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0/131)

“아빠. 아빠는 이거 왜 만들어?”

“크리먼들을 위해서 만들지.”

“왜? 크리먼은 그냥 죽이면 되잖아.”

연구소는 뛰어다니지 않는 조건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빠의 무릎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며 언제 자신을 봐 줄지 기다리고 있었다.

현미경 너머로 시선을 집중하던 아빠가 돌연 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사월아. 크리먼이 무슨 약자인 줄 알아?”

“알아. 크리처랑 휴먼 합친 거. 학교에서 배웠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세등등한 어조로 말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잘난 체를 하며 배운 것을 자랑하는 걸 좋아하던 시기였다. 궁금한 게 많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래. 크리먼도 반은 사람이야. 사람은 함부로 죽이는 거 아니야.”

“게네들은 사람을 공격하잖아. 그리고 반은 크리처잖아. 크리처는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그랬어.”

유치원에서는 크리처를 괴물, 또는 악마로 비유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좀 더 직접적인 사료가 교과서에 등재되어 있었다. 연대별로 인류를 위협한 흔적들이 자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그건 나쁜 크리먼들. 사람도 나쁜 사람이 있듯이 크리먼도 나쁜 크리먼이 있거든. 나쁜 사람은 미워해도 되지만, 착한 사람은 미워하지 않잖아. 같은 거야.”

교과서에선 크리먼은 크리처와 가깝다고 배웠는데. 아빠의 말은 학교에서의 교육과 조금 달랐다.

“착한 크리먼이 있어?”

“그럼.”

“어디?”

“음….”

아빠가 고민에 빠진 듯 눈매를 좁혔다.

봐 봐. 착한 크리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아빠가 뭔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상에 숨어 살고 있지?”

“왜?”

“사람들이 미워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모두 나쁠 거라고 생각해서 따돌림당하는 거야.”

“왜? 착하다며.”

아빠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착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듯이, 착한 크리먼이라면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미워할까 봐 숨어지낸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빠가 항생제를 만드는 거야. 착한 크리먼들이 미움받지 않게 하려고. 사회가 편견에 사로잡혀 인식이 바뀌는 건 너무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이니까.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편견, 인식, 사회, 미움, 항생제. 알 듯 말 듯,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몰라…. 복잡해.”

어쨌든 아빠는 착한 크리먼들을 돕는 일을 하는구나. 그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아빠는 몰라도 괜찮다는 듯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는 사월이가 선입견 없이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어.”

“선입견이 뭔데?”

아빠는 그날 내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대답해 줬다. 원래도 물어보면 곧잘 대답해 주긴 했지만, 아주 진지하고 열띠게 설명했다.

나는 그동안 학교에서 크리먼은 나쁜 것이라 배워 왔고, 어렴풋이 아빠가 크리먼을 싫어해서 인간으로 만드는 항생제를 개발하는 줄 알았다.

“사월이는 이것만 알면 돼. 크리먼도 같은 사람이야.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을 흘려.”

그러나 아빠는 크리먼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크리먼을 크리처보다 인간에 더욱 가깝게 생각해서 차별당하는 크리먼에게 연민을 느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따돌림당하는 크리먼이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나쁠 것이라고 단정 지어져 따돌림당하는 건 너무 불합리했다.

내가 크리먼이 되고 나선 아빠가 말하던 착한 크리먼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크리처보다 인간과 가깝게 살려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살기를 억누르려 노력했다.

나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이 나는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크리먼도 반은 사람이란 걸 알아 줬으면 싶었다.

그러나 이게 의미가 있을까. 반은 인간이면서 인간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그들은 귀를 막고 눈을 감을 텐데.

그래서 아빠도 크리먼이 크리먼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항생제를 개발하려고 한 게 아닐까.

착한 크리먼들은 최종엔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길 간절히 바라니까. 우리는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

“깨어나셨습니까.”

익숙한 천장이었다. 화려한 조각이 반짝이는 전등. 에밀리의 게스트 룸이었다.

그런데 들려온 목소리는 낯설었다. 에밀리의 손님 방에 모르는 여자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하나로 묶은 담갈색 머리는 단정했다. 미약하게 소독약 냄새가 났다.

“누구… 세요?”

“저는….”

여자가 입을 열어 자신을 소개하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렸다.

“구사월!”

유건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문을 열어 놓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깨어난 걸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뒤이어 에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월아!”

에밀리는 곧장 내게 달려와 폭삭 안겼다. 순간 몸이 부딪히는 반동에 현기증이 일어 한쪽 팔로 시트를 짚자, 에밀리가 다급하게 몸을 뗐다.

“미안. 괜찮아?”

“어…. 근데 이분은 누구야?”

“그때 말했던 의사인 크리먼 친구. 네가 너무 걱정되는데 일반 의사에게는 우리 정체를 밝힐 수 없어서 허락 없이 불렀어.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근데 어떻게 됐어? 나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야?”

