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얘기 했어?”
“가이드 습격 사건에 관해서요. 몇 가지 질문해서 대답해 드렸어요.”
“그 사람은 갔어?”
“네.”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팀원들이 모여들었다.
“아. 난 또 뭐라고. 실장님이 그 임무에 조사 요청받았다고 했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나 봐요!”
송이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
“백송이 가이드. 저분이랑 페어한 지 얼마나 됐어요?”
“이안 실장님이요? 음….”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진지하게 세어 보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발랄하게 대꾸했다.
“여기 오기 직전이요!”
“뭐야? 진짜 얼마 안 됐네?”
“네.”
다른 팀원이 송이의 대답에 놀라 했다. 정말로 내게 이 사실을 알려 주려고, 송이와 페어를 해서 A지부로 발령받은 건가?
“어쩌다가 페어 한 건데요?”
“뭐….”
송이는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잘생겨서? 잘 생기면 페어 요청 수락하지 않나요?”
“그게 다야? 매칭률은?”
“50%는 넘어요. 53%. 이안 실장님, C지부에서 되게 유명하거든요. 파장도 느낌 좋고 잘생겨서.”
팀원들이 하하 웃었다. 페어에게 매칭률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어쨌거나 에스퍼들이 더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가이드는 에스퍼의 등급과 외모를 많이 따졌다. 이안이 등급이 C급이긴 하지만 외모가 특출나니 송이는 페어 요청을 거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저 정도 인물이면 할 만하지.”
“나도 땀 냄새 나는 에스퍼보다 저런 깔끔한 스타일이 좋아. 연구원 쪽이면 파장이 많이 닳을 일도 없고, 다칠 위험도 없잖아.”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페어 기간이 짧다면 송이도 이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이안이 무슨 꿍꿍이인지 너무 의심스러워서 범인이 아닐까 하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지능계였다. 에스퍼인 크리먼은 등급 변동이 있을지언정, 두 가지 특성은 중복이 안 된다.
범인이 정신계로 추측되니 그는 완전히 용의선상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범인이 아니더라도 연관될 가능성은 있었다. 센터 사람이니 정보는 하나씩 모으면 된다.
불안함을 가라앉히며 컴퓨터 화면을 켰다. 센터 메신저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AES 백한결 : 시간 돼?」
한결이었다. 파티션 너머로 우뚝 솟은 검은 머리통이 보였다. 이안과 회의실로 이동할 땐 게이트에 가서 자리에 없었는데, 그사이에 사무실로 복귀한 모양이었다.
「AGS 구사월 : 네. 왜요?」
「AES 백한결 : 무슨 얘기 했는지 궁금해서. 옥상에서 기다릴게.」
메시지가 뜨자마자, 한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무실에는 한결과 같이 나갔던 알파 팀 팀원 일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중 한결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성규현 에스퍼가 그를 불러 세웠다.
“캡틴. 피닉스에서 게이트 브리핑 몇 시로 잡을 거냐는데요.”
“나중에.”
“대략 몇 시쯤인지는 알려 주셔야….”
“내일 하자. 핵 소독 먼저 끝내고 에코 팀에 전달해.”
“예. 알겠습니다.”
그는 누가 보면 굉장히 중요한 일이 생긴 사람처럼 서둘렀다. 이제 숨기지 말자고 했지만, 곧바로 불러내는 건 아무래도 주변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 또한 팀원들에게 괜한 의심을 사지 않게, 괜히 텀블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길로 곧바로 옥상으로 향했다.
***
“왜 나한테 바로 보고 안 했어?”
“선배가 자리에 없어서요.”
“메시지 보내면 봤을 텐데.”
한결은 약간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에게서 센터에서 사용하는 화한 비누 향이 났다. 게이트를 마치고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사실 선배가 자꾸 습격 사건에서 저 제외해서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어요.”
그는 흐응, 하며 말꼬리를 늘이고는 나른하게 웃었다.
“그래서 알고 싶은 건 알았고?”
“아니요. 진행이 거의 안 됐다던데요? 보고 올렸는데 상부에서 움직임이 없다고….”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습격 사건을 알파 팀에서 맡은 만큼, 역시 알고 있던 사실 같았다.
“혹시 내부에서 누가 방해하는 거 아닐까요?”
“그거 난데?”
“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킥킥 웃으며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너랑 유건이가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서, A지부에서 진행하는 건 내가 막아 놨어.”
“…….”
“근데 C지부에서도 그런단 소리 아니야?”
“그런 것 같아요.”
“뭐가 있긴 한가 보네.”
뭔가 의심스러워하는 기색에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그가 다시 그 사건에 관해서 물어 올 것 같아서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 에스퍼가 무슨 질문 했는데.”
“선배랑 비슷한 질문 했어요. 그날 본 사람은 없는지, 크리먼 상태나 왜 그곳에 갔는지 같은 거요.”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이건 나중에 한결이 이안에게 물어볼지도 모르니 이안과 말을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이안이 한결에게 우리가 한 대화를 왜 숨기냐고 묻는다면, 내부에서 방해하는 사람이 한결인 것 같다고 한다면 이유는 설명이 될 것이다.
“기억 안 난다고 대답했겠네.”
“네.”
“정말 기억 안 나?”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촘촘히 훑어 내리는 눈길에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혼자 지내는 거 불안하고 걱정 돼. 그래도 유건이가 옆에 있어서 안심하던 게 있었는데….”
“…….”
“유건이랑은 어떻게 됐어?”
한결은 은근하게 물어 왔다.
