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기적의 힘이란 단어를 들은 세빈은 문득 자신이 미래에서 윤하에게 받아왔던 힘이 떠올랐다.
그 힘을 전해 받기만 했지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유진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제가 과거로 이렇게 억지로 넘어오게 된 건 다 레이 아줌마 덕분이었어요. 그 분이 세빈언니인 척 하고 우리 엄마에게 힘을 받으라고 이야기해줬고, 덕분에 전 언니가 다 회복할 즈음엔 언니가 받은 힘보다 훨씬 많은 힘을, 우리 엄마가 가지고 있던 힘의 대부분을 받아 넘어왔으니까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놀라웠다. 레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윤하가 소지하고 있던 힘에 대한 사실을 굉장히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던 그것은 사실 염원의 힘이 모여 응축된 것. 따라서 그 응축된 힘을 넘겨받게 될 경우 원하던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장 티엔과 세빈은 원래의 힘으로 회복할 수 있었고, 과거로 넘어온 유진에 의해 흑향의 막혀있던 예언력이 개방되었다.
"이 힘은 안타깝게도 전해질 순 있어도 전달받은 사람이 그 힘을 제어할 순 없게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단 한가지, 제어권까지 넘어오는 경우가 있죠."
그건 바로 가족간의 전달이었다. 맨 처음 유나에게 응축되어있던 현재의 힘은 유나가 희생됨으로써 상당부분 흩어졌지만 그 남은 양만큼은 그녀가 죽어서도 소지한 채 중간계로 가게 되었고, 그 힘을 중간계에서 딸인 윤하가 넘겨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윤하에게 남아있던 그 힘을 그 딸인 유진이가 다시 받아온 셈이다. 즉 유진은 윤하의 힘을 전부 넘겨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저번부터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총수님. 염원의 힘이라는 건 예언의 힘처럼 의식적으로 쓸 수 있는게 아니죠?"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규찬은 대답했다.
"그렇다, 장 티엔도 굉장히 자유자재로 다루곤 있어도 그것이 발동되는 건 엄청나게 강한 의식이 뒷받침되야 하거나 아주 우연히 발동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리고 그 사례는 과거 죽어가던 진을 살린 규찬의 염원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제 힘은 그 염원력을 의식적으로 발동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저도 하지만 이건 전해 듣기만 한거라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실험해주길 원했던겁니다."
분명 과거로 떠나기 전 집을 몰래 떠나는 길에 나타난 레이는 유진에게 그렇게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유진은 들어오자마자 규찬과 이노우에, 장 티엔을 불렀던 것이었다.
결국 세 사람은 유진 주위에 모여들었고, 그녀의 몸에 손을 얹었다.
"일단 제 어깨를 치료하는 염원을 해 주세요."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이 눈을 감고 염원을 외기 시작했고, 유진 역시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몸 속에 가득 담긴 응축된 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주인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힘인지 그 힘은 쉽게 제어가 되지 않았다. 끌어내려다가 실패하기를 두어번, 마침내 자라나는 나무처럼 끌어올려진 금빛의 힘은 세 사람의 손까지 닿았고,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은 세 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유진은 알수없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며 어깨의 통증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화.. 확실히 저 아이 몸 안의 힘은 살아있는 존재나 다름없군. 마치 우리 내면에 잠겨있던 문을 강제로 열었다가 닫은 기분이 들었어..."
규찬의 말에 이노우에와 장 티엔 역시 동의했다. 이윽고 어깨를 감고있던 붕대를 풀어헤친 유진을 보면서 그들은 경악했다.
분명히 깊이 패인 상처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말끔하게 보존된 신체만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레이 아줌마 말이 사실이었네요."
유진은 팔을 움직여보면서 의문점 해결하는데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주의사항을 들은 게 있어요. 이런식으로 억지로 염원의 힘을 끌어내 사용할 경우, 제어자인 저는 물론이고 제게 힘을 빌려주는 염원사 역시 그 거역한 운명만큼의 힘을 영원히 빼앗긴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무한히 쓸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윤하를 중간계에서 다시 불러올 때도 재희를 비롯 진과 살아남은 염원사들의 힘을 모두 합쳐 중간계에 있던 유나를 통해 강제로 염원을 발동시켰던 전례가 있고, 실제로 그들은 윤하를 살려낸 뒤 힘이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살아돌아온 윤하에게 남아있던 응축된 염원의 힘 덕분에 거의 모든 힘을 잃어버린 염원사들은 다시 어느정도 회복이 가능했고, 그 뒤 32년이 지나 다시 모인 그들은 장 티엔과 함께 세빈을 과거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정황을 안다면, 확실히 맨 처음 유나에게 모여 있던 힘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그 많았던 힘은 현재 과연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
과연 유진이에게 남아있는 그 힘으로 저주를 막을 순 있는걸까.
