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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60화 (159/188)

160화

*  * *

"이봐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하늘에서는 구멍이 뚫린 것처럼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침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검은색으로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남자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지만, 깊게 잠든 것인지 남자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쓰러진 남자의 뺨을 두세대 때리고 나서야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듭니까?"

"쿨럭.. 쿨럭!"

일어나자마자 기침을 해 대더니 남자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근처에 없음을 확인한 그는 이내 자신을 깨워준 남자를 보더니 경계하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일단 당신의 적은 아니니까요."

쓰러졌다 일어난 사람은 다름아닌 장 티엔. 어떻게 수십 명이나 되는 자신의 정예 부대원들로부터 살아남아 이런 깊은 산 속에서 기절한 채로 발견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온 몸에 난 작은 생채기들이 굉장히 힘들게 살아남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깁시다. 여기 있다간 감기 걸리겠군요."

장 티엔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걸 본 알 수 없는 남자는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자신의 어깨를 넣어 걷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나저나... 누구십니까. 이런 깊은 산 속에 홀로..."

후드를 걸치고 있던 남자는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어떻게 소개를 해야할 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뭐 일단은, 흑영의 2장로로 알아두시는게 좋으려나요?"

장 티엔은 얼떨결에 따라서 동굴로 오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구해준 그 사람의 정체가 미심쩍었다. 2장로라고 말하긴 했지만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목소리가 그가 알던 2장로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과거로 돌아와 흑영에서 분명히 소식을 들은 터였다. 배반행위로 인해 모든 장로들은 처형당했다는 것.

그렇다면 그의 눈 앞에 자신을 2장로라 소개한 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하하, 2장로는 죽었는데 왜 여기 있냐는 듯한 표정이군요."

동굴 안의 화덕에 불을 붙이고 나서야 간신히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장 티엔은 후드를 걷어낸 그 남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짜 2장로입니까?"

겉모습은 분명한 2장로의 모습. 분명 장로들은 모두 죽었다고 했는데 그는 어찌하여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살아있는 것인지.

장 티엔은 눈을 의심하면서도 너무나 확실한 그의 모습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뭐... 사실은 원래 2장로는 아닙니다. 그는 죽었거든요."

"아니 그럼 누구란 말입니까."

하지만 그는 숨기는 게 좀 있는지, 자신의 본래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했다.

장 티엔은 굉장히 의심스러웠지만 이제 딱히 믿을 만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믿는다는 태도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건가요 장 티엔?"

다리를 걷고 부상당한 다리를 살펴보던 장 티엔은 뜬금없는 2장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 모르겠습니다."

참 기구한 상황이었다.

간신히 미래에 갔다가 흑영의 진실을 알아내고 과거로 돌아왔지만, 의문점이었던 사령관의 세뇌는 거의 기정사실인 것 같고... 게다가 믿었던 부하들에게까지 배신당한 상태.

그의 유일한 혈육이나 다름없는 흑향은 흑귀에게 붙잡혀 살아있는지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흑귀 사령관님... 아니 흑귀 그자는 이제 더이상 내 상관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뢰관계는 철저히 박살났습니다. 그리고 흑영은 내가 알던 흑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왜 지금 이 알 수 없는 남자에게 한탄을 하고 있는지, 장 티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은 판국에, 차라리 우연히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 이야기해보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흑향이 살아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차라리 그녀를 구하러라도 갈 텐데..."

아픈 다리가 비명을 질러왔지만, 그것보다 흑향을 잃었다는 크나큰 슬픔이 또다시 장 티엔의 가슴을 후벼팠다.

어릴때부터 함께 자라왔던 유일한 가족, 흑향에 대한 그리움이 또다시 장 티엔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알고 싶으신 것입니까?"

왜일까, 어째서 스스로 2장로라 칭하는 저 사람의 목소리가 굉장히 익숙하고, 그로 인해 그에게 흑향의 생사를 묻고싶어졌던 것일까.

"... 알고 계십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장 티엔은 2장로에게 부탁했다. 그는 더 큰 슬픔에 빠지기 전에 확실하지 않은 사실이라도, 2장로 단 한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이라도 듣고 싶었다.

"흑향이 살아 있다면, 나와 같이 심연으로 돌아가 내 일을 도와줄 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눈동자에서, 장 티엔은 굉장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슬픔을 느꼈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입장이라는 게 그 눈빛 하나만으로 이해된 장 티엔은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제 일을 도와주신다면... 바로 흑향이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 *

2000년 6월 1일.

전날 예지몽을 꾼 세빈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6월 10일, 확실하게 그날 모든 백영의 사람들이 혼이 빠져나간 듯 쓰러져 있는걸 그녀는 확실히 보았다. 얼마 전에 유나가 꿨던 꿈과 동일하지만, 이번엔 확실한 날짜였다.

