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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83화 (182/188)

183화

*  * *

2032년 6월 11일.

차원의 균열을 열어 사람들을 과거로 돌려보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윤하와 재희, 그리고 레이, 혼다, 니시노는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바로 그 장소, 그리고 바로 그 날짜.

윤하는 과연 유진이가 돌아올까라는 불안감을 계속해서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녀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재희는 조용히 떨고 있는 윤하를 품에 안고 뭐라도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사람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새벽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

어두운 2층집의 마당의 허공에 빛이 날아들었고, 균열이 일어나더니 조금씩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왔다.

윤하는 참아왔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흘리기 시작했고, 모두가 긴장한 채 나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 1분 뒤, 열린 균열에서 한 사람이 튕겨나왔고, 균열은 그녀를 뱉어내기가 무섭게 다시 사그라들었다.

"유진아!!"

윤하가 제일 먼저 달려가서 바닥에 쓰러진 그녀에게 달려갔고, 나머지 사람들도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단 한 사람, 레이만이 무사히 돌아온 소녀의 모습을 보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윤하가 넘어온 소녀의 몸을 잡고 살살 흔들었고, 그녀는 간신히 정신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서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돌아왔고, 자신의 눈앞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보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곧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말았다.

'이런... 어째서... 어째서 내가 이곳에...'

벌떡 일어났던 그녀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과거에 두고온 그녀와 판박이인 소녀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세빈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 그녀가 말했던 마지막 한 마디가 계속해서 세빈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탁해요 언니. 미래에 가서 나 대신 잘 지내줘요.」

어째서, 어째서 그녀는 자신이 균열로 뛰어들지 않고 자신을 미래로 보냈단 말인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유진의 행동, 그리고 뒤늦게 깨어나 유진을 미래로 돌려보내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한탄으로, 세빈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유진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런 그녀의 옆에서 울고 있는 윤하를 보며 세빈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과연 윤하에게 이 사실을 설명해주면... 그녀는 믿을 수 있을까? 모든 걸 부정하면서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 뻔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을 정도로 밀려오는 슬픔과, 자신을 보며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윤하 사이에서 세빈은 그 짧은 시간동안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유진이 자신을 보낸 이유, 그건 단 한사람을 위해서라는것을.

자신을 껴안고 마치 세상을 다 잃어버릴 뻔 했다는 느낌으로 울고 있는 그녀의 엄마가 더이상 슬퍼하는 걸 보고싶어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는 걸.

젠장... 젠장할......

무기력한 자신을 속으로 수백번도 넘게 욕하면서, 세빈은 윤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유진이 그토록 바랬던 것처럼, 세빈은 자신을 다잡기 시작했다.

"미안... 미안해 엄마..."

그렇게 얼싸안고 두 사람은 무려 30분이 넘게 울며 그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먼저 진정한 나머지 사람들이 둘을 데리고 가고 나서야 균열이 열렸던 집의 마당은 조용해졌다.

새벽 한 시 반.

그날따라 유달리 초승달이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고, 주변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바로 옆이 차도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한 마당에, 누군가가 조용히 찾아왔다.

"왔나보네."

어둠 속에서 정체를 드러낸 사람은 다름아닌 재희의 어머니인 민아였다. 올해 59살의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와 굉장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세월에 모습은 늙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겐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다행히요... 이제서야 내 할일이 모두 끝났네요."

그리고 그녀를 맞이한 건 다름아닌 레이였다.

아까 사람들이 떠날 때 함께 떠난줄만 알았던 그녀는 조용히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나는... 다행히도 네 말을 들었나보구나."

민아는 미소지으며 레이에게 말했다. 그녀의 미소를 본 레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마당에 있던 벤치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러게요. 그 당시만 해도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이게 다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나 싶어요."

레이는 조용해진 집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지쳤다는 듯 고개를 하늘로 들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응시했다.

"정말 운명이란건. 알 수 없는것 같아요 언니."

*  * *

2000년 6월 11일 새벽 1시경.

"헉.. 헉..."

장 티엔은 정신없이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흑향을 병원에 데려다놓고 다시 심연의 입구로 돌아오던 그는, 오던길에 저주의 습격을 받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가 간신히 깨어났던 모양이다.

