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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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세빈을 지켜보던 유나는 점점 느려지는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그녀가 지쳤음을 눈치챘다.
며칠 전부터 유나의 마음 속에서 계속되던 갈등이 어느덧 조금은 사그라들고 있었고, 그녀는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서둘러 세빈에게 다가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달려나가려는 그녀를 누군가가 붙잡았다 유나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그는 곧 누군지 알아채고 안도했다.
"이노우에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노우에였다. 그도 잠이 잘 오지 않았던 탓인지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광장에서 기도하는 세빈을 목격하게 된 것이 분명했다.
굉장히 넓은 광장인데도 숨어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 신기해서 유나가 그에게 물었다.
"흠... 멀리서 봐도 부영수님은 그.. 몸에서 오오라가 나오셔서 너무 눈에 띄는걸요."
그녀는 깜빡 잊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걸어다니는 등불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노우에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던 그녀는 왜 자신이 나가려는 걸 막았냐고 그에게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저건 영수님의 의지나 다름없는 기도에요. 지금 나가봤자 우리는 영수님을 동정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저러다 쓰러지시겠어요."
유나는 세빈의 몸 상태를 걱정했고, 이노우에는 고개를 저었다.
세빈은 지금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 지켜보는 걸 바라고 있는게 아니라 그동안의 자신의 부덕을, 살면서 계속해서 뉘우치고 반성해 왔지만 이렇게 다시 기도를 올리며 완전히 털어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노우에는 그런 세빈을 잘 알았다.
그녀가 영수가 되기 전인 1991년부터 처음 호위대장이 된 후, 영수가 된 뒤 8년간 그녀와 늘 함께 하면서 완전히 안 건 아니어도 세빈을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알고 있는 지금의 세빈은, 그 어떤 사람보다 멋진 광채를 뿜고 있었던 것이다.
"저 말고, 귀술도 저쪽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귀술이 녀석 성격상 우리처럼 금방 마음을 돌리긴 어렵겠군요."
"앗.. 제가 영수님과 함께 하려고 한 걸 어떻게..."
유나는 자신의 마음을 간파당했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이노우에는 그런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이래뵈도 부영수님도 최근 계속 모시지 않았습니까. 귀술이가 더 잘 알진 몰라도 그래도 저도 부영수님을 굉장히 잘 알고 있거든요. 아까 표정을 보니, 딱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
흑향을 구출해서 심연을 빠져나온 약 30분 뒤, 장 티엔은 간신히 약속장소 근처에 도착했다.
발목부상이 다시 악화된 탓인지, 붙잡혀있던 탓에 가벼워진 흑향을 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목이 점점 아파왔다.
아직 기력이 회복되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는 흑향을 나무밑둥에 기대 앉히고 그는 빠르게 높은 나무에 올라가 주변에 추격이 없는지 이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난장판을 벌여놓고 온 덕분인지 추격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서 내려온 그는 앉혀둔 흑향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정말 다행이구나..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흑향."
흑향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같혀있었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모양만으로도 장 티엔은 충분히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괜찮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있어도 됀다..."
풀어헤쳐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장 티엔은 잠시간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고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
그녀의 옆에 앉아 발목부상을 체크하던 그는 약속시간이 점점 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예상대로라면 이미 도착했어야 할, 자신에게 흑향의 소재를 알려주고 자신을 구해줬으며 자신에게 오늘 이렇게 각성하기까지의 동기를 주었던 바로 그 사람이 오지 않고 있었다.
무려 20분이나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2장로 때문에 장 티엔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기다려야 할 지, 아니면 먼저 돌아가야 할 지 고민되기 시작한 그는 출발할 때 2장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30분이 넘어도 도착하지 않으면 그냥 가십시오. 그때는 은신처가 아닌 백영으로 곧장 가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슨소리냐고, 자신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그럴 순 없다고 하는 장 티엔에게 2장로는 그를 다그치며 말했었다.
「여긴 전장입니다. 벌써 잊으신겁니까?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임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었을 뿐이구요. 절대 동정하거나 미련을 가지시면 안됩니다. 그랬다간 살아남은 사람마저 죽을테니까요.」
그래도 그를 걱정하지 않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장 티엔은 어떻게든 그와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의 은인, 흑향의 은인인 그를 이대로 저버릴 순 없었다.
*
[챙! 캉!]
어둠 속에서 검과 검이 계속해서 맞부딪쳤다. 빛이라곤 검이 부딪칠 때 아주 가끔씩 보이는 불꽃이 다였다.
등에는 귀능의 7살된 아이를 업고, 왼팔은 이미 부상을 입은 채로 2장로는 힘겹게 도망치고 있었다.
'젠장, 아까 전에 추격을 따돌리지 못한 게 이렇게 될 줄이야!'
이대로 가다간 죽음을 피할 순 없다.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등에 업고 있는 아이만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이 상태라면 둘 다 죽을 게 불보듯 뻔했다.
추격자의 수는 대략 5명가량. 어떻게든 상대하며 도망가는 건 가능해도 이들을 뿌리치는건 불가능한 상황.
