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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79화 (178/188)

179화

*

"헉!!"

꿈이었다. 무려 13년 전의 너무나 생생한 느낌의 꿈.

정신을 차린 지윤은 얼굴에 통증이 밀려오는 걸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이 묶여있다는 걸 깨닫고 이리저리 움직여 봤지만 단단히 묶여 있는지 몸을 흔드는게 전부였다.

방의 가운데에선 세빈과 유진이 저주진을 살펴보며 저주를 막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일어났군."

누군가가 절뚝거리면서 지윤에게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자네 복수는 여기가 끝인거 같네만."

귀술이었다. 그는 유진과 세빈이 옷가지를 찢어 출혈부를 묶어준 덕분에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놀라울 따름이군. 상백님이 자네와 함께 일하고 있었고, 그것도 세계의 종말을 꿈꾸고 있었을 줄이야."

[쾅!]

지윤이 그 말을 듣고 찡그리는데 방 가운데쪽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유진이나 세빈이 출력을 올려 바닥의 진을 파괴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리친 바닥은 마치 방어 마법이 걸려있는 것처럼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하하... 하지만 저주는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발동될 것이고, 당신들은 지금 저주진을 막고 있는 이 결계를 뚫어낼 방법이 없을 텐데?"

흑귀가 귀술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방 가운데에 있던 세빈과 유진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방금 깨어난 흑귀 쪽으로 걸어왔다.

오자마자 유진은 지윤의 멱살을 붙잡고는 당장 저주를 멈추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온 몸은 수많은 상처로 가득했다.

세뇌병사들과의 전투에서 힘겹게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상처들이었다. 너무 강한 출력으로 메카수트를 휘둘러댄 탓에 팔은 완전히 부어 있었고, 이젠 움직이기도 버거워보였다.

"시끄럽다 꼬마. 넌 뭘 안다고 미래에서 넘어와서 날 방해하는지 모르겠구나."

상백은 여전히 기절해 있는 듯 했고, 저주가 발동되기까진 이제 30분 남짓 남아있는 상황. 흑귀는 상황이 아직 확실히 자신에게 유리함을 알고 있었다.

"저주가 발동되면 너도 죽게 될 거잖아! 근데 뭐가 좋다고 이 저주를 발동시키려는거야?!"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유진에게 지윤은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그녀는 외부인 주제에 참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유진의 눈을 노려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니가 뭘 알아? 내 복수는 저주로써 끝나게 되 있다. 이건 정해진 운명이야 피할 수 없어."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예언의 힘을 이용해서 이룩해 온 자신의 복수 과정을 이야기하는 지윤의 모습은 정말 광기에 가득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79년 나의 아버지를 죽인 흑귀. 그는 2000년이 됨과 동시에 내가 직접 죽여 없애줬지. 처참하게 그의 비명소리를 들어가며 사지를 하나씩 하나씩 절단했다...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자기 앞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느낌은?"

흑귀에게 복수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무나 잔혹한 표현들로 유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세빈 네년의 목숨은 참 질겨. 암살자가 소탕되던 날 장 쥔차이는 제대로 죽었지만 도망친 네년 때문에!! 결국 우리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러면서 지윤은 세빈을 내친 원래 흑귀의 행동에 대해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다시한 번 말했다. 그가 세빈을 측근에 두고 있었더라면 세빈이 백영으로 돌아갈 리도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자신이 세빈에게 복수하기에 편리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흑귀의 몸을 보며 세빈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느껴졌다.

"흑귀를 죽이고 나서 그 자리에 오르자 마침 이전의 흑귀에게 세뇌되어있던 장 티엔과 흑향이 내 눈에 들어왔지... 난 그 녀석들을 이용해 네년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제자와 딸에게 죽음을 당하다니, 이 얼마나 재밌는 일이야?"

게다가 그일 이후 쓸모가 없어진 장 티엔과 흑향을 자연스레 죽음으로 몰고가기까지, 지윤의 계획은 완벽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빈에 이어 두 사람까지 행방불명되자 그녀는 예지몽을 통해 불길한 미래를 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죽음에 이르게 되는 미래를 보게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운명을 바꿔놓겠다는 심산으로, 마무리짓지 못한 규찬의 죽음을 마무리짓고 자신에게 이런 운명이 닥치도록 한 원인을 제공한 '그 분'에게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죽여 없앰으로써 경고하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 따위, 없어져도 상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짜피 내 목숨은, 나의 어머니가 죽은 그날부터 없었던 거나 다름없어... 능력자들이 싸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살해당했고, 그렇게 때문에 난 그들과 그들의 능력을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체념한 듯한 그녀의 표정,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스런 미소.

유진은 그게 불만이었다.

"도대체 뭐가 만족스러운거야, 이 세상 사람이 모두 죽어나는게 그렇게 행복하냐?!"

가족을 잃은 슬픔, 그로 인한 분노, 그래서 시작된 복수.

상백과 함께 흑영에 간 1987년으로부터 무려 13년간 은밇하게 준비되었던 세상에 대한 복수.

"씨발, 그런데 여기 이 시기에 사는, 이 빌어먹을 꿈꾸는 힘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 중 너만 그렇게 불행하냐고!!"

