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7/131)

곧바로 태연한 척 다른 반찬을 집으며 말했다.

“게이트에서 굴렀겠죠.”

“혹시 널 두고 캡틴이랑 유건이가 싸운 거야?”

지한은 내가 집으려 한 생선 살을 쉽게 발라내 내 밥 위에 얹어 줬다.

“그러니까 한 여자를 두고 형제가 치고받고. 맞지?”

그가 한껏 기대감 어린 표정이었다.

“아니에요.”

나는 그 고기를 한쪽으로 치우고는 맨밥을 입에 넣었다. 말 좀 그만 걸라는 듯 시선을 아래 두고 식사하는 데 열중했다.

이렇게 열심히 먹는데 요즘에 소화가 잘 안 되는 기분이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마치 음식물이 들어오면 안 되는 기관처럼 이질적이었다.

유건과 싸우고 속이 뒤집힌 날, 그날을 기점으로 안 좋아진 것 같았다. 나는 속이 답답해져서 괜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안 먹을 거면 먼저 일어나시죠?”

“아닌데? 나 먹고 있는데?”

기어이 축객령을 내리는데도, 지한은 뻔뻔하게 먹는 시늉을 했다. 그의 앞에 탑처럼 쌓인 새우튀김이 빠른 속도로 줄어 가고 있었다.

“와. 근데 우리 사월이는 진짜 대단해? S급 에스퍼 둘이 탐낼 정도라니.”

그는 새우튀김을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제발 다 먹고 말하지.’

더러워서 눈을 흘기자 그는 다른 의미인 줄 알았는지 변명하듯 덧붙였다.

“비꼬는 거 아니야. 진짜 대단해서 하는 말이야.”

“저도 그래서 쳐다본 거 아닌데요. 입 좀 다물고 먹어요. 더럽게 진짜.”

몇 년간 지켜봐 온 입장에서 지한이 정말 비꼬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입이 가볍기로 유명한 그가 이렇게 깊게 캐물어 올 땐 무시하는 게 제일 상책이었다. 괜히 꼬리가 잡히면 더 귀찮게 굴 게 뻔했다.

“사실 진짜 할 말 있어서 온 거야.”

“안 통해요. 아무 말도 안 해 줄 거예요.”

“진짜야. 페어 그만둘 거면 다음 주까지 정정 기간이니까 참고하라고. 그 기간 지나면 2년은 무조건 페어 유지해야 하는 거 알지?”

“네.”

“그리고 한번 페어를 취소하면 그 상대와 2년 동안 페어를 못 맺는 것도?”

“…네.”

“취소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신중하게 해야 해.”

“알아요.”

전부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다. 단지 처음엔 어느 정도 시간이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지지부진 끄는 사이 3일이 지났다.

나는 오늘은 유건에게 어떻게든 말을 꺼낼 생각이었다.

“저 녀석 이제 너랑 적응도 높아져서, 갑자기 끊어 내면 다른 가이드 여럿 붙어도 힘들 수 있어. 그것도 알아?”

이것 역시 알고 있었다. 나도 내심 찝찝한 부분이었다.

나와 적응도가 높아서 안 그래도 다른 가이드와 매칭률이 낮은 유건은 더욱 가이딩이 힘들어질 것이다. 서서히 적응도를 낮춰 원래 상태로 되돌리면 괜찮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평화롭게 단계를 밟아 가며 진행할 수 있을까.

“…알아서 할게요.”

“그래. 우리 사월이 똑똑하니까 잘 해내겠지.”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의 말을 끊어 내니, 지한은 그 후로 정말 그 얘기에 대해선 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아직도 살을 잘 못 바르냐며 자꾸 자기 생선까지 살을 발라서 내 밥 위에 얹어 놨다.

“필요 없다고요. 선배 젓가락 닿은 거 먹기 싫어요.”

“사월아. 그렇게 말하면 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니.”

“이상한 가족 놀이 집어치워요.”

“한결 아빠 거는 잘도 받아먹더니.”

“캡틴 거도 안 먹거든요?”

필요 없다며 아웅다웅하다가 고개를 돌린 순간 저 멀리 앉아 있던 유건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는데 유건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내가 가만히 주시하자 그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구내식당을 나갔다.

‘분명 의식은 하는 것 같은데.’

며칠째 유건을 관찰한 결과, 유건도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기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정리할 시간이 더 필요한 건지 고민할 무렵,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

‘혹시 페어를 그만둘 생각이 없나?’

정정 기간까지 남은 기한이 4일이었다. 그가 페어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든 그 안에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아가. 어디가?”

“아가 다 먹었어요.”

“엄마도 기다려 줘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뒤따라갔다.

***

“백유건.”

구내식당을 나와 복도에서 그를 불렀다. 그는 못 들었는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야. 안 들려?”

내가 기어코 그의 곁으로 뛰어가 옷을 끌어당기자, 유건은 그때서야 고개를 돌렸다.

“…왜.”

당연히 그가 먼저 할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유건은 너무 단조로운 어투로 말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 느꼈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할 말 있지 않아?”

그는 가만히 나를 주시했다.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없어?”

“그다지.”

그다지? 그다지 할 말이 없다는 건가?

내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유건이 단답형으로 대꾸하곤 손목을 들어 스마트 워치를 들여다봤다. 왠지 그가 이대로 자리를 피할 것 같아서 나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할 말 있어.”

