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
[딱]
"아얏!"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천정의 구멍으로부터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동굴 안이 훤히 밝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돌맹이에 머리를 맞은 유진은 맞은 부분을 비비며 신음했다.
이윽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댄 그녀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넓은 저주진이 있었던 방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진이 있던 자리는 움푹 패인 채 빈 공간만이 남았다.
'저주는... 사라진건가...?'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어서 저세상에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고요함에 유진은 볼을 세게 꼬집었다.
팔이 엄청나게 욱신거렸고, 그녀가 꼬집은 볼 역시 엄청나게 아팠다.
"아욱, 젠장. 꿈은 아니잖아..."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정신이 몽롱했다. 그녀가 핵에 자신의 힘을 쏟아넣은 즉시 저주의 핵이 폭발하면서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너무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기도 했고, 분명 아까전까지 자신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유진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뒤로한 채 고통에 울부짖는 팔로 천천히 가운데의 구덩이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커다란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아래쪽이 보였고, 그녀는 그 곳에 있는 두 사람과 반대쪽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있는 귀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젠장, 멀어.'
워낙 거리가 멀어서 지금 상태로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거리에 세빈과 지윤이 쓰러져있었고, 그녀는 그 두사람을 발견함과 동시에 엄청난 것을 발견했다.
'저...저건!!'
그건 분명 그녀가 과거로 넘어올때 세빈과 함께 뛰어들었던 그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저주와 유나의 힘이 만나 폭발하면서 시공의 균열을 만들어냈던 것인지 균열은 꽤나 온전한 모습으로 구덩이의 가장 아래쪽 한 가운데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크기는 시시각각 줄고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유진은 순간적으로 저 곳을 통과해야만 미래로 갈 수 있음을 깨달았지만 줄어들고 있는 상태로 봐서 없어지기 전 자신이 도착하는 건 절대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제길. 돌아가야되는데. 안그러면 엄마한테 등짝 제대로 맞을 텐데..."
어떻게든 돌아오겠다는 걸 전제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미래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과거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찔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균열은 폭발과 동시에 생겼었고, 그 크기는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에 너무나 많이 줄어있었다.
유진은 긴박한 상황이라는 걸 머리에 각인시키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가 차고 있던 메카수트는 이미 저주를 폭발시킬 때 모두 파괴된 상태, 절대로 그녀가 균열에 자력으로 접근할 순 없었다.
그녀가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균열의 크기는 시시각각 줄어들어가고 있었고, 머릿속에 또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아니 잠깐.. 과거에서 염원사들을 모아서 다시한 번 균열을 열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그런 확실한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웬지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상하게도... 절대로 균열은 다시 강제로 열 수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
유진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굉장한 두려움으로 인해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야해...!'
그리고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하던 그녀의 눈에 세빈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가 차고 있는 연계기동 수트는 아직 멀쩡했다.
그리고... 자신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그녀의 외모가 유진의 머릿속에 불꽃을 튀기며 방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절대로 본인들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외모. 이거라면... 자신이 굳이 저기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유진은 이를 악물고 조금더 고민했다.
과연 이것이 옳은 방법일지, 자신이 못 넘어간다고 세빈을 미래로 돌려보내는게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균열을 두번 다시 열수 없다는 자신의 예감이 맞는 것인지...
"빌어먹을... 내 감이 맞길 바라는 수밖에."
유진은 결국 결심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 끌어내서 균열 가운데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언니-!!!!!"
균열은 어느덧 이제 사람 두 명이 수직으로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외침에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지윤이었다.
지윤은 유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서도 한동안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봐요!!!!"
그리고 다시한 번 들려오는 유진의 목소리에 지윤은 유진이 있는 쪽을 보고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 살아있는건가?'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 허벅지에 달고 있던 단검을 뽑아 손바닥을 찔렀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핏방울이 손바닥에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윤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통한스러워하면서도 눈에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봐요오오오!!!"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은 그녀를 향해 유진이 다시 소리쳤고, 지윤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빨리, 당장!!! 세빈언니를 찔러요!!!"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듣고 지윤은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너 미쳤어!!"
지금 자신이 살아있는 것 자체도 괴로워 죽겠는데 유진은 이상한 요구를 하고 있으니, 지윤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을 리가 없었다.
