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탑hello님 // 즐감하셔요 좀 늦었습니다 ㅠ 165화
"감옥에 같힌 뒤에 거의 한달간 나는 죄책감과 공포심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또 누군가를 다치게 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그리고 도망치면서 찌르고 말았던 그 민간인에 대한 죄책감... 어느 하나 저를 마음 편하게 두지 않았지요."
설상 가상으로 강한 예언력을 가진 세빈과 강한 염원력을 가진 흑귀의 사이에서 태어난 흑향은 흑귀에게 있어 정말 쓸모없는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어째서인지 흑향에겐 예언 능력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며, 거기에 죄인의 자식이라는 오명이 붙으면서 그녀는 흑귀의 곁에 더이상 있지 못하게 되었다.
고작해야 10평 남짓 될까 말까한 작은 집에 버려진 그녀. 그녀를 보살핀 것은 다름아닌 비슷한 처지의 장 티엔이었다.
그나마 나이가 좀더 많기도 했고, 어떤 책임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세빈이 감옥에서 풀려날 때까지 흑향을 계속해서 보살펴 줬다.
흑귀는 오랜기간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 세빈을 더이상 감옥에 가둬둘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녀를 흑향이 있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 가보니 흑향이 있더라구요. 원하지 않은 자식이었지만 그래도 내 딸... 게다가 항상 거의 흑귀 곁에 있었기에 자주 보지도 못했던 내 딸... 왜일까요, 그 아이 때문에 난 조금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의 기운이 난 그녀는 인질로 잡혔던 부모님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얼마뒤 부모님의 행방을 알아낸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슬픔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토록 부모님을 인질로 잡고 자신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써먹었던 흑귀는 그녀에게 거짓말만 했던 것이다.
진즉에 그들을 살해한 흑귀는 가짜들을 이용해 세빈을 속였고, 사실을 알게된 세빈은 더이상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때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에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며칠을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나는군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장 티엔은 계속해서 그녀의 집으로 먹을걸 들고 찾아왔다. 물론 그는 단순히 흑향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흑향이 태어나서 1달을 봤을까 말까 한 그녀의 어머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장 티엔이 가져다 준 음식을 늘 세빈에게 먼져 가져다주고, 그녀가 쓰러지면 장 티엔을 통해 의사를 부르고...
그런 흑향의 지극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세빈은 조금씩 기운이 차려가기 시작했다. 먹지도 않았던 끼니를 챙기기 시작했고, 장 티엔과 흑향에게 반응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낳고서 한 번도 묻지 않았던, 단지 사령관과 그의 부인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칭호를 하사받아버린 비운의 아이인 흑향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흑향 역시 자신의 이름을 잘 몰랐다. 아마도 모두들 그녀를 흑향이라고만 불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빈은 그 순간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허울뿐인 칭호가 아닌, 엄마 아빠 중 누구의 성도 따르질 않기 원하며, 그녀에게 성이 없는 이름만을 지어준 것이다.
"그래서 '민아'라는 이름을 흑향에게 지어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3년 뒤 그 이름을 다시 잊게 되고 말지요..."
민아라는 이름을 들은 유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자주 듣진 않았어도 주기적으로 들었던 것 같은...
"정신을 차린 나는 흑귀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에게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게 해 주고 싶었죠. 가족을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오직 그를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었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또 다른 복수가 되지만 세빈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애초에 흑귀는 집권 당시에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을만한 것은 모두 제거해 둔 상태였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모두 제거한 그는 냉혈한 중의 냉혈한, 극악무도함의 끝을 달리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할 정도였다.
남은 가족이라곤 세빈과 흑향 뿐이었지만 흑향을 인질로 잡을 순 없었다.
그렇다면? 흑향을 통해 흑귀를 죽인다면, 그것 나름대로 그에게 굉장한 충격일 것이었다.
어찌보면 굉장히 잔인한 방법이었고, 흑향에게 굉장히 힘든 임무를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흑향이 굉장히 감정이 절제된 아이였다는 것과, 아버지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것은 분명히 세빈에게 호재였다.
어짜피 이름뿐인 흑향의 아버지, 분명 흑귀도 흑향을 단순한 인질로만 생각했을 게 뻔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곁에서 내쳤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난 장 티엔과 흑향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백영으로 돌아간 1990년의 가을까지 무려 3년간, 두 사람을 지옥같은 훈련을 통해 과거의 나 정도의 괴물로 키워냈죠."
