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31)

쿵.

그렇게 여느 때처럼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꺄악! 윽.”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비명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마지막 발악하듯 내지르는 비명이란 것을.

“밖에 뭔가 큰일 난 것 같은데?”

나와 식사하던 친구, 에밀리가 말했다.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에 와인 잔에 담긴 크리처의 피가 출렁거렸다. 그 진동은 점점 크게 율동했다.

진동의 원인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안 되겠다. 빨리 나가자.”

나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미리 종이봉투에 포장해 놓은 크리처의 안 다리 살을 검은 비닐봉지에 이중으로 넣고 에밀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쾅!

그 순간 벽이 허물어졌다. 순식간에 룸 안이 먼지로 가득 찼다. 흐릿한 공간 너머로 목을 긁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르륵….”

쿵, 쿵.

벽을 부순 존재가 앞으로 다가왔다. 괴수의 탄탄한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이 있었다. 그리고 기다란 꼬리와 우툴두툴한 표피.

그렇게 아래만 보면 크리처였다. 그런데 상체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어정쩡한 꼴을 보아하니 크리먼이 오랫동안 흡혈을 하지 않아, 크리처로 변해 가는 과정인 듯 보였다.

“에밀리. 밖에 망 좀 봐 줄래.”

“응.”

에밀리가 문밖으로 나갔다. 크리먼화를 개방하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주위가 모두 어두운 흑백이지만, 내 앞의 크리처는 적외선 체온 측정기처럼 몸의 온도에 따라 빨갛고 파랗게 변화했다.

“겁도 없이 크리먼 소굴로 들어와?”

눈매를 좁히자 명치에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암석, 크리처의 핵이 투시됐다. 나는 크리처를 향해 단번에 돌진했다.

“크엑!”

크리처가 우왕좌왕하다가 정면으로 달려드는 내게 손을 커다랗게 휘둘렀다. 아마 나처럼 투시로 핵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허리를 뒤로 꺾으며 괴수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뒤에서 크리처를 제압해 핵이 있는 왼쪽 날갯죽지를 뾰족한 손톱으로 꿰뚫었다.

“키에엑!”

심장을 쥐자 크리처가 바르작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콰직 소리와 함께 암석이 조각나며 크리처가 쿵 쓰러졌다. 손을 빼내자, 검붉은 혈액이 질척하게 엉겨 붙었다.

“더러워졌네.”

나는 그 앞에 주저앉아 손톱을 세워서 크리처의 허벅다리를 해체했다. 팽팽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좀처럼 잘리질 않았다.

나는 몇 번 더 헤집다가 짜증을 내며 이를 박아 넣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살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며 피가 쭉 빨려 나왔다.

‘음. 에밀리 것도 챙겨야겠다.’

이렇게 신선도 좋은 크리처의 피는 구하기 힘들었다. 불법이기 때문에 빠른 유통이 힘들기 때문이다.

아마 한 마리의 크리처를 해체하면 에밀리와 나눠도 한 달은 새로운 피를 찾아야 할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고깃덩이를 챙기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사월!”

“……!”

엄청난 기세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칠 겨를도 없었다. 내가 인지한 순간 목소리의 주인이 내 등 바로 뒤에서 우뚝 멈춰 섰다.

고개를 돌아보자 코앞에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주먹이 보였다. 분노를 담고 있는 거친 파장이 느껴졌다.

“네가 왜….”

주먹을 내지른 상대를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상대여서 순간 이게 현실이 맞나 싶었다.

“백… 유건…?”

입으로 내뱉고도 믿기지 않았다. 유건의 동공이 커다랗게 팽창돼 있었다. 그 상태로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주시하던 유건은 이윽고 고개를 서서히 움직였다.

그는 내 뒤에 쓰러져 있는 크리먼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너….”

그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유건이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말을 채 다 듣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뚫린 벽면으로 튀어 나갔다.

“잠, 잠깐만! 기다려!”

