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잠깐만. 이거 다 훈련하는 거야. 섬세한 컨트롤을 필요로 하는 거라고.”
유건이 왠지 이상했다. 그는 염력의 숙련도를 높이려고 자주 사물을 손 위로 띄워서 회전시키곤 했는데, 섬세한 작업을 한다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멍한 표정이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원래도 이상한 놈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 이상했다.
정신은 다른 데 두고 있으면서 훈련은 무슨 훈련. 진짜 악몽이라도 꿨나.
“후….”
유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왠지 근심이 가득해 보이기도 했다. 무슨 고민 있나.
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금세 지워 냈다. 괜히 피곤한 일을 듣고 싶지도,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가이딩 크리스털 충전에 집중했다.
크리스털 충전은 접촉으로 이루어지지만, 파장을 흘려보내는 건 일반 가이딩과 같은 원리라서 어쩔 수 없이 공기 중에 파장이 퍼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낭비를 줄이기 위해 캡슐에서 충전했다. 캡슐 안은 방음이 잘되어 유난히 고요했다. 나는 이 정적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저 녀석만 없으면 딱 좋을 것을. 아니다. 공기라고 생각하자.
조금 짜증 나고 애새끼 같은 공기.
“사월아.”
“…….”
“주말에 뭐 했어?”
“…….”
공기가 말을 하네. 나는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나는 사실 본가 가서 가족들이랑 저녁 먹었어….”
그는 내 침묵에도 끊임없이 혼잣말을 이어 갔다.
“오랜만에 가족들 다 같이 식사해서 좋았는데….”
“…….”
“나 어떻게 생각해?”
속으로 애써 그의 존재를 지워내고 있는데 그가 뜬금없이 물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가족들과 밥을 먹어서 좋았는데 저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가 뭔가 빠뜨리고 못 들은 말이 있는 건가?
“이성적으로 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자, 그가 콕 집어 물어봤다.
나는 일단 떠오르는 대로 입을 움직였다. 곰곰이 고민해 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귀찮다고 생각해.”
“귀찮… 다고….”
“에스퍼로서도 이성적으로도 형편없지.”
“형편… 그래…. 형…. 넌 한결 형 편이니까.”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헛소리지만 오늘따라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멘탈이 나가 보였다.
어디가 아픈 걸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크리스털을 쥐고 있지 않은 손으로 유건의 이마를 짚었다. 혹시 몸에 다른 이상이 생겨서 불안정기에 접어든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지? 넌 내 편이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에 감겼다. 생기를 잃었던 눈동자가 점점 내 눈과 눈높이를 맞추더니 애절하게 물었다. 옅은 갈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처연해 보였다.
“대체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좀 말해.”
“넌 내 페어니까 내가 더 좋잖아.”
유건의 이마는 적당히 따듯했다. 오히려 평소 유건의 높은 체온과 비교하면 낮은 온도였다.
‘열은 없는데 왜 이렇게 헛소릴 하지?’
나는 떼를 쓰듯 강요하는 유건에게 손을 뗐다. 유건이 거두어지려는 내 팔목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럼 한결 형은 어때?”
여기서 한결 이름이 왜 나올까. 그의 헛소리가 점점 짜증이 났다.
“입을 움직이는 건 훈련이 아닐 텐데 좀 다물어 줄래.”
“너는 한결 형 편이야?”
“계속 방해할 거면 쫓아낼 거야.”
“이것만 대답해 줘. 내 편인지 한결 형 편인지.”
가볍게 묻는 거라기엔 손목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슨 고민을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 편이라고 말해 달라는 것 같은데.
“굳이 편을 나눈다면….”
내가 입을 열자 유건이 온 신경을 내 입 모양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유건이 염력으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크리스털의 움직임이 느릿해졌다. 그가 내 대답에 한껏 기대하는 것 같았다.
“선배 편이지.”
그렇다고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생각은 없었다. 되려 오늘따라 신경을 긁는 그를 골려 주고 싶어서 말을 덧붙였다.
“너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챙그랑.
기어코 그가 장난을 치던 크리스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내가 저럴 줄 알았다.
“그러게 내가 위험하니까 그만하랬지.”
곧장 유건을 쏘아보듯 바라보자 그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사고는 저가 쳐놓고 저게 뭐하는 짓인지….
“너 어차피 크리스털 네 거라고 막 굴리는데, 다른 에스퍼 줘 버린다?”
“안 돼!”
“계속 짜증나게 하면 페어 취소할 거야.”
“누구 마음대로.”
페어 취소는 페어를 요청했을 때처럼 두 사람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했다. 그러니 저렇게 뻔뻔하게 구는 거겠지. 유건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내가 충전하고 있던 크리스털을 낚아챘다. 그러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미워.”
그러고선 캡슐을 나갔다. 뒷모습이 마치 순정만화의 상처받은 여주인공 같았다. 그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닥엔 깨진 크리스털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갈 거면 지가 깨트린 건 치우고 가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캡슐을 나가서는 훈련소로 갈 줄 알았는데, 내가 가이딩 크리스털을 충전하고 캡슐을 나오자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은 아직 토라진 표정이었다.
나는 피곤하단 눈으로 그를 무시하고 구내식당으로 이동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유건은 익숙하게 내 옆자리에 앉더니 다른 에스퍼가 내게 눈인사하며 앞에 앉으려 하자 겉옷을 벗어 앞자리에 던졌다.
“여기 자리 있어요. 다른 곳 앉으세요.”
다소 도전적인 눈초리에 그 에스퍼는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유건은 그 이후에도 훈련이고 임무고 내팽개치고 옆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그러곤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이를 드러내며 경계했다. 그 미친 짓이 그날 하루로 끝날 줄 알았는데 장차 일주일 동안 계속됐다.
