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은 그날 있었던 크리먼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봤다. 나는 계속 침묵할 수만은 없어서 대부분의 질문에 너무 놀라서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했다.
어설프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유건이 말한 것과 내용이 엇갈릴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람은 못 봤고?”
“네.”
“…그래.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계속되는 단답에 한결은 체념한 듯 입을 뗐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할 말이 많지만, 참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사이에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게 단순 사고인지, 누군가 일부러 크리먼을 폭주시켜서 가이드를 공격한건지 정확한 정황 파악할 때까지 기숙사에서 지내. 용건 있어도 멀리 나가지 마.”
“저는 기숙사 불편한데요.”
“불편해도 당분간 참아. 나갈 일 있으면 에스퍼 한 명 대동하고.”
상황이 안 좋았다. 기숙사에 있으면 크리처 피를 가져와서 먹지 못할뿐더러, 에스퍼와 나가도 마찬가지일 게 뻔했다.
그럼에도 S급 가이드가 습격당한 건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아서 반박하기 힘들었다.
가이드 습격 사건은 C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차근차근 단계를 높여가며 목표물이 바뀌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 간 건 가이드가 아니라 크리먼으로서 간 것이고, 그래서 같은 크리먼을 공격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안일했다.
이 시점에 센터에서 먼 구역까지 식사를 하러 간 것은 내 부주의가 명백했다.
“죄송합니다.”
한결은 손이 내 볼에 닿으려다가 다시 멀어졌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이 상황이 화가 난다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는 이내 뒤돌아서며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그날 있었던 일 대회의실 가서 브리핑할 건데, 너는 들어오지 마.”
“저 이제 진짜 괜찮아요.”
“그건 내가 결정해. 크리먼이랑 접촉은 한 상황이니까, 진단원 가서 검사받고 바로 퇴근해.”
“잠깐만요, 선배!”
그는 제 할 말만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뒤늦게 따라 나가자, 알파 팀 일부가 대회의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침 사무실에서 나온 유건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곧바로 눈을 피하고 패드를 조작하며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
나는 그날, 한결의 말대로 진단원에 들러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크리먼 진단검사였는데 1차는 x-ray로 몸에 핵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고, 2차는 혈액검사였다.
대부분 크리먼은 1차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2차까지 가진 않았다.
당연히 내 몸에선 핵이 발견되지 않았고, 나는 검사 후 기숙사로 복귀했다. 다음 날에도 출근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만약 사고가 아니라면, 나도 대비를 해야 할 텐데.’
그날 정신이 없어서 솔직히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유건과 맞닥뜨리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크리처화도 풀지 않은 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내 크리처화 속성은 스피드로 육체계에 속하는 특성이었다. 뛰어다녔으니 일반인 눈으로는 외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알파 팀 S급 가이드가 습격당한 것은 큰일이었고, 만약 조사 중에 내가 크리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질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단순 사고라면 상관없지만, 누군가 가이드인 나를 노린 것이라면 범인에게 의문을 살지도 모를 일이었다.
같이 있던 에밀리나 유건이 크리먼을 처치했다고 생각한다면 다행이지만, 과연 에밀리가 있는 걸 알고서 나를 공격했을까?
아니면 크리먼 하나쯤은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
나는 이 사건에 대해 깊게 알고 싶었지만 한결이 임무에서 완전히 나를 배제한 탓에 브리핑 내용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이렇게 그날 사고에 대해 마땅히 손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유건 또한 어떠한 말과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나를 무척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과장을 좀 더 보태서, 화장실 가는 것만 빼고 나를 졸졸 따라다녔었으니까.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유건과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분명 그날 일에 대해 내가 해명을 해야 된다. 현장을 들킨 시점에서 그건 사실 확인밖에 되지 못했다.
“백유건 이상하다.”
“이상해. 이상해.”
“드디어 접었나?”
“사월아. 뭐라고 했길래 애가 저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알파 팀은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얌전해진 유건을 보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20평 남짓한 알파 팀 가이딩 대기실이다 보니, 아무리 소파의 끝과 끝이라도 유건에게 들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들으라고 하는 소리일지도.
“그런데 애가 저래?”
“병든 닭 같아. 어디 아픈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프다기보단 엄청 차분해진 느낌이지. 그런데 말 걸기가 좀 껄끄럽네.”
그러고 보니 요즘 전체적으로 텐션이 낮고, 웃음기가 없어지자 눈매며 얼굴선이 날카로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팀원들 말대로 다가가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난 유건이 찡찡거리는 게 좋았는데 아쉽다. 저 등치로 꿍얼거리는 거 진짜 귀여웠단 말이야.”
“그럼 네가 유건이랑 페어하던가.”
“에스퍼가 에스퍼랑 페어를 어떻게 하냐.”
“강지한 뭐야? 남자인 건 문제가 안 되나 봐?”
“당연히 유건이라면 가능이지. 어리고 능력 있고 저 정도면 솔직히 잘생겼잖아.”
“맞아요. 저도 가능. 유건 오빠 처음 들어왔을 때 센터 가이드들 난리 났었잖아요. 오자마자 사월 언니 졸졸 따라다니는 거 보고 다 포기했지만.”
“…….”
나도 귀가 있으니,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게 있었다. 유건은 처음 들어올 때부터 등급뿐 아니라 곱상한 외모 때문에 가이드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각성자 대부분이 외모가 준수한 편이긴 하지만 유건은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얼굴은 곱상한 주제에 몸은 또 웬만한 육체계 에스퍼보다도 피지컬이 좋아서, 항간에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얘 봐라? 수아 너, 유건이한테 관심 있어?”
