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0/131)

주의를 끄는 건 익숙한 일이어서 그렇게 신경 쓰이진 않았지만, 규현은 경호 경호 임무가 처음인지 계속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처음엔 화장실에서였다. 규현이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따라 들어왔다. 이대로 가다간 칸까지 들어올 기세라 막아서며 물었다.

“아무리 여자여도 에스퍼는 위험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센터 내에서의 경호 임무라 에스퍼에게서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듯했다.

“저 습격 사건 때문에 경호받는 겁니다. 여기는 센터라서 크리먼도 크리처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고요.”

“압니다. 범인이 사라진 연구원이자 정신계로 추정되지 않습니까? 센터 에스퍼들 또한 잠재적 위험 요소입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규현은 그 사건의 범인에 대해 꽤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 처할지 모르니 밀착 경호하겠습니다.”

“이 정도 선까지 밀착 경호를 시킬 거였으면 여성 에스퍼를 저에게 붙이셨겠죠. 이건 과잉 경호입니다. 기절시키기 전에 나가세요.”

그러나 뜻을 받아 줄 생각은 없었다. 정도가 지나쳤다. 무슨 경호를 경호 대상의 인권까지 침해하면서 한단 말인가.

계속 말을 안 듣는다면 방사 가이딩을 방출시켜서라도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다행히 기절은 당하기 싫은 건지, 규현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렇게 내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과잉 경호는 다른 장소에서도 빛을 발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내 전방 3m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규현이 막아서서, 배식 줄이 밀리고 있었다.

“성규현 에스퍼. 뭐 하시는 겁니까?”

나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며 말했다.

“경호 중입니다.”

“그만 하세요. 하…. 경호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캡틴이 저에게 위중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규현은 소문난 한결의 팬이었다. 각성을 하기 전부터 한결을 졸졸 따라다니고 선물을 보내고, 팬클럽 부회장까지 맡은 사람이었다.

팀원들은 한결이 죽으라고 지시하면 죽는 시늉도 할 거라고 말했다. 한결이 규현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계속 그러시면 캡틴한테 걸리적거리니까 제외해 달라고 요청할 겁니다.”

“아, 안 됩니다! 그것만은…!”

그는 언제 막아섰냐는 듯 각성자들을 앞으로 안내했다. 한결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태도를 바꾸는 게,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어쩜 이렇게 투명할까. 말을 하면 곧바로 시정하긴 하는데…. 오늘 종일 이렇게 피곤하게 굴 건가?

내가 여전히 못마땅한 눈길로 규현을 주시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지한이 말했다.

“내가 쟤보다 낫지.”

“네.”

아무것도 안 하고 내 옆에 붙어만 있는 지한이 정말 나을 지경이었다.

“그냥 제외해 달라고 해. 뭘 망설여.”

나는 배식을 받은 지한을 흘깃 바라봤다. 그는 고기반찬을 주는 영양사 이모님에게 살갑게 말을 걸며 조금만 더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캡틴이 요새 저를 별로 안 좋게 봐서요.”

“그래도 말이라도 해 봐. 내가 봐도 쟤 좀 심각해.”

그렇긴 하다만…. 한결이 조만간 범인의 꼬리를 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 말이 걸렸다. 그가 아무 이유 없이 규현을 붙였을 것 같지 않았다.

“됐어요. 어차피 오늘 하루니까 참아 볼래요.”

지한은 웬일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먼저 4인용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그쪽으로 천천히 걷는데, 규현이 후다닥 뛰어가더니 우리 주위에 있는 식탁에 배식판을 놓으며 다른 각성자들이 앉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는 규현의 황당한 행동에 기가 막혔다. 쟤를 대체 어쩌지….

***

게이트 등급이 낮아서인지 오전에는 바빴지만, 오후는 부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결은 이제 두 번째 게이트에 참전할 정도로 빠듯하게 움직였다.

유건이 들어간 게이트는 무슨 일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니까 미리 나와 있어야 가장 의심스럽지 않은 부상자를 맡아서 사월이가 가이딩 할 거 아니야.”

“하지만 원래 가이딩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전시 상황에는 진단원에서 모두 매칭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네가 아직 뭘 모르는구나. 사월이는 S급이라 해당 안 돼. 급이 다르다고.”

“아, 그렇군요!”

나도 전시 상황 때는 진단원 매칭에 의해 가이딩을 한다. 다른 가이드와의 차이라면 거절할 권한이 있다는 것 뿐이다.

규현은 지한에게 어설픈 설교를 듣고 있었다.

“경호는 경호 대상의 컨디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해.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스크림을 줘서 심적 안정감을 주는 거지.”

“강지한 에스퍼는 진짜 대단하세요. 역시 한결 캡틴의 오랜 친우이십니다.”

오전 내내 캡슐에 갇혀있다시피 했더니 목이 칼칼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지한이 나를 대신해 규현의 과잉 경호를 막아 주고 있어 야외에서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처음엔 사방이 뚫린 야외에 있는 건 안 된다고 어찌나 유난을 떨던지. 우리는 기숙사로 가는 길목의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센터와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광장보다는 사람이 적었다.

공원 분수대 주위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왠지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너도 너무 한결이만 쫓아다니지 말고, 개인 임무 좀 맡아. 가만 보면 이상한 데서 초짜 티가 나.”

“그런가요. 아직은 그래도 캡틴 옆에서 배우는 게 좋습니다. 제가 아직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규현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한결 아래서 3년 정도 배웠으니, 지한이 한 말도 어느 정도 맞았다.

