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31)

“…좀 짙은데.”

“뭐?”

나는 몇 번 더 킁킁거리고는 물러났다. 입과 코를 손으로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샤워했어?”

“당연하지. 어젯밤에도 하고 아침에도 했어.”

“진단원 가기 전에 한 번 더 하고 가.”

“나한테 냄새나서 피한 거 아니었다며”

유건은 다소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냄새나서 피한 건 맞아.”

그는 내 말에 충격에 빠진 것처럼 입을 벌리고 굳어 버렸다.

“크리먼한테 가이딩하다가 물리고 싶은 거 아니면 내 말 들어.”

나는 그에게 짧게 경고하곤 회의실을 나갔다.

***

“뭐야? 유건이 뭘 하려고 샤워까지 했어? 누나 기대 좀 해도 될까?”

“아니요…. 그냥 더워서 했어요. 구사월은요?”

“이미 테스트실 들어가 있지. 빠르게 끝내자. 나이 먹었더니, 남 신음이나 듣는 거 부럽고 짜증 나.”

“…그럴 일 없어요.”

스피커 너머로 유건과 매칭률 테스트해 줄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테스트실은 원형 모양의 침대와 밀폐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서로의 소리만 공유될 뿐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알아야 할 데이터는 목 뒤에 붙어 있는 센서로 전달될 것이고, 우리는 안내에 따라 테스트를 진행하면 됐다.

달칵.

유건이 테스트실로 들어왔다. 처음엔 구시렁거리더니, 꽤 오랫동안 샤워하고 온 것 같았다. 머리는 덜 말랐는지 아직도 살짝 젖어 있었다. 수증기에 달아오른 피부가 혈색이 좋아 보였다.

“이제 만족하냐.”

“아직 모르겠는데.”

유건이 소파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왔다. 어디 한번 맡아보라는 것처럼 목을 꺾으며 들이밀었다. 나는 유건의 허벅지 옆에 손바닥을 받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화한 보디 워시 냄새와 미약하게 다디단 살냄새가 섞여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마땅치 않지만, 일단 진행하자는 식으로 말했다. 유건은 허, 하며 탄식하다 자기 손목을 코에 박으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곤 다시 나를 이상하단 눈길로 바라봤다.

‘네가 뭘 알겠냐. 일개 인간 주제에.’

속으로 혀를 쯧 차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스피커로 목소리가 들렸다.

“구사월 가이드, 백유건 에스퍼. 매칭률 테스트 시작합니다.”

“네.”

“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유건은 어딘가 자신감에 차 보였고, 나는 공연히 침을 꿀꺽 삼켰다.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보통의 가이드라면 에스퍼와의 접촉에 긴장돼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백유건을 물면 절대 안 돼.’

내 걱정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손잡아 주세요.”

1단계였다. 유건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위로 손을 얹었다. 유건이 내 손가락을 끌어모아 가볍게 쥐었다.

“좋습니다. 이대로 5분 동안 가이딩 진행하겠습니다.”

우리가 손을 잡자마자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잠깐 사이에 센서로 데이터가 출력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손을 통해 파장을 흘려보냈다. 유건이 움찔 떨더니, 우리가 잡은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

짧은 감상평이었다. 그는 내 가이딩 크리스털로 매번 가이딩을 받기는 했지만, 접촉을 통해 가이딩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유건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보는 애처럼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 또한 그의 파장을 직접적으로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파장은 어딘가 몽글거리고 구름 같았다. 봄에 내리쬐는 햇빛처럼 따스한 느낌이었다.

내가 백유건과 접촉 가이딩을 하는 날이 오다니. 크리먼인 걸 들키지 않았다면, 평생 일어나지 않았을 일 일인지도 몰랐다.

분명 가볍게 쥐고 있는데도 유건의 손은 단단하게 느껴졌다. 어색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더듬거리자 손바닥 안쪽에 굳은살이 느껴졌다.

까끌한 감촉에 자연스레 그 살에 이를 박아 피를 빨아내는 상상이 떠올랐다. 살이 벌어지고 그 안에 붉은 피가 혀에 닿는다면….

너무 맛있겠다.

“아, 안돼.”

“왜 그래?”

“아니야.”

불쑥 튀어나온 말에 유건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다 고개를 흔들며 곧바로 상념을 지워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향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곧바로 위험한 상상을 하다니. 역시 유건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녀석의 향은 내게 너무 위험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과 붙어 있으면 내가 크리먼인 걸 매일같이 상기하게 될 것 같았다.

속으로 나만의 싸움하고 있는데 유건의 파장과 함께 향이 더욱 짙어졌다. 나는 볼 안쪽 살을 씹으며 전보다 더욱 숨을 얕게 쉬었다.

“구사월 들려?”

“뭘.”

“심장 소리. 나 네 심장 소리 들리는데?”

에스퍼는 감각이 예민해서 손을 잡은 것만으로 내 맥박을 느낄 수 있었나 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봤자, 신체 능력이 일반인과도 같은 가이드에겐 전혀 이해하지 못할 소리였다. 내가 크리처화를 개방하면 또 모르겠지만.

“안 들려.”

“심장 소리도 꼭 저 같네.”

유건이 소리 없이 웃었다. 마냥 재밌고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소리가 나길래 저러지?’

가이딩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내가 매칭률이 높아서 나한테서만 들을 수 있는 건가. 그는 어딘가 설레어 보이기도 했다.

“진짜 불공평한 관계야.”

“……?”

“그렇잖아. 에스퍼는 가이드에게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 이론으로 배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 못 했는데 알 것 같기도 하고.”

