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5/131)

“왜. 좋잖아. 내가 만져 주는 게 별로야?”

하지만 분노와 흥분은 한 끗 차이였다. 그가 돌연 내 목덜미를 쥐고 사납게 몰아붙였다. 어느새 올라온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부서뜨릴 듯이 쥐고 격렬하게 입을 맞췄다. 맞부딪힌 유건의 가슴에서 심장 소리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빠르게 두근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파장 또한 잔뜩 성이 나 있었다. 몽글거리기만 했던 파장이 진흙처럼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흘러내렸다.

분명 키스는 입으로 하는 건데 그의 입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끈적하게 느껴졌다. 잠시 호흡이 모자라 숨을 헐떡이자 유건이 혀 아래부터 입천장까지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그 움직임에 순간 힘이 풀려 다리가 맥없이 꺾였다. 곧바로 유건이 내 허리를 강하게 받쳐 들어 허리가 곡선으로 휘어졌다.

직각으로 떨어진 유건의 혓바닥이 정신없이 내 입 안을 헤집었다. 난잡하고 짐승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돈되지 않은 키스였다. 그 욕망이 앞선 키스에 나는 충실히 흥분했다. 그를 도발하려 한 건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열중하고 있었다.

“하아, 하…. 하.”

“흐으, 하….”

그러다 둘 다 숨이 모자라 잠시 입을 뗐다. 센서 전등은 언제부터인지 꺼져 있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젖은 숨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허리를 감싸고 있던 유건의 손이 내 얼굴을 향했다. 그 움직임 때문에 센서가 다시 빛을 쏟아 냈다. 갑작스러운 밝은 조명에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눈꺼풀을 두어 번 깜빡이자 시야가 제대로 돌아왔다.

유건이 충격적일 정도로 뜨거운 눈을 하고 있었다. 상기된 뺨과 정염으로 물든 눈동자. 불에 델 것 같은 체온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달싹이는 입술은 나를 열망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너….”

그는 제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시했다.

“한결 형이랑… 아니, 아니야.”

유건이 어떠한 말을 하려다가 말을 돌렸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 위로 차가운 얼음물이 왈칵 쏟아진 기분이었다.

유건이 중간에 말을 흐리기는 했지만 그는 방금 전의 행위로 한결과 내가 키스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키스를 했다면 내 입술에서 한결의 파장을 느꼈을 테니까.

에스퍼의 파장은 제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한결이 나를 좋아한다면 더욱 진하게 흔적이 남아 있을 터였다.

‘아, 이 새끼 가이딩에 미친 놈이었지.’

나는 이 상황에조차 독점욕을 보이는 유건 때문에 달궈졌던 고양감이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내 표정이 싸늘해졌는데도 유건은 내 입술을 애틋하게 문질러 왔다.

“다른 데도 만질래? 네 손으로 다른 에스퍼가 나를 어디까지 만졌는지, 확인하고 싶잖아.”

나는 조소를 머금으며 유건의 손을 끌어와 목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내가 네 하나뿐인 가이드니까.”

몸을 붙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의 손을 쥐고 천천히 내 몸을 쓸어내렸다. 유건은 약간 잠에 취한 사람처럼 멍해 보였다. 그저 입을 다물고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너무 진하게 느껴져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그의 목에서 가장 달큼한 냄새가 많이 나던 부위로 얼굴을 묻었다. 혀를 내어 할짝대자 유건의 목울대가 눈에 띄게 울렁거렸다.

“근데 그건 알지? 네 가이드가 크리먼인 건.”

그리고 크리먼화를 개방하여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을 찍어 눌렀다.

“윽.”

으득, 하고 뼈가 부러지듯한 소름 돋는 파열음이 들렸다. 유건이 억눌린 신음을 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야…. 너.”

나는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더욱 세게 이를 박았다. 그가 내 어깨를 감싸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불시에 깨물린 유건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목에서 점점 땀이 배어 나오더니, 체향이 강렬해졌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피를 쭉 빨아 마셨다.

“읏.”

내가 강하게 흡입하자 바닥이 드러난 병에 스트로우를 가져다 댄 것처럼 빡빡한 소음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금세 혀를 녹일 정도로 다디단 혈액이 차올랐다.

그가 내가 다른 크리먼이랑 다르지 않은 걸 믿을 수 있도록, 갈증을 숨기지 않고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오랫동안 참아 오던 황홀한 맛에 눈이 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은 참고 싶지도, 참을 수도 없었다.

마치 처음 크리먼이 되던 순간처럼 이성을 잃고 마음껏 탐했다. 이걸 지금 마시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내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포악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으득으득 씹어 삼키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내가 증명하려고 마시는지, 그저 갈증을 채우고 싶어서 마시는지 판단조차 되지 않았다.

밀어내지도 못하고 내가 가져다 댄 대로 가만히 있던 유건의 손이 돌연 힘없이 툭 떨어졌다. 어두웠던 내부가 순간 점멸하자 어지러웠던 시야가 돌아왔다.

“…….”

