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8/131)

“어때?”

에밀리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마시면서 곁눈질로 에밀리를 보다가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단숨에 잔을 비워 버렸다.

“맛있어.”

맛없을 텐데. 크리처의 피는 독성이 있어서 쓴맛이 난다. 미약하게 마약 성분도 함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 쓴맛을 과일이 잡아 준다고 해도, 특유의 톡 쏘는 맛은 일반인에게 거북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을 가리자, 유건이 한 잔 더 달라는 듯 에밀리에게 잔을 내밀었다. 애써 괜찮은 척 하지만 그다음 잔부터는 잔이 줄어드는 속도가 확연하게 줄었다.

“그래도 이거랑 같이 먹으니까 괜찮은데?”

“그렇지?”

유건은 에밀리가 만든 레몬을 곁들인 샐러드를 먹으며 말했다. 그녀는 유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생각보다 잘 먹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너희는 이거 며칠마다 마셔야 해?”

“크리먼마다 달라. 나는 일주일에 세 번 먹는데 사월이는 아마 한 번 정도 먹을걸?”

“크리먼들은 그럼 크리처 피를 다 좋아해?”

에밀리는 대답하기 전 내 쪽을 바라봤다. 그는 생각보다 크리먼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크리먼이니까 조심하려고 그런가. 아니면 그저 신기한 건가.’

내가 말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시선을 거두자, 에밀리는 유건의 물음에 계속 대답해 줬다.

“배고플 때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는 것처럼 엄청 허기졌을 땐 그렇지. 평소엔 마냥 다 맛있게 느껴지진 않아. 일단 우린 안 마시면 신체 변화가 일어나니까 챙겨 먹는 거야.”

“어떤 거?”

“이것도 크리먼마다 다른데 핏줄이 불거진다던가, 피부가 건조해진다던가 두통이 오기도 해. 그게 심해지면 강제로 크리처화가 진행되는 거고.”

“오. 에스퍼들 파장 떨어지면 나타나는 증상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크리처화가 폭주랑도 비슷하고.”

“그러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에스퍼들도 파장이 목숨이랑 연관이 있는 거니까. 크리먼한테 흡혈이 그런 거거든. 너희도 매칭률이 맞는 가이드를 더 선호하잖아. 우리한테 피를 섭취하는 건 그런 느낌이야.”

에밀리의 말을 듣다 보니 정말 크리먼이 에스퍼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리는 가이드 대신 피를 마시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럼 에스퍼처럼 특정한 대상에 집착하기도 해?”

“집착?”

유건의 다음 질문은 조금 색달랐다. 에밀리 또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집착이라고 하니까 웃긴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먹는 애도 있으니까 그러지 않을까?”

“그럼 에스퍼가 가이드한테 맹목적으로 구는 것처럼 너희도 그럴 수 있단 얘기야?”

“근데 너희들보단 덜하긴 하겠지. 너희는 매칭률 맞는 가이드가 진짜 사막에서 바늘 찾기잖아? 우리는 매칭률처럼 딱 떨어진 지표가 있는 건 아니니까.”

확실히 이런 점은 에스퍼와 크리먼은 달랐다. 우리는 에스퍼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그저 배가 고프면 눈앞의 사람은 다 똑같은 혈액 제공자였다. 그걸로도 욕구가 채워졌다.

나는 그들에게 시선을 거두곤 내 몫의 잔을 쥐어 내용물을 꿀꺽 삼켰다.

오랜만에 들어온 신선한 핏물에 위가 기쁘다는 듯 춤을 췄다. 건조하던 피부가 습기가 차오르고 몸은 온도가 한 단계 올라간 기분이었다. 고작 한입 마신 것 가지고 불안하던 마음이 잦아들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다음부터는 그렇게 급하게 삼키진 않았다. 원래의 내 속도대로 식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해서 먹고 있는데 왠지 시선이 느껴졌다. 유건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보니 에밀리가 자리에 없었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무언가 다른 요리를 꺼내오려는 것 같았다.

‘에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모르다니.’

나는 생각보다 많이 굶주려 있나 싶었다.

“아니, 너무 잘 먹길래.”

“배고팠으니까.”

나는 이번엔 에밀리가 만들었다던 샐러드와 함께 피를 마셨다. 텁텁한 크리처의 피와 새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풍미가 있었다.

확실히 인간이라면 이편이 더 맛이 좋게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하네.”

유건은 이제 대놓고 나를 빤히 관찰했다. 먹던 걸 멈추고 턱에 손을 괸 채 뭔가 의뭉스러운 표정이었다.

‘입술이 많이 빨개졌나.’

크리처의 피는 농도가 짙어 입술에 잘 물들곤 했다. 일반인에게는 자칫 비위가 상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의 반응도 이해했다. 이상하지 않을 리 없지. 지금 유건이 크리처의 피를 마시는 것 또한 괜찮은 척하지만 무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미안하거나 그의 눈치가 보이진 않았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유건에게 크리처 피를 마시라고 권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욕심껏 잔을 비워 냈다. 일주일간 저 녀석 옆에서 버티려면 평소보다 더 많이 마셔 두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진짜 잘 먹네.”

“…….”

“구내식당에서 먹을 땐 입도 짧고 편식도 하는 거 같더니.”

그건 어떻게 알았을까. 유건이 밥 먹는 속도가 빨라서 항상 다 먹고 나를 기다려줬는데, 그때 내 식습관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계속해서 피를 마셨다.