“어떻게 되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굴어?”
그런 건 언제 알아챈 건지. 한결의 입에서 유건의 이름이 나오자, 속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만 있자 “마음 같아선 끼고 살고 싶은데.”라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침묵을 지키며 그 말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돌연 그가 대화 주제를 돌렸다.
“주말에 뭐 해?”
“기숙사에서 쉬죠.”
“놀러 나갈까?”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안은 범인이 아직 나를 쫓고 있다고 말했다. 범인이 먼저 나타나 준다면 나는 좋았지만, 한결과 있을 때는 곤란했다. 센터에서 범인을 잡기 전에 내가 먼저 잡고 싶었다. 범인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건 내가 옆에 없을 때고. 내가 같이 가는데 무슨 걱정이야.”
한결과 약속한 데이트 횟수를 채워야 하긴 했다. 이번에 그와 외부로 나가면 두 번째 데이트였다. 그의 말대로 S급 에스퍼가 옆에 떡하니 있는데 나타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게 맞나.’
정신계라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세뇌해 조직적으로 움직일지도 몰랐다. 고민이 길어지자 한결이 내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가까운 바다 가자. 답답하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요….”
“내 옆보다 안전한 곳은 없어. 내 옆에만 딱 붙어 있으면 돼.”
응? 갈 거지? 한결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보채듯 말했다. 손등에서 한결의 체온이 점점 퍼져나갔다.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에 잘 볼 수 없었던 순수한 기대감이 내비쳤다. 혈색도 약간 붉게 상기된 게, 마치 청소년일 때의 풋풋했던 한결이 떠올랐다.
나는 차마 그 얼굴에 대고 안 된다고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잖아. 내부에서 데이트하면 기숙사밖에 없기도 하고. 그러면 더 불편해질 테니까.’
나는 어느새 속으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바깥이 위험한 상황인 게 뻔한데도 한결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래요. 가요.”
내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한결은 더욱 근사하게 웃었다. 유려한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외모에 이렇게 약했었나.’
“A5 구역 어때? 시간은 언제로 정할까? 주말에 피곤할 테니까 토요일에 점심 먹고 갈까?”
“네.”
“거기서 저녁도 먹고?”
“좋아요.”
그가 질문이 많아지며 살짝 들뜬 게 느껴졌다. 한결과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바다를 보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 감정이 전이돼 내 기분까지 둥실 떠올랐다.
어쨌거나 둘 다 얼굴이 알려져서 자유롭게는 다니지 못할 테지만, 바닷물에 발 한번 정도는 담글 수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보글보글한 거품이 발끝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아…. 기대하면 안 되는데.
“그리고 이거.”
“뭐예요?”
내가 부푼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려는데, 한결이 쇼핑백을 건넸다. 그 안에는 익숙한 포장지의 상자가 있었다.
“너 가끔 사 먹는 거 같길래 샀어.”
“…….”
센터 건너편에서 판매하는 수제 초콜릿이었다.
“옛날엔 별로 단 거 안 좋아하는 것 같더니 취향이 바뀌었나 봐?”
내가 크리먼이 되고 가장 먼저 바뀐 식성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초콜릿을 처음 찾은 건 유건 때문이다.
유건이 처음 내 앞에서 코피를 흘렸을 때, 그 향은 내 뇌에 강렬하게 각인됐다. 나도 모르게 비슷한 피 냄새를 따라 걷다 보니, 이 초콜릿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미세하게 흘러들어 오는 초콜릿 향을 맡자, 입꼬리가 점점 뻣뻣하게 굳어 갔다.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 안에 상큼한 과일 향이 무척 닮아 있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었다.
“잘 먹을게요.”
***
꿈을 꿨다. 깊은 바닷속에 서서히 잠기는…. 나는 어두운 심해로 가라앉고 있었다.
“숨, 막혀.”
뽀글, 하고 입 밖으로 기포가 새어 나갔다. 어느새 바닥까지 도달했는지, 등 뒤로 폭신한 해초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해초는 내 몸을 감싸다가 돌연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손과 다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느낌이 무척 불쾌하고 께름칙했다.
기어이 목 끝까지 죄어오는 힘에 컥, 소리를 내자 희미한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괜찮아.”
그 목소리는 누군가 내 귀에 바짝 대고 속삭이는 듯도 하고, 아니면 내 안에서 은은하게 공명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싫어….”
“쉬….”
해초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마치 손가락처럼 단단한 형체가 되어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섬세한 움직임이 경계를 풀어 달라는 듯이 여린 살들을 눅진하게 핥아 올렸다.
“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대로 가다간 아득한 심해 속에서 완전히 잠식당할 것 같았다.
“마음 편하게 가져요. 괜찮아요. 눈 깜빡하는 사이에 모두 끝날 거니까.”
무엇이 괜찮은지, 뭐가 끝났는지 물으려는 찰나였다. 부드럽게 감싸기만 했던 움직임이 돌연 내 몸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가슴이 부풀리고 턱 끝을 바짝 틀어 올렸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에 본능적으로 바르작거리며 몸부림치자, 쯧 소리를 내더니 서늘한 이빨이 내 목에 파고들었다.
“하으!”
농도 짙은 핏물이 바닷물과 마블링처럼 뒤섞였다. 쭈웁, 쭙, 쭙. 빡빡한 소음이 귓전을 때렸다.
내 몸에서 혈액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선연했다. 시야가 점차 흐려졌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폭발하듯 혈액이 생성되고, 다시 빼앗기고, 차올랐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이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