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31)

유건이 알파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사월 또한 한결을 다른 팀원과는 다르게 대했다. 그들에겐 항상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한결 앞에선 가끔 웃기도 했다.

머리카락을 넘겨 주거나, 어깨에 손을 얹는 등 스스럼없이 가벼운 스킨십을 하기도 했지. 처음엔 진짜 놀랐었는데.

유건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결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뭐야. 비밀이야? 혹시 둘이 이미 페어인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유건은 한 번 더 한결을 떠봤다. 한결은 그제야 애매한 미소를 달며 입을 열었다.

“사월이는 아무하고도 페어 안 해.”

“왜?”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한결이 가볍게 대꾸했다.

‘진짜 모르는 건지, 알려 주고 싶지 않은 건지.’

유건은 자기 형이지만, 한결의 속을 읽어 내기 어려웠다.

“구사월 얘기 좀 더 해 봐.”

“뭘?”

“형 구사월이랑 친하잖아.”

“글쎄.”

한결은 유건의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봉을 쥐여 주는 게 훈련소에 왔으면 놀지 말고 훈련이나 하라는 뉘앙스였다.

“형 근데 왜 말 돌려? 나는 구사월이랑 페어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는데 걘 아무하고도 안 한다니. 형도 구사월한테 차였어?”

“모르겠네.”

“아, 좀!”

유건은 한결에게 달려들었다. 한결은 가볍게 피하며 유건을 놀리듯 빙글 웃었다.

“옛날엔 친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정말 잘 모르겠어. 사월이가 그때 사고로 뭔가 변했거든.”

“사고?”

“B 지역 방출 게이트. 사월이가 그때 현장에 있었어.”

방출 게이트는 5년 전 B 지역에 처음으로 나타난 유형의 게이트였다. 일정한 시간 내에 보스 크리처를 죽이면 소멸되는 일반적인 게이트와 달리, 방출 게이트는 생성 직후부터 크리처 웨이브가 생성된다.

크리처 웨이브란 게이트 밖으로 크리처가 쏟아지는 걸 말한다. 전투력이 일반인과 다름없는 가이드가 현장에 있었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그 방출 게이트는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크리처에게 물린 사람들은 독에 감염되어 점점 인간 형태를 잃고 크리처화가 진행됐다.

완전히 크리처가 돼 버리면 이성을 잃고 사람들을 공격했다. 에스퍼들은 그들이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난 생명력과 날카로운 이빨을 무기로 또 다른 크리처를 낳게 될 테니까.

“건물이 붕괴돼서 지하에 갇혔었어. 그래서 크리처한테 공격은 안 받은 것 같고.”

“그래도 다행이네.”

“다행이지. 외부엔 안 알려진 내용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

“어….”

하지만 크리처에게 물린다고 전부 크리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크리처에게 물리면 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크리처화가 진행되지만, 독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반 크리처, 반 인간의 모습을 한 그들은 이성을 잃지 않은 크리처로 ‘크리먼’이라고 불렀다.

B 지역 방출 게이트 사건은 일반인들이 대거 크리먼이 된 사건이었다. 크리먼은 평소엔 사람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크리처의 주식인 살아 있는 생물의 피를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다시 크리처화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센터는 크리먼을 크리처와 다름없이 위험 생물로 분류하며 국민 모두에게 총기 소지를 허용했다. 그리고 발견 즉시 사살령을 공표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딘가에서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오랫동안 시체랑 같은 공간에 있었거든. 그때의 충격으로 사람 자체를 멀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건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런 거라면 제가 매일 가이딩을 해 달라고 따라다니고, 페어를 하자고 조르는 게 정말 자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불편해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너한테서 냄새난다고.”

자신한테 시체 썩은 내라도 난다는 건가?

유건은 자기 몸에 대고 킁킁하며 냄새를 맡았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에 전보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하…. 모르겠다. 그냥 폭주할 때까지 기다려 봐? 그럼 나한테도 가이딩해 주려나.”

“사월이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은데.”

“그렇겠지?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장난스레 대꾸했지만, 유건은 한결의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

유건은 사월에게 사과할 생각이었다. 사고에 대한 이야길 듣고 나니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 같고, 한결 말대로 사월 입장에서 유건이 다짜고짜 페어를 하자고 들이댄 것이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호감을 쌓을 생각이었다. 일단 한결에게 사월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었다.

“센터 건너편 수제 초콜릿 가게에서 포장해 가는 거 몇 번 본 것 같은데.”

유건은 한결이 말한 가게에 한달음에 달려가 초콜릿을 3세트나 포장했다. 그걸 들고 사월의 퇴근 시간에 맞춰 본관 앞에 서 있었다.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초콜릿만 주고 옆에 세워 둔 오토바이를 타고 쿨하게 퇴장할 생각이었다.

“갈 데까지 가는구나. 살면서 이런 거 사다 바친 적 없었는데.”

사월을 기다리는 동안 살짝 현타가 왔지만, 금세 상념을 지워냈다. 이따위 것이 뭐 대수인가. A지부 여왕님 꼬시려면 뭔들 못할까.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안 나와?”

그때 본관에서 사월이 아닌 알파 팀 A급 가이드 지수가 나왔다. 그는 유건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집 안 가고 뭐 하냐?”

“왜 너만 나와? 구사월은?”

사월도 같은 알파 팀이기 때문에 가이딩을 마치고 나올 시간이었다. 지수에 뒤이어 다른 알파 팀 가이드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데 사월만이 보이지 않았다.

