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유진이 소리를 듣고 황급히 세뇌병사들을 헤치고 장 티엔에게 달려갔지만, 이미 흑향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다급히 장 티엔을 둘러싸고있는 병사들을 밀쳐낸 뒤 겨우겨우 공간을 확보한 유진은 어떻게 된 일이냐며 그에게 물었다.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 당해버렸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병사들 때문에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있었지만 유진은 그와중에도 흑향의 상태를 살폈다. 복부를 완전히 관통한 듯 보이는 그녀의 상처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가 엄청나게 긴박한 상황임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했다간 흑향의 생명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분명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공격해오는 세뇌병사들을 막으면서 어떻게든 장 티엔의 염원력과 유진의 기적의 힘으로 흑향을 치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부축하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게다가 저 상태로 옮기면 출혈이 멈추지 않을 것도 뻔하다. 어떻게든 이 병사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좌측, 그리고 다시 우측. 후방에서 덮쳐오는 세뇌병사를 잡아채서 마치 볼링공처럼 집어던지기를 반복하자 어느정도 공간이 확보되었고, 지쳐보이는 장 티엔을 보면서 유진은 말했다.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게요. 아저씨는 그 틈에 언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데려가던가 하세요."
염원력을 통해 계속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오래 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장 티엔은 정상인들보다는 확실히 체력적으로 괜찮아 보이긴 했다.
"그 무슨... 이 많은 병력을 어떻게 혼자 상대한단 말이냐!"
그리고 이 많은 병력들 앞에 유진을 홀로 남겨두고 간다는 것도 그에게 있어 굉장히 난감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아무리 이 소녀가 메카수트라는 장비로 무장하고 있고, 그로 인해 초인적인 힘을 낸다지만, 상대는 많이 줄었긴 해도 여전히 100명 가까운 세뇌병사들이었다.
절대 안된다고 거절하기에는 흑향의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알았다고 달려가기에도 유진에게 미안한 상황.
"됐으니까 언능-"
하지만 유진은 괜찮다는 말을 굉장히 격하게 표현했다. 출력을 잔뜩 올린 메카수트로 그녀에게 접근하는 세뇌병사들의 앞을 강하게 내려치자 땅에서 흙먼지가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투쾅!!]
"-가라고요!!"
먼지가 걷히고 나자 그녀가 내리친 땅이 푹 꺼진 게 눈에 보였고, 그 엄청난 파괴력에 장 티엔은 놀라고 말았다.
마치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파인 땅은 망설이던 장 티엔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정도의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이런 강압적인 명령조의 말에 놀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방금 유진의 행동에서 그녀의 신념 비슷한 걸 느낀게 분명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겠다."
빠르게 대검을 등에 멘 뒤, 장 티엔은 흑향을 가슴쪽으로 안아올렸다. 그가 완전히 도망칠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유진은 다시한번 장 티엔을 띄워올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유진은 순간 뭔가 놀라운 걸 봤다는 듯 눈을 크게 떴고, 어째서인지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곧바로 놀란 표정을 숨겼다.
"어떻게든, 흑향 언니를 살리세요! 절 도우시려거든 그 다음에 생각하시고!!"
번쩍 하늘로 뛰어오른 장 티엔은 그대로 자신의 착지 가능 위치에 나무가 있는 걸 확인하고 착지 준비를 했다.
[투쾅!!]
유진은 그가 뛰어오름과 동시에 그가 날아간 쪽의 땅을 또한번 내리쳐 땅을 갈랐다. 갈라진 병력의 틈으로 달려간 그녀는 장 티엔이 날아가고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세뇌병사들을 떡하니 가로막고 섰다.
흑향을 안은 채 높이 하늘을 날고 있는 장 티엔은 다친 발목이 과연 이번 착지를 버티고, 또 한참을 달려야 할 그를 위해 얼마나 일해줄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그는 어떻게든 가야만 했다.
설령 자신의 다리를 영원히 못 쓰게 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든 달려서 흑향을 살리고, 자신을 이렇게 보내준 유진에게 도움을 줘야만 했으니까.
'제길, 역시 무리였나.'
한편 그들을 보내고 앞에서 몰려오는 세뇌병사들을 보며 유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마도 아까 땅을 두번 내리친 게 그녀에게 있어 굉장히 부담이 됬음을 말해주는 표정이었다.
