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오늘 아쿠아리움에서 찍은 동영상인데, 펭귄 너무 귀엽지 않아? 해파리도 찍고, 무늬가 예쁜 열대어도 있어.”
“응…. 근데 얘 밥 굶겼나 봐. 사육사 욕하네.”
그녀는 아직 훌쩍이긴 하지만 많이 진정한 것처럼 보였다. 눈가가 빨간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영상에 집중하는 게 귀여웠다.
“나도 아쿠아리움 좋아하는데…. 다음에는 나랑 같이 가.”
“그래. 그러자. 이제 다 울었어?”
“응…. 사월아, 미안해. 네가 인간이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봐 무서웠어, 그리고 연구원을 쫓으면 범인이랑도 맞닥뜨리게 되니까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어.”
“아니야. 내가 너무 나 좋을 대로 생각한 거지.”
그녀는 매번 괜찮아질 거라고 우리도 인간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매일 웃고 있어서 내 우울함이 그녀에게 걱정을 끼쳤을지 미처 몰랐다.
우린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크리먼이니까 내심 나와 같이 죽음에 무감각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에밀리는 핵이 있고 나는 없는데. 같은 크리먼이라도 우린 조금 달랐다.
“뭐가? 혹시 아직도 죽고 싶….”
“아니야. 나도 그때 크리먼인 거 받아들이는 과도기였을 때였고. 네 덕분에 지금은 많이 안정됐어. 그런 생각 이제 절대 안 해.”
“다행이다. 다행이다 진짜 사월아. 그냥 너한테 솔직하게 말할걸. 괜히 너 의심하게 만든 것 같아. 진짜 미안해.”
그녀는 몇 번이고 내 대답을 들은 후에야 점차 불안감이 잦아들었다.
이렇게 투명하게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을…. 에밀리를 잠깐이나마 범인과 한패가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린 쇼 얘기도 물어봐 봐. 에밀리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며.”
우리를 지켜보던 유건이 말했다. 그는 조금 전부터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내가 인간이 되면 죽고 싶다고 한 소리 때문인 것 같은데.’
에밀리를 달래느라 재차 아니라고 말했는데 믿지 않는 걸까. 저 녀석은 은근히 예리한 면이 있으니까.
어쨌든 이전에는 저런 얼굴을 하면 참지 않고 바로 닦달했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 상황에 유건까지 내게 정말 죽을 생각이었냐며 따져 물었다면, 나는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마린 쇼? 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나는 오늘 아쿠아 플래닛 마린 쇼에서 벌어진 사고를 그녀에게 설명했다. 더불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정보와 최근 있었던 이상한 일들. 송이의 페어인 이안에 대한 얘기도 전달했다.
“진짜 이상한 일이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말을 줄였다.
“근데 그 위치에서 객석에 크리먼이 있으면 인식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 높이까지 뛰었다고는 해도 거리가 좀 되는데.”
“동물들이 크리먼인 걸 느끼는 건 시각보다는 직감이니까. 너희 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어도, 그 위치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느꼈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수사망이 더욱 넓어진 셈이었다. 한결은 우리 쪽 관객석 위주로 조사를 진행할 텐데.
“그것보다 이안, 그 사람은 뭐야? 너무 수상한데? 진짜 핵이 없었어?”
“어. 확실해.”
“그 사람 말대로라면 범인이 아직 너를 쫓고 있다는 말인데. 사건이 발생한 지 꽤 흘렀잖아. 아직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건 두 가지로 추측되는데….”
“뭔데?”
나는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는 능력을 이용해 종종 크리먼들과 은밀히 정보를 사고팔았는데, 그 때문인지 통찰력이 뛰어났다.
“네가 불안해하는 걸 즐기는 미친놈이거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안이 떠올랐다. 그는 의심스러운 말로 나를 떠보는 듯이 말하고, 항상 기분 나쁜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때?”
그다음 말은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범인이 이미 한번 습격에 실패했잖아. 실패 요인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겠지.”
실패 요인. 그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범인이 습격에 실패한 건 내가 하필 크리먼이기 때문이다.
“그럼 범인이 주위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크리먼인지 아닌지 살피고 있단 말이야?”
“나는 그런 거라고 보는데. 네 정체를 확신했다면 크리먼인 가이드를 잡으려고 이미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거야. 이렇게 너를 살살 건드리면서 불안하게 만들 게 아니라.”
에밀리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럴듯했다. 며칠 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추격전 때 나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크리처화를 개방했다.
유건과 함께 바닥을 굴러서 알아채기 힘들긴 했겠지만, 어쨌든 추격전이 내 크리처화를 끌어내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린 쇼의 사건은 상황 자체로 내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혹시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미지의 두려움을.
