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31)

쾅!

“키에엑!”

크리처의 사나운 포효가 웅웅 울렸다. 유건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미친 듯이 달렸다. 이윽고 흐릿한 인영이 드러났다. 검은 형체가 바닥에 앉아 꿀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피를 정신없이 흡입하고 있었다. 유건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구사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겨를도 없이 허리와 어깨를 크게 움직여 주먹을 내질렀다.

“……!”

그때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스쳤다. 흠뻑 젖은 풀 향과도 닮은 익숙한 냄새. 그는 본능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상대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예리한 눈동자가 유건을 강렬하게 직시했다.

“네가 왜….”

유건의 주먹 바로 앞에 크리처가 아닌 인간이 있었다. 아니, 인간이라기엔 어폐가 있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백….”

비 냄새인 줄로만 알았던 향에서 비릿한 냄새가 뒤섞였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 어둠에 집어삼켜진 듯한 검은자위와 맹수를 연상하게 하는 노란 눈동자.

시간의 흐름이 테이프가 늘어지듯 느리게 느껴졌다. 이마에 비치는 검푸른 핏줄이 창백한 피부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유건…?”

그건 반 인간 반 크리처의 특징이었다. 제 눈앞에 있는 건… 크리먼이었다.

“너….”

벽을 부수고 달아났던 크리처는 뱃가죽이 파헤쳐진 채 쓰러져 있었다. 구사월이 그 앞에서 앉아 있었고, 손과 입가에 크리처의 혈액이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

우르르, 콰쾅! 쿠궁.

하늘이 쪼개질 듯 커다란 천둥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밤새 비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창문 너머로 거센 바람에 나무가 휘청휘청 흔들렸다. 그래도 고집스레 뿌리를 내리고 있더니, 이윽고 연필심이 부러지듯 뚝 하고 쓰러져 버렸다.

“조금만 더 버티지.”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몸을 뒤척거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감싸 올렸다.

귀가 먹먹하다. 숨이 가쁘게 조여 온다. 이렇게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이 비바람이 들이닥칠 때면, 그날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이빨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가는 크리처의 독.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세포. 모든 걸 받아들이자 몸이 나른해지며 찾아오는 갈증. 어느 것 하나 선명하지 않은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더라. 익숙한 비명이 들렸던 것 같은데.

나의 부모님은 센터 연구원이었다. B 지역 연구소에서 크리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항생제를 발명 중이었다. 그래서 내가 크리처에게 목덜미를 물어 뜯겼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중인 항생제를 투여해 크리처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생제는 완성품이 아니었고, 나는 그렇게 크리처도 아닌 인간도 아닌 크리먼이 됐다. 내게 일어난 일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투여 도중 딸의 손에 희생된 부모님이 들으면 하늘에서 천불이 날 소리였다.

그 당시 나는 항생제가 몸에 퍼질 동안 이성을 잃었다. 오로지 강렬한 살생의 욕구가 나를 지배했다.

온몸에 열이 들끓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맥박 소리와 피 냄새에 침이 저절로 고였다. 눈앞의 것을 해치우지 않으면, 이 열기에 내가 집어삼켜질 것 같았다.

이성이 돌아왔을 땐, 주변에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만 이리저리 흩어져 있을 뿐.

나는 그 후로 수많은 자해와 자살 시도를 했다. 내 부모의 피를 마셨을지도 모를 내 소화기관이, 그 영양분으로 살을 불린 세포가,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역겨워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목을 졸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심장이 터져도 살아남았다.

팔이 잘리면 곧바로 재생됐고 강에 몸을 던지면 정신을 차렸을 땐 육지 어딘가에 남겨져 있었다. 함부로 죽을 수도 없는 몸이 된 것이다.

크리먼이 됐으니 크리처처럼 몸 어디엔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핵이 있을 텐데. 나는 수많은 자해 시도 속에서도 크리먼으로 산 5년 동안 아직 핵을 찾지 못했다.

죽지 못해 사는 것. 그게 현재 내 상황이었다.

그런데 백유건을 만나게 됐다.

백유건. 얼마 전 알파 팀에 합류한 신입 에스퍼이다. 스물세 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각성했지만, S급 염동계 능력을 갖추고 있어 존재의 의미가 큰 에스퍼였다.

센터는 그를 환영했다. 아니, 센터뿐 아니라 뉴스 특보까지 뜰 정도로 온 국민이 열광했다. A급이 한 구역을 지킬 수 있다면, S급은 한 지역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들 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한결이 자기 동생이 알파 팀에 들어온다고 언질을 줘서 미리 알고 있었다.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편에 속하는 한결과 달리, 유건은 밝고 명랑한 이미지였다.

센터 이곳저곳을 신기하단 눈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놀이공원에 놀러 온 아이 같았다. 솔직히 더 까놓고 말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 같았다.

하지만 한결이 아직 어린 녀석이지만 잘해 주라고 말하기도 했고, 신입이니 웬만하면 잘 지내고 싶었다. 나도 분명 처음엔 좋게 가고 싶었다. 진심이다.

“네가 구사월?”

그런데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였다. 그는 작은 얼굴에 깔끔하고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옅은 색소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쭉 찢어진 눈꼬리가 곱게 휘어졌다. 웃는 것이 무척 예뻤다.

