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어. 없었어.”
“거짓말 아니지?”
“내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해? 막말로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게 증거잖아.”
안심하라고 말한 건데 되려 그의 눈에서 다시 불길이 일었다. 나는 머쓱해져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거짓말 아니란 말이야.”
그는 마른세수하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너한테 피 절대 안 줘.”
“다행이네. 이제야 네 몸을 소중하게 여겨 줘서.”
그가 매번 너무 아무렇지 않게 피를 마시라고 해서 미안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왠지 말투가 빈정대는 것처럼 나갔다.
‘뭔가 줬다 뺏는 기분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상태가 이상했다. 분명 어제 차고 넘치도록 그의 피를 마셨는데, 갈증이 일었다.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피부가 건조하게 느껴지는 증상. 그런데 평소처럼 물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유건과 닿고 싶었다.
나는 괜히 입술을 혀로 핥으며 유건을 곁눈질했다. 그는 다시 액셀을 밟으며 두 손을 정직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의 단내가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더 참기 힘들었다. 진짜 상태가 이상한데.
“왜 죽으려는 건데?”
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어딘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내 인생이야. 관여하지 마.”
“알았어. 알았다고. 관여 안 할 테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해. 그냥 궁금해서 그래.”
냉하게 대꾸하자 그가 속이 터진다는 듯이 말했다. 재미없고 우울한 얘기 뭐하러 듣고 싶은 건지.
그가 이해가 안 가면서도 오늘따라 나도 생각이 많아져서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듯이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인간이 되더라도 과거의 죄는 안 지워지잖아. 다른 사람들한테 크리먼인 걸 들켰을 때 겪을 상황도 비참하고.”
나는 자연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쏟아 냈다. 그중 가운데 부근은 블랙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저 근방에 게이트라도 생성됐나 보지.’
게이트가 생성되면 불균형한 파장으로 인해 그 일대가 마비되곤 했다. 운이 나쁘면 게이트가 생성될 때 순간적인 폭발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렇지.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니까.”
그는 내 말에 조용히 수긍했다. 요즘 시대에 크리처로 인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희박했다.
그들의 친구가, 가족이, 애인이, 아는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크리먼인게 밝혀진다는 건 각성자 계급의 제일 꼭대기에서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하는 격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영웅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괴물로. 어렸을 때부터 S급 각성자로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살아온 나에겐 그 간극이 너무 커서 내가 크리먼이란 사실이 더욱 버겁게 다가왔다.
“근데 그냥 미래의 네 삶만 생각하면 안 돼?”
유건은 돌연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반박하며 말했다.
“관여하지 않겠다며.”
“…그냥 권유하는 거잖아.”
말은 한번 잘한다. 그냥 떼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변함없지만.
“죽은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고 돌이킬 수 없어. 네가 어떻게든 속죄해도 변할 수 없는 거야.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으면 되잖아. 너도 억울하지 않아? 처음 물렸을 때 이성이 없었을 텐데.”
그렇다고 그는 무작정 내 편을 들어 주진 않았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억울해.”
과거가 변할 수 없는 건 나도 잘 알았다. 내가 사고 당시 이성이 없었기에 억울하단 것도. 다른 크리처와 크리먼들의 살생이 내 탓이 아니란 것도. 내가 그 후에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데.
“그럼….”
“근데 내가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내가 괴물이 아니란 걸 사람들이 믿어 줄까?”
내가 어떤 짓을 하고 어떤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네 말대로 과거를 바꾸진 못하니까. 내가 크리먼인 게 밝혀지면 내가 그날 이성을 잃어서 한 행동이든 아니든 그런 건 다 상관없어질 거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당하겠지. 난 그런 더러운 꼴 보기 싫어. 그 상황이 왔을 때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운명이 제멋대로 내게 불행을 쥐여 줬다고 내가 꾸역꾸역 이겨 낼 필요는 없었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도 아닌데, 속죄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노력하는 것보다 포기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 삶을 스스로 놓을 권리는 줘야지. 그마저도 주지 않는 건 너무한 게 아닌가.
작은 소망이 있다면 되도록 나를 알던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되지 못할 거라면,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핵을 되찾아서 죽는 게 나았다.
“그럼 남아 있는 사람들은?”
“…….”
“네가 크리먼이어도 상관없이 너를 아끼는 사람들은?”
내 지인 중에 비밀을 모두 밝혔을 때 상관없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밀리와…. 아마 백유건. 그 둘이었다.
“…조금 슬프다 말겠지. 슬프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일부러 덤덤하게 얘기했다. 남겨진 이의 슬픔 또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때문에 이 혼란과 자괴감을 가지고 죽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은 잠깐이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니까. 나 또한 부모님의 죽음이 흐릿했다.
엄마가 해 주던 밥이 어떤 맛인지 떠오르지 않고, 아빠의 손이 얼마나 따듯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된다. 그들도 마음 한구석에 추억을 묻어둔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난 죽을 것 같은데.”