"어찌됬든 유진이가 회복되었으니 이대로 멈춰있을 수 만은 없겠군요, 당장 출발합시다."
다시 조직된 흑귀 추격조는 아까와 동일했다. 부상당한 수많은 병사들과 유나를 지키기 위해 혼다와 이노우에 규찬이 남게 되었고, 혼다의 부상을 유진의 힘으로 치료해둔 상태다.
"그러고보니, 귀술이가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이노우에와 혼다가 세빈을 돌아봤고, 그녀는 확신에 찬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그는 진즉에 우리와 떨어져서 별도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
심연의 어느 깊은 곳,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출구도 보이지 않는 이 밀폐된 공간 안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지만, 이내 굉음과 함께 열리는 돌로 된 문으로 인해 어둠이 걷히고 불이 켜졌다.
"이상하군, 지금쯤 돌아와야 하는데 도대체 어딜 갔길래 이렇게 늦고 계신 것인지."
들어온 것은 5장로였다. 그가 들어오기가 무섭게 돌로 된 문은 다시 닫히기 시작했고,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난 뒤 5장로는 주변의 횃불에 불을 옮겨붙였다.
밝아진 공간은 생각보다 굉장히 넓었다.
지름 10m는 되어보이는 원형의 거대한 진이 바닥에 피로 그려져 있었고 원 안의 오망성 꼭짓점에 각각 또다른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진을 향해 걸어가 주변을 살피던 그는, 갑작스런 살기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가 바라본 곳에 이미 인기척은 사라졌고, 안심하고 뒤를 돌아본 그는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드디어 잡았군 5장로. 계속 안보인다 했더니만 이렇게 숨겨진 공간에 있었을 줄이야... 덕분에 진의 위치도 알아내고 정말 고맙군."
그곳에는 귀술이 검을 들고 서 있었던 것이다.
5장로는 황급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지만, 다리 부상으로 인해 그는 귀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5장로의 칼을 튕겨낸 귀술은 그를 발로 걷어차버렸다.
땅에 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5장로의 목 위로 귀술의 칼이 들어왔고, 5장로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귀술에게 포박되고 말았다.
"젠장, 어느틈에 들어온거냐!"
5장로는 갑작스런 기습에 저항도 못하고 포박된 뒤에도 입을 멈추진 않았다. 계속해서 몸을 흔들어대는 그였지만 귀술이 그런 그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결국 바둥대던 5장로가 곤죽이 되어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서야 귀술은 그를 폭행하는 걸 멈추었고, 마침내 조용해진 5장로를 보며 귀술이 말했다.
"그래, 이 진이구만. 그 말도 안되는 엄청난 저주를 발동시킬 진이..."
귀술은 흑향에게 들었던 대로 진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시간 전 쯤 흑향의 예지몽으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백영으로 돌아간 뒤 자신은 따로 떨어져 5장로를 미행했다. 덕분에 그는 이렇게 손쉽게 저주를 발동시키는 진이 위치한 곳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큰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는 5개의 작은 원을 살펴보면서 여기저기 두드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향이 말해준대로 악념병은 보이지 않았다.
흑향이 알려준 순응의 저주 재료는 구형 유리용기에 담긴 100명분의 악념 5병과 지금 보고 있는 이 거대한 진이었기 때문에 귀술은 보이지 않는 악념병의 소재를 찾기 위해 다시끔 5장로를 협박하고 신문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불어라, 목숨이 날아가기 싫으면 말이지."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5장로는 쉽게 비밀을 알려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흐,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어짜피 흑귀만 오면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끝날 터... 죽음따윈 두렵지 않다!"
그 말에 화가 난 귀술이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때렸고, 덕분에 그의 고개가 90도쯤 홱 돌아갔다.
귀술은 5장로에게 쌓인게 워낙 많았던지라, 그가 지금 이렇게 참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폭행하는 것도 굉장한 인내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형인 귀능이 5장로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혼다에게 전해들었을 때, 누구보다 분노하고 복수하고싶어했던 사람이 바로 귀술이었으니까.
"빌어먹을 자식. 네 녀석이 우리 형님을 죽였다!!"
그리고 5장로의 멱살을 잡아 마구 흔들던 귀술은 곧 그의 얼굴 가장자리가 살짝 들려 흔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가면?
순간적으로 지금 5장로의 모습이 그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귀술은 재빨리 그의 들린 가면 가장자리를 붙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너... 너는!!"
============================ 작품 후기 ============================
행복하지 않은 월요이이이이일 ㅠㅠ 토요일을 기다리며 새로운 한주가 시작됬습니다!
선추코 감사합니다 :>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유진이는 아마 이 시간상의 일을 끝내기 전엔 돌아갈 생각이 없나봅니다-은하수보며님 // 윤하가 가지고 있던, 유나에게 넘겨받았던 그 힘을 모조리 유진이가 훔쳐(?)왔습니다.
-야미요님 //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