나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입을 떼고 눈동자만 굴려 유건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안색은 온몸에 피가 빠진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팔다리는 축 늘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그의 가슴을 짚어 보았다. 그 잠깐의 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헤아릴 수조차 없이 길게 느껴졌다.

…쿵. …쿵.

다행히 미약하지만 심장이 분명 뛰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눈꺼풀을 느릿하게 들어 올리며 잔뜩 풀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도 얻어 가는 건 있어야지. 우리 방금 협상 다시 한 거야. 난 너한테 가이딩 해 주고 너는 주기적으로 내게 피를 바쳐.”

나는 무척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게 볼 거 없어. 욕망하나 주체 못 하는 크리먼인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크리먼인 가이드와 페어 하려면 이런 건 감수해야지.”

“…….”

유건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걸 내려놓은 듯 공허해 보이기도 했다. 이전에 아니라고 내 말을 부정하던 입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내가 바라던 결말인데, 입 안에 남아 있는 그의 혈액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대로 뒤돌아 문을 열었다.

“잘 먹었어, 유건아. 다음에도 기대할게.”

등 뒤로 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몇 초 후 도어 록 잠금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종종 내가 무얼 가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곤 했다. 나를 감싸고 있는지도 몰랐던 온기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동안 노력한 것이 무색하게, 5년 전 사고의 현장으로 스스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

나는 그날 집에 가자마자 변기를 붙들고 위장에 있는 모든 걸 게워 냈다.

유건의 피와 한결이 만들어 준 파르페와 파스타, 샐러드 등이 식도를 역행하여 쏟아져 나왔다.

“웨엑, 엑.”

나중엔 나올 게 없는데도 구역질이 나와서 신물만 뱉어 내다가 눈을 감았다.

Rrrr.

그다음 휴대폰 알람 소리 때문에 눈을 떴다. 또랑또랑한 전자음이 평소보다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시간은 오전 7시. 분명 집에 돌아온 건 저녁 10시 즈음이었는데.

“여기서 잤나 보네….”

의식을 하자마자 딱딱한 타일에 닿아 있는 허리가 뻐근하게 느껴졌다. 시간은 언제나 내게 무슨 일이 닥치건 상관없이 앞서나갔다.

이전엔 시간의 흐름이 버겁다 느껴졌지만, 이젠 아무 감상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이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물로 입을 헹구고, 씻고, 빳빳한 제복을 꺼내 입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도 역시 빨간 립스틱이었다.

***

나는 센터에 오자마자 커피를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본관 옥상은 작년에 자연계 에스퍼가 장난으로 잔디를 전부 불태워 버려서 한동안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한결은 어째서인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아마 그가 담배를 피워서 관리자에게 평소 반듯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이용해 슬쩍 저만 알려 달라고 요구했을 거라고 추측됐다.

사실 그는 기본적으로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지만, 은근히 저 좋을 대로 써먹는 여우 같은 면이 있었다. 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걸 잘 알아채지 못하곤 했다.

그 선이 분명하니 조금은 넘나들어도 튀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한결은 옥상 비밀번호를 내게도 알려 줬고, 우리는 사적인 얘기를 할 때는 회의실에서 주로 만났지만 대화하는 것 자체를 숨기고 싶을 때는 옥상에서 하곤 했다.

‘그렇게 숨기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그에게도 의문점은 많았다.

“웬일이야. 네가 먼저 여길 오자고 하고.”

철컥 소리와 함께 한결이 문을 열고 걸어왔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시간은 8시 32분. 메시지를 보낸 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제 말했다시피 저 선배 못 만나요.”

하늘을 바라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살랑이던 봄바람이 순간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지나갔다. 한결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내 옆에 섰다.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멈칫하더니, 슬쩍 내 눈치를 봤다.

“펴도 돼요.”

내 허락에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엄지를 튕기며 불을 붙이는 지포 라이터는 분홍색에 캐릭터가 그려져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그때 선배가 엄청 어이없어했었는데.’

그건 내가 초등학생 때 한결에게 준 선물이었다.

“어제 유건이랑은 별일 없었어?”

한결은 필터를 깊게 빨아들이고는 후, 하고 내뱉었다. 그는 내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듯 다른 말을 했다.

“네.”

“유건이 엄청 화나 보이던데. 오해는 풀었고?”

“…네.”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한결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걱정했다기엔 너무 덤덤한 시선이었다.

“나도 어제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그러다 불현듯 입을 뗐다.

“내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

“다른 이유 있어요.”

“뭔데?”

어제는 그 질문에 속으로 섬찟했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태연함을 가장하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선배가 남자로 안 느껴져요.”

한결은 내 대답에 아, 하고 관성적으로 반응했다. 이윽고 킬킬거리며 소리 내 웃었다.

“거짓말 아니에요.”

“알아.”

“진짜 아닌데.”

“안다고.”

그는 왠지 못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에게 간혹 두근거리긴 하지만 원래 안 그랬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해서 어색한 감정이 더 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심하게 굳어 버려서 어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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