나이에 맞게 적당히 어리고 잘생겨 호감이 갔지만, 그런 외모가 아까울 정도로 그의 건방진 언행은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나랑 페어 할 거지?”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다짜고짜 페어를 제안하지를 않나.

“너 예쁘다.”

뜬금없는 칭찬은 도무지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가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다.

유건은 내가 말이 없자 어색하게 웃더니, 악수하자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일반인 적인 행동 양식이었다. 에스퍼들은 보통 저도 모르게 파장이 묻어날 수도 있기에 대부분 첫 만남에도 악수를 요청하지 않았다.

만약 첫인상이 좋지 않다면 파장에 기분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유건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첫인상은 무척 안 좋았지만 한결을 생각해서 내 파장을 숨기고 손을 내밀려고 했었다. 그런데.

툭. 투둑.

“어? 왜 이러지?”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유건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핏방울은 이내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콸콸 쏟아졌다.

“아, 씹.”

“……?”

그 순간 욕이 튀어나온 것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건의 혈 향이 짙어지자 위가 거세게 요동쳤다. 숨이 가빠짐과 동시에 꼭꼭 숨겨두었던 야만적인 욕망이 솟구쳤다.

물어뜯고 싶다. 저 살을 가르고 새빨간 피로 내 몸을 적시고 싶다. 빨아들이는 힘에 턱 근육이 뻐근해지도록 부위 하나하나 잇자국을 내며 흡입하고 싶다.

더 안쪽 피는 어떨까. 분명 더욱 달콤하겠지.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흥분에 현기증이 일어 몸이 휘청거리자, 유건이 다급한 손길로 팔을 잡으며 부축했다.

“왜, 왜 그래? 괜찮아?”

그 순간 유건과 닿은 세포 하나하나가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나는 곧바로 그의 손길을 쳐 냈다.

“만지지 마.”

일단 입을 닫고 숨을 참았다. 유건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유건을 내버려 두고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렇지만 그 잠깐 사이에 그의 향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됐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그 후로 그를 경계하며 관찰했다. 그 향은 착각이 아니었는지, 녀석에게선 갈증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나는 원래 일주일에 한 번 피를 섭취하면 충동을 억제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맥없이 정신이 무너지는 건 백유건, 저거 하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거리를 더 두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떻게 지켜온 일상인데,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를 안하무인 꼬맹이 때문에 내 정체를 들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남의 속도 모르고, 쳐 내도 쳐 내도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구사월!”

“반말하지 마.”

“구사월, 나 할 말 있는데.”

“난 할 말 없어.”

“매칭률 확인해 봤어? 우리는 운명이야.”

“운명이 다 얼어 죽었네.”

“내가 네 손에 크리처 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

그럼 난 못 먹어서 죽는데 미친놈아.

“라면 먹으러 갈래? 고양이 보러 갈래? 나비는? 금붕어는?”

“저리 안 꺼질래?”

“구사월!”

“구사월!”

“구사…”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데! 이유라도 좀 알자!”

그러다 참다 참다 내가 폭발했을 때.

“몰라서 물어?”

“당연하지! 네가 말을…!”

“너한테 냄새나.”

“뭐라고…?”

“너한테서 냄새난다고.”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니, 유건에게 한 말은 거의 다 진심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진심이었다. 그를 밀어내는 근본적인 이유. 그에게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뻥뻥 차 버려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내게 달라붙던 유건이었는데, ‘냄새난다’는 말에는 완전히 넋 나간 얼굴을 했다. 처음 내가 욕을 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나는 전부를 말하진 않았지만, 왠지 후련함을 느끼며 뒤돌아섰다. 그날 밤 자기 전에 축 처진 그의 모습이 생각나 살짝 불쌍함을 느낄 뻔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들러붙지 않을 거란 생각에 오랜만에 아주 만족스러운 양질의 숙면을 취했다.

만약 그 미저리 같은 놈이 또 다가온다면, 더 심한 말을 해 줄 생각이었다.

네 입 냄새에 질식할 것 같다는 둥, 너처럼 애 같은 성격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손가락 10개 있는 에스퍼는 나와 페어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려나. 나는 언젠가부터 그를 거절할 대사를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뭐야. 왜 먹다가 혼자 비실비실 웃어? 좋은 일 있어?”

“아니. 그냥 좀 웃겨서.”

“뭐가 그렇게 웃긴대. 나도 알려 줘.”

“됐어. 얼른 먹고 가자. 나 오늘 좀 피곤하네.”

그날은 일주일에 한 번, 내가 피를 섭취하러 가는 날이었다. 살아 있는 생물의 피를 마시는 일. 흡혈.

크리먼들끼리는 흡혈을 ‘식사’를 하러 간다고 은어로 사용했다. 그래서 자연히 일반적인 식사는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미세한 차이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크리먼은 서로가 크리먼인지 아닌지 눈치채기도 했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에밀리를 만났다.

크리먼은 인간의 피를 더 좋아하지만 크리처의 피를 마셔도 충동을 억제할 순 있어, 그녀의 추천으로 암암리에 크리처의 피를 판매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이 식당엔 크리먼도 있을 테지만, 독특한 맛을 즐기는 인간인 미식가들도 찾아왔다. 그들은 색소를 탄 크리처의 피를 와인처럼 마셨다. 평범한 사람들이 봐도 이상하게 느끼지 못할만큼 감쪽같았다.

다만 합법적인 건 아니라서 식당 자체가 미로같이 복잡한 구조인데다가, 전부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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