안타깝게도 흑향은 자신의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다고 한다. 다만 그녀는 육체무술보다는 도구를 통한 전투에 능했기 때문에 장 티엔과 붙여놓으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오고 훈련했기 때문에 호흡도 척척 맞았던 두 사람. 이제 흑귀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세빈은 결국 작전을 실행하진 못 했다.
"내가 훈련에 몰두하며 예지몽을 꾸지 못한 사이, 그는 이미 장 티엔과 흑향을 끌어들일 작전까지 생각해뒀던 모양입니다. 그는 너무나도 당연하단 듯이 장 티엔과 흑향을 흑영의 전투부대로 불러들였고, 나는 기회라 생각해서 그들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주었죠."
절대 세뇌당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서 둘을 보냈지만, 결국 경험이 부족한 어린 둘은 흑귀에게 세뇌당하고야 말았다.
흑귀를 처단할 마지막 방법마저, 그렇게 무기력하게 흑귀에게 막혀버린 세빈은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자신이 함부로 움직였다간, 이제 되려 인질의 입장이 되어 버린 장 티엔과 흑향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순진하게 그들을 흑귀의 손아귀에 보내버린 자신을 탓하며, 세빈이 이제 몸을 의탁할 곳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자신의 딸과 아들같았던 장 티엔마저 빼앗기고 난 그녀가 다시 삶의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귀능의 접촉 덕분이었다.
1979년 정권 교체의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심연에 잠입해 일하기 시작했던 귀능이 규찬의 명령으로 흑영 내에서 세빈을 찾다가 3년만에 그녀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귀능은 세빈에게 접촉해 규찬이 백영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전혀 없었을 것만 같았던 희망은, 그녀가 오랜 기간 몸을 의탁했던 백영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예지몽을 다시 받으며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영으로 돌아가, 자신의 원래 남편을 만나고, 자신의 잃어버린 아이들을 되찾기 위한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규찬이 그녀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는 미지수였으나 귀능이 직접 찾아와 말을 전할 정도로 그가 세빈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세빈은 오로지 규찬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약한 희망만을 가지고, 결국 1990년 가을 백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뒤로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테지요. ... 장 티엔과 흑향에 대한 얘기는 사실 저의 남편도 모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그들을 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흑영에서 있었던 나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으니까..."
이야기가 끝났지만, 섣불리 아무도 말은 꺼내지 못했다.
침묵을 깨고 세빈에게 말을 건 것은 그녀를 곁에서 계속해서 지켜 왔던 이노우에였다.
"장 티엔을 키운 것은 영수님이지만, 결국 이용한 건 흑귀였군요. 백영 사람을 무참히 학살하고, 자신의 스승이자 어머니인 영수님을 암살하도록 명령한 것 역시 흑귀..."
자신의 어머니를 암살하라는 일이었지만, 장 티엔이 그토록 잔인하게 그녀를 몰아세웠던 이유. 그것은 바로 흑귀의 세뇌 때문이었을 것이다. 10년간의 완전한 세뇌는 세빈에 대한 기억을 잃게 함과 동시에 그녀를 죽여야만 하는 대상으로 바꾸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모든 배경에 흑귀가 있었다고 해도, 전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유나와 귀술 역시 동의했다.
유진은 뭔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이쪽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영수님이 과거 백영을 흔들기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아까 말은 안하셨지만 암살단이 괴멸된 때 진위님을 죽인 것도 영수님이시지 않습니까?"
세빈은 부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무의식 중이었다고 해도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총수님은 어떤 생각이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건은 총수님께도 충분히 충격적일 것 같으니까요."
슬쩍 돌아본 규찬의 모습은 굉장히 침체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또다른 아이, 그리고 도망쳤던 암살자가 그녀였다는 이야기까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있어 오늘은 믿기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저희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지만 이렇게 모든 사정을 듣고 나니 영수님을 이해하거나, 부정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수님도 충분히 이해하시겠지요?"
세빈은 그러라고 했다. 애초에 거절할 힘 따위 세빈에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 여보."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갔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규찬이 세빈에게 나즈막이 말했다.
"... 미안하오. 잠시 생각좀 하고 돌아오겠소."
서글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세빈이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를 비운 회의실은, 세빈과 유진 단 둘만 남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더워죽겠는데 이번엔 태풍이네요.
몇년만에 전형적인 8월 날씨인지...
다들 채비 단디 하시기 바랍니다.
선추코 감사합니다 :>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너무 더워서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시는건가요? ㅋㅋ은하수보며님 // 늘 휑하죠 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