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8/131)

“근데 델타 팀 정신계면…. 지국현 에스퍼 말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 좀 께름칙하던데.”

델타 팀은 특수계나 정신계처럼 수가 적은 에스퍼로 구성돼 있다. 팀으로 묶어 놓긴 했지만 대부분 개인적으로 임무를 진행했다.

그중 지국현 에스퍼는 A급 정신계 에스퍼인데, 여러모로 센터에서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일단 정신계는 환각, 기억 조작 능력, 독심술 등 다양한 능력으로 나뉘는데, 그중 가장 상위 클래스로 꼽히는 마인드 컨트롤의 대가였다.

마인드 컨트롤은 정신 조작 능력, 즉 세뇌를 일컫는다. 이를 통해 정신계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한도 마인트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그의 등급은 C등급이었다. 등급이 각성자에게 모두 중요해도 정신계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정신계는 능력을 사용하려는 상대보다 등급이 낮으면 아예 능력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어중간한 등급인 정신계는 정신계 취급도 해 주지 않았다. 그 커트라인은 C등급까지였다.

그리고 그가 유명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국현은 대부분 지상보다 지하에서 업무를 봤다.

센터 지하에는 범죄를 일으킨 각성자가 재판을 받기 전 모여 있는 수용소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각성자의 진술이 진실인지 심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근데 그 심문 과정이 통각을 극도로 자극해 손끝만 닿아도 손톱이 뽑히는 듯한 감각을 일으킨다거나, 산 채로 불에 타는 환각을 느끼게 한다는 등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소문이 센터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게다가 어딘가 냉소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지국현의 차가운 인상은 소문의 부피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A지부 각성자들은 누구나 지국현을 기피하고 불편해했다.

“사람 자체가 위험한 느낌이어서 나도 별로 내키지 않지만, 우리 둘 다 S급이니까 능력은 먹히지 않겠지.”

우리가 국현보다 등급이 높은 게 다행이었다. 그가 정신계 에스퍼로서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에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만약 그 사람이 범인이어도 유건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소리였다.

“근데 어떤 걸 물어볼 거야? 지국현 에스퍼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거야?”

“그것도 가능성을 두고 있긴 한데…. 난 솔직히 그 사람보다 이안이 더 의심스러워.”

그에게 핵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의문스러운 행동도 그렇고 에밀리의 말을 듣고 다시 그가 의심스러워졌다.

“일단 내가 정신계에 대해서 잘 몰라서, 정신계가 어느 선까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자문을 구하려고. 정신계 에스퍼 본인을 다른 계열로 보이게 할 수도 있는지, 그런 거.”

나는 이안을 용의자 1순위로 두고 범인을 쫓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최근에 내게 직접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이안뿐이었다.

이안이 범인이 아니더라도, 이 사건과 깊게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단지 연구에 대한 흥미 때문에, 지부를 옮기면서까지 나를 쫓아오진 않을 것 같았다.

“한결 선배한테는 경호 에스퍼 필요하다고 요청할게. 너로 해 달라고. 그러면 내 옆에 붙어 다녀도 무리는 없겠지.”

“그럼 나야 편한데. 근데 이상하네.”

“뭐가?”

“웬일로 이렇게 적극적이야?”

유건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진짜 경호 에스퍼가 필요하니까.”

“그건 그렇다 치는데. 사람들 많은 거 싫어하잖아. 오늘도 회의실로 부를 줄 알았더니 카페로 오라고 하고.”

나는 따뜻한 핫초코를 시켰고, 그는 자몽에이드를 마시고 있었다.

페어 관계일 때는 사무실, 캡슐, 식당밖에 오가지 않아서, 그와 카페에서 단둘이 있는 것 자체가 특별할 일이었다. 이렇게 한적하게 시간을 보낸 적조차 없었다.

“곧 알게 돼.”

유건은 어제 내게 다시 같이 다니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면서, 막상 내가 먼저 그를 불러내자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란 눈초리였다.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채더니, 날로 눈치만 느는 것 같았다.

“어머. 저거 구사월 가이드랑 백유건 에스퍼 아니야? 둘이 다시 붙은 거야?”

“그러게. 근데 페어 취소하면 2년 동안 다시 페어 못하지 않아?”

지금은 한창 센터 각성자들이 커피를 사러 올 시간이었다. 막 카페로 들어온 각성자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김채령 오늘 백유건 에스퍼랑 2단계 이상으로 가이딩 진행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 아까까지 엄청 신나 했던 것 같은데.”

“연락해 봐. 지금쯤 찾고 있을 것 같은데.”

김채령이라면 얼마 전 유건에게 강제로 가이딩 샤워를 한 가이드였다. 그에 대해서 듣기만 해도 남사스러운 대화를 주도한 가이드.

“왔어? 채령아, 저기.”

이윽고 근처를 지나고 있었는지, 김채령 가이드가 바로 카페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는 유건과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이었다.

“너 김채령 가이드랑 2단계 이상 진행하기로 했어?”

나는 유건에게 직접 대고 물었다. 일부러 들리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열댓 명 오늘 매칭 잡힌 거, 바로 취소했는데? 너랑 가이딩해서 파장 안 부족하니까.”