“대체 왜 이래? 좀 떨어져.”
“나 신경 쓰지 마. 공기라고 생각해.”
“이렇게 큰 공기가 어디 있냐고!”
덩치는 산만 해서 하는 짓이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혹여 내가 한결 편이라고 말해서 보복을 하나 싶어, 먹고 떨어지라는 심정으로 네 편이라고도 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나를 다른 에스퍼들에게서 완벽히 차단했다.
“우와. 사월이 오랜만. 요새 강아지 키운다며.”
“강아지요?”
“네 페어. 에스퍼가 옆에 가기만 하면 엄청나게 으르렁댄다던데.”
피닉스팀 캡틴인 유라가 내게 말을 걸었다. 유건의 망나니짓은 어느새 다른 팀에게도 소문이 나 있었다.
“강아지는 무슨. 완전 안하무인 똥개예요.”
그녀는 A급 가이드로 한결에게 용건이 있어서 알파 팀 사무실에 왔다가 부재중인 한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캡틴은 등급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5년 이상을 근무한 각성자만 받을 수 있는 직함이었다.
오랜 기간 센터에서 근무한 나는 캡틴들과 대부분 안면이 있었다.
“근데 어디 갔어? 얼굴 구경하고 싶었는데.”
유라는 그간 다른 임무로 한 달간 자리를 비웠다. 그는 한결에게 용무가 있다지만, 왠지 유건을 구경하러 온 것 같았다.
“글쎄요. 화장실 갔나 보죠.”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유건이 물기 묻은 손을 털어내며 달려왔다. 그는 오자마자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유라를 쏘아봤다.
“야. 인사 먼저 해. 피닉스 팀 캡틴이야.”
“안녕하세요.”
“안녕.”
다른 캡틴이었으면 유건의 태도는 한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건방졌다. 그러나 유라는 그저 귀엽다는 듯 가볍게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경계하지 마. 나 가이드야. 한결이 동생이라더니 얼굴은 안 닮았네?”
“형 알아요?”
“알지, 그럼.”
“친구예요?”
“친구?”
유라는 눈을 굴리며 어딘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유건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장난기 다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나 한결이 오피스 와이픈데?”
유건은 유라의 말을 듣자마자 몸을 다급하게 뒤로 물렸다. 자극당한 귀를 막으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말요?”
“애한테 장난치지 마.”
그때 한결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겨얼. 잘 지냈어?”
한결은 서류로 유라의 머리를 툭 치고는 그녀를 데리고 자리로 이동했다. 유라는 한결의 팔을 붙들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깔깔 웃기도 했다. 그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친근해 보였다.
그러다 점점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자리를 옮겼다. 회의실로 들어가는 걸 보니 의논하러 온 주제가 꽤 중요한 사안 같았다.
유건은 그들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내게 물었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뭔데.”
“오피스… 그, 와이프?”
유건은 유라의 말을 따라 하면서 이젠 목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반응하니까 다들 놀리지.
“그냥 장난친 거야.”
“아, 그래? 저 캡틴 페어있어?”
“어. 한결 캡틴이랑 가장 매칭률이 높아서 자주 가이딩 할 뿐이야.”
“오…. 그 페어는 가이딩 하는 거 뭐라고 안 한대?”
“다 너 같은 줄 알아? 그 사람도 비즈니스 관계인데 뭐. 유라 캡틴 애인은 또 따로 있어.”
“뭐라고?”
유건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펄쩍 뛰었다. 요즘엔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데.
페어 결정에 가장 우선되는 조건은 매칭률과 등급이었다. 그들은 대개 그것만 맞으면 페어를 했다.
매칭률이 맞는 상대 자체를 찾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그렇게 만난 페어가 성격까지 맞을 확률은 극히 드물었고, 호감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옛날에야 무조건 페어를 하면 결혼까지 했지, 요즘 각성자들에게 페어와 연애 상대가 다른 것은 빈번한 일이었다.
나 역시 그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유건이 매칭률이 높은 편이지만 남자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헉, 허억. 유라 캡틴 왔다며. 어딨어?”
“방금 캡틴이랑 회의실 갔어요.”
지한이 급하게 뛰어오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통유리로 되어 있는 회의실에 유라와 한결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크게 탄식했다.
“아! 늦었네.”
“왜요?”
“유라 캡틴 이번 임무 때 페어랑 크게 싸웠대. 페어 새로 구할지도 모른다던데?”
지한의 말을 듣고 지수가 흥미로운 눈길로 의자를 끌며 다가왔다. 손에 과자를 우적우적 씹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오자마자 한결 캡틴 만나러 온 거면 우리 캡틴이랑 페어 하려는 거 아닐까요? 둘이 매칭률도 높잖아요.”
“오…. 합리적 의심이군.”
알파 팀원들은 재밌다는 듯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결 캡틴도 만약 유라 캡틴이 페어 요청하면 거절할 이유는 없지.”
“맞아, 사월이도 유건이랑 페어 해서 품절이고. 등급도 A급이면 잘 맞잖아.”
“근데 캡틴끼리 페어 하는 건 처음 아니야?”
“둘이 페어 하면 또 떠들썩하겠네.”
“아, 망했다.”
지한은 대화 중 연신 자신이 한발 늦었다며 아쉬워했다. 지수는 빨리 왔어도 지한 차례는 아마 안 왔을 거라며 그를 놀렸다.
옆에서 같이 듣던 유건이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슥 쳐다보자 가까이 와 보라는 손짓에 고개를 기울였다.
“너 괜찮아?”
“뭐가.”
“형이 다른 사람이랑 페어 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