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은 평소보다 많이 막혀서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센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유건은 오자마자 다시 B 지역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B 지역에 게이트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아, 지한 형. 한 번만. 내가 다음에 대신 가 줄게.”
그는 어제 늦게까지 노느라 잠을 못 자서 힘들다고 다른 에스퍼에게 대신 가 달라며 부탁하고 있었다.
“내가 가 줘?”
“됐어.”
그걸 한결이 지나가다가 듣고 유건에게 물었지만, 단박에 거절했다. 그는 홱 돌아서서는 언제 가기 싫었냐는 듯 스마트 워치로 출전 대기 완료 버튼을 눌렀다.
한결은 그런 유건을 보고 설핏 웃더니 지나쳐갔다. 이렇듯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은 거리를 뒀다. 같은 게이트에도 가지 않았고, 사무실에서도 유건은 한결을 본체만체했다.
한결로부터 독립하겠다더니, 유건은 독립심보다는 적대심으로 가득해 보였다. 물론 상대가 맞받아치질 않으니 그렇게 불꽃이 튀진 않았다.
요즘에 유건이 내게 다가오는 에스퍼를 예민하게 경계하는데, 한결도 그중에 포함된 걸까. 하물며 한결은 유건과 등급이 같으니까.
‘그래도 자기 형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둘 사이에 끼진 않았다. 안 그래도 유건은 내가 한결과 가까이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한결 얘기를 꺼내면 또 발작할까 봐 그랬다.
나 역시 유건과 페어를 한 이후로 한결과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
내 마음대로 그의 페어 요청을 장난으로 치부하기로 정리했지만, 그에게 직접적으로 들은 것은 아니었다.
찝찝한 감정을 지워 내고 싶은데 한결과 가이딩도 하지 않으니 터놓고 얘기할 상황도 조성되지 않았다.
한결은 왜인지 유건과 페어를 한 날 이후로 내게 남처럼 존댓말을 했고,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부르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니 정말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 같았다.
나는 홀로 휴게실 가장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패드를 조작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시계를 힐끔 확인 한 한결이 불쑥 내게 말을 걸었다.
“퇴근 안 해?”
“저요?”
“응.”
한결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이것만 정리하고 가려고요.”
게이트 때문에 평소보다 휴게실이 한산했다. 유건이 오늘 들어간 게이트는 타임 어택 게이트였는데, 일정 시간마다 게이트 안에 또 다른 소 게이트에서 부하 크리처들이 나온다. 그 크리처들을 모두 죽여야만 보스 크리처가 나와서 보스 크리처를 죽이면 게이트가 소멸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소 게이트가 출연하는 시간이 제멋대로 널을 뛰었다. 유건에게 온 마지막 연락에선 이제 한 번만 반복하면 된다고 했는데, 여섯 시간이 지나도 소 게이트가 출연했단 보고가 전산에 뜨지 않았다.
다행인 건 게이트 등급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하급으로 취급되는 D등급. 머릿수가 많을 뿐이지 공격력이 낮았다.
나는 어차피 기숙사도 센터와 가까우니 퇴근하기로 했다. 유건이 센터로 돌아와서 가이딩을 해 달라고 하면 번거롭더라도 다시 오면 되겠지.
한결은 오늘 야근을 할 건지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뽑고 있었다. 팀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밤새 센터를 지킬 계획 같았다.
“유건이 그래프는 좀 어때?”
그는 커피 머신에 에스프레소 버튼을 누르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패드에 유건의 파장 그래프를 띄웠다.
“이제 파장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어요. 제 파장이랑 적응도도 50% 넘었고요.”
페어를 하면 가이드는 가장 먼저 파장을 안정기로 만들고, 그다음 순서로 적응도를 높인다. 그 이유는 가이딩을 할 때 한 번에 많은 양을 주입하면 자칫 가이딩 쇼크가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폭주 같은 위급 상황일 때는 쇼크가 오는 한이 있어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적응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응도가 높은 가이드는 무리한 가이딩을 하게 되더라도 쇼크가 오지 않는다. 에스퍼가 페어에 집착하는 건 그 이유 또한 큰 지분을 차지했다.
“그러네. 이 정도면 감정 기복이 심해져도 불안정기로 떨어지진 않겠지?”
“네.”
“떨어져도 가이딩으로 해결이 될 테고?”
“네… 뭐. 그렇긴 해요.”
에스퍼의 파장은 감정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가이드와 달리 파장을 자유자재로 제어하지 못했고, 화가 나거나 놀랄 때, 기쁠 때조차 자신들도 모르게 파장이 흘러나왔다.
가장 안정적인 상태는 모든 일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건데, 에스퍼들은 대체로 예민하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유건 또한 감정적인 편이었다. 잘 웃고 잘 토라지고 잘 흥분했다.
‘흘러나오는 파장을 제어할 생각도 없어 보였지.’
나는 한결이 내게 감정 기복을 운운하는 걸 보고 유건과 내가 자주 말다툼해서 우려하는 건가 싶었다. 대답을 하면서 자연히 한결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그는 그래프뿐 아니라 이전 통계 자료까지 세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저 백유건이랑 그렇게 사이좋지 않아요.”
“응?”
“걔랑 파장에 영향이 갈 정도로 다투진 않는다고요.”
한결은 패드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곤 웃음이 픽 새더니 불쑥 다른 질문을 했다.
“끝나고 뭐해?”