“에밀리 말론 크리먼도 음식 취향이 있긴 하다던데, 너는 흡혈할 땐 그렇게 따지진 않나 봐?”

“…….”

궁금한 건 에밀리가 모두 대답해 준 것 같은데.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맛있어?”

“어.”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뭔가 심술이 난 듯한 표정이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나보다 맛있어?”

“켁, 큽. 콜록, 콜록.”

“괜찮아?”

나는 불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먹다가 놀라서 사레가 들렸다. 연신 기침을 해 대는 내게 유건이 크리처의 피가 담긴 잔을 건넸다.

나는 피를 천천히 들이키며 놀란 가슴을 달랬다. 숨을 가다듬고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너 돌았어?”

“그렇잖아. 나한테 참기 힘들 정도로 갈증이 난다며. 자기 전에 생각날 정도로 맛있다고 했으면서.”

“…….”

“이제 보니까 그냥 신선한 피라면 환장을 하는 것 같은데. 괜히 그 얘기에 내가 혹해서는.”

“혹하긴 뭘 혹해!”

그가 왠지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저보다 피를 더 맛있게 먹어서 속상하다는 건가?’

정말 쟤가 그런 의도로 말하는 게 맞아?

“대체 뭐라는 거야.”

너무 당혹스러워서 시선을 피했다. 그에게 페어를 그만두게 할 의도로 짓궂게 말하긴 했지만, 내가 유건을 먹이로써 욕망하는 건 사실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건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매칭률 테스트하다가 맛본 유건의 피 맛.

유건의 피는 내게 초콜릿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쭉 빨아들여 입에 머금으면 싱그러운 상큼함이 느껴졌다.

운동으로 다져진 살은 쫀득쫀득한 느낌이었으며, 아직도 그의 피를 더 양껏 먹지 못한 것이 아쉬워 꿈에 나올 정도였다.

그에 비해 크리처 피는 그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분명 저 녀석을 맛보기 전에는 이것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한번 되새긴 기억은 뭉게뭉게 부피를 키웠다.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마시던 잔을 내려놓았다.

“사월아. 벌써 다 먹었어?”

에밀리가 마침 다른 음식을 들고 왔다. 유건을 위해 만든 사람이 먹을만한 피자와 튀김 요리였다.

“와, 맛있겠다.”

유건은 알수록 골 때리는 녀석이었다. 충격 발언을 해놓고는 또 금세 잊었다는 태도다. 나는 그런 유건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혹시 이상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닐까.’

아픈 걸 즐긴다거나. 당하는 걸 좋아한다거나. 간혹 그런 도착증이 있는 사람이 있다던데. 하지만 처음 내가 저 녀석 피를 빨았을 땐, 분명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조금 무서워하는 것도 같았고.

‘그렇다면 그때 이후로 새로운 눈을 뜬 건가?’

나는 소름 끼치는 추측에 소리 없이 경악했다. 그는 에밀리가 가져온 피자를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크리처 피가 먹을 만하다더니 역시 거짓말이었네.’

“유건이 잘 먹으니까 너무 보기 좋다. 유건아, 자주 놀러 와.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그럴까?”

둘은 얼굴을 마주하며 방글방글 웃었다. 오늘 처음 본 사이라기엔 과하게 친근해 보였다. 둘 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는 건 재주라면 재주였다.

‘그것보다 이제 슬슬 물어봐야 하는데.’

에밀리에게 항생제에 대한 진행 상황을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유건이 있어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에밀리가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올 땐 우리가 자주 마시던 와인이 손에 들려 있었다. 내가 에밀리에게 눈짓하자, 그녀는 와인을 다시 부엌에 놓고 걸어왔다.

“유건아. 어쩌지? 마실 게 크리처 피 밖에 없네.”

“나 그냥 물 먹으면 돼.”

“같이 먹을 치즈도 떨어졌어. 이 앞에서 하나 사 올래? 과일이랑 견과류 들어간 거 사월이가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그래?”

유건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챙겨서 에밀리에게 장소를 물어보고 집을 나갔다. 역시 말은 참 잘 들었다.

“네가 말했던 거랑 다른데? 쟤가 너 협박한 거 맞아?”

“어. 지금도 위험하다는 핑계로 나 감시하러 온 거야. 쓸데없이 친하게 지내지 마.”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에밀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유건이 오기 전에 말을 마쳐야 해서 급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습격한 건 알아봤어?”

“응. C 지역에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돈대.”

나는 크리먼 중에 아는 사람이 에밀리뿐이었지만, 에밀리는 크리먼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C 지역에 많이 거주하며 저들끼리 은밀한 네트워크가 있었다.

“가이드를 먹으면 핵이 작아진다고.”

“핵?”

“아마 그것 때문에 너를 노린 게 아닐까 싶어.”

나는 눈에 띄게 놀라 했다. 핵이 작아진다니.

“정말 가이드를 먹으면 핵이 작아진다고?”

“그건 확실치 않아. 그것들 원래 이상한 짓 많이 하잖아.”

작년 여름엔 크리먼들에게 백인의 피를 먹으면 미백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백인이 목표물이 됐다. 크리스마스 땐 어린애를 먹으면 피부가 젊어진다고 어린애들을 잡아가기도 했지.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니, 정부에서 크리먼을 위험 생물로 간주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나중엔 전부 유언비어로 밝혀져 습격은 잦아들었다.

“그래도 하필 가이드를 먹으면 핵이 작아진다니. 혹시 내가 핵이 없는 거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나는 번뜩 차오른 기대감에 상기된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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