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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59화 (158/188)

159화

*

쓰러졌던 세빈이 다시 눈을 뜬 건 다음날 오전이었다. 충분한 잠을 자고 일어났던 덕분인지 그녀의 몸은 굉장히 가뿐했다.

세빈은 오랜만에 보는 광백 안쪽의 풍경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몇 달동안 2032년의 풍경만 보다 돌아와서 그런지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가볍게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한동안 주변을 살폈다. 익숙한 방에 익숙한 가구들, 어제 규찬 앞에서 쓰러졌을 때 이후의 기억이 없었지만 왠지 그녀는 안심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한동안 방 안에서 걸어다니며 창 밖으로 광백 안을 보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이노우에, 사람들 광장으로 모이게 해라 이쪽으로 더 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예 총수님."

그리고 문앞에서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에 세빈은 한달음에 문 앞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너무나도 보고싶었던 이의 모습에,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여보-!!"

자신이 현재 어려진 모습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규찬의 품에 달려들어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한 세빈은, 한참을 울고 나서 겨우 울음을 그쳤다.

"나.. 이런 모습인데도 어떻게 알아봤어요...?"

살짝 부은 눈을 규찬이 어루만져주고 있는데, 세빈이 어제의 일이 궁금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규찬은 손을 내리곤 다시 그녀을 가슴에 안고서 이야기했다.

"내 반려자의 어렸을 적 모습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잖소.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사이에 모르는 건 말이 안 돼지. 게다가 아무리 사람이 변해도 느낌이란 게 있는 법이잖소."

믿음직스러운 규찬의 대답에 세빈은 더욱 마음이 놓였다. 굉장히 위기일 거라고 생각한 백영은 나름대로 잘 지켜지고 있었고, 자신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 이끌어 온 것에 대해 세빈은 굉장히 놀라워했다.

"다 내가 한 것은 아니라오. 이노우에, 유나, 그리고 귀술, 귀능... 모든 백영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이끈 것이지."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현재까지의 진척 상황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그에게 물었다.

"일단, 사람들에게 당신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겠지. 방금 전 그들이 몰려온 이유도 당신이 영수임을 알아봤기 때문이오. 대단하지 않소? 무려 5달이나 실종되었는데 아직도 그들이 당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게."

세빈은 밝게 웃었다.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흑영과의 이 오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그녀는 이제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위기의 순간 미래로 갔다가, 또다시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로 돌아온 그녀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그녀는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이었다.

"그럼 일단,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옵시다. 이야기는 그 뒤에 마저 하고. 미리 사람들에게 이노우에를 시켜 사정은 대강 설명해 두었으니까, 나머지는 당신이 하면 되겠구려."

*

한편 머릿속의 기억을 짜내며 유진이는 광백의 근처까지 온 상태였다.

미래에서는 종이로 만든 지도라는게 거의 필요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매번 GPS와 스마트폰에 의지하던 그녀에게 길 찾기란 정말 굉장한 어려움이었다.

유일한 단서는 그녀가 광백에 도착해서 봤던 그 산악관리소 뿐이었다. 오로지 감과 산악지도가 유일한 정보인 상황에서, 갈수록 허기져가는 그녀의 배가 고통을 호소해오기 시작했다.

"아우.. 벌써 배고프네."

밥을 분명 어제 저녁에 먹었지만, 그거 한 끼로는 역시 해결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어서 세빈을 찾는게 그게 안정적으로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배고픔도 무릅쓰고 그녀는 산을 이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후.. 그래 다시 처음부터 찾아보자."

게다가 산의 모습도 과거랑 거의 비슷하긴 했어도 완전 똑같지는 않았다.

여기가 저기같고 저기가 거기같고... 같은 길을 세번이나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게다가 메카수트 배터리도 며칠동안 충전하지 못한 탓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침착하라고 담임선생님이 수업 때 말한걸 떠올리며 그녀는 다시금 머릿속에 길을 그리시 시작했다.

메카수트에서 빠르게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준비를 마친 유진은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못 가면... 끝이야!'

*

긴 연설을 마치고 나서, 세빈은 감정이 격하게 요동치는것을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직 백영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고, 자신을 포함한 수뇌부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보고 온 확실한 미래, 그것은 백영이 승리했음을 말해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흑영이 어떻게 한들 백영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들은 몰락할 것이었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든 버텨 낸다면 미래는 백영의 편이라는 것이다.

휘하의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준다면, 더욱 사람들과 함께 닥쳐오는 위기를 막기가 수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뭔가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회의실에서 이노우에, 서 총수, 귀술과 유나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던 세빈은, 과거로 돌아온 뒤 줄곧 잊고 있던 뭔가가 기억나지 않음을 알아챘다.