그때 지한이 눈을 갸름하게 좁히며 수아에게 물었다. 수아는 B급이지만 센터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고, 유건과 그나마 매칭률이 높은 걸로 알고 있었다. 34%의 매칭률이지만 내가 아니라면 그다음 우선순위로 수아를 꼽았었다.
“알파 팀 가이드들은 다 관심 있을걸요? 예쁘고 능력 좋은 에스퍼 누가 싫어해요?”
예쁘다는 표현은 좀 그런 거 아닌가. 하긴, 나도 처음 봤을 땐 곱다고 생각하긴 했지. 입만 열지 않으면 괜찮았다.
“사월 언니. 언니 유건 오빠랑 페어 안 할 거면 제가 해도 돼요?”
팀원들이 유건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수아가 내게 물었다. 나는 수아에게 슬쩍 시선을 두다가 무심하게 말했다.
“쟤가 내 거도 아니고 왜 나한테 물어.”
“언니가 혹시 다시 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그럴 일 없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싸. 오늘부터 작업 들어가야지.”
“오오, 이것도 볼만하겠는데.”
수아는 내 대답에 만족스러운지 방긋 웃으며 신나 했다. 주변에서 재밌다는 듯이 호응했고,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어디 가요?”
“캡틴 가이딩.”
팀원들 말대로 유건이 이제 나와 페어를 포기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내가 유건과 매칭률이 높대도 그가 페어를 하고 싶어한 건, 내가 크리먼이란 걸 몰랐을 때의 일이었다.
크리처의 피가 반 섞여 있는 가이드라니. 신체를 맞닿아야 하는 가이딩이 불쾌하겠지.
충분히 이해됐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 비밀을 묻어 둘 수 있는 거였으면, 애초에 빨리 들키는 게 나았으려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유건에게 들켜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가이딩 시간 10분 전에 캡슐에 들어갔는데, 한결이 미리 캡슐에 와 있었다. 그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오자 허리를 곧추세웠다.
“왔으면 저 부르지 그랬어요.”
“내가 시간 남아서 일찍 온 건데 뭘.”
한결이 빙글 웃어넘겼다. 며칠간 묘하게 냉기가 돌더니 그는 더 이상 내게 그날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차분하게 내 손 위로 팔을 올렸다. 한결의 스마트 워치에 파장이 측정돼 있었다.
[38%]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파장은 41%~100% 안정기, 21%~40%는 불안정기로 가이딩을 강력하게 권고했으며, 20% 이하부터 1차 폭주 간주, 10% 이하는 2차 폭주로 가장 위험했다.
한결은 등급이 높아서 가이딩이 까다로운 편인데, 가이딩도 불안정기에 접어드는 게 아니면 받으려고도 잘 안 해서 진단원 파장 관리사들이 애를 먹는다고는 들었다.
그래서 같은 등급인 나를 붙여 준 것 같은데. 나는 손밖에 잡지 않아서 어차피 B, C등급 가이드와 효율이 비슷할 터였다.
“매칭률 좋은 A급 가이드한테 받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말하고 올게요.”
“그냥 있어.”
내가 일어서려 하자, 한결이 내 손을 붙잡고 다시 앉혔다. 서늘한 온도가 내 손가락을 옭아맸다.
“너로 충분해. 오래 해 주면 되잖아.”
“그래도….”
“해 줄 거지?”
내가 대답에 뜸을 들이자, 한결이 내 손을 잡고 자기 뺨에 비비적거렸다.
마치 자신을 이뻐해 달라고 아양을 부리는 강아지가 떠올라서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네, 네. 그럼요.”
나는 손을 다시 끌어내리며 성급하게 파장을 퍼트렸다. 한결이 낮게 웃으며 파장을 느끼더니 스르륵 두 눈을 감았다. 가이딩의 시작이었다.
‘진짜 많이 힘든가 보네.’
한결과 안지도 벌써 15년. 나에겐 다정하지만 캡틴으로서 한결은 다정과 거리가 멀었다.
무게감 있고 진중한. 살짝 예민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한결은 직급을 달고나서 완벽주의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다른 에스퍼들보다 더욱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기운 소모가 심할 것이다.
“어때요? 파장 밀도 좀 줄일까요?”
“아니.”
“두통이나 신체 부위 중 당기는 부분 없어요?”
“없어. 지금이 좋아.”
한결의 목으로 만족스러운 신음이 울렸다.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꼬리가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의 무방비한 모습을 보는 건 캡슐에서가 유일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좋아했다. 그가 눈을 감고, 저릿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는 파장이 내 파장으로 인해 점점 누그러지는 이 순간.
한결의 몸이 완전 축 늘어지자, 매혹적인 향이 풍겼다. 짙은 머스크향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유건에게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한결도 사람이니 자연스레 갈증이 났다. 나는 허벅지를 손톱으로 꾹꾹 누르며 상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사월아.”
“네?”
그런데 갑자기 한결이 말을 걸었다. 나는 손을 제자리로 하고 그가 다음 말을 하길 기다렸다.
원래라면 별말 않고 눈을 감고 있다가 됐다는 말과 함께 가이딩이 끝날 텐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나랑 페어할래?”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한 번도 한결은 내게 페어를 제안한 적 없었다.
매칭률은 마지막으로 측정했을 때가 52%였다. 나쁘지는 않지만 같은 등급이라기엔 애매한 수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