"그래서 이렇게 대책 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으니, 다들 집중하시기 바라네."

규찬이 의장으로 선 이번 회의에는, 세빈, 유나, 이노우에, 귀술 그리고 유진이가 함께 참여했다. 과거로 넘어오긴 했지만 세빈이 어떻게든 미래로 돌려보내려고 애쓰는 중이었기에 유진을 끼워주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떻게든 얻은 전기 부품들로 이미 메카수트를 완충해둔 유진은 이번 회의때 그 파괴력을 시연해 보여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젯밤 영수께서 꾼 꿈에 의하면 분명 6월 10일인거군요. 9일 남았는데 과연 우리의 성물 방어진으로 저주가 막아질까 하는것이 이번 회의의 문제입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체로 성물 방어진의 방어력을 완전히 믿는 사람은 회의실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방어진이 버텨준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저주의 파괴력이 그보다 강력하거나 방어진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사태는 불보듯 뻔했다.

게다가 어제 세빈은 유나에게 모인 힘을 자신에게 옮겨 담으려 했으나 실패하기까지 했다. 절대 자신의 며느리를 자기 대신 희생시키기 싫었던 세빈은 필사적으로 힘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힘은 유나에게 묶인 것인지, 아니면 세빈의 몸에서 거부하는 것인지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유나가 자신도 할 수 있으니 걱정말라며 그녀를 안심시켰지만, 세빈은 대신 희생해야만 하는 유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세빈은 어떻게든 차선책을 강구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론 어떤 방법이 좋겠소."

규찬이 주제를 제시했지만, 안타깝게도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침묵이 장내에 가득했고, 그 정적을 깬건 다름아닌 굴러온 돌인 유진이었다.

"왜 직접 가서 저주를 막지 않죠? 원천을 봉쇄해버리면 굳이 막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잖아요."

하지만 그 말에 귀술의 눈썹이 들썩였다. 분명 작전을 수행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자신의 형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그 마음 모르는건 아니지만, 적이나 우리나 강한 예언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력행동은 위험하다. 아가야."

규찬이 귀술이 대신 유진에게 설명했지만 그녀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봤자 세빈 언니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 않나요? 며칠간 지켜봤지만 아무리 예언력이 강해도 한 사건 이상을 예언하진 못하는 것 같은데요."

물론 해보지도 않고 망설이는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유진의 성격상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귀술 역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나의 쌍둥이 형님도 단신으로 들어갔다가 현재 행방불명 되었단 말이다!! 그 대단하신 분도-"

"조용히 하거라 귀술아!!"

형의 실종으로 인해 잔뜩 민감해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음을 사과했다. 유진은 살짝 놀란 듯 했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느냐 아가야? 하지만 네가 딱히 심연의 지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모르겠구나."

그말에 유진은 살짝 당황했다. 대뜸 방법을 던져놓긴 했지만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잠깐 생각해보고는 머리위에 전구를 띄우며 손뼉을 탁 쳤다.

"그렇다면 저와 함께 가주실 누군가를 데리고 가면 되죠?"

귀술은 말도 안된다며 화를 또 내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이노우에가 간신히 그를 잡아말렸다.

하지만 유진도 딱히 이상한 방법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겐 미래에서 가져온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장비가 있었고, 그걸로 분명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규찬은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서 자신감이 나오는건지... 규찬은 그 확신에 가득찬 표정 때문인지 오랜 시간을 흑영과 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유진의 논리에 휘말릴 뻔 했다.

물론 유진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현재 장로들이 다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장 티엔은 흑영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분명 흑귀와 쉽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흑영의 전력이 어느 때보다 굉장히 약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는 게 유진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저 아이가 하는 말이 맞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내 말이 곧 백영의 길인데 내가 어찌 섣불리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규찬은 고민하면서도, 조금씩 유진의 방법이 굉장히 가능성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아군의 피해가 없이 적을 저지할 것인지, 백영을 이끄는 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고민이었다.

"어짜피 세빈 언니가 유나 아주머니 대신 힘을 받아 방어진을 작동하는건 어려워졌고... 그렇다면 저는 세빈 언니를 데리고 적진에 갔으면 하는데요."

그 말에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유진을 돌아봤다. 그중에 세빈과 규찬은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유진은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아주 확신에 찬 한 마디를.

"역시, 세빈언니, 뭔가 숨기고 있죠?"

============================ 작품 후기 ============================

더운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선추코 감사합니다 :>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잠자리 날아다니더군요! 아마 9월 말까지는 덥겠지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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