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6/131)

“뭐, 뭐야.”

유건은 내 돌발 행동에 눈동자가 화등잔만 해지며, 양팔을 엑스자로 만들며 제 상체를 어설프게 가렸다. 게이트와 훈련으로 단련된 큼지막한 어깨와 조밀하게 짜인 근육은 조금도 가려지지 않았다. 되려 힘줄이 돋아난 팔뚝과 그 아래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이 눈에 들어왔다.

“먹기 불편해서.”

“차라리 위에만 찢어.”

“왜 이렇게 낯을 가려? 너 다른 가이드 앞에서도 훌렁훌렁 벗는다며.”

나는 약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무슨 사람 가리면서 벗는 것도 아니고.

가이딩 대기실에서 가이드들이 유건의 몸을 보고 수군거릴 때는 과장이 심하다고 여겼는데, 실제로 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특히 이두근과 이어진 어깨와 슬쩍 보이는 가슴 근육이 무척 다부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좋고 육감적인 몸이었다.

“누가 그래. 안 그랬어.”

“김채령인가 뭔가가.”

유건은 내 대답에 눈썹을 미묘하게 구부러뜨렸다. 황당하다는 표정이 마치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 같았다.

“아, 너한테 말할 거 있었는데.”

“뭐?”

나는 그 이름을 내뱉자,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너 가이딩 샤워 몰라?”

“가이드가 에스퍼 찜하는 거. 그거 아니야?”

설명이 단조롭긴 하지만 대충 뭔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그때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는 건가.

“페어 아니면 하면 안 돼. 알지?”

“어.”

“근데 너 왜 그냥 뒀어.”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김채연인가 걔도 모르고, 가이딩 샤워도 안 했어.”

“걔가 너한테 시도했다던데?”

“뭐?”

유건이 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잠시 그가 알고 당한 건지 싶었지만, 역시나 그는 자신이 가이딩 샤워를 당한 줄도 몰랐다.

“몸에 갑자기 열이 오르고, 털이 쭈뼛 서는 느낌 드는 거. 그거 가이딩 샤워하면 나타나는 증상이야. 안 그랬어?”

그는 내 말에 그런 적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있었어.”

“그래, 그때….”

“너랑 있으면 대부분 그래. 그게 가이딩 샤워라고? 네가 한 거야?”

“…….”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유건과 페어를 하면서 가이딩 샤워를 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일부러 독점욕을 실은 파장을 강하게 쏟아 내는 거다. 유건 말대로 에스퍼를 찜하려는 의도로.

다른 가이드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파장이었다. 내가 유건에게 그런 짓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어쨌든 성감이 순간적으로 고조되는 일이니, 나와 몇 번 스킨십을 나누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순 있었다. 근데 대부분은 좀…. 대체 몸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나 말고…. 나는 너한테 안 하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한 적 없어?”

“어…. 생각해 보니까 비슷한 적 있긴 한 거 같아. 근데 너랑 있을 때 비하면 그냥 간지러운 수준인데.”

“아무튼…. 아마 그거일 거야. 다음부턴 조심해.”

“응. 알았어.”

나는 유건에게 더욱 확실히 알려 줄까 하다 그만두었다. 제대로 설명해 주려면 그가 나에게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을 꺼내면 내가 굉장히 부끄러워질 것 같았다.

왠지 의식도 못 하는 상대에게 열렬한 고백을 받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옷을 괜히 벗겼다 싶었다. 점점 얼굴까지 뜨거워졌다. 그렇다고 도로 다시 입혀줄 순 없는 노릇이라서, 나는 그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그럼 돼.”

내가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자 유건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전보다 긴장한 상태로 다시 목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 잠깐 사이에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다시 이를 박자 생채기가 벌어졌다. 유건이 옷을 벗어서인지 뜨끈한 체온이 가깝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 해도 가슴 부근이 유건의 가슴과 아슬아슬하게 맞닿았다. 천 사이의 접촉이었지만 그게 참 의식이 돼서 내가 그의 무릎 위에서 엉덩이를 쭉 빼자, 그에게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갑자기 빼?”

“어, 음…. 더워서.”

“덥긴 하다. 온도 좀 내리자.”

리모컨으로 온도를 내렸다. 한 번에 18도로 맞추고 얼굴을 숨기듯 다시 유건의 목에 파묻었다. 입술을 오므릴 때마다 유건의 근육이 헤엄치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팍팍 좀 마셔. 간지러워서 자꾸 이상한 기분 들어.”

유건의 손이 조심스럽게 나시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척추를 그리는 것처럼 훑는 움직임이 야릇하게 느껴졌다.

“잘…. 먹고 있는데?”

“감질난단 말이야.”

“감질맛은 내가 나지.”

“그러니까. 괜찮으니까 욕심껏 마시라고.”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참고 있는데.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이번엔 제법 세게 빨아들였다. 혀끝이 아릴 정도로 달콤한 맛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한참을 머금고 있다가 꿀꺽 삼켰다. 위장이 율동하고 몸에서 유건의 피를 흡수하는 것이 느껴졌다. 발갛게 상기돼 기폭제가 된 것처럼 조급하게 빨아들였다. 그가 잘했다는 것처럼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야 나도 욕심껏 만지지.”

그리고 그대로 손을 내려 내 허벅지를 그러쥐었다.

“야….”

“왜. 여기 선 넘는 거야?”

“아니…. 잘하고 있다고.”

