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유건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센터에서 나가.”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나는 네가 들켰으니까 알아서 제 발로 나갈 줄 알았어. 그런데 오늘은 뻔뻔하게 형이랑 가이딩을 해?”
그러니까 유건의 심사가 뒤틀린 건 내가 한결과 가이딩을 해서였다.
“너 형이 이걸 알면 뭐라고 할 것 같아?”
“…….”
“캡슐에서 뭘 하고 올라왔길래 얼굴이 시뻘게져서 올라오냐고.”
“그거는…”
“들을 것도 없어. 네가 어디서 크리처를 처먹든, 인간을 처먹든 관여 안 하는데. 형 옆에서 떨어져.”
나는 말문이 막혔다. 유건이 하는 말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결과 유건은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한결의 어머니와 사별 이후, 유건의 어머니와 재혼했다.
여기서 문제는 한결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였다.
“표정 보니까 모르는 애도 아닌 애가. 대체 무슨 낯짝으로 여기 있냐고.”
가이드인 한결의 어머니는 크리먼에게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한결은 크리먼을 끔찍한 걸 넘어서, 분노하고 저주했다.
나를 방출 게이트 사고 이후 보살펴 주던 것도, 어쩌면 한결처럼 크리먼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쓰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안 돼.”
“여기 계속 있겠단 거야?”
“각성자가 센터를 벗어나면 평생 도망자 신세로 지내야 하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해.”
“너, 들키면 바로 사살이야.”
“알아.”
“안다는 애가.”
“차라리 죽여.”
유건이 이를 빠득 갈았다. 어찌나 세게 이를 부딪친 건지, 내게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그의 목이며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내가 너 못 죽일 것 같아?”
그가 순간 살기로 번뜩이는 눈으로 물었다. 증명이라도 하듯 내 목을 거머쥐고, 손끝으로 정확히 경동맥을 짚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그대로 콱 조여들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유건이 나를 죽인대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나를 죽이고 사체를 진단원에 맡기면, 내가 크리먼이란 건 쉽게 밝혀질 수 있으니까.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그렇지만 죽을 수 있을 리 없다. 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내 안의 어디에 있는지 모를 핵이 계속해서 세포를 재생시켰다.
5년 동안 나도 해내지 못한 일을 만약 유건이 해 준다면, 처음으로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내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말하자, 유건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단단하고 예리한 눈빛이 일순 흐릿해졌다. 이윽고 성질이 난 듯 씨근덕거리며 뒤돌아서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 사월아.”
유건과 나는 동갑이다. 하지만 살갑게 내 이름만 부른 것은 손에 꼽았다. 매일 구사월이라고 성을 붙여서 말했고, 나 또한 백유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진지한 말투로 나를 타이르듯 부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유건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혼란과 근심이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면 길 가다가 미친개한테 물린 건 유건이었다.
괜히 몰라도 됐던 사실을 알게 돼서 만약 내가 크리먼이란 사실을 묻어 준다면, 그는 공범으로 징계를 받을지도 몰랐다.
“모른 척해 줘. 나 5년 동안 들킨 적 없었고, 흡혈을 하는 건 일주일에 한 번뿐이야. 사람도 먹은 적 없어.”
“크리처 고기는 먹으려고 가져온 거 아니야?”
“그 잡내나는 걸 어떻게 먹어? 피 뽑아서 먹지.”
“어떻게 뽑는데.”
“착즙기로 뽑아도 되고, 생과일 즙 짜는 것처럼 주무르거나 이로 물어서 빨아….”
“아니야.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유건이 자신이 물어봤으면서 들을수록 아니다 싶었는지 내 말을 끊어냈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비유한다고 해도, 비위가 상할 수 있었다. 유건의 표정은 더욱 착잡해졌다.
“가이딩은.”
“가이딩은 왜.”
“가이딩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넘어가 주겠단 건가? 나는 희망을 엿보며 적극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손만 잡고 하고.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어.”
“아니잖아. 너 나한테 냄새난다고 거리 두던 거, 갈증 느껴서 그런 거 아니야?”
“…….”
최대한 에둘러 말했던 건데 이건 대체 어떻게 안 건지. 그는 아무래도 내가 크리먼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 허술했던 퍼즐을 완성한 모양이었다.
“아니라곤 말 못 해.”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유건이 내 거짓말에 동참해 줄 생각이 있다면, 어느 정도 나에 대한 건 알아야 하니까.
“근데 그거, 너뿐이야.”
“무슨 소리야?”
“참기 힘들 정도로 갈증 나게 하는 건 너뿐이라고.”
유건의 미간에 금이 갔다. 눈살을 찌푸린 그는 설명이 필요하단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닫았다.
내 입으로 너한테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물고 싶은 향’이 난다고 어떻게 말해. 그 말은 죽기보다 하기 싫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유건은 말 그대로 표정이 미묘해졌다.
“혹시 내가 몰라서 묻는 건데… 크리먼들은 물고 싶다는 말로 유혹해?”