“네?”
“기숙사로 가지?”
“네….”
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어정쩡하게 답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말을 놓네. 휴게실에 평소보다 사람이 적어도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럼 나랑 저녁 먹을래?”
나는 그의 질문에 또 한 번 놀랬다. 눈만 땡그랗게 뜨고 주시하자, 한결은 커피 머신 앞으로 돌아가 방금 받은 에스프레소를 싱크대에 버렸다.
“다른 약속 있어?”
“아니요.”
“그럼 정리하고 나와. 맛있는 거 해 줄게.”
“선, 아니. 캡틴.”
나는 바로 나가려는 한결의 옷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순간 마음이 급해서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선배라고 부를 뻔했다.
한결이 나가다 말고 뒤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잠시 옷을 붙잡고 있는 손에 머물다가, 내가 손을 떼자 미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그… 그러니까….”
휴게실 주변을 곁눈질로 살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시선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한결에게만 들리게 작게 속삭였다.
“구내식당…. 맞죠?”
내가 센터에 들어온 이후로 밖에서 따로 만나는 건 사고 때 말고는 없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조차도.
그래서 그가 처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을 때, 당연히 구내식당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에 한결이 자신이 맛있는 걸 해 주겠단 말을 해서. 왠지 구내식당을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내 기숙사 가서 만들어 준단 얘기였는데?”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나와 달리, 한결은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옆 테이블 각성자가 우리 쪽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같이 온 사람에게 무언가 속닥이고 있었다.
“아니, 그건 좀….”
나는 결국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한결에게만 보이도록 입 모양으로 그를 다그쳤다.
‘갑자기 왜 이래요! 사람들 다 보는데.’
한결은 그 모습을 보고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질수록 내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이윽고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주변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자, 한결은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배고파. 빨리 가자.”
“아니, 잠깐!”
“조용히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이러면 사람들 더 쳐다볼 텐데.”
그가 내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는 속삭였다. 예상치 못한 한결의 행동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가 뻣뻣하게 굳자 그는 그대로 내 손을 잡고 휴게실을 나왔다. 그 상태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결의 차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의 일이었다.
“선배. 갑자기 왜 이래요? 이래도 돼요?”
“뭘?”
“사람들 앞에서 밝혀져도 되냐고요.”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은밀한 사이 같다.”
“장난하지 말고!”
한결이 액셀을 밟자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주차장에서 나오자 퇴근을 하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그의 차는 진하게 선팅이 되어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눈을 도륵 굴리며 눈치를 봤다. 그는 그런 나를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
“숨기는 거 그만두기로 했어.”
“왜요?”
“너랑 저녁 먹고 싶어서.”
“그건 숨겨도 먹을 수 있는 건데요.”
나는 이제 와서 한결이 그만두려는 이유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그동안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숨겼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지?
“우리가 원래 알던 사이인 거 밝혀지는 게 불편해?”
“불편한 거야 선배가 불편하겠죠.”
“난 네가 상관없으면 괜찮아. 오히려 이젠 사람들이 내가 너랑 가까운 사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왜냐고요.”
마침 신호가 걸렸다. 차가 멈추고 한결은 고민에 빠진 듯 이마를 문질렀다. 그 손길은 얼굴선을 타고 내려와 턱을 가볍게 괬다. 좁혀진 눈매는 무슨 말을 할지 고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황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고작 식사를 같이하는 건데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유건이 걸렸다. 그가 게이트에 간 사이 몰래 한결을 만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유건이 우려하는 가이딩을 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는 내가 한결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까이 있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만약 이 사실을 알면 분명 또 한 소리 할 것 같은데.’
나는 스마트 워치로 아직도 소 게이트가 출연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여전히 대기 중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다 얘기해 주면 재미없잖아. 일단 숙소가서 먹으면서 얘기하자. 뭐 먹고 싶어?”
한결은 결국 말을 돌렸다. 입가엔 내내 웃음기가 머물러 있었다. 심각한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기도 하고.
“떡볶이 해 줄까?”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
“그럼 파스타는?”
그냥 한결을 따라가도 되겠지? 유건이 돌아오기 전에 해치우면 되니까. 둘 사이가 요즘 안 좋아 보이니 선배가 말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 문득 내가 너무 유건을 신경 쓰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유건의 눈치를 보게 됐을까.
막말로 그가 직접적으로 하지 말라고 한 것은 가이딩뿐이었다. 그리고 유건은 믿지 않는 것 같지만, 한결 앞에서는 갈증을 참을 자신도 있었다.
유건의 그런 발언은 나를 아무나 물어뜯는 야만적인 크리먼 취급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나드는 유건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었다.
처음 그가 협박했을 때는 일단 상황을 모면하려고 넘어갔다 치더라도, 지금은 페어를 했고 유건 역시 내게 익숙해졌다.
이제 가이드인 나를 쉽게 내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다른 에스퍼가 다가오지 못하게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던가.
나는 곧바로 징징거리는 유건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
“아무거나 줘요. 나도 눈치 봤더니 배고프네.”
“그래. 얼른 가자.”
한결이 내 말에 웃음기를 머금으며 속도를 높였다. 하마터면 유건의 그 해맑아 보이는 얼굴과 밑도 끝도 없는 칭얼거림에 은근슬쩍 넘어갈 뻔했다. 지금 깨달은 것이 다행이었다. 한결과 밥 한 끼 하는 건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