분명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는데, 과거로 돌아오면서 잊어버린 듯한 사실...

'아!'

그리고 그녀가 그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회의실에서 규찬과 이노우에가 뛰쳐나왔다.

"이노우에, 서둘러 입구쪽으로 먼저 가라!"

"네 총수님!!"

세빈은 자신이 잊고있던 사람, 유진이가 갑자기 떠올라 안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규찬의 등장으로 더욱 놀랐다.

"무슨 일이에요 여보?"

게다가 굉장히 급한 일이었는지, 규찬은 설명해 줄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고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했다.

얼떨결에 그를 따라나선 세빈은 광장을 지나 입구에 도착할 때쯤 그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굳이 이유를 자세하게 듣지 않아도 입구에 보이는 사람을 보고 금세 이해했다.

"유진아!!"

분명 유진이는 힘들게 광백의 입구를 찾아 들어가려고 했지만, 어제 세빈이 겪었던 것과 비슷하게 제지를 당했던 것이 분명했다.

물론 모든 백영 사람들에게 세빈이 돌아왔고 어려졌다는 사실까지는 잘 알려졌지만, 그녀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유진이 또한번 지나가려고 하니 경비병으로써 그녀를 제지한 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빈은 다시 만나게 된 유진을 보고 반가움보다 먼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분명, 어제 입구로 들어가려고 여러사람에게 부상을 입혔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혹시나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힐지 몰라 메카수트를 끈 채로 애쓰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었다.

"모두 멈춰요!! 멈추세요!!!"

세빈의 한 마디에 모든 병사들은 움직임을 멈췄고, 그와 동시에 유진도 그자리에 멈춰섰다. 헐떡거리면서 안쪽을 주시하던 그녀는 입구에 서 있는 세빈을 보더니 엄청나게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

꺼뒀던 메카수트를 바로 켠 뒤, 유진은 하늘을 날아 세빈 앞에 착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병사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유일하게 세빈만이 당황하지 않은 채 유진을 꼭 안아주었다.

"미안하다.. 완전히 잊고 있었구나. 나도 어제 간신히 도착한 터라 깜빡 했지 뭐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 따로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쉽게 왔을텐데... 저만 이상한데 떨어지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거죠 뭐..."

하지만 안아준 것도 잠시, 그녀는 바로 유진에게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멋대로 과거로 넘어와버린 그녀를 혼내는 것이었다.

언짢은 표정으로 설교를 듣고 있던 유진은 일단 넘어온 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세빈은 쉽게 그녀를 용서해 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말렸음에도 말 안듣고 세빈을 따라온 것, 특히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 유진에게 있어 굉장한 잘못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세빈의 설교에 유진은 간신히 마음을 고쳐먹은 듯 죄송하다로 일관했다. 그제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 사실을 머리로 이해함과 동시에 먹구름이 얼굴에 드리웠다. 분명 스스로도 자신이 넘어온 이유를 아무리 합리화 시켜봐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건이 되면 당장 미래로 돌려보겠다는 세빈의 말에 유진은 여전히 수긍하지 않았다. 무력으로 그녀를 돌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세빈은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비겁하다면 비겁했지만, 유진이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겐 엄청난 전력의 보탬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함께 들어가면서, 유진은 세빈에게 대뜸 물어왔다.

"언니, 이 안쪽에 전기설비 되어 있어요?"

물론 세빈은 그쪽은 잘 모르는 이야기였기에 이노우에에게 물었고, 그는 220볼트 전원까지는 잘 되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유진은 330v는 없냐고 되물었지만 2000년대에 그런 설비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유진은 어떻게든 메카수트를 충전시켜야 했기 때문에 세빈에게 전기부품을 좀 얻어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어려진 영수 세빈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했지만, 행동은 전혀 다른 소녀를 보며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특히 규찬과 이노우에가 굉장히 난감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두 사람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었겠지만, 그 혼란은 세빈이 곧 해결해주었다.

"자, 이렇게 항상 머리 묶고 다니렴. 그 편이 움직이기도 편할 테고 그래야 우리가 구분이 될거 아니니."

유진도 그제서야 뒤늦게 세빈이 원래 몸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수임을 나타내는 본인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어려진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과거의 연륜은 느껴지지 않는 세빈을 보며 유진은 자신이 잘못하긴 했어도 과거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외모만 변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가진 힘까지 약해진 것만 같은 세빈을 도와야 한다, 그건 세빈이 미래로 넘어왔을 때 부터 유진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주말이 끝나가네요.

남은주말 잘 보내시고 새로운 한주 준비 잘하시기 바래요!

선추코 감사합니다!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다행이네요. 하지만 곧 무더위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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