등 뒤로 유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목적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력으로 달렸다. 머리 위로 빗줄기가 하나둘 떨어졌다. 얼마 안 가 쿠궁, 소리를 내며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쏟아져 내렸다.

마른 날의 날벼락이라기엔, 언젠가는 밝혀질 수도 있단 걸 알고 있었다.

잘 안다. 잘 아는데. 그래도, 그래도….

‘그 대상이 백유건인 건 너무하잖아.’

***

꺼 두었던 휴대폰 전원을 켜자 쉴 새 없이 진동이 울렸다.

「사월아 어디야? 오늘 쉬는 거야?」

「전화 왜 꺼 놨어ㅠㅠ 어디 아파?」

「피닉스 팀 남우주입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월씨 오늘 출근 안 했어요?」

「사월아. 답장해. 저녁까지 연락 안 되면 집 찾아간다.」

화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메시지들. 팀원들의 메시지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업무 메시지였다. 백유건에겐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유건이한테 들었어. 몸조리 잘하고 괜찮아지면 연락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결에게서 메시지가 한 통 더 도착했다.

“하….”

손톱을 딱딱 튕겼다. 불안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뜯었더니 손끝이 엉망이었다. 유건은 한결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다른 팀원들에게도 내가 크리먼인 걸 말했을까.

만약 그 사실이 센터에 밝혀지면, 아무리 내가 S급 가이드라도 즉결처분이었다. 그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살당하겠지.

하지만 크리먼의 ‘크’ 자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유건이 곧이곧대로 말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물며 한결이 몸조리를 잘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유건이 그냥 내가 몸이 아프다고 둘러댄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어째서? 백유건이 내가 크리먼이라는 걸 왜 덮어주지?’

나는 수많은 의문 사이로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혹시 아직도 페어를 하고 싶은 건가?’

각성자의 등급은 크게 상등급과 하등급으로 나뉜다. 상등급은 S, A, B급, 하등급은 C급을 포함한 아래 등급을 말한다. 중간 등급이 없는 건 에스퍼가 크리처에게 물렸을 때 감염 여부로 등급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신체 능력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가이드는 상등급이어도 감염이 되지만, 상등급 에스퍼는 크리처와 크리먼에게 물려도 독이 퍼지는 속도보다 재생력이 빨라서 다른 이들보다 감염될 가능성이 적었다. 그들에게 크리먼은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하물며 유건은 S급이다. 유건을 감염시킬 수 있는 크리처 혹은 크리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대도 크리먼인데 감싸 줄 이유가 있나?’

크리먼은 게이트가 생성됐을 때부터, 크리처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크리처의 유전자 반, 인간의 유전자 반을 가지고 있지만 크리처에 가까운 외형 탓에 괴물과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이딩은 신체를 접촉하는 일. 누가 괴물과 손을 맞잡고 싶겠는가.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잘 모르겠다.

유건은 그날 나와 마주쳤을 때도 공격하려던 걸 멈췄다. 그도 분명 크리먼을 만났을 때 즉결처분이란 걸 알 텐데. 도대체 왜.

나는 다시 그날 유건의 표정이 떠올렸다. 처음에는 놀라움. 그리고 당황했다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내 앞에 크리처의 잔해를 보자, 끔찍한 걸 봤다는 표정이었다.

그 상황에서 우습게도, 유건의 얼굴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건 바로 한결의 얼굴. 그가 유건의 얼굴과 오버랩되서 나를 경멸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가 오랫동안 샤워했다. 씻고 화장대 앞에 앉자, 며칠 사이 미세하게 수척해진 얼굴이 보였다.

평소보다 메이크업 베이스를 두껍게 바르고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지막으로 붉은 립스틱으로 마무리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언제부터 내가 죽는 걸 무서워했다고.’

3일 만의 출근이었다. 근심을 조금 내려놓으니 발걸음이 전처럼 무겁진 않았다.

***

“사월아. 몸은 좀 괜찮아?”

