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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61화 (160/188)

161화

그 말에 역시나 세빈은 당황했다.

도대체 유진이 무슨 근거로 세빈이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유진아. 내가 숨길게 뭐가 있다고..."

세빈은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침착하게 상황을 무마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유진은 절대로 자신의 의구심을 접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렇지만 언니? 제가 똑똑히 들었는걸요. 제가 여기 입구에서 싸우기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을."

유진은 세빈의 전투 내용을 듣고 굉장히 이상하게 여겼다. 미래에서 봤던 세빈은 분명 각개전투능력이라곤 없던 연약한 여자일 뿐이었는데, 과거로 돌아와 광백에 들어가기 위해 그녀가 벌였던 전투의 기록은 굉장했다.

급소만 정확히 노리고 상대의 발만 묶어내는 완벽한 기술들. 그것은 훈련으로만 다져진 유진과는 달리 완벽하게 실전경험에 의한 전투였다.

"그리고 오늘 언니와 함께 가겠다는 말에 반응하는 것만 봐도 그래요. 언니 솔직히 말해봐요, 사실 엄청 강하죠?"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아낸 유진은 배신감과 더불어 세빈이 굉장히 강한 전투병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오랜기간 전투에 임하지 않았음에도 그정도의 기량이 남아있다는 것은, 과거에 필시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세빈은 유진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진짜 뭔가 숨기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둘러댈 거리가 부족했던 것인지, 그녀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모두들 궁금하지 않아요? 난 지금 궁금해 죽겠는데. 미래에서 제가 언니를 지킬 때만 해도 언니는 굉장히 약해보였는데, 과거에 오자마자 이렇게 강해진다는게 말이 되요? 원래 강했는데 숨기고 있잖아요. 언니."

그 말에 이노우에도 조심스레 동의를 표했다.

"흠... 사실 저도 약간 의아하긴 합니다."

말하면서 규찬의 눈치를 살짝 보던 이노우에는, 딱히 그의 표정이 변하지 않음을 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영수님을 모신건 8년 전, 1992년 부터였죠. 하지만 그당시 영수님은 굉장히 베일에 쌓여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영수님의 진실된 모습과 강한 예언력으로 인해 사람들은 영수님의 자격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었지요."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이노우에의 말을 듣더니 귀술의 표정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의문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가 딱히 영수님을 의심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과거 기록을 좀 뒤져봤던 기억이 나는군요. 죄송합니다 총수님."

"아니다 계속 해 보거라."

규찬은 이노우에가 스스로 외람됨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을 바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알아낸 건... 영수님이 11년간 사라졌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979년부터 1990년 까지 11년간 백영에서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으셨다가... 1990년 가을 쯤에 홀연히 광백에 나타나셨었죠."

이노우에의 말이 계속될수록 세빈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분명 지금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과거였던 모양이다.

"영수님이 돌아오시고 2년 뒤 총수의 자리에 오른 총수님은 바로 영수님을 영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당시 많은 사람들이 영수님의 자질에 의문을 품었지만... 강한 예언력을 다루시는 게 알려지자 그 의문은 금세 사그라들었지요."

하지만 분명 이노우에도 궁금했던 것이다. 8년 전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갑작스런 영수 자리에의 등극. 그 이유와 그녀의 행방불명에 대한 비밀이.

"전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이제는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영수님?"

세빈은 한참동안 시선을 위로 향하지 못했다.

한참동안 고뇌하는 표정으로 책상만 묵묵히 바라보던 그녀는, 규찬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이젠 어쩔 수 없구려'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세빈은 더이상 숨기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여러분의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장내의 모든 사람이 잠깐동안 침묵했다. 가장 먼저 유진이가 세빈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귀술과 이노우에, 그리고 유나까지 알겠다고 말했다.

"그럼. 나와 총수님만 알고 있던, 1979년, 아니 더 그 이전의 이야기부터 여러분께 들려드리겠습니다. 부디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침을 꿀꺽 삼키는 세빈의 모습에 모두가 긴장했다.

얼마나 커다란 비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

"자 이걸 받으시오."

2장로는 장 티엔에게 가면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장 티엔은 흐물거리는 사람의 피부 조각 같은 물건을 보고 기겁했으나, 이내 그것이 사람의 얼굴 모양을 본딴 가면이라는 걸 알아챘다.

"5장로의 얼굴이오. 이제부터 심연에 들어갈 때는 그걸 쓰고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한참을 창고를 뒤지던 2장로는 검은 로브를 그에게 건넸다.