나는 순간 무척 놀랐지만, 일부러 허세를 부렸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들어온 순간부터 이 정도는 허락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단단하고 뜨거운 손아귀에 살이 붙잡히자 덜컥 겁이 났다. 그 사실을 들키기 싫었다.

그의 손이 허벅지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자, 절로 거친 호흡이 튀어나왔다. 불온한 손길이 살결 위로 길을 냈다. 나시 안에 있던 반대 손은 날개뼈까지 올라가 브래지어 어깨끈 사이로 손바닥이 비집고 들어갔다.

그대로 상체를 강하게 끌어안자, 말랑한 가슴이 유건의 품에 틈 없이 짓눌렸다. 그의 펄쩍펄쩍 뛰는 심장 소리와 다디단 체향, 그리고 느릿하게 문질러오는 손길에 정신을 차릴 세가 없었다.

피를 마시다가도 여러 번 힘이 빠져서 입을 뗐다가 다시 빨아들이길 반복했다. 몸 안의 파장이 쉴 새 없이 밖으로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숨… 막혀.”

그가 점점 등을 감싸오는 힘이 강해져 숨 쉬는 게 거북해질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내 목소리에 팔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아직도 단단히 밀착된 상태였다.

어느샌가 몽글거리게 느껴지던 파장이 순식간에 변한 것 같았다. 마치 뱀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미끈하고도 은밀한 감각이었다.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너무 느리고 이상야릇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움직임에 미세하게 몸이 전율하며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내 입이 유건의 목에 닿아 있어서 흥분한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을 것이다.

유건이 한숨 같은 공기를 내쉬더니, 깊게 파고든 손을 물렸다. 두 손을 다시 허리를 가볍게 쥐고 다독이듯 부드럽게 토닥였다.

“사월아.”

“응?”

잠깐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 그가 돌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의 목에 입을 대고 대답했다. 떨어져 있는데도 그의 맥박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계속 가속도만 더해 갔다.

“나 키스해 주면 안 돼?”

나는 순간 밀랍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내 경직된 움직임을 느꼈는지, 그가 내 입에서 몸을 떨어뜨렸다. 얼굴을 마주 보고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못 참겠어. 키스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대신 손끝 하나도 안 댈게. 너는 내 입술 물어뜯으면 되잖아.”

“입술은…. 피 별로 안 나오는데.”

나는 일단 거절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그럴듯한 변명을 했다. 유건의 눈동자가 어느새 절절 끓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흥분에 가득 차 보였다.

난폭한 움직임이 없어 몰랐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몸이 더 단단해진 것도 같았다.

정신이 흐려져서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의식됐다. 자세가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지고 침을 삼키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어깨를 펴며 무게 중심을 뒤로 옮겼는데, 되려 엉덩이로 그를 더욱 자극해 버렸다.

유건의 미간에 짙은 실금이 갔다. 이를 악다물며 신음을 참는 것 같았다. 찡그렸다가 치켜뜬 눈에 원망이 가득했다.

내가 겸연쩍어져 시선을 피하자 갑자기 그가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뭐, 뭐 하는 거야?”

순식간에 자세가 뒤바뀌었다. 유건이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다리 사이로 내 몸을 가뒀다.

“살려 주라, 좀. 후….”

그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건의 얼굴이 내 목 뒤에 있어서 그 목소리가 내 귓가에 쏟아지듯 닿았다가 사라졌다.

귀 부근이 순간 저릿해져서 목을 움츠렸다. 유건이 그걸 알아챘는지, 대놓고 귀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흐으.”

“귀가 예민한가 봐.”

“아니, 잠깐….”

“이런 거 좋아해?”

흥분을 부추기는 달콤한 속삭임에 정신이 아찔했다. 유건은 귓바퀴를 아프지 않게 깨물다가 쪽 소리 나게 빨아들였다.

자극적인 접촉에 뇌가 녹진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듯하게 들어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행동이 더욱 농밀해지자 그냥 죽고 싶었다.

“아…. 백유… 읏. 야….”

그만하라고 말해야 하는데 단어가 완성되지 못하고 부스러졌다. 유건은 내가 간헐적으로 터뜨리는 신음을 낼 때마다 움직임이 더욱 질척해졌다.

“구사월…. 목소리 더 내줘.”

그의 흥분으로 탁해진 목소리가 고막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이 곤죽이 되어 흐물흐물 녹아 버렸다.

유건의 어깨를 밀어내던 손이 어느새 목숨줄이라도 쥐어진 것처럼 절박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늑골을 끈적하게 쓰다듬는 행동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면서 열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야아…. 하지 마. 제발.”

나는 결국 애원하듯 절절매며 말했다. 유건이 혀로 부드럽게 핥아 올리다가 일시 정지했다.

그가 입을 떼자 따뜻한 체온이 사라져 허전하게 느껴졌다. 언제 땀을 이렇게 흘렸는지 목이며 등 허리가 축축했다. 계속 감기는 눈에 일부러 힘을 주며 뜨려 해도 시야가 흐릿했다.

그대로 몇 번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이자 눈앞의 유건이 제대로 보였다.

“너….”

유건이 신기하단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야해?”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라는 듯, 아니 미지의 생물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도 없고 대꾸할 힘이 없어져 얕은 숨만 내쉬었다. 짐승의 날것으로 점철된 시선이 용암처럼 쏟아졌다. 눈빛만으로 몸에 작열감이 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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