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흑향이 방금 발사한 저격 라이플에서 발사열로 인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마터면 규찬이 죽을 뻔 했던 위험한 상황해서 그녀의 한 발은 굉장한 임팩트를 가졌다.
자신만만하던 흑귀를 당황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 막 도착한 세빈 일행이 전장에 끼어들 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세빈은 다시한번 시계를 확인했고, 시계는 7시를 막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이미 유진은 메카수트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고, 장 티엔이 흑향의 총 소리로 인해 시선이 돌려진 세뇌병사들을 뚫고 가고 있었다.
"스승님, 흑향을 부탁합니다!!"
그는 흑향을 부탁한다면서 대검을 힘차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세뇌병사들은 웬만해서는 일반 병사들과 다르게 의식이 끊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를 베서 움직임을 막아버려야만 했다.
그녀는 유진이가 전해주기로 한 말을 자신의 남편에게 제대로 전해주길 바라면서 흑향쪽으로 접근해오는 세뇌병사들을 베기 시작했다.
'유진아 어서!!'
[쿠쾅!]
엄청난 기세로 하늘을 날아 규찬의 앞에 착지한 유진의 먼지로 인해 일순간 주변의 시야가 가려졌다. 흑귀가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재빠르게 예언력을 이용하며 유진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나이트비전을 킨 뒤 빠른 흑귀의 공격을 재빠르게 쳐내기 시작했다.
검과 메카수트가 부딪치며 금속의 마찰음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바닥에 넘어졌던 규찬도 어느새 근처의 병력들의 도움으로 일어나 세뇌병사들과 다시 대치상황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늙은 몸, 한번 떨어진 체력을 복구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타핫-!"
유진은 순간적으로 출력을 높여 흑귀에게 강한 펀치를 날렸다. 원래라면 없었을 메카수트의 장갑 부분도 얼마전 광백에서 머물면서 이미 만들어 장착해 둔 상태라, 흑귀도 어쩔 수 없이 검으로 그 빠른 공격을 막아야만 했고, 어찌나 파워가 강했는지 흑귀는 거의 5m가 넘게 바닥에 먼지를 일으키며 밀려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진은 규찬에게 달려가 말했다.
"총수님, 당장 의무동에 가서 각성향(覺醒香)을! 세빈 언니 부탁이에요!"
규찬은 그 말을 듣고 멀리 있는 세빈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흑향에게 달려드는 세뇌병사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필시 그녀가 말한 이 각성향이 이 전황을 역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규찬은 방향을 돌려 의무동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딜!!"
규찬의 움직임을 보고 흑귀가 재빠르게 접근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탕-! 탕! 타앙-!]
연속되는 빠른 저격에 흑귀는 계속해서 세 걸음 물러나야만 했고, 결국 원래 밀려났던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리 예언력을 쓰면서 움직이는 그라고 해도 유진과 흑향의 합동 공격을 막기는 굉장히 어려웠음이 분명했다.
유진은 과거로 넘어올 때 흑향이 미래에서 구한 저격 라이플을 들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서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막아냈던 흑향의 저격은, 지금도 엄청나게 매섭고 날카로웠다.
"이 자식들이 두 명이서 날 귀찮게 하는구나... 겨우 복수할 기회를 잡았는데!!"
하지만 아무리 둘이서 덤빈다고 해도, 흑귀의 능력이 엄청난 건 사실이었다. 저격으로 인해 행동반경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든 유진을 자신과 흑향 사이에 두면서 흑향이 쉽게 저격할 수 없는 구도를 계속해서 만들어갔다.
실로 움직이면서 쓸 수 있는 예언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말해주는 결과였다.
그녀는 좀전의 당황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침착해지자 되려 초인적 기계를 다루는 유진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예언력을 가진 존재와 실전 경험이 아예 없는 유진으로썬 어쩔 수 없이 밀리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뭔가 해보려고 해도 그것보다 한 발 앞서 치고들어오는 흑귀로 인해 그녀는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상황이었다.
흑향이 어떻게 지원해주려고 해도 계속해서 유진의 몸이 흑귀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좌 우로 튀어나올 때 위협사격을 가하는 게 전부였다.