“이틀 지났어. 오늘은 토요일이야. 게이트는 잘 마무리됐대.”

에밀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이안은? 지한 선배는?”

“선배라고 부르지도 마. 그 미친놈이 어떻게 선배야.”

유건은 지한이 이안과 공범인 걸 안 건지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아마 규현이 말했겠지. 규현이 떠오르자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성규현 에스퍼는? 내가 크리먼인 거… 센터에 밝혀진 거 아니지?”

내가 크리먼인 걸 밝혔을 때, 혼란스러워하던 표정을 보아 규현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크리먼이라면 즉결 처분해야 하는 걸 아는 센터 각성자이니, 그가 그 후에 어떤 행동을 했을지 두려웠다.

“아니야. 센터엔 밝혀지지 않았어. 성규현 에스퍼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고 돌려보냈어. 강지한은 자취를 감췄고.”

유건은 내게 차분히 대답해 줬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이안과 함께 안개 속으로 사라지던 지한이 떠올랐다.

그가 폭주한 크리먼들의 정신을 조종하고… 이안이 내게 실험을 통한 검증을 하다가 제안을 하게 되고….

그런데 그게 어떤 제안이었지? 생각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연락을 취하라고 했지?

기억이 드문드문 삭제된 것 같았다. 중간중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공허한 공백이 있었다.

기억해 내려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데, 돌연 에밀리의 친구라던 여자가 말했다.

“일단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잠시 사월 씨에게만 할 말이 있으니 다들 나가 주시겠습니까?”

에밀리와 유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 현장에서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뭔가 잘못된 건가요?”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외상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한 사건 때문에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은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실험을 빙자한 일방적인 폭행을 당했을 때의 기억이 흐릿했다. 이안과 나눴던 대화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그때 느꼈던 통증 또한 뒤로 갈수록 미미하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자극으로 인해 통각이 둔해졌을 수는 있으나, 대화가 떠오르지 않는 건 문제가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 중에 중요한 대화를 나눴을 수도 있다.

“기억은 차츰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보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겁니다. 당분간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려고 할 겁니다. 현재 각인 상태라고 들었는데, 금단 현상에 따른 갈증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요?”

나는 원래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흡혈을 했다. 유건의 피를 마신 지 곧 2주 차가 돼서 안 그래도 목이 바짝 마르는 느낌에 이번 주엔 두 번의 흡혈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심해진다니. 갈증이 심해진다는 정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저도 선례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확답드리긴 어렵습니다. 금단 현상도 겪고 계시니 주의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현재 2시간 전에 신경 안정제를 주사했고, 팔에 꽂혀 있는 수액은 제가 개발한 약물입니다. 갈증을 느끼는 뇌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회복이 빠르신 만큼, 효과가 미비할 테지만 약도 처방했으니 힘들 때 복용하시면 될 겁니다.”

그녀는 책상에 놓여 있는 약봉지를 건넸다. 그녀도 인간의 피를 자주 접하는 직군이니 이러한 약을 개발한 것 같았다.

약물은 갈증을 줄여 줄 뿐인지라 주기적으로 흡혈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쓰러진 건 지속적인 공격에 몸이 경직됐다가 긴장이 풀려서 정신을 잃은 거라고 했다.

“제 명함입니다.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우울하면 찾아오세요. 몸의 재생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정신적인 문제는 다른 문제니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아침에 저 때문에 여기까지 발걸음하셨네요.”

에밀리의 부탁이어서 온 것이겠지만, 지금은 주말이고 대낮이었다. 잘 모르는 크리먼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처음이어서 더욱 고마웠다.

“죽지 않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네요. 저도 핵이 작아진다면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자의 눈에 순간 희미한 번민이 스쳤다. 크리먼에게 핵은 다양한 감상을 낳는다.

부서지면 죽기에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인간이 되고 싶은 크리먼에게는 매번 그들이 크리먼인 걸 되새기게 하는 고통의 산물이었다.

“쉬세요. 되도록 복잡한 생각은 줄이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의사가 나가고 에밀리와 유건이 다시 들어왔다. 그들은 다른 아픈 곳은 없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자세히 물었다.

나는 최대한 덤덤한 어조로 필요한 사건만 요약해서 얘기했다.

이안이 조작한 메시지 때문에 유건이 폭주한 줄 알고 밖에 나온 것과 한결이 아쿠아리움에서 범인의 확실한 증거를 잡은 일.

그래서 이안이 위기감을 느껴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내게 접근했고, 내 몸에 상처를 내어 얼마나 재생되는지 실험했다는 얘기.

“그래서…. 얼마나 그러고 있었던 건데.”

“잘 기억 안 나. 그때의 기억이 좀 흐릿한데 에밀리 친구가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은 거랬어.”

특히 시간관념이 흐릿했다. 엄청 긴 시간 같기도 하고, 찰나의 시간 같기도 했다. 그때의 감각이 너무 끔찍해서 내 정신이 일부러 기억을 지웠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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