유건은 그 말을 하면서 내 손등을 엄지로 문질렀는데 의도적으로 한 행동 같진 않았다.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가 에스퍼가 되고 내가 가이드가 돼야 했는데.”

“시답잖은 소리.”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유건의 말을 무심하게 끊어냈다. 유건은 그런데도 기분이 좋은 건지 입꼬리에 웃음을 매달고 있었다.

“손가락 가만히 놔둬.”

“넵. 가이드님.”

그나마 다행인 건 그는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조금 정신이 없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테스트는 순조롭게 끝날 것 같았다.

“됐습니다. 2단계로 넘어갈게요.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준비됐습니다.”

“네. 시작하겠습니다.”

유건이 상의도 없이 대답하며 자신의 목을 톡톡 두드렸다. 목을 가져다 대라는 말일까.

나는 그가 편하도록 블라우스 제일 윗단추를 풀었다. 하나 더 풀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유건이 됐다는 듯 내 손을 잡아 단추에서 떨어뜨렸다. 스피커로 우리의 대화가 들릴지도 모르니, 되도록 말을 삼가는 것 같았다.

“괜찮은데.”

“그래?”

그러자 유건이 거침없이 내 두 번째 단추를 풀었다. 내가 괜찮다고 한 건 말해도 된다는 말이었는데 작은 오해를 산 것 같았다.

다행히 안에 나시 티를 입고 있어서 정말 상관없었다. 유건은 그다음으로 내 턱을 거머쥐곤 슬쩍 들어 올렸다. 내 목이 그에게 무방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

단추를 풀어서 그런지, 몸의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으슬으슬한 느낌에 침을 꿀꺽 삼키는데 유건의 시선이 내 목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좀처럼 시작하질 않아서, 내려다보려고 할 때였다.

“할 거야. 가만히 있어.”

목표 지점을 확인하는 것처럼 유건의 손가락이 한 지점을 꾹 눌렀다. 익숙지 않은 손길에 간지러워 목이 움츠러들었다. 턱을 쥔 유건의 손에 전보다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따듯한 입술이 살갗에 닿았다.

“흡.”

나는 낯선 감촉에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유건의 머리칼이 턱 아래로 나부꼈다. 샴푸 냄새와 함께 달큼한 향이 올라왔다. 그의 질척하고 끈적한 점막이 내 살을 부드럽게 감쌌다.

‘이거 안 되겠는데.’

“백유건. 얼마나 걸려?”

“방금 시작했는데?”

그가 목에 입을 대고 웅얼거렸다. 뜨끈한 숨과 그것보다 더 뜨거운 혓바닥이 느껴졌다. 유건이 귀밑을 뭉근하게 핥아 올렸다.

‘아, 씨. 미치겠네.’

나는 시작하자마자 아찔해졌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고 손에 힘을 주고 참으려고 해도 점점 숨이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박사님. 이거 얼마나 걸려요?”

“퍼센트 점점 떨어지는데? 사월아. 마음 편하게 먹어. 이거 불안해하면 진행률이 더뎌져.”

“…….”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은 차원이 달랐다. 유건이 내 몸에 입술을 대자 그의 향이 그대로 쏟아부어진 것처럼 정신이 혼몽했다.

입 안에 침이 가득 차 열심히 목울대를 움직이며 꿀꺽꿀꺽 삼켜냈다. 유건이 알아챘는지 살갗에 대고 웃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돼?”

“아니, 그게….”

유건의 파장이 한층 더 짙어졌다. 자극적인 냄새에 그의 파장까지 겹치자,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불행하게도 파장조차 갈증을 부추겼다. 그의 파장이 뭉근하게 내 몸을 감싸 안았다.

“흐….”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자, 유건이 잠시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살폈다. 이내 피식 웃고는 다시 얼굴을 묻었다.

그의 숨이 살을 타고 흩어졌다. 그 작은 진동이 발끝까지 이어져 절로 곱아 들었다. 입술이 느리게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빨아들였다.

분명 안타까울 만큼 신중한 접촉인데도, 나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유건이 괜찮다는 듯 반대 손으로 등을 쓸어내렸다.

“왜 이렇게 떨어.”

“…….”

“숨 천천히 쉬고.”

“…….”

“괜찮아? 내가 너 무슨 잡아먹냐.”

“내가…. 그래.”

“응?”

유건은 내가 한 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근데 하필 귀 아래쪽 목을 빨고 있어서 그가 혀로 제 입술을 핥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내가, 잡아먹을 것 같아서… 그런다고.”

목소리가 뚝뚝 끊겼다. 긴장으로 온몸의 근육이 경직됐다. 팽팽하고 가느다란 정신 줄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입 주변에 뜨끈한 움직임이 의식되어 고개를 내려 입에 담았다.

“무슨 네가 잡….”

돌연 유건의 움직임도 멈췄다. 달콤한 맛이 났다. 그를 깨물면 어떨까 상상한 것이 아니라 혀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맛이었다.

‘아니, 맛이라고?’

나는 풀린 눈을 번쩍 떴다.

“…….”

“…….”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흐릿했던 정신이 일순 또렷해졌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내 턱을 쥐고 있는 유건의 손을 끌어와 검지를 입에 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친.’

거기에서 끝나면 다행이었으나, 의식 하고 나니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자극을 참아내려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붉은 피였다. 내 손톱이 어느새 길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는 듯했다.

“야. 백유건.”

“어? 어.”

유건은 살짝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큰일 난 것 같은데.”

“나도.”

“뭐?”

“아니. 왜?”

우리 둘 다 우왕좌왕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일단 눈을 감고 유건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나 크리처화 진행된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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