[캉! 투쾅! 캉!]
총성과 계속해서 번갈아 들리는 마찰음이 그 전장이 얼마나 격전지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유진의 메카수트로부터 나오는 기류가 계속해서 흙먼지를 일으켰고, 그녀가 빠르게 방향을 틀거나 뒤로 밀려날때마다 점점 그녀의 위치가 세빈이 있는 곳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젠장! 이래서야 절대 이길 수가 없잖아...! 앞을 훤히 내다보고 있는 상대를 무슨 수로 이겨?!'
유진의 입에서 한동안 하지 않았던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흑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전혀 구멍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몸에 딱 맞춘 감옥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씨발, 공격할 틈이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 야, 한유진 너 그런것도 못 하는 녀석이었냐? 그래놓고서 세빈 언니를 지켜?'
그리고 이내 마음 속으로 한번, 입 밖으로 다섯 번의 욕을 퍼붓고 나서야 그녀는 뭔가 결심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하하하! 2:1로 덤벼도 상대를 전혀 못 하니.. 3:1로라도 덤벼보지 그러냐?"
흑귀가 교만하게 웃으면서 유진을 거의 세빈 바로 앞까지 몰고갔고, 유진은 그순간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흑귀가 검을 내리치는 걸 피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윽?!"
당연히 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언력을 쓰지 않았던걸까? 흑귀는 갑작스런 유진의 돌격에 그만 내리치던 검을 뒤로 빼지 못한 채 유진의 왼쪽 어깨를 향해 내려칠 수 밖에 없었다.
지켜보고 있던 세빈으로부터 비명이 터져나왔고, 흑귀의 검이 유진의 어깨를 벰과 동시에 금속음이 들려왔다.
[카앙!!]
'일부러 맞았어?'
순간 예언몽으로 다음 수가 보인 흑귀는 재빨리 검을 뽑으려 했지만 유진의 어깨에 3cm쯤 박힌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히야아아-!!"
그순간 200퍼센트 출력의 유진의 오른팔 주먹이 엄청난 속도로 흑귀의 얼굴쪽에 날아들었고 동시에 굉장한 충격음이 울려퍼졌다.
[콰앙!]
유진이 잡고 있던 흑귀의 검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땡강 소리를 냈고, 그녀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흑귀가 밀려나면서 일으킨 흙먼지가 사그라들면서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유진의 공격을 막았는지 쓰러진 흑귀의 손에 단검이 들려 있었다.
단검으로 막으려 했지만 인간의 힘으론 막을 수 없는 메카수트의 파워 때문이었는지 흑귀는 그대로 밀리며 칼날의 옆부분을 배쪽에 기댔던 모양이다. 그로 인해 충격은 고스란히 흑귀의 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예상치 못한 피격으로 인해 그가 잠시 전투불능이 된 순간 규찬이 의무동에서 달려왔다. 그는 멀리 있는 세빈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수신호를 받은 세빈은 곧바로 흑향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규찬이 들고 있던 가루가 잠긴 자루 묶음에 작은 폭약을 함께 매달아 세뇌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높이 던져올렸고, 흑향의 저격탄이 정확히 폭약을 관통하며 쾅 하고 자루가 폭발했다.
각성향이 폭발로 인해 광백의 광장을 가득 채웠고, 그 영향인지 세뇌병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각성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고, 덕분에 승리는 확실하게 흑귀에게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어깨부상으로 인해 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유진은 세뇌병사들이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뒤 안도했다. 그리고 곧바로 흑귀가 있던 자리를 확인했지만 분명 그 곳에 쓰러져 있던 흑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언제 던졌는지 흑귀가 던져둔 연막탄으로부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흑귀, 흑귀가 사라졌어요!!"
분명 인파 속으로 파고들어 도주할것이라고 생각한 유진은 곧바로 흑귀의 도망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흑귀를 찾던 사람들이 그를 발견한 건 이미 그가 흑향의 뒤쪽에 나타난 뒤였다.
세빈이 놀라 흑향을 보호하기 위해 흑귀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세빈을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공격을 받아내면서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이노우에와 유진이 재빨리 도망치는 흑귀를 쫓았지만 그는 유유히 숲 속으로 도망쳐버렸다.