“너 구사월 기다려?”

“어.”

“사월이 갔는데?”

“뭐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유건은 한 시간 동안 본관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건이 당황해하자 지수가 사실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오늘 볼일 있다고 일찍 나갔어.”

“언제?”

“한 시간 반 정도 됐나?”

“젠장. 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오늘 사월이 조기 퇴근을 해 버렸다. 유건은 머리를 감싸다가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이거 뭐야? 어? 이거 요 앞에 파는 초콜릿 아니야? 나 이거 좋아하는데.”

“만지지 마.”

“나 하나만 줘라. 어차피 많잖아.”

“줄 사람 있어.”

“혹시 사월이? 이미 갔다니까?”

유건은 지수의 말을 무시한 채 센터 전용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위치 추적 기능을 열자 홀로그램으로 지도가 펼쳐졌다.

[추적할 아이디를 말씀하십시오.]

“AGS 구사월.”

“미친.”

옆에서 지켜보던 지수는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건 말건 유건은 들고 있던 초콜릿을 의자 뒤편에 단단히 고정했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기다렸다.

이윽고 홀로그램 지도에 빨간 점이 표시되며 구사월의 위치가 떴다.

‘그래. 초콜릿만 주고 오는 거야. 초콜릿만 주고 쿨하게.’

유건은 주문을 외듯 스스로와 약속했다. 하지만 이성을 배반한 몸은 눈에 불을 켜고 사월의 위치로 향했다. 아드레날린이 순식간에 폭주하는 기분이었다.

***

지도가 멈춘 곳은 A17 구역의 한 재즈바. 센터와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유건은 막상 사월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 앞을 초조하게 맴돌고 있었다.

‘볼일 있다더니 아는 사람이랑 약속이라도 있는 건가? 갑자기 들이닥치면 싫어할 것 같은데.’

홧김에 찾아왔지만, 이성이 돌아오자 현실적인 고민이 그를 가로막았다. 업무용 스마트 워치로 그녀의 위치 추적까지 해서 쫓아온 걸 안다면, 사월이 싫어할 게 분명했다.

결국, 들어가지 않고 사월이 나오면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척을 할 생각이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너무 많이 샀으니 하나 먹으라며 건네주면 되겠지.

그렇게 또 기다림의 시간이 돌아왔다. 유건이 입구 한쪽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가로등이 깜빡였다.

얼마 안 가 찌직, 소리를 내며 아예 전구가 나가 버렸다.

애초에 가로등도 너무 띄엄띄엄 있어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었는데, 주위가 한층 더 깜깜해졌다. 비가 올 모양인지, 안개까지 끼기 시작했다.

‘인적도 드물고 좀 음침하네.’

가끔 한 대씩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안개 속에서 갑자기 귀신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징그러운 건 잘 보지만 귀신 같은 심령 현상은 싫어하는 유건의 팔뚝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풀숲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웨옹!”

“아! 깜짝이야!”

새끼 고양이었다. 새끼 고양이는 유건을 놀라게 하곤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저 조그만 게….”

유건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가 더욱더 짙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월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재즈바라고 쓰여 있는데 노랫소리도 안 들리고. 혹시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괜한 호기심에 입구 쪽을 내려다봤다. 가게 문은 깊은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그냥 내일 다시 올까….”

쾅!

유건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민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큰 굉음이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어 사방을 부산스럽게 살폈다.

쿵, 쿠르르르.

“꺄아악!”

연이어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귀를 찌르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위치는 멀지 않았다.

유건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흐악! 사, 사람 살려!”

“무슨 일입니까?”

“저, 저 그게…!”

유건은 제 쪽으로 달려오는 여자를 붙잡고 물었다. 여자는 겁에 질려 말조차 제대로 잇기 힘들어 보였다.

유건은 물어볼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확인하는 게 낫겠단 판단이 들었다. 다급하게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여자가 유건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곤 힘겹게 한마디씩 단어를 내뱉었다.

“그, 그그. 크리처가…!”

“네? 크리처요?”

“네, 네!”

유건은 심각성을 깨닫고 곧바로 뛰어갔다.

‘대체 크리처가 여기 왜 있지? 게이트 발생 경보도 울리지 않았는데!’

스마트 워치로 알파 팀에 도움 요청을 보내며 여자가 뛰쳐나온 골목에 들어갔다. 골목길 안은 벽이 허물어져 먼지가 자욱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콜록, 콜록.”

염력으로 먼지를 걷어 내자 쓰러진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몸 일부가 뜯긴 채 내장이 튀어나와 있었다.

끔찍한 광경에 절로 눈살을 찌푸려졌다. 그 옆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크리처가 쿵쿵거리며 계속해서 벽을 허물고 도주하고 있었다.

쿵, 쿵, 쾅! 쿵, 쿵!

유건은 크리처를 쫓았다. 자욱한 먼지와 안개 속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런데 불시에 기묘한 불안감이 찾아왔다.

‘이 방향은 분명….’

크리처가 향하는 곳은 유건이 조금 전까지 사월을 기다리던 재즈바가 있는 위치였다.

“젠장!”

“건물이 붕괴돼서 지하에 갇혔었어. 그래서 크리처한테 공격은 안 받은 것 같고.”

유건은 오전에 한결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다급하게 스마트 워치로 사월의 위치를 확인했다. 여전히 재즈바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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