하다못해 장 티엔이 만약 먼저 돌아와서 자신을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그쪽 상황도 만만치는 않았으리라 판단한 2장로는 그 가능성은 이미 배제해 둔지 오래였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 이대로 도망만 쳐서는 답이 안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여기서 적들을 따돌리려면 무조건 전투 가능한 1명의 사람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깡!]
고민하다가 뒤쪽에서 날아오는 칼에 베일뻔 한 그는 간신히 몸을 틀어 검을 피한 뒤 그를 진행방향 그대로 차버렸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검을 들고 좌우로 빠르게 베며 공간을 만들어도 이내 다른 사람들이 그 빈 공간을 메웠고,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는 결국 적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갈수록 등에 맨 아이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져갔고, 팔쪽의 출혈로 인해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미 충분한 출혈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
그리고 초조해진 그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 동시에 양쪽에서 공격이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뒤로 슬라이딩하려던 그는 업고 있던 아이가 있음을 깨닫고 그대로 다친 왼팔을 바닥에 짚은 채 쭈욱 미끄러지고 말았다.
"크악!"
피가 터져나오며 비명도 함께 터져나왔다. 간신히 구르는 건 막았지만 넘어진 탓에 검까지 놓지고 만 그는 드디어 위기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젠장, 여기까지인가...'
하지만 우연의 일치였을까, 쓰러진 그를 향해 적들이 달려드는 그 순간, 나무 위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지더니 달려들던 적을 그대로 걷어차버렸다. 이어지는 적들의 공세를 대검으로 순식간에 베어버리며 2:2 상황을 만든 사람은 다름아닌 장 티엔이었다.
그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아까 올랐던 나무에 다시 올라서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여 2장로가 만들어내는 금속음을 탐지해냈던 것이다그는 곧바로 2장로 쪽의 전투가 쉽사리 끝나지 않아 병사들과 대치상황을 유지하면서 이동중이었음을 알아채고 서둘러 흑향을 들쳐메고 근처의 나무 위로 올랐다. 발목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어떻게든 나무 위로 올라 가장 두꺼운 가지 위에 흑향을 앉혔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가 혹시 떨어질까봐 줄로 단단히 그녀를 묶어둔 뒤, 장 티엔은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흑향에게 남기고 빠르게 나무를 내려와 2장로에게 달려왔던 것이다.
"괜찮습니까?!"
숨을 헐떡이는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2장로는 오른팔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은인을 이대로 죽게 할 순 없단 말입니다!"
그 후 상황이 정리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반 병사들에 비해 장 티엔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다시 원래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돌아온 장 티엔은 흑향을 나무에서 내려 다시 잘 앉혀 두고 2장로를 살폈다.
"그 팔 괜찮은겁니까? 당장 병원으로 가야...!"
"큭.. 괜찮습니다. 일단 저도 움직일 순 있으니까 간단히 지혈만 하고 소율 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합시다."
모든 적을 처치한 후 2장로에게 돌아온 장 티엔은 그가 쓰고 있던 가면이 떨어지려고 하는걸 눈치챘다. 게다가 흙까지 들어가서 그런지 덜렁거리는 그 가죽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 이거 불편한데 좀 떼어주시겠습니까?"
빠르게 자신이 입고 있던 옷가지로 팔의 창상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압박하여 응급처치한 장 티엔은 2장로의 부탁에 따라 그의 얼굴에 붙은 가면을 떼려고 손을 뻗었다.
"떼고 놀라진 마십쇼.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하하."
나무 밑둥에 기대 2장로가 하하 웃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장 티엔은 그의 본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얼굴.
반년 전에 자신과 검을 맞댔던 포기를 모르던 의지가 강했던 사나이. 비록 세뇌당했을 때 죽였지만 세뇌가 풀린 지금 어렴풋이 기억되는 바로 그 남자.
"그동안 속여서 죄송합니다 장 티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신이 날 불편해 하지 않으려면 속이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아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전 동생입니다. 당신이 올 겨울 영수님을 쫓다가 죽인 제 형이랑은 다른 사람이구요 후후."
손이 떨려 들고 있던 가면을 떨어트린 장 티엔은 나즈막히 자신의 입으로 익숙한 자신의 호적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지난 겨울, 자신의 스승을 죽이기 위해 눈보라를 헤치고 가던 그 때. 자신을 당차게 막아섰던 백영의 바로 그 전사. 오로지 한세빈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있던 굉장한 사내.
"혼다...!"
============================ 작품 후기 ============================
즐감하세요! 6장이 생각보다 좀 깁니다.
아무래도 그동안의 떡밥회수를 하는 장이다보니... (좌절)마지막까지 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추코 감사합니다 :>
-리리플
hohohotoyo님 // 소설 두개 동시 연재하려니 아주 빠듯하네요 ㅋㅋ 그래도 이 소설같은경우 현재 많이 비축해둬서 부담이 덜하네요.
은하수보며님 // ㅋㅋㅋㅋ 2부 자체를 읽으시는 분이 몇 안되세요. 코멘 없어도 괘.. 괜찮아요 (주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