유건이 말이 없다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읊조렸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변명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너한테 가이딩 못 받으면 죽을 거 아니야.”
차가 막 터널에 들어서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너도 다른 가이드랑 3단계로 하면 죽진 않….”
“아니야, 죽어.”
그가 불쑥 내 말을 잘라먹었다.
“…나는 많이 힘들 것 같아.”
그가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내가 당장 죽겠다는 줄 알겠다.
오랜 시간 센터에서 일해 왔기에 나는 크리먼이 아닐 때도 죽음을 자주 목도했다. 그가 각성자가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죽음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어서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웃긴 상황이 아닌데도 왠지 웃음이 나왔다.
“엄살 부리지 마.”
“엄살이 아니라… 그러니까 나는 조금 슬프다 마는 게 아니니까 웬만하면 살란 말이야.”
“너 하는 거 봐서.”
“하…. 너랑 내가 무슨 말을 해.”
끝내 토라진 것처럼 표정을 굳히곤 살짝 몸을 돌려세웠다. 그래봤자 터널도 지나서 불퉁한 얼굴이 모두 드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참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누군가 내 죽음을 슬퍼하고 힘들어 할 거란 사실에 안도하고 기분이 좋아지다니. 그가 투정 부리는 게 처음으로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네가 죽고 싶어질 때 내 목숨도 더해서 생각해. 네가 아무리 이기적이어도 남의 목숨을 두고 쉽게 결정하진 않을 거 아니야. 그럼 덜 죽고 싶어지지 않아? 응?”
“별로 잘 모르겠는데.”
“…넌 진짜 못 됐어.”
“적당히 하자. 인간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를 달래 주는 대신 대화를 끊어 냈다. 그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건 내가 인간이 되지 못한다면 그저 소모적인 대화일 뿐이었다.
만약 내가 인간이 된다면, 만약 내가 핵을 되찾는다면, 만약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만약에. 나는 그 수많은 가정이 너무 지치고 지겨웠다.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가지기엔 이미 너무 많은 체념을 해 왔다.
“그리고 내가 죽고 싶은 건 자책감보다, 크리먼인 걸 모두 앞에서 들키는 게 싫어서일 뿐이야. 잘 숨겨서 인간이 되면 죽고 싶어질 일도 없겠지. 크리먼일 땐 핵이 없어서 어차피 죽지도 못하고.”
“그럼 안 죽는단 소리네.”
“글쎄.”
“안 죽는다고 말해. 아니면 나 F 지부로 가는 고속도로 탈 거야.”
“그러든지.”
“진짜 간다. 어? 나 옆으로 빠질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그가 정말로 방향을 바꾸려다가 내 말에 다시 운전대를 반대로 돌렸다. 우격다짐으로 받아 낸 대답에 유건은 그제야 얕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너도 나 인간 되는 거 방해하면 죽어.”
“너나 앞으로 죽는단 소리 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너 인간 만들 테니까.”
“곧 연구원으로 취직한다는 소리도 하겠네.”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지.”
그 후로도 유건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일반인도 공부를 많이 하면 센터 연구원으로 취직을 하긴 한다던데 이제부터라도 항생제 연구를 시작해 볼까,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그렇게 쉬웠다면 왜 매번 경쟁률이 천 단위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염력을 사용하는 S급 에스퍼가 연구를 하는 건 인력 낭비였다.
“나 일반인 때도 아버지가 센터에서 일하라고 해서 공부 잠깐 했었어. 도중에 재미없어서 때려치웠지만.”
“어차피 공부했어도 안 됐을 거야.”
“너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뭐가.”
“남 우습게 보고 깎아내리는 버릇.”
“너한테만 그러는 건데?”
그가 길길이 날뛰었다. 운전하고 있어서, 큰 행동은 하지 못했지만 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언제 무거운 얘기를 했냐는 듯 가볍게 대화를 하다가 센터에 도착했다.
그러곤 그가 나를 기숙사 앞에 내려 주며 말했다.
“위험하니까 내일부터 다시 같이 다녀.”
유건은 어딘지 결연한 표정이었다. 내 숙소에서 가이딩을 한 후로 미묘하게 딱딱한 태도로 굴더니, 어느샌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건….”
“반박 안 받아. 간다.”
곧바로 부웅, 소리와 함께 멀어져 갔다.
“어휴, 저 꼴통.”
말과는 다르게 왠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유건과 나는 출근하고 아침 일찍부터 1층 카페테리아에 앉아 작전 회의를 했다.
“지한 선배는 일단 제쳐 두고 델타 팀 에스퍼 먼저 찾아가자. 너랑도 같이 가니까 크리먼 습격 사건으로 임무 협조 요청하면 가능할 거야.”
지금 내 용의선상에는 정신계 에스퍼 둘, 그리고 이안이 있었다. 오늘은 셋 중 가장 정보가 부족한 델타 팀 에스퍼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