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그 순간 그 예지몽을 세빈도 보았던 것인지, 세빈과 유진은 곧바로 서로를 마주봤다.
"언니... 나 방금 예지몽을..."
세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의 예언력은 없었던 게 아니라, 단지 비활성화되어 있었던것 뿐이라는 건가? 설마 방금전부터 요동치기 시작한 유진이 몸 속의 그 힘이 유진이의 예언력을...?'
그리고 유진이가 가지고 있는 그 힘이, 바로 그녀가 얼마 전까지 보고 있던 예정된 것 같은 확실한 미래에서 보이던 금색의 환한 빛이라는 사실을.
"지금 유진이가 가지고 있는 힘도 보면 알다시피 저주 때문에 조금씩 깎여 사라지고 있다. 광백에서는 유나가 막고 있겠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혼자 막기에는 역부족일 게 분명해."
다행히 네명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오고있는 저주의 여파가 적었던 것이고,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굉장한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유진의 힘을 어떻게든 이용한다면, 저주를 멈출 수 있다.
방금 전 유진과 세빈이 함께 본 예지몽대로만 된다면.
"귀술아, 일단 유진이 손을 잡고 유진이 팔좀 치료하거라..!"
세빈은 아까 전 광백에서 유진의 어깨를 고쳤던 것처럼, 귀술에게 남은 염원력을 이용해서 유진의 다친 팔을 고치라고 말했다. 유진과 귀술의 염원력이 모두 소모되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분명 귀술에게 남은 염원력의 감소로 인해 저주의 여파 역시 줄어들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 느낌은 여러 번 격어도 굉장히 짜릿하군요."
귀술의 염원력을 통해 유진의 팔이 거의 완전히 회복되었고, 귀술은 자신에게서 더이상 염원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음을 느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저주의 여파가 줄어들었고, 세빈은 강한 확신을 가지고 유진에게 말했다.
"일단 저 저주의 핵은 지금 저 커다란 저주의 본체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상백의 몸이 그 근원지일 테고... 하지만 현재 그 가운데쪽까지 파고드는 것도 쉽지 않을거야."
다시끔 보이기 시작하는 미래,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유진의 모습.
그리고 과거로 돌아왔을 때 들었던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
'유진이가 과거로 넘어온 것은... 역시 운명적인 것이었던 것인가...'
유진이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배터리팩을 연계기동 수트에 꼽은 뒤 두 수트를 모두 기동시켰다. 세빈의 왼팔과, 유진의 오른팔을 서로 맞잡은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술아, 정말 이 방법마저 통하지 않으면... 알고 있겠지?"
더이상 길은 없다고 말하는 세빈을 보며 귀술이 지윤을 부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핵을 향해 뚫고 가는 즉시 이 보호막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게다. 살아남길 기도하며 저주에 잠식당해도 끝까지 버티거라...!"
알겠다고,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귀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세빈은 말했다.
"고맙다. 날 믿고 따라와줘서... 여기까지 날 오도록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 귀술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귀술이 활짝 웃었다.
"아무럼요, 누구의 영수님인데."
세빈은 다시 유진 쪽을 바라보며 그녀와 마주봤다.
"준비됐니?"
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말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세빈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느끼고 맞잡은 손을 더욱 꼬옥 쥐었다.
비록 메카수트로 인해 온기가 전해지고 있진 않았지만, 세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유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경고, 출력한계 500%. 신체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출력을 줄이는 것을 권장합니다.]
유진이 출력을 올림과 동시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세빈의 메카수트 역시 함께 경고음을 울려댔다.
"하나, 둘-"
순간적으로 엄청난 기류가 메카수트의 팔꿈치 부분에서 뿜어져나왔고, 유진이 땅을 가를 때의 그 파워로 두 사람이 쏜살같이 저주의 핵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세엣-!!!!"
[쿠과가가가가각]
엄청난 기세로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버린 세빈과 유진으로 인해 보호막이 사라지자마자 저주가 귀술과 지윤을 덮쳐왔다.
마치 원령이 씌이듯 자신의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저주가 온 몸을 잠식해나가는 걸 느끼며 귀술은 오한이 들었다.
"크읏, 빌어먹을. 아까 힘을 잔뜩 소모해서 그런지... 오래 못 버티겠구만....!"