거울을 보며 5장로의 가면을 뒤집어쓴 장 티엔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로브까지 쓰니 완전히 5장로와 판박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런걸 어떻게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하지만 물어보는 장 티엔과 달리 2장로는 바쁘게 움직이느라 대답하는 것이 느렸다. 한참을 주변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그는 장 티엔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왔다.

"그건 제가 바로 심연 내의 이러한 특수분장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이걸 직접 만드신단 말입니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완전히 똑같은 모습의 가면을 제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르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도 세뇌당한 상태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이 자가 자신의 세뇌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놀라워하면서도, 장 티엔은 그를 추궁하면 흑귀에게 듣지 못했던 세뇌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어떻게든 알고 싶었던 진실을 과연 2장로가 알고 있을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혹시 흑귀의 세뇌에 대한 진실을 알고 계시다면... 좀 이야기해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알고 있지만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의향을 표시하는 2장로를 보며, 장 티엔은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 대 남자로써, 더이상 잃을 게 없는 남자의 간곡한 부탁을 2장로는 거절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흑귀는 분명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세뇌하여 자신을 위해 싸우도록 만들었습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흑귀가 집권한 것이 1979년. 그리고 장 티엔이 최고위직인 제1대 대장이 된 건 극히 최근인 1996년의 일이었다.

제1대 대장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장 티엔은 계속해서 진급해왔기 때문에 따로 흑귀와 면담한 적은 없었다.

그가 처음 흑귀와 대면한 것은 제1대 대장이 되고 나서였으므로, 그가 장 티엔을 세뇌했다면 그 이후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니요, 전 제가 제1대 대장일때도 그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흑귀에게서 벗어나 몇달간을 지낸 뒤 부하인 흑향의 의문 덕분에 깨달았기 때문에 그전까진 모르는게 확실합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눈 앞에서 이야기하는 2장로는 그것보다 더 커다란 사실을 말하려는 모양이었다.

"비단 세뇌를 당한건 당신만이 아니었습니다. 흑영이나 백영이나 마찬가지지만, 양쪽의 지배 구조는 총수와 사령관이라는 우두머리로 획일화되어있지요. 흑귀가 과연 당신만 세뇌시켰을까요? 아닙니다, 장로들, 제1대부터 3대 대장까지 모두를 세뇌시켰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흑영의 수뇌부가 모두 세뇌당해 있었다니?

"그게 무슨... 그게 정말 가능한 말입니까??"

장 티엔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반박했지만 2장로의 표정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왜 갑자기 최근들어 장로들이 갑자기 흑귀를 의심하기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흑귀는 왜 자신의 집권 후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저주에 대한 말을 갑자기 올해 넘어와서 꺼냈을까요."

그리고 세뇌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듯, 2장로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장 티엔의 귀를 마구 파고들어오는 진실의 홍수가 그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진실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현재의 흑귀는 흑귀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년 전, 아주 교묘하게 바꿔치기되었죠. 그건 집권 후 20년 동안의 흑귀의 행동과, 올해들어 완전히 바뀐 흑귀의 행동을 비교해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2장로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흑귀의 세뇌가 최근들어 약해진 이유, 그리고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던 저주 준비 명령 모두가 한가지 진실을 향한 증거였다.

과거 수뇌부를 세뇌하여 다스렸던 흑귀가 아닌,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대체된 흑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명확한 증거.

"왜 내가 이걸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느냐... 그건 바로 내가 2장로와 함께 비밀리에 흑영에 잠입해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저는 바뀐 흑귀에 의해 고용된 특수분장 제작 업자입니다."

그 말인 즉, 현재 흑귀는 과거 흑귀의 가면을 쓴 채 흑귀 행세를 하고 있지만 확실한 본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자신을 2장로라 칭하는 이 사람이 그 가면을 만들어줬다면, 그건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흑향이 우리쪽에 잡혀있으니, 군말말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요?」

「당장 정예 부대를 이끌고 백영의 광백을 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돌아온 한세빈까지 처치하고 오세요. 그 불여우 같은 년을... 꼭 처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흑귀를 찾아갔을 때 중간에 자신을 '나'라고 칭하지 않고 '흑귀'라고 3인칭으로 말했던 것과, 대화 막바지에 굉장히 변해버린 그의 말투는 여지없이 2장로가 알려준 사실들과 일치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장 티엔이 고민할 새도 없이, 2장로는 또다른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더운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선추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리리플

Z박령님, 신의탑hello님 // 본격 잠자리 공습의 시작이죠... 요샌 어떻게된게 8월에 제일 많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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