5년이 지나면 캡틴도 노려볼 수 있는 연차인데. 뭐, 연차만 쌓인다고 전부 캡틴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 규현이 화장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압니다. 범인이 사라진 연구원이자 정신계로 추정되지 않습니까? 센터 에스퍼들 또한 잠재적 위험 요소입니다.”

규현은 가이드 습격 사건 범인에 대해서 꽤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유건은 내 얘기를 듣기 전에 저 사실을 몰랐으니, 단순 임무에 참여한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인데.

한결 말로는 개인으로 움직인다고 했지만, 규현을 신임하는 걸 보면 범인을 쫓는 일도 함께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지한 선배.”

“응?”

“가서 아이스크림 좀 하나 더 사 주세요.”

“와, 이제 셔틀을 시키네.”

지한이 어이없다는 듯 탄식했다. 나는 조금 멋쩍어져서 내 신용 카드까지 손에 들려 주며 다시 한번 부탁했다.

“선배가 먹고 싶은 것도 사고요. 부탁합니다.”

“무슨 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경호 대상의 컨디션, 취향까지 고려해서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스크림을 주는 게 경호원의 역할이라면서요. 저 지금 아이스크림 너무 먹고 싶어요. 어서요.”

지한이 말했던 억지스러운 명분을 들먹이며 떠밀었다. 규현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끼어들지도 못 하고, 눈치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어정쩡하게 입에 물고 있었다.

“알았어. 똑같은 거 사 오면 돼?”

“네.”

지한은 결국 툴툴대며 건너편 편의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가운데 앉아 있던 지한이 사라지자, 규현과 내 사이에 공간이 생겨났다.

내가 엉덩이를 들어 그 옆으로 바짝 다가가자, 규현이 흠칫 놀랐다.

“왜, 왜 그러십니까?”

“성규현 에스퍼.”

“예, 구사월 가이드님.”

규현이 내가 고작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꼿꼿하게 얼어붙었다. 저 존칭은 왜 꼬박꼬박 붙이는 건지.

규현은 나와 유건에게만 ‘님’이란 존칭을 붙였다. 유건에게도 붙이는 걸 보면 연차가 높아서 붙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이건 중요한 건 아니기에 미뤄두고 지한이 오기 전에 재빨리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즘 가이드 습격 사건 임무 맡고 있죠?”

“…예.”

“잠정 중단된 것 같던데, 혹시 캡틴이랑 따로 움직이고 있어요?”

“…….”

규현은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묵묵부답이었다. 이미 아이스크림은 다 먹고 막대기만 남아 있는 끝부분을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오늘 화장실에서 범인 세부 정보 알고 있었잖아요.”

“…….”

“그거 캡틴만 알고 있는 정보일 텐데.”

“…….”

“범인에 대해서….”

“안 됩니다.”

내가 점점 세밀하게 파고들자, 규현은 단칼에 끊어 냈다.

“뭐가요?”

“한결 캡틴이 임무에 관한 정보를 구사월 가이드님께 절대 공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규현은 한결이 알아낸 정보를 알고 있었다. 내 입가의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규현은 어딘가 결연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내 눈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숨바꼭질하듯 시선을 회피하고, 막대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초조한 것처럼 바짓단을 문대고 있었다.

“그럼 처음부터 잘 숨기셨어야죠.”

나는 흡사 악역처럼 비열하게 웃었다. 너무 기뻐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투명한 녀석을 꼬드겨서 정보를 캐내는 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성규현 에스퍼가 올해로 몇 년 차죠?”

“직급 혹은 연차와 관련하여 부적절한 압박은 직장 내 폭력으로 간주합니다.”

“무슨 제가 폭력이에요.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나는 너스레를 떨며 너무한다는 듯 눈을 샐쭉 떴다. 규현이 침을 꼴깍 삼키더니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으시는 거라면… 이번에 정확히 3년 6개월 됐습니다.”

“5년 차면 캡틴도 달 수 있는 연차인 거 알죠?”

“…예.”

“성규현 에스퍼가 캡틴 자리에는 욕심이 없을 것 같고….”

나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내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규현의 얼굴 근육이 잘게 떨려 왔다.

내 시선이 집요해질수록 긴장되는지, 규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4년 차로서 이번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한결 캡틴 옆자리에 든든히 자리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규현은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술은 살짝 벌어졌다. 좀 전의 불안감과는 또 다른 다소 경직된 반응이었다.

알파 팀에서 한결의 오른팔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규현이었다. 지한이 애매하게 걸쳐 있었지만, 그는 센터 임무에 열정적인 타입이 아니었다.

맡은 임무는 잘 수행하지만 정해진 선을 그어 놓고 뭐든 ‘적당히’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규현은 임무 수행보다는 한결의 예쁨을 받는 게 목적이라서, 항상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해 왔다.

상관 입장에서 열심히 하는 규현을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규현이 열정적이기만 하다면 또 말이 다르지만, 그는 항상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보여 왔다.

그러니 규현 입장에선 내 말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는 내가 그다음에 어떤 말을 꺼낼지 굉장히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성규현 에스퍼가 4년 차니까 캡틴이 기대하는 게 더 클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요새 백유건 에스퍼가 굉장히 성과가 좋잖아요. 저는 성규현 에스퍼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 온 만큼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에요.”

“뭔가… 캡틴에게 들으신 게 있는 겁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