평소에는 200%이상 올리지 않던 출력을 한계인 500%까지 끌어올려 내려쳤던 두 번의 일격. 그로인해 장 티엔과 흑향을 대피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분명 팔에 무리가 갔던 것이 분명했다.
과연 자신이 여기서 얼마나 더 이 병사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버텨야만 했다. 아니 버티는걸 넘어 세빈에게 가는 걸 목표로 해야만 했다.
달려오는 첫 번째 세뇌병사를 강하게 쳐내면서 팔에 강한 통증이 몰려오는 걸 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이제와서 흑향을 데리고 간 장 티엔을 부를 수도, 흑귀를 쫓아간 세빈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과거로 왔는데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다고..!'
그녀는 몰려오는 세뇌병사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팔목과 팔이 울부짖고 있었지만, 강한 통증을 느끼는 와중에도 그녀는 침착했다.
"와라!!!"
*
"헉... 헉..."
숨을 헐떡이며 세빈은 정신없이 심연 안을 질주하고 있었다. 예언몽을 썼다간 언제 또 흑귀가 눈치채고 자신에게 거짓된 정보를 알려줄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감을 믿으며 흑귀를 추적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믿어야 했지만,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따라 움직이기를 몇 분 째. 그녀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흑귀는 도망쳤고, 분명 그는 이 심연 어딘가에 있을 저주를 발동시키기 위한 진으로 갔을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3시간 남짓. 그전에 흑귀를 잡아 어떻게든 저주를 막을 방법을 알아내야 했지만 이래서야 자신을 믿고 어떻게든 보내준 유진을 볼 낯이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해... 만약 저주를 발동시킨다면, 내가 저주를 쓰려는 입장이라면... 어디에 진을 그릴지 생각해야...'
그리고 세빈은 예언의 힘에 의지하지 않은채, 오로지 자신이 기억하는 심연 내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외진 곳, 열리지 않던 곳, 수상했던 곳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순응의 저주라는 거대한 저주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진의 크기 역시 커야한다. 그런 커다란 저주진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심연 내에 있었던가?
북쪽 기슭. 지하로 이어지던 길, 아냐.
북서쪽 구석진 곳 커다란 빈 방 근처, 아니야.
남동쪽 안쪽 깊은 병기고 근처, 아니다.
동쪽... 아니야.
서쪽도 아니야.
그럼 어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심연의 외곽엔 그정도로 넓은 장소가 없는데. 도대체 흑귀는 어디에다가 저주진을 그렸단 말인가?
그럼 혹시 심연 안으로 들어온 건 단순히 세빈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술책이었던 것인가?
'아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선 안돼, 현재 심연 안이 이렇게 조용한 건 분명히 모든 흑영 사람들이 세뇌병사로 불려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주가 발동되면 가장먼저 세뇌병사들을 집어삼킬것이고...'
그러나 발원지는 저주의 이동 경로와는 굉장히 상관이 없었다. 어디에 발원지가 위치했던간에 저주는 퍼져나갈테고, 자연스럽게 퍼져나간 저주는 세상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결국 저주로 인해 모든 인간이 사라지고, 지구의 인류는 종말을 고하고야 말 것이다.
세빈은 그순간 다시 생각했다.
예언력을 쓰는 순간 흑귀와 접촉하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라는 걸. 예언력을 통해 그가 자신을 속인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에 따라 흑귀를 찾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애초부터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었어.'
죽이되든 밥이되든, 세빈은 흑귀와 만나야했다. 그것이 현실에서건, 예언몽을 통해서건 무조건 만나야만 했다.
'티엔... 네 스승인 나는, 과연 네가 극복한 것처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천천히 심연의 광장에서 눈을 감은 세빈은, 조금씩 예지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미래를 보기 직전, 그녀는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뭔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예지몽에 들어가기 전 보이는 알 수 없는 빛.
그건 오직 간절한 사람에게만 닿는다는 기적의 힘이었다.
============================ 작품 후기 ============================
선풍키 켜면 춥고, 눈아프고. 끄면덥고.
이거참 -_-; 애매한 날씨가 되가네요.
즐감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선추코감사합니다.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4종세트 감사합니다 ㅎㅎ.
은하수보며님 // 다음화에 6장이 끝나네요... 엔딩이 다가오고 있긴 합니다만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