다행인 건 두 사건 모두 일반인 관점으로 보면 그저 놀라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센터에 근무한 각성자는 어느 정도 담력이 강하고 사건 사고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범인이 곁에서 나를 지켜봤다면 불안해하는 모습을 통해 내가 크리먼일 가능성을 더욱 높였을 것이다.
“센터에서 더 조심하고, 앞으로는 핵 투시를 위해서라도 크리먼화도 절대 하지 마. 범인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아직 네가 크리먼이란 걸 모른단 거니까.”
“어…. 알았어.”
범인이 아직 내가 크리먼인 걸 모를 거란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점점 내 숨통을 조여 오는데, 숨기에만 급급해야 한다니.
어쨌든 범인보다 내가 잡혔을 때 잃을 게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는 숨어 사는 만큼 아마 변변한 신분조차 없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 밖에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에밀리는 정신계는 크리먼 중에서도 엄청 희귀한 케이스이며, 있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라진 연구원의 등급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정신계가 맞더라도 낮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정신계 에스퍼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A지부 센터에 있는 정신계 에스퍼였다.
***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만나서 얘기하자고 유건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차에 올라타서 못다 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이안 그 사람한테 이제 쫓아다니지 말라고 말해. 범인이 아니라면 스토커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그래야지.”
범인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는 상황에서, 이안이 나를 지켜 주겠다는 걸 빌미로 지켜보고 있다는 게 찜찜했다.
마음 같아선 대놓고 물어보고 싶은데. 아니면 치명상이라도 입히거나. 치명상을 입혔을 때 크리먼이라면 바로 크리처화가 개방될 것 아닌가.
아니면 높은 등급의 가이드가 아니더라도 크리먼에게 핵이 없을 방법이 있는 걸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추측과 가정만 반복하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에 머리가 지끈지끈 울렸다.
“나한테 제대로 설명 안 해 줄 거야?”
“뭐가.”
유건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네가 인간이 되면 하려는 짓.”
그는 입 밖으로 내기도 싫은지 에둘러 말했다.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일단 시치미를 뗐다. 그가 내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대놓고 묻지는 못할 것 같았다. 역시나 그는 직접적으로 묻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내가 네 삶에 왈가왈부할 건 아니지만….”
“그래. 알면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그게 아니라도 지금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너도 내가 갑자기 죽겠다고 하면 안 궁금해?”
“안 궁금해.”
센터로 돌아갈 때 그가 이 주제에 대해서 말을 꺼낼 거란 예상은 했다.
“진짜 이제 생각 없는지, 아직도 그런 생각 하는지만 말해.”
“아니라고 했잖아.”
“생각 바뀐 이유가 뭔데.”
이렇게 끈질기게 물어 올 것도.
“뭐긴. 살아 보니까 목숨이 소중해졌어. 젊은 나이에 내가 뭐가 아쉬워서 죽어야 하는데.”
“근데 이안한테 핵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자세히 물어본 건데.”
“…….”
나는 어물쩍 넘어가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이안에게 들은 사실을 토대로 추론한 결과, 크리먼이 에스퍼의 피를 마시면 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걸 유건에게 모두 말했었다.
핵은 크리먼의 급소이고, 죽음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부위였다. 일반적인 크리먼이라면 핵이 없다는 사실을 좋아했을 것이다. 죽음에서 멀어지는 길이니까.
그러나 되려 나는 핵을 찾고 싶어 했다. 그는 처음에 내가 특이 체질이니, 그저 궁금해서 물은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너 그거 스스로 부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서 내 피 마시는 거야? 핵 다시 찾아서 죽으려고?”
내가 인간이 되려는 이유를 알게 된 시점에서 핵을 되찾으려는 이유를 그가 완전히 알아챈 것이다.
“말해. 내 피 마셔서 죽으려 한 거냐고.”
내가 대답이 없자 유건이 갓길에 끼익, 하고 차를 거칠게 세웠다. 늦은 밤 도로에는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자동차의 강렬한 라이트가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건은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네 피 먹는다고 핵이 생기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하…. 아무튼 그런 생각은 했다는 거네.”
그가 기가 막히다는 듯 탄식했다.
“잠깐 하긴 했었어. 근데 어제 같은 상황은 진짜 앞뒤 못 가리고 급해서 먹은 거야. 어제 못 먹었으면 오늘 크리처화 진행됐을 거니까.”
이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생길 거였으면, 벌써 조그맣게라도 핵이 생겼겠지.
나는 혹시 몰라서 요즘 매일매일 크리처화를 개방해서 내 몸에 핵이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핵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 진짜…. 만약 진짜 핵이 생겨서 네가 죽어 버리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뭘 어떡해? 네가 날 죽인 것도 아니잖아. 내가 스스로….”
“그러니까 네가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내가 준 것이나 다름없잖아. 너 어떻게 나한테….”
유건은 말을 채 다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씩씩거리면서 숨을 고르는 게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한결 침착해진 어조로 물었다.
“…오늘 아침에 핵 있는지 확인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