락에 못이고 침을 삼킬 때마다 상대에게 낱낱이 느껴질 것이었다.
실눈을 뜨며 그의 표정을 살피려는데, 유건이 입을 맞붙인 채로 두 눈을 뜨고 있었다. 성마르게 번들거리는 눈은 굶주린 짐승, 그 자체였다. 눈이 마주치자 곱게 휘어졌다.
먹이를 안심시키려는 연막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알고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린 살이 마찰하는 부위로부터 올라오는 간질거리는 감각은 참는다고 참아질 종류가 아니었다.
입 안 곳곳을 건드리는 예민한 감각에 배꼽 아래가 저릿했다. 열기가 몰린 눈이 아프고 따가웠다.
결국 바닥이 꺼지는 듯한 감각에 몸이 허물어지자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 만들고 허리를 추켜올렸다. 그는 이대로 쓰러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질식할 것 같은 진한 키스가 계속됐다.
“허억, 흑.”
숨이 가쁘게 터졌다. 유건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목구멍까지 핥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자, 잠깐…!”
“못 멈춰.”
뾰족하게 세워진 혀가 입천장을 슥, 핥고 지나갔다. 탄탄한 허벅지가 하체를 압박하며 거침없이 비비적거렸다.
“네가 포기해.”
자극이 과했다. 허리가 떨리고 맥박이 요동쳤다. 그의 열감에 익사할 것 같았다. 엉망으로 얽혀 문질러지는 혀의 감각에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하윽, 흑,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비음이 마구 새어 나왔다. 유건은 성난 맹수처럼 잠깐 끊긴 키스를 이어 붙이고 몸을 부딪쳐 왔다. 질척하고 젖은 소리가 우리 사이를 가득 메웠다.
빗물에 젖은 옷은 그의 조각 같은 몸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있던 내가 손을 움직여 유건의 몸을 훑어내렸다.
허리를 문지르다가 위로 올라오는 감각에 유건의 눈매가 야릇하게 일그러졌다. 등허리를 배회하던 그의 손이 내 목덜미를 강하게 쥐었다.
반대쪽 손은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파고들었다. 그의 손에 옷이 말려 올라가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서늘한 공기와 대비되는 그의 뜨거운 체온이 야릇한 감각을 선사했다. 억누른 숨 아래로 터질 듯이 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그의 손길이 깊어질수록 마비된 이성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 내 손을 움직였다. 그의 심장 바로 위 피부를 터트릴 정도로 움켜쥐었다.
“흣.”
그는 급소를 잡힌 것처럼 경직되어 몸을 떨었다. 잠깐이지만 입술이 떨어졌다.
쾌락을 참는듯한 일그러트린 눈썹이 너무 야했다. 단단하고 예리해 보이는 턱선에 맺힌 물방울과 조밀하게 짜여 있는 근육의 윤곽이 무척 선정적이었다.
나는 못 참겠다는 듯이 그의 목에 인장을 내듯 쭉 빨아들였다. 그 잠깐의 흡입만으로 예쁜 열꽃이 피었다.
“구… 사월. 너….”
“맨날 속지. 바보 같아.”
손에 가득 담긴 유건의 살을 거칠게 주물렀다. 굳이 일부러 퍼트리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파장을 내 손에 집중시켜 불어넣었다.
유건이 그동안 나와 가이딩을 자주 진행해서 적응도가 높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지금 유건을 기절시킬 목적으로 파장을 주입하고 있었다.
“한 번에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양심 없는 거잖아.”
처음부터 기절시킬 목적으로 입을 맞춘 건 아니지만, 일부러 그렇게 들리도록 말했다. 그와 키스해 보니 확실히 알겠다.
나는 유건을 욕망한다. 유건의 피뿐만 아니라 유건 자체를. 키스할 때는 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닿아 있는 체온이 애틋했다.
그의 숨을 더욱 원하게 되고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유건이 힘겹게 몰아붙여도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괴물인 채로 옆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주는 애정을 받아먹으며 인간이길 포기해도 괜찮을 거란 상념이 스쳤었다.
그를 단지 먹이로 생각하고 불쌍히 여겼다면 이렇게까지 그에게 의지하고 그를 원할 리 없다.
“안 돼… 구사월… 큿.”
심장과 가장 가까운 부위에 직접적으로 파장을 넣은 순간부터 진즉에 무너졌어야 할 정신인데, 유건은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들었다.
그가 쓰러지지 않을수록 나는 더욱더 세게 파장을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길게 끌면 유건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나는 두 눈을 딱 감고 내 파장의 반을 쏟아 냈다.
“…….”
이윽고 유건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를 부축하며 나무에 기대게 했다. 기절했을 텐데도 마지막까지 붙잡은 팔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 입을 맞췄다.
“조금만 쉬고 있어. 금방 올게.”
손목에 감겨 있는 워치를 풀어 그의 손 위에 놓았다. 한결과 밖에 나간 척하려고 풀지 않았던 건데 이제는 위치 추적 기능 때문에 놓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유건이 언제 눈을 뜰지 모르지만, 정신이 들면 다시 나를 쫓아오려고 할 테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다. 내가 유건을 좋아하는 게 맞는다면… 더욱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나란히 서고 싶었다. 크리먼이 아니라 유건과 같은 인간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