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알림이 다섯 번이나 더 울렸다. 귀가 쨍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나는 한동안 워치에 뜬 홀로그램 글자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듯 지한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왜 갑자기 유건이가 폭주를 해?”
나는 다시 유건의 생체 리듬 그래프와 파장률을 확인했다. 40%대를 웃돌던 파장률이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19%]
명백한 1차 폭주였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제가 백유건 그래프랑 파장 보고 있었는데 3분 전만 해도 안정기였어요.”
“머리나 심장 다쳤나 봐. 급소 다치면 파장률 뚝 떨어지잖아.”
머리를 다쳤다고? 심장은… 대체 왜….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지한의 말에 경직됐던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유건에게 큰일이 날지도 모를 거란 가정만으로, 내 심장을 누군가 강하게 움켜쥐는 것 같았다.
입이 바짝 타들어 가고 팔과 목덜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뜨거운 납덩이가 머리에 들이찬 것처럼 열이 지글지글 들끓었다.
그의 피를 이제 마실 수 없다고, 내 먹이가 포악한 크리처에게 뜯어 먹히는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씹….”
순간적으로 격한 말투가 튀어 나갔다. 그를 상처 입힌 크리처에게 살해 욕구가 치밀었다.
유건을 물어뜯은 주둥이를 찢어발기고, 그의 피를 마신 목구멍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내고 싶었다.
그의 피가 다른 크리처의 내장에 조금이라도 담기는 것이 끔찍했다. 지독한 질투가 가시덩굴처럼 타고 올라가 가슴을 옥죄어 숨이 막혔다.
“백유건 게이트 어디예요?”
일단 유건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가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출동할 것처럼 말하자 지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게이트 파훼 전까지 현장 접근 금지야. 메시지에 매칭 우선순위 30명까지는 무조건 참여해야 하고, 그 외에 50명까지도 지원 요청 바란다고 했으니까 일단 지켜보자.”
분노와 흥분으로 후들거리는 손목을 애써 바로잡으며 명단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1순위에 수아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 외에 유건과 가장 매칭률이 높은 건 수아일 테니 당연했다. 하지만 수아와 유건의 매칭률은 34%. 채 50%가 되지 않는 매칭률이었다.
3단계로 시도해도 폭주를 막을 가능성이 희박했고, 유건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우선순위를 30명까지 부른 걸 보면, 사람 수로 밀어붙이려는 의도 같았다.
그러나 과연 폭주를 막을 수 있을까. 만약에 수많은 가이드의 가이딩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유건처럼 다른 가이드와 전부 매칭률이 낮은 에스퍼는 센터 창립 이래로 한 번도 없었다고 들었기에 이후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제가 갈게요.”
“어?”
“치명상이면 파장 급속도로 감소할 수도 있는 일이고, 걔 2차 폭주 시작하면 수아나 지수가 가도 못 막아요.”
1차 폭주는 가이딩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데드라인이었다. 2차 폭주부터는 진단원에서도 가이딩을 권고하지 않는다. 에스퍼의 파장이 0%가 되면 게이트가 생성될 때처럼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2차 폭주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이딩을 하겠다고 나서는 가이드가 있다면, 센터에서도 말리지는 않지만, 페어를 하거나 각인을 한 가이드가 아니면 그런 일은 희박했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으면 에스퍼가 폭발하기 전에, 자연계 에스퍼의 힘을 빌어 냉각시켜 가둔다. 그대로 F 지역에 있는 지하 벙커로 이동해 해동시킨다.
몇 시간 동안 꽁꽁 얼어붙었다가 해동된 신체와 정신이 모두 온전할 리 없다. 2차 폭주한 에스퍼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걸 캡틴이 알면…. 캡틴한테는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을 지켜보던 규현이 당장이라도 보고를 올릴 것처럼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한결이가 허락할 것 같아?”
지한이 규현의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그래도 백유건 에스퍼님은 한결 캡틴 동생이잖아요.”
“만약 허락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럼 못 가는 거죠.”
규현의 말에 내 눈썹이 날 서게 올라갔다. 날카로운 눈빛을 느꼈는지, 규현이 입을 옴짝거렸다.
“구, 구사월 가이드. S급 가이드는 게이트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게 규율입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지금 이러는 거 같아요?”
“저는 구사월 가이드 경호를 맡은 사람으로서 못 보냅니다.”
잔뜩 졸아든 주제에 말은 잘했다. 말하는 걸 보면 지한은 나를 더 이상 막아서지 않을 것 같고. 규현이 문제였다.
“제가 성규현 에스퍼 하나 제압 못 할 것 같습니까?”
규현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팔뚝으로 코를 막으며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규현이 무력으로 나를 막으려면 막을 수 있겠지만, 나 또한 파장을 이용해 그를 기절시킬 수 있었다.
파장은 호흡기로 가장 빠르게 흡수되지만 코를 가린다고 파장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적으로 가이드의 파장을 원하는 에스퍼의 세포 하나하나가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의 움직임이 빠를까, 내 파장을 방출시키는 게 빠를까. 공기 중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성규현 에스퍼.”