하지만 유진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잠시간 이 시간대로 넘어왔을 뿐이지만, 그녀가 느낀 이 세계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윤이 겪은 고통을 겪어온 사람들이다.

자신의 가족이, 자식이, 부모가... 혹여 모든 가족이 멀쩡히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평생을 그런 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루빽빽한 게 지금 세대의 능력자들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지윤은 그저 어리광쟁이일 뿐이다.

그저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우월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같은 처지인 그들을 핍박하고, 자신의 힘으로 모두를 굴복시켜 세상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후후.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꼬마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윤이 유진의 말에 설득당할 리가 없었다.

이제와서 저주를 멈추겠다고? 이미 삶의 이유가 복수였고, 그 복수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지윤에겐 절대 통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악의 축이 그렇게 마음이 약하진 않아. 나 역시 저주를 멈출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지."

이제 어짜피 10분 뒤면 저주는 알아서 시작되고, 그렇게 발동되는 저주에 지윤은 마지막 돌만 올려놓으면 된다.

지금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지윤 역시 잘 알고 있었고, 이렇게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것에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한세빈, 질긴 악연이었구나. 그 악연이 오늘... 여기서 끝날 것이고."

지윤은 지금까지 고생해 온 나날들이 떠올랐는지 세빈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띄었다. 그동안 죽이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자신의 철천지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어떻게 갑자기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방심했어. 설마 나와 똑같이 상대의 예지몽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될 줄이야..."

그리고 한시간 전 쯤 그녀와 대치중이었을 때 미처 유진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세빈이 동굴을 달려오면서 느끼게 되었던 기적의 힘, 윤하로부터 받았던 그 힘의 티끌이 남아 그녀가 각성하는 것을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다 운명이었겠지. 그렇지 않은가..?"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지윤의 앞으로 세빈이 다가가서 그녀의 앞에 앉았다.

"내가 미래로 날려진것도, 장 티엔과 흑향이 함께 미래로 왔던 것도... 미래에서 내 손녀 윤하를 만난 것과, 돌아올 때 유진이 억지로 날 따라 왔던 것 모두가 운명이었던 게야...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고."

다 틀렸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진과 달리, 세빈은 아직 뭔가 강한 확신에 차 있었다.

"난, 그 운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적어도 여기서 끝날 운명은 아니라고... 나의 예지몽이 내게 말해주고 있어."

지윤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눈을 떴다.

"개소리 하지 마라 한세빈. 이제 나에겐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난 여기서 죽을 운명이라 이거지."

하지만 세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겐 보인다, 2시간 쯤 뒤의 일이."

그말에 지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반박했다. 저주를 막을 방법도 없으면서 어찌 2시간 후를 내다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2시간 뒤 이곳에... 도지윤 넌 멀쩡히 살아 있을 것이다."

세빈의 말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며 지윤은 다시 시계를 봤다. 2000년 6월 10일이 되기 2분 전. 슬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웃기는 소리. 이제 곧 그 시간이다."

아까부터 숨겨둔 아주 작은 단검으로 손을 묶은 천을 끊어냈던 지윤은 순식간에 앞에 있던 세빈을 뒤로 밀치고 그 뒤쪽에 있던 유진의 팔을 강하게 걷어찼다.

"아악!!"

안그래도 아팠던 팔을 맞아서 유진은 고통에 바닥을 굴렀고, 세빈은 넘어진 뒤 중심을 미처 잡지 못해 도망치는 지윤을 잡지 못했다.

귀술이 힘든 몸을 이끌고 서둘러 지윤을 쫓았지만, 그의 몸으론 빠르게 움직이는 지윤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1979년 6월 10일.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날... 그리고 1987년 6월 10일!!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던 날..."

말도 안 되는 운명의 끈은 지윤의 부모님을 같은 날에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000년 6월 10일 오늘. 나를 희생함으로써 나는 죽고 저주는 세상에 퍼지리라...!!"

그리고 그 끈은 끊어지지 않고 지윤에게까지 이어져, 바로 오늘 저주와 함께 그녀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광기에 가득찬 목소리로 5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 나가는 지윤을 보며 세빈이 다시 몸을 가다듬고 움직였지만 메카수트의 배터리가 다 된 것인지 그녀는 빠르게 뛸 수가 없었다.

"4!"

그순간 기절한줄만 알았던 상백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세빈을 밀치고 앞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3!"

그는 다리를 저는 귀술을 밀치고 그가 들고있던 자신의 칼을 도로 빼앗아 저주진 가운데를 향해 돌진했다.

"2!!"

그리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외치고 있는 지윤을 붙잡아 세빈과 유진이 있는 쪽으로 밀쳐내고는 진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칼을 쑤셔넣었다.

"크악!!"

"아저씨!!"

============================ 작품 후기 ============================

주말이다~~ 토요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선추코 감사합니다. 저주는 과연 막힐 것인가...!

-리리플

은하수보며님 // 네 지윤과 상백, 그리고 소율의 과거 이야기였어요신의탑hello님 // 네 그게 바로 올해 1월 1일에 바꿔치기한 흑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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