"젠장... 죽었어야 했는데... 죽어야만 했는데...!"
그녀는 결국 유진의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죽이려고 했고, 이 세상을 통해 복수를 완성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죽었고 자신은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저주에 희생되는 것 조차 상백이 그녀를 막아버림으로써 실패했다.
죽어야 하는데 살아남았다는건, 그녀에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인간성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 자신이, 사실은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지금까지 그녀가 믿어왔던 모든것이 무너지며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유진은 작아지고 있는 균열과 그 근처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오열하고 있는 지윤을 보며 탄식했다. 이렇게 소리를 질렀는데도 세빈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고, 방법은 지윤이 세빈을 찌르는 것 뿐이었는데 그 방법마저 무산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안돼,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야! 이 개같은! 썅! 정신 안 차려!!!"
답답한 마음에 참고 있던 욕이 터져나왔고, 그제서야 지윤은 그 욕들을 듣고 눈물 범벅이 된 채 유진을 돌아봤다.
"빨리, 어서!!! 세빈언니를 찌르라고!!! 당장 차원의 균열을 바라보고 세빈언니를 찌르란말야!!!!"
하지만 지윤은 움직이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입으로는 신음하면서... 멍하니 유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쓰발 진짜... 이제야 미안한가보지? 네가 저질럿던 잘못들이 이제야 네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냐?"
빌어먹을, 저 멍청한 여자. 복수가 삶의 의미였고 자신의 존재 이유였으니 지금 저 상태인 것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유진은 완전히 좌절감에 사로잡힌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꼴보기 싫었다.
"세빈언니에게 그동안 했던 너의 행동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낀다면!!! 빨리 내 말 들어!!! 당장!!!!"
균열은 이제 뚱뚱한 사람 하나가 지나갈 정도로 작아져있었고, 마침내 마지막 유진의 말이 지윤을 움직였는지 그녀가 들고있던 단검을 쥐고 천천히 세빈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래, 균열을 똑바로 바라보고!! 찔러!!!!!"
눈물범벅인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멀리서 자신에게 명령하는 유진을 잠깐 바라보고 나서, 지윤은 칼을 높이 들어올려 세빈을 향해 내리꽂았다.
[방어회피 모드 자동기동.]
그와 동시에 세빈이 입고 있던 연계기동 수트가 그녀를 벌떡 일으켜세웠고, 유진은 일어선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됐다.'
땅과 부딪친 자신의 단검을 보며 지윤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는 곧 세빈이 기절한 채로 기계에 의해 일으켜져 균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세빈도 갑작스런 몸의 움직임 때문에 정신을 차렸고, 그녀는 눈앞의 단검을 들고 있는 지윤을 발견함과 동시에 유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시 한번 더 찔러!!! 어서!!!"
세빈이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봄과 동시에 지윤이 빠르게 세빈의 복부를 향해 단검을 내질렀고, 그와 동시에 수트는 다시한번 강제로 세빈의 몸을 뒤로 움직이며 피하게 했다.
마침내 움직인 그녀의 몸은 결국 균열에 닿게 되었고, 그녀는 서서히 균열 쪽으로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잠깐, 이게 무슨-!'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세빈이 유진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외치려 했지만, 그녀는 간신히 유진이 말하는 입모양을 보는게 전부였다.
[부탁해요 - ]
유진과 지훈이가 미래에서 만들어뒀던 새로운 프로토콜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유진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균열로 빨려들어가는 세빈을 보며 유진은 생각했다.
'젠장, 역시 지훈이 뿐이라니까...'
마침내 균열 속으로 세빈이 사라지고 나서, 균열은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춰버렸다.
지윤은 알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고, 유진은 들고 있던 고개를 내려놓고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이내 강하게 잠이 몰려왔고, 그녀는 잠시간 다시 꿀같은 단잠을 자게 됐다.
============================ 작품 후기 ============================
날이 조금 선선해진 기분이 드네요~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추코 감사합니다 :>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3부... 3부가... 없는데요 ㅠㅠ. 2부가 마지막입니다 ㅠㅠ-은하수보며님 // 3부.. 3부는 아니고 엑스트라 스토리가 남아있긴 한데 아직 쓰진 않았어요 (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