얼마 안 가 내가 먼저 얕게 숨을 내쉬며 흥분감을 억눌렀다.
“게이트 진행률이 97%이니 곧 파훼 완료될 겁니다. 운이 좋으면 가는 도중 완료될 수도 있겠죠.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 제가 나중에 보고드리고 설득하겠습니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두 분께 최대한 피해 안 끼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일단 말로 설득했다. 급하다고 소란을 피웠다간 시간만 지체될 것이다.
내가 게이트 주변으로 이동하는 걸 허락하는 것은 경호를 맡은 규현과 지한이 한결의 명령을 어기는 짓이다.
내가 움직이는 건 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니, 그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는 게 맞았다.
여러 위험이 따르는 게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건에게 가이딩을 하러 가고 싶었다. 만약 내가 지금 가지 않아서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내내 후회할 것 같았다.
나는 S급 가이드이기 전에 유건과 가장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이다. 50% 이상의 매칭률을 가진 가이드가 없는 유건에게는 유일한 생명줄이다.
더불어 1차 폭주는 2차 폭주에 비해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았다. 지금 바로 간다면 99%의 확률로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유건이 참여하고 있는 A7구역은 A지부와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다.
센터의 규율 때문에 상황을 다 알고도 가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래. 정 걸리면 우리는 일단 출발할 테니까, 성규현 에스퍼는 남아서 지부장님한테 가서 보고 올려. 지부장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
A지부 지부장님은 유건의 아버지였다. 아무리 공사 구분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자식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막아설 것 같지 않았다.
규현이 지한의 말에 고민에 빠진 듯 입을 다물었다. 여러모로 지한의 말이 합리적이었다.
마침 경호 에스퍼가 두 명이니 한 명이 내 경호를 맡고, 한 명이 말을 전하면 되리라.
“안 됩니다.”
잠깐이지만 흔들리는 듯한 모습에 규현이 수락할 줄 알았건만, 규현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강지한 에스퍼한테만 구사월 가이드님을 맡길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말에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지? 지한 선배가 그렇게 못 미덥나?
그렇다기엔 아이스크림 먹을 때는 굉장히 믿는다는 듯이 말하지 않았나? 다 빈말이었나?
“그러든지. 일단 센터로 돌아가자. 군용차 타고 가게.”
“예.”
지한은 그에 대해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규현이 막아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
우리는 알파 팀이 사용하는 군용 SUV 차를 몰고 센터를 나섰다. 에스퍼가 게이트에 출전하러 갈 때면 군용 트럭을 타고 가지만, 우리는 게이트에 참여하는 게 아니기에 중형차를 골랐다.
나와 규현은 뒷좌석에 앉고, 지한이 운전대를 잡았다. 지한이 며칠 전, 임무를 수행하러 갈 때 탔다면서 익숙한 차종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뒷자리에는 지한이 놓고 간 하얀 제복이 널브러져 있었다. 에스퍼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갈 때를 빼고는, 거의 입지 않는 제복을 저렇게 아무렇게나 관리하곤 했다.
지한은 제복을 뒤 트렁크에 대충 던져 놓으라고 했지만, 나는 잘 개서 무릎에 올려놨다. 뒤에 두면 지한이 또 잊어서 놓고 갈 것 같았다.
“게이트 근처로 가면, 생성 시 발생하는 폭발 때문에 일부분 불길이 일거나 다소 황폐한 모습일 겁니다.”
“네.”
“가다가 간판이나 철골물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이 차는 내구성이 좋아 만약 전봇대가 위로 떨어져도 버텨 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 안 해요.”
규현은 나보다 초조해하며 게이트 근처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나에게 조심하라는 의도로 말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자신이 주절주절 떠들며 불안감을 삭이는 것 같았다.
“A7구역에 있는 게이트는 타임 어택 게이트이기 때문에 게이트 밖으로 나와 가이딩을 진행한 에스퍼가 묻힌 크리처의 체액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처의 체액에는 독성이 있으니 함부로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만약 갑자기 크리처, 혹은 크리먼이 덮쳐도 걱정 마십시오. 제가 꼭 목숨을 걸고 지켜 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처음 유건의 폭주 사실을 들었을 때는 무척 놀랐지만, 어느새 많이 진정됐다. 그때는 유건이 심장을 다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에 대한 소유욕이 끓어 넘치도록 차올라서 손이 벌벌 떨렸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폭력적인 생각이 휘몰아쳐 정신이 없었다. 심각한 상황은 맞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간다면 유건은 저승길을 마주할 일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거의 다 도착했는지 벌써부터 돌멩이를 밟는 것처럼 차가 덜커덩거렸다. 폭발로 인한 건물 외벽의 잔해물일 것이다.
승차감이 무척 안 좋았지만, 이 정도쯤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돌연 차가 붕 뜨더니 거세게 낙하했다. 과속 방지 턱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지한 에스퍼. 제가 운전할까요?”
곧바로 규현이 질책하듯 운전대를 바꿀 것을 요청했다.
“아니야. 먼지 때문에 못 본 거야.”
지한은 운전대를 뺏기고 싶진 않은 건지 변명하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창밖은 먼지로 뿌옇게 덮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