그가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여기서 말하긴 그렇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난감하단 것처럼 말했다. 우리를 모두 쳐다보고 있진 않았지만, 지금도 누군가 듣고 있을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 내 얼굴을 그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좀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 내기 어려웠다.

평소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면서, 오늘따라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자.”

“야, 잠깐.”

그러다 유건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끌어당겼다. 그는 나보다 앞서가며 성큼성큼 걸었다.

“이거 놓고 가.”

“할 말 있다며.”

“그러니까 이거 놓고.”

“네가 할 말 있는 거니까 참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나는 평소라면 따져 물었겠지만, 오늘은 잠자코 그의 뜻대로 움직였다.

죄책감인지 뭔지, 뒤늦게 그의 눈치가 보였다.

***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캡슐이었다. 처음엔 왜 이곳으로 가는 건지 의아했지만, 얼마 안 가 곧바로 수긍했다.

캡슐만큼 방음이 잘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만한 공간은 없었다. 캡슐에 누군가 몰래 CCTV를 설치하는 일도 있었지만, 센터는 그 부분에 대해선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리고 며칠 데면데면하긴 했으나 그와 내가 페어라서 점심시간에 캡슐에 들어가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이라는 것 자체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유건은 캡슐에 들어와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나 또한 가이딩을 하려고 온 건 아니어서 그의 등을 보며 서 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유건이 불시에 휙 뒤돌아봤다.

“말해.”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건데 그 한마디에 목이 짓눌린 기분이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뭘?”

“페어.”

그의 입에서 먼저 페어를 그만두자고 말하길 바랐다. 그런데 유건이 좀처럼 대화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 결국 먼저 내가 입을 뗐다.

“…그날 네가 말했잖아. 내가 피 주면 가이딩 해 주겠다고. 그렇게 끝난 얘기 아니었어?”

나는 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 놀라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한테 진짜 피를 주겠다고?”

“어.”

목소리 또한 확고했다. 그는 정말로 자기 몸을 내 주고 가이딩을 취할 생각 같았다.

가이딩에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근데 왜 그동안 나한테 말 안 걸었어?”

내 제안을 이렇게 태연하게 받아들일 거였다면, 왜 평상시와 다른 태도를 보였을까. 나는 그 부분이 이상했다.

“아. 오늘 피 달라고 부른 거였어?”

그가 내 말을 오해했는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날 이후로 자신을 혐오하며 피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은 그의 태도에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야. 그게 아니라. 너 그때 못 들었어? 나 사람 죽였다고. 너 나한테 그날 피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어.”

“알아.”

“진짜 너 미쳤어? 가이딩에 왜 그렇게까지 집착해?”

내가 점점 격양되자 유건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잖아. 피 먹으려고 부른 거면 얼른 먹고 나가자. 나 요새 잠 못 자서 피곤해.”

에스퍼가 피곤은 무슨.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정말로 눈동자에 실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피부도 푸석푸석하고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가이딩 해 달란 말은 아니야. 그러니까 어서 먹어.”

내가 그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피자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다시 한번 팔목을 내 입에 들이밀었다. 진심이라는 듯 적극적으로 몸을 내어 주는 행동에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됐어. 그 말 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래?”

그는 말려 올린 옷을 어깨에서 내렸다. 잠시간 정적이 찾아왔다. 페어를 취소하게 회유해야 하는데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마치 이제 내가 크리먼이란 사실은 아무 위협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속이 답답해졌다. 캡슐이 방음이 잘되는 것이 처음으로 불편하게 느껴졌다.

“할 말 없으면….”

“나 페어 그만하고 싶어.”

나가려는 유건에게 붙잡듯 말했다.

“왜.”

유건은 발걸음을 돌리려다 침착한 눈동자로 이유를 물었다.

“그때 다 말한 것 같은데. 너랑 페어 하기 싫어.”

“내 피는 환장한다며.”

“생각이 바뀌었어. 욕심껏 먹어 보니까 이제 별로 안 당기더라.”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이 말뿐이었다. 또다시 피를 먹으라며 몸을 들이미는 상황은 막고 싶었다. 내가 그나마 유건에게 바라는 건 피뿐이라 했으니, 내가 그의 피에 질렸다면 그는 나에게 아무런 효용 가치가 없는 에스퍼나 마친가지였다.

그런데 유건이 과연 이 말을 믿을까. 내게 피가 빨리고 포기한 듯한 그의 표정을 보긴 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페어를 그만두려는 속셈을 간파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별다른 수가 없었다. 페어 정정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나는 유건과 페어를 어떻게든 취소하고 싶었다.

“그래, 그럼.”

내가 속으로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찰 무렵, 유건이 툭 내뱉듯 말했다.

“페어 그만하자니까?”

나는 그러자는 게 뭘 말하는 건지 잠시 이해가 안 가서 다시 물었다. 이야기 흐름으로는 페어를 그만두자는 걸 승낙한 것 같은데.

“그러자고. 서류 작성해서 퇴근길에 제출하면 되겠네. 오후에 네가 써야 할 항목들 써서 나한테 보내.”

“어….”

“나 간다.”

유건은 그 말을 하곤 캡슐을 나갔다. 순간 뇌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유건이 페어를 취소하자는 내 말을 들어줬다.

가이딩에 미친 놈처럼 집착하는 백유건이.

피를 줘서라도 페어를 유지하고 싶다던 백유건이.

우리는 오늘, 내 뜻대로 페어를 취소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