저주는 그가 가지고 있던 염원력을 다 집어삼켜버렸는지, 정신을 차린 그에게는 더이상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힘들게 심연 안으로 들어온 장 티엔은, 광장 가운데에 뚫려있는 커다란 구멍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다.

거대한 구멍은 심연의 천정까지 뚫고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고, 구멍 아래쪽은 마치 거대한 폭발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큰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구멍 아래로 내려가기엔 너무나 높이가 높았기에, 장 티엔은 결국 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30분쯤 후에 그는 비밀 방으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해 사단이 났던 저주 진이 있었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니 구덩이의 가장자리에는 귀술이 정좌한 채로 앉아 있었고, 구덩이의 아래쪽에는 지윤이 무릎을 꿇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괜찮습니까?"

티엔은 앉아 있는 귀술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는 굉장히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지만 일단 움직이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는듯 했다.

그 역시 모든 염원력을 저주에게 빼앗겨 무능력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티엔은 그래도 살아남은 게 천만다행이라며 그에게 말했다.

귀술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그는 아래를 봤고, 그곳에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는 지윤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네가 흑귀구나."

흑향이 당해 지금 생명이 위독한 것이 떠올라 티엔은 곧장 달려가서 지윤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두대 세대, 네대를 연거푸 때렸지만 쉽게 분은 풀리지 않았고, 지윤은 그의 공격에 전혀 반응하지 않은 채 죽어버린 듯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지윤은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자, 아무리 패도 소용 없을 걸세. 벌써 몇시간째 그러고 있으니까."

귀술이 분이 풀리지 않아 다시끔 그녀를 걷어차려고 하는 티엔을 말렸다. 어짜피 다 끝난 일이고, 그는 저주의 여파로 지윤에게 더이상 예언력이 남지 않았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강제로 지윤을 광백으로 끌고 가면서, 귀술은 심연 앞의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유진과 굉장히 격렬한 전투를 벌인 듯, 땅은 여기저기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세뇌병사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음을 맞이한 듯 보였다.

유진이 그들을 직접 죽였을 리는 거의 없어보였지만, 아마도 저주가 할퀴고 지나가면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것이 분명했다.

'광백의 사람들은... 무사한걸까.'

굉장히 무시무시한 그 광경에 귀술은 점점 걱정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장 티엔이 오면서 본 것을 말해준 덕분에 그는 그나마 좀 안심할 수 있었다.

"걱정 마십쇼. 다행히도 저주는 일찍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아마 대부분 사람이 살아 있을 거에요. 내게 저주가 왔었긴 했지만 그 다음 민가쪽으로 또다시 퍼지는 건 보지 못했으니까요."

한참을 산 속을 조용히 걷는데, 티엔이 귀술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꼬마와... 스승님은 어찌 되신겁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 귀술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지 못한 그로써는 오로지 먼저 일어났던 지윤의 기억에 의지해서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지윤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눈을 떠보니 저주가 폭발하며 만들어낸 엄청난 구덩이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있는 지윤이 보였을 뿐, 귀술은 세빈과 유진 중 어느 쪽도 볼 순 없었으니까.

"이 여자가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상태로 뭘 얘기하겠어요?"

귀술은 혀를 찼다.

지윤이 과연 언제까지 저렇게 죽은 사람처럼 지낼 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그녀를 정신차리게 만들고 싶긴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지윤의 모습은, 죄를 지은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아를 잃어버린 상황이라는 것을 귀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분명 13년 전 세빈이 진위를 죽였을 때도 이런 상태로 지내고 있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침내 한참을 걸어 광백의 입구에 도착한 그들은,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에 긴장했다.

행여나 심연처럼 초토화된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그들을 휘감았고, 불안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지윤이 입을 연 건 바로 그 때였다.

============================ 작품 후기 ============================

결국 미래론 세빈이 넘어가고 유진이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습니다만... 과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류 보내세요~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네 미래로는 상황이 좋지 않아 세빈이 넘어갔네요. 둘이 똑같이 생겼기에 유진이 생각해낸 방법이었겠죠.

-은하수보며님 // 유진은 아마 어렴풋이 이제 사람들의 힘이 더이상 없음을 느끼고 이렇게 한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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