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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56화 (155/188)

156화

*  * *

2000년 5월 26일.

"됐다, 아가 거기 서보거라."

광백 내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광장에 모여 규찬과 유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함께하고 있는 귀술의 표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표정 풀거라 귀술아. 오던 복도 달아나겠구나."

"... 예 총수님."

규찬은 그가 왜그리 인상을 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소율이를 구하겠다고 흑영의 심연에 홀로 침투한 귀능이 연락이 끊긴 지도 벌써 2주가 넘었다.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쌍둥이 형 때문에 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걱정 말거라, 녀석이라면 분명 어딘가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거다. 그렇게 쉽게 당할 녀석이 아니라는 걸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귀술도 자신의 형이 보통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 쯤이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에겐 강한 예언사가 있고, 형은 그런 위험한 곳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갔다. 계속 오던 연락도 끊긴지 한참 되었기 때문에 불안함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아까 설명해준 대로, 방어진과 하나가 된다는 느낌으로, 성물과 공명해보거라."

하지만 오늘은 백영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날.

오랫동안 기원을 통해 자신의 몸을 부적화 해온 부영수 유나가 드디어 백영을 저주로부터 지킬 방어진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축적했기 때문이었다.

[고오오오]

광백 안의 공기가 진동하면서, 동굴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돌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진동은 몇분정도 계속되었다.

마침내 진동이 멈췄을 때에는 유나의 몸이 밝게 노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지, 잘 했다! 완벽하구나!"

규찬의 말을 듣고도 유나는 한동안 힘을 유지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정신집중을 풀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사라졌고, 동굴을 가득 울리던 공명음도 이내 잦아들었다.

"하... 후..."

그러나 백영을 지키는 성물과의 공명을 풀자마자 유나는 바닥에 손을 짚으며 쓰러졌다. 분명 과도한 힘의 사용이 문제가 됬을 것이다.

"역시... 저희 육체로는 감당하기 힘든 힘이군요..."

유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규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며느리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는 걸 어떤 시아버지인들 좋아하겠는가.

안그래도 그간 예언몽을 받아오면서 고생한 몸이기에, 그녀의 몸으로 이런 무리한 방어진을 움직이는 것은 굉장한 휴우증을 동반할 것이 분명했다.

"괜찮겠느냐 아가야."

간신히 몸을 추스린 그녀는 힘들게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규찬을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총수님."

부담스러운 일, 굉장히 힘든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하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이제와서 규찬은 꺾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세빈이 사라지고 난 뒤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넘어온 일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할 무렵 규찬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유나를 압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주가 발생하기 전까진, 절대로 안정을 취하거라. 예언몽도 일절 꾸려고 하지 말고. 알겠느냐?"

유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술아, 모시고 가서 침대에 눕혀드리고 간호를 좀 해드리거라."

"예 총수님."

유나를 처소로 돌려보내고, 군중도 모두 제 위치로 돌려보낸 뒤 규찬은 한참동안 고민했다.

유나와 방어진으로 저주를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과연 그것만으로 막을 수 있는 저주인가 하는 것이었다.

'순응의 저주가 만약 방어진으로도 방어할 수 없는 저주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엄청나게 큰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책이 없는 현실에 그의 발걸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서울 63빌딩 꼭대기.

믿기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며 소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왜 나만 하필이면 여기 따로 떨어진거지?"

몸에는 제대로 메카수트를 착용한 채, 가방 속에 여분의 연계기동용 메카수트와 배터리를 휴대한 그녀는 현재 2000년의 서울에 와 있었다.

"언니랑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32년 전의 듣도보도 못했던 과거의 풍경들을 둘러보면서 유진은 익숙하지 않은 도시를 눈에 담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32년 전의 같은 날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머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위치에 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자신은 급히 균열을 통해 넘어오느라 나머지 사람들끼리 휴대중이던 무전기조차 없었다.

"으으 생각해라 생각해! 어딜가면 다들 만날 수 있을까!"

32년의 세월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인지, 미래에서 가져온 50만원가량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하루 끼니는 시식 코너에서 어떻게든 해결했지만, 빠르게 세빈과 접촉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아르바이트 할 수도 없는 꼴이고 말이지.'