귀술은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저주가 자신을 잠식해들어가는 와중에도 지윤은 알수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한편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는 세빈과 유진은 엄청난 반발력으로 인해 처음의 스피드는 거의 다 잃은 상태였다.
하필이면 유진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마저 거의 다 사라진 탓에 이제 세빈은 그녀의 보호막으로 보호받지도 못하게 되었다.
저주가 몸에 잠식해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세빈은 점차 몸에 힘이 풀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큭!"
하지만 계속해서 유진은 파고들어가고 있었고, 마침내 세빈과 유진이 맞잡은 손과 저주의 핵과의 거리는 1m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결국 세빈은 유진과 맞잡은 손을 놓치고 그자리에 멈춰섰다.
"언니!!"
하지만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에게 세빈은 목청을 높여 외쳤다.
"상관말고 가거라!!! 어서!!!!!"
유진은 엄청난 어둠에 곧바로 휩싸여버리고있는 세빈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내 그녀가 어둠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게 되자, 유진은 이를 악물고 아주 천천히 저주의 핵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더이상 뒤로 갈 순 없다. 세상의 운명은... 유진에게 달려있었다.
마침내 반정도 나아가자 그녀의 팔을 감싸던 메카수트마저 파괴되어 산산이 부서져버렸고, 그 파편이 유진의 얼굴을 스치며 생채기를 냈다. 저주의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유진이 가진 응축된 염원의 힘을 밀어내면서까지 그녀가 뻗은 오른팔을 타고 검은 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어코 팔을 뻗어서 유진이 자신의 손을 저주의 핵에 가져다 댔을때, 그녀의 오른팔은 이미 반 이상 칠흑같이 어두운 저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가 세빈과 함께 봤던 미래대로 그녀는 저주의 핵을 붙잡았고,
"흐아아아아아아아--!!!!"
그걸 파괴하고 말 것임을.
그녀의 몸이 빛남과 동시에 그녀 주위의 저주가 바람에 밀려나듯 사방으로 튕겨져나갔고, 저주에 물들었던 오른팔의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해냈어.'
엄청난 빛이 유진의 주변을 감쌌다.
*
"크아아아악...!!"
"유나야 당장 그만둬라!!"
몇분 째 자신이 낼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힘을 쏟아내며 유나는 기합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힘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팔의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계를 뛰어넘어 힘을 방출한 덕에 저주의 기세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마침내 저주는 보호막 주변을 완전히 둘러싼 채 점점 줄어드는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안돼... 이대로라면 더 이상 못 버텨...!'
저주가 거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을 집어삼켰을 때 유나의 팔이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 균열은 점차 팔을 파고 온 몸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규찬이 어떻게든 그녀를 말려보려고 애썼으나, 그녀는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로지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발... 어머님... 모두들....!'
그런데 그녀의 팔 살갗이 완전히 벗겨져 피부가 붉게 변했을 때였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멀리서 굉장한 폭발음이 들려왔고, 유나는 그것에 놀라 그만 정신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쿠쾅!!!]
"아... 안돼...!"
그와 동시에 그녀가 내뿜던 힘은 순식간에 줄어버렸고, 팔의 부상으로 인해 그녀는 더이상 방어진과 공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보호막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마침내 저주가 사람들 위로 그림자처럼 드리우려던 그 순간, 그녀는 마치 기적을 본 듯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무나 뚜렷하고 선명한 예지몽.
한참 떨어져 있는 심연에서 뻗어나오는 빛이 그녀에게 닿았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팔에서 고통이 몰려왔고, 유나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규찬과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아으윽!!"
팔의 살갗이 완전히 벗겨져 피범벅이었고, 얼굴까지 타고올라가 갈라진 피부에서도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팔을 신경쓸 찰나도 없이 덮쳐오는 저주로 인해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은 한참동안 바닥에 수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들을 드리운 어둠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광백의 내부. 그리고 쥐죽은 듯 조용히 상황을 살피고 있는 사람들.
한참의 침묵 끝에 다친 유나를 품에 안고 있던 규찬은 깨달았다.
더이상 근처에 저주의 형상을 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태양빛이 들지 않는 동굴 안의 어둠이 있을 뿐.
"저주가... 멈췄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오늘 조모임 있는데 깜빡하고 말을 안했네요 -_-;
죄송해욧 ㅠ
선추코 감사합니다. 즐감하세요 ~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드디어 끝..?!
-은하수보며님 // 네 상백이 지윤 대신 희생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