세빈 앞에 도달해서야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눈치챈 유진은 땅을 쿵 하고 내리쳤다. 흑귀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한눈을 팔아버린 데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다.
땅바닥에 엎드려 땅을 치고 있는 그녀의 어깨에서 붉은 선혈이 계속해서 흘러내렸고, 그걸 발견한 세빈은 급히 흑향과 함께 그녀를 의무동으로 옮겼다.
한바탕 전란이 휩쓸고 간 광백의 내부는 한마디로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백영 병사의 1/3과 세뇌병사의 절반 가량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대부분의 세뇌병사들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부상당한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몸이 성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서둘러라, 혼다는 지금 즉시 의무동의 의원들을 모두 불러 모으도록 하고!!"
규찬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전두지휘하며 재정비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고 노력했고, 장 티엔과 흑향이 그를 도와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병동에서 모포들을 옮겨 오기 시작했다.
흑귀는 퇴각했지만, 백영의 피해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이렇게 광백의 수비가 허술해진 상태에서는 많은 병사를 흑귀를 잡는 데 보낼 수도 없었다.
간신히 정리된 후 시간은 8시. 이제 저주를 저지할 시간은 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환자들을 광장에 쭉 깔아놓은 모포에 눕히고 그들을 백영의 나머지 은거처에서 온 의사들이 돌보기 시작함과 동시에, 규찬은 다시 수뇌부를 모아 회의를 가져야만 했다.
"이제 더는 방법이 없군... 이런식으로 쳐들어오다니... 게다가 장 티엔처럼 예언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상태인 흑귀를 잡는건 이제 이 인원만으론 절대 무리나 다름없게 되었소..."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혼다는 다친 팔 말고도 다른 팔마저 약하지만 부상을 입었고, 이노우에 역시 여기저기 얕게 베인 상처들이 많았다.
현재로써 가장 흑귀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유진마저 어깨 부상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규찬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통감하며 고개를 숙인 채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니에요, 아직 절망하긴 일러요. 우리에겐 4시간이나 남아 있어요 여보."
세빈은 어느새 유진이 입고 있던 메카수트를 자신이 대신 입고 있었다. 유진이 쓰러졌으면 신체조건이 동일한 자신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저주를 막겠다는 생각이었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세빈은 한번도 제대로 다뤄보지 않은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자신감을 보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어렸을 때부터 영재, 엘리트 소리를 들어왔던 전설로 남을 주향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자신만만한 저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 했다. 처음 다뤄보는 기계라도 마치 그동안 늘 써왔던 것처럼 다룰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에 희망을 잃어가던 모든 사람이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남은 시간을 이용할 지 빠르게 계획을 짜고 있는데 갑자기 회의실 문을 열고 유진이 뛰어들어왔다. 어깨에 둘러맨 붕대에서는 여전히 피가 스며들고 있었고, 상처로 인해 심박수가 올라갔는지 얼굴이 붉었다.
"유진아, 가서 쉬거라 왜 온 거니!!"
세빈이 놀라 그녀를 다시 병동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총수님, 그리고 장 티엔, 그리고 이노우에씨. 당신들의 염원의 힘인가 뭐시긴가 하는 힘을 조금만 빌려주세요. 그거면 되요!!"
억지를 부리는 유진은 세빈이 말리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규찬은 그런 세빈을 막아세우고 유진에게 다가갔다.
"네게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혼자만 알지 말고 우리에게도 말해다오."
그의 말이 유진이 움직임을 멈췄고,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중요하기 그지없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가 미래에서 저희 엄마에게 받아왔던, 레이 아줌마가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던 바로 그 힘. 그 힘에 대해서 레이 아줌마가 설명해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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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갑자기 쏟아지네요... 날이 덕분에 엄청 시원해진게 느껴지네요.
물론 습한건 어쩔수없긔!
선추코 감사합니다. 즐감하세요~
-리리플
은하수보며님 // 흑귀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죠.
신의탑hello님 // 아무래도 오랜기간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달까요... 어느정도 최근 계속되는 전투로 조금 그 본능이 깨어난 듯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