“아니, 그게 아니라….”
세상에. 나는 쌓여 가는 오해와 말 못 할 답답함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유건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뭐, 그래…. 맛없게 생겼다는 것보단 나은 거겠지.”
그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것 같았다.
“네가 달려든다고 내가 못 막을 것도 아니고.”
B 지역에 나타난 방출 게이트는 A급 게이트. 제일 높은 크리처에게 내가 물려 봐야 A급이 최대였다. 무력으로 S급 에스퍼인 유건을 이길 수 없을뿐더러, 물려도 그는 크리먼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슬며시 눈을 뜨며 유건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럼 나 봐주는 거야?”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나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한동안 그렇게 눈을 마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결 형이랑 가이딩은 안 돼.”
막말로 한결도 S급 에스퍼인데 위험하지 않을 거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말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건은 전보다 표정이 많이 풀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뭔데.”
나는 희망을 엿보며 상기된 채 물었다.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항생제 개발되면 인간이 되고 싶긴 한 거지?”
“…….”
“아니야?”
“맞아. 당연하지.”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만약 인간이 된다면 죽든 살든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대답이 반 박자 늦게 나온 건,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도 30년을 연구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그동안 연구한 기록은 그날의 사고로 모두 소멸하였고, 다시 연구에 착수한 지 5년이 흘렀다.
센터는 국민이 두려움에 떨지 않게 언론을 통해 항생제가 곧 완성된다고 말했지만, 센터 내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항생제가 언제 만들어질지 미지수란 것을. B 지역 방출 게이트 사고 때, 크리먼이 되어 사라진 연구원들이 아직도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면 차라리 그쪽의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서 나는 에밀리와 함께 오래전 부모님과 연구했던 연구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도 둘이서만 하려니 진행이 더딘 상황이었다.
“그럼 됐어.”
대체 뭐가 됐다는 건지. 정말 항생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묻지 않았다. 유건이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희망을 거는 부분이 항생제 같아서.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유건이 내 비밀을 눈감아 주기만 한다면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랑 페어 해.”
“뭐?”
이야기가 왜 또 이렇게 되는 거지? 내가 주제도 모르고 다시 인상을 썼다.
“어디서 사고 칠지도 모르고 차라리 내 옆에 두고 감시하는 게 낫겠어.”
“5년 동안 안 들켰다니까?”
“나한테 들켰잖아?”
이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다. 이 녀석 멍청한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말을 잘해?
“그리고 이번 습격 사건 때문에 브리핑 때 페어가 없는 가이드들 웬만하면 매칭시키자는 얘기도 나왔었어. 어차피 페어를 해야 한다면 네 상황을 다 아는 내가 낫잖아.”
“네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아니고?”
하지만 나도 지지 않았다.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꼭 페어를 해서 감시할 필요는 없잖아. 이 기회에 적당한 이유 붙여서 가이딩 받으려는 거 아니냐고.”
비밀을 지켜 주는 것과 페어는 다른 문제였다. 페어를 한다면 감시하는 것이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것보다는 이 기회에 내게 가이딩을 받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렇다면 뭐 어쩔 건데.”
유건은 내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되려 한 발자국 다가와 어쩌라는 식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솔직히 당황하고 말았다.
“사월아. 좋게 말할 때 내 말 들어. 나도 너한테 협박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이미 네가 하는 거 협박이야.”
“알면 제발 그 입 다물고.”
미친놈….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애써 선량한 척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이건 집에 가서 맛있게 먹어. 뭐 어떻게 먹겠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할 일 많으니까 늦지 말고.”
그가 사뭇 다정한 말투로 비닐봉지를 다시 내게 건넸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품에 억지로 들이밀었다.
“집 조심해서 가, 사월아.”
그 길로 유건은 회의실에서 나갔다.
***
A 지부 센터 뒤편에 있는 ES동 기숙사. 유건은 기숙사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샤워하고 나오니,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
철컥.
“무슨 일이야?”
“들어가서 말하자.”
유건을 찾아온 사람은 한결이었다. 안 그래도 낮은 편에 속하는 목소리가 더 낮게 깔려 있었다. 유건은 방에서 트레이닝 바지만 갈아입고선 거실로 나왔다.
“표정이 왜 그래?”
“사월이랑 무슨 일 있었어?”
대충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알파 팀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이 다 듣도록 그녀와 실랑이를 했으니. 한결 또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걔랑 나랑 원래 사이 안 좋잖아. 오해가 있었는데 다 풀었어.”
그렇다고 이렇게 퇴근하자마자 유건의 숙소로 찾아올지는 몰랐다. 이렇게 표정까지 굳히고선.
“사월이한테 준 거 뭔데.”
“뭘?”
“봉지에 담겨 있었던 거.”
“먹을 거.”
“그러니까 뭐냐고.”
한결이 집요하게 캐물었다. 유건은 그를 바라보다 난감하다는 듯 목덜미를 쓸었다.
“크리처 고기 아니야?”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냄새만으로도 한결은 정확하게 짚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