1분 1초가 부족한 시점에서 여유로운 생각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어느정도 가능성이 보이는 곳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거기로 가면!'

장소를 정한 그녀는 빠르게 고글을 장착해 좌표를 찍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녀가 가져온 고글의 GPS는 완전 먹통이 되어 있었다. 미래에서 가져왔기 때문인지 과거의 기기들과 연동이 전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헐. 직접 찾으라고?!"

*

한편 심연의 깊은 곳, 흑귀의 처소에서는 때아닌 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소율의 소식이 끊겨 굉장히 민감해져 있었던 흑귀는, 뜻밖의 방문자로 인해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사령관님."

분명 1월 경에 사라졌던 그의 가장 충직했던 심복 장 티엔의 뜻밖의 귀환. 아무도 찾지 못했던 그가 돌아온 것은 흑귀에게는 계산상의 일이 아니었다.

"자네가 살아있었다니. 무려 5달이나 연락이 끊겨서 난 죽은 줄로만 알았네."

장 티엔이 흑귀를 찾아온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세뇌에 대한 대답, 그것을 제외하면 그가 흑귀에게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죽는것을 바랬던 것 같은 듯한 흑귀의 말투에, 장 티엔은 신경이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죽었으면 했다는 말투시군요 사령관님."

하지만 그는 사령관 앞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자제력으로 외람된 말을 자제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세뇌당했다는 그 사실에 대한 대답을 듣기 전까진 그를 사령관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님. 질문드릴 게 있습니다만, 제대로 답해 주실 지는 모르겠군요."

장 티엔의 거슬리는 말투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흑귀는, 이어지는 그의 질문에 점점 더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심연은 5달 전과 굉장히 많이 변했더군요. 꽤나 많이 사라진 흑영의 사람들, 그리고 어수선해진 심연 내의 분위기... 분명 우리 조직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통제력을 잃기 시작한 사령관님께서는 장로들을 배반의 명목으로 제거하셨고 말이지요."

심연에 들어오면서 장로들의 이야기를 들은 장 티엔은, 어수선한 심연 내의 분위기 때문인지 불신감이 이미 커질대로 커진 상태였다. 자신이 그렇게 수족처럼 다루던 장로들을 죽였다, 그것도 배반의 명목으로?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로 알 수 있듯이, 과연 그들이 어떤 이유로 배반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세뇌가 풀린 저, 장 티엔 역시 마찬가지로 배반의 명목으로 처단하실 계획이십니까?"

흑귀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흑영 무렵집단의 최고봉, 5명의 암살자와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괴물같은 사나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제게 다시 세뇌라도 거실 생각이신지요?"

물론 장 티엔의 이런 질문들은 대부분 떠 보기 위한 것이었다. 확실히 흑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세뇌에 이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확실한 무력을 앞세워 그를 제압해둔 뒤 제대로 된 정보를 캐내려는 목적이었다.

"... 내게 어떤 대답을 듣길 원하는 거지 장 티엔?"

하지만 흑귀 역시 순순히 그의 질문에 대답하진 않았다. 질문을 회피하면서 흑귀는 역으로 장 티엔에게 물어봤다.

"당연히 세뇌에 대한 진실을 듣고싶은 겁니다 사령관님."

흑귀는 어쩌면 장 티엔을 다시 회유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마지막 대답으로 인해 흑귀는 그가 절대 타협할 생각이 있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의 마음을 확인한 흑귀는, 바로 어딘가에 전화했다.

"아, 5장로 날세... 그래, 그래 데리고 오게."

전화의 내용을 잠자코 듣고 있던 장 티엔은 그가 뭘 하는 건지 잘 몰랐다. 처음엔 누굴 데리고 오라는 것인지 싶었지만, 금방 확신에 가까운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햇다.

그것은 그가 흑귀를 마주하기 전 미리 약속장소에 숨어있으라고 지시했던, 자신의 부하 흑향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녀 역시 한 명의 훌륭한 암살자이므로 절대 잡힐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공포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장 티엔,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구만. 그냥 내버려두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인 네녀석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이 방법밖에 없겠군."

이윽고 문이 열리고, 뒤에서 5장로에게