“A17 구역에 크리처 나타났다며. 크리먼이 폭주한 거랬지?”

“유건이가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지. 너 진짜 놀랐겠더라. 다친 데는 없고?”

“어, 어… 응.”

알파 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팀원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분위기를 살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네. 그날 백유건이 너를 쫓아간 게 천운이었다. 안 말리길 잘했어.”

“쫓아왔다고?”

알파 팀 가이드인 지수한테 내가 되묻자,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하며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그날 유건이 퇴근 시간에 본관 앞에서 너 기다리고 있었어. 오늘 일찍 갔다고 하니까 워치로 위치 추적해서 쫓아갔거든. 뭐 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못 받았어?”

“…….”

그래서 그 먼 곳에 백유건이 뜬금없이 있었던 건가. 대체 뭘 주려고 했길래….

나는 인상을 굳히며 상념에 잠겼다. 게이트 발생 정도의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퇴근 후 위치 추적 기능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이 경우에도 워치로 발생 경보가 오기 때문에 실제로 아무 일도 없는데도 쫓아온 건 유건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위치 추적 기능을 쓰면 팀의 캡틴에게 알람이 간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한결이 제재를 가할 것이다. 내게 사고가 있었으니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을 테지만, 유건이 사고가 날 줄 알았던 것도 아닐 텐데….

어찌 됐건 5년 동안 비밀을 잘 숨겨왔기에 방심한 것은 내 실수였다. 내가 말이 없어지자 지수가 안절부절못하더니 내 뒤로 오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캡틴! 유건아! 사월이 오늘 출근했어요!”

나는 몸을 움찔 떨며 뒤를 돌아봤다. 한결과 유건이 같이 들어오고 있었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으나, 유건은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지? 안녕? 아니, 그날 구해 줘서 고맙다고 맞장구쳐야 하나? 괜히 말 걸었다가 그날 일 다 말해 버리면 어쩌지?’

그 잠깐 사이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뒤엉켰다. 이윽고 유건이 내 앞에 당도했고, 나는 차마 그를 바라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구사월 가이드.”

딱딱한 목소리였다. 고작 이름 세 글자를 부르는 것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슬며시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한결이 단호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뒤를 휙 돌아봤다. 유건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나를 그대로 지나쳐간 것이다.

“센터가 장난입니까?”

한결이 집중하라는 듯 날카롭게 읊조렸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사무실 전등의 빛 때문에 높낮이가 뚜렷한 이목구비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더욱 삼엄한 분위기를 냈다.

“죄송합니다. 캡틴.”

나는 뒤늦게 뒷짐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회의실로 따라오세요.”

한결이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그를 따라가면서 다시 뒤돌아봤지만, 유건은 자리에 앉아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직도 아픈 거 아니야?”

회의실에 버튼 하나로 암막이 쳐지자, 한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안 좋으면 더 쉬지 그랬어.”

“이제 괜찮아요.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유건이한테 들었어. 폭주한 크리먼한테 공격당했다며.”

그렇긴 한데….

“연락은 왜 안 되고.”

“…….”

“그 먼 곳까지는 왜 갔었던 거야? 요새 크리먼들이 가이드를 노리는 일이 잦아진 거 알고 있었잖아.”

제가 크리먼이에요….

나는 한결이 추궁할수록 양심이 무척 찔렸다. 눈을 회피하며 입을 꾹 다물자 그는 고개를 기울며 더 자세히 내 표정을 살폈다.

“말 안 할 거야?”

그는 내가 가이드로 발현되기 전부터 알던 사이었다. 센터 연구원인 부모님 때문에 어릴 땐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때마다 한결이 놀아주곤 했다.

그래서 나에게 한결은 언제나 친근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는 내 상사이다. 알파 팀 캡틴은 팀을 관리하고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자칫 편애로 보일 법한 행동은 독이 될 수 있었다. 그건 내게도 한결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있을 때는 친하단 사실을 숨기고 지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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