유건은 관심 없다는 듯 빨대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미미하게 미소를 머금고, 유건에게 허리를 숙여서 귓가에 가까이 다가갔다.

“내 옆에 경호 에스퍼가 붙었다는 소문이 되도록 빨리 퍼져야 범인이 쉽게 접근하지 않을 거 아니야. 웬만하면 한치도 떨어질 틈 없이 사이가 좋다고 나는 게 낫잖아.”

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내가 그를 카페로 부른 이유를 말했다. 유건의 목에서 꿀꺽, 하고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거리를 좁혀서 그런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구사월 가이드가 먼저 백유건 에스퍼한테 입 맞춘 거 아니야?”

“아, 잘 안 보이는데. 아무튼 구사월 가이드가 먼저 다가간 건 맞아.”

유건이 구경꾼들을 등지고 있어서 그들이 보기엔 정말 내가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춘 것처럼 보일 것이다.

김채령 가이드가 이쪽으로 다가오지도 못하고 이를 까득거리며 노려보고만 있었다. 속으로 묘한 쾌감이 터졌다.

‘그러게, 넘볼 걸 넘봐야지.’

그녀가 내 이름을 운운하며 유건을 함부로 말하는 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투라기보단 한번 내 손이 탄 걸, 누군가 눈독을 들이는 게 기분이 나쁜 것일 뿐이다.

나는 그대로 계속 가까이 얼굴을 붙이며 보란 듯이 유건의 목덜미를 살살 쓸어내렸다.

“야…. 잠깐.”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이딩도 나한테 받는 게 어때? 선배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어.”

“아니… 뭐? 한결 형이?”

“어.”

유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을 움츠리다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물었다. 김채령 가이드는 이내 더 이상 못 보겠는지, 홱 돌아서며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로 그녀의 친구들이 대박이라며 소란스럽게 우르르 빠져나갔다. 아마 오늘 안에 유건과 내가 화해했다는 소문은 센터에 넓게 퍼질 것 같았다.

나는 언제 유건에게 은밀한 접촉을 했냐는 듯 몸을 물리며 다시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때 유건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도 너한테 받고 싶긴 한데….”

웬일로 고집을 안 부리네. 이번엔 그가 내 귀에 바짝 다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피 주는 건 안 돼.”

“됐어. 안 마셔.”

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어쩌다 보니 매번 그에게 가이딩을 해 주는 대신 피를 마시게 됐는데, 유건이 그 부분이 염려된 모양이었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거 생길지도 모르잖아.”

유건이 말하는 ‘그거’란 핵을 말하는 거였다.

“알아. 나도 요새 네 거만 마셔서 그런지 좀 이상하단 말이야.”

“어디가? 어디 아파?”

유건이 붙잡고 있는 손목이 의식됐다. 분명 피를 마시고 있는 게 아닌데도, 미세하게 갈증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몸이 갈증을 거짓으로 꾸며낸 것처럼, 흡혈 욕구는 이는데 피로 채워지는 감각이 아니었다.

확실히 몸 상태가 이상했다.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오늘이라도 에밀리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계속 같은 거 먹으면 질릴 수도 있고….”

나는 유건에게는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

유건은 사무실로 돌아가 지국현 에스퍼에게 가이드 습격 사건과 관련하여 임무 협조 요청서를 보냈다. 그는 일정이 안된다는 사유로 거절했다.

그다음 날 다시 보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다음에 또 보내고, 역시 거절당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자, 하는 수 없이 내가 가이딩과 관련하여 면담 요청 건을 보냈다. 이번엔 곧바로 수락했다. 나는 유건을 데리고 지하 수용소로 향하고 있었다.

“너 지국현 에스퍼 모르는 거 맞아?”

“어.”

수용소 입구에 도착하자, 중무장하고 보초를 서고 있던 경비 에스퍼가 보였다. 국현이 미리 언질을 준 건지, 경비 에스퍼는 우리를 보자마자 안내를 도왔다.

“와, 일주일 동안 시간 없다고 깠으면서. 진짜 웃긴다. 역시 에스퍼들 다 똑같아.”

유건은 가는 길에 연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신계라면 워낙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탓에 지한처럼 가이딩이 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특별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가 희귀한 능력을 사용하는 만큼 바쁜 건 당연했고, 애초에 내가 움직이는 게 빨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수용소는 나도 처음 들어와 보는 곳이라 어렴풋이 허름한 철창을 상상했는데, 지하라서 퀴퀴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각성자를 가두는 장소이니만큼 방 안에 방이 있는 구조여서 우리는 수감자들을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온 것 같은데 경비 에스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되게 조용하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센터의 소음과 멀어지고 너무 적막했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온 것처럼 귀가 먹먹하게 느껴졌다.

나는 괜히 유건을 힐끔 바라봤는데, 유건은 아무 감상도 느껴지지 않는지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센터 소문으로 들은 국현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괜히 유건이 감정적으로 대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것 같아서 나는 오기 전 유건과 한가지 약속을 했다.

국현과의 자리에서 절대 대화에 끼어들지 말 것. 그가 어떠한 도발을 하더라도 참으라는 얘기였다.

“약속 지켜.”

“알았어. 걱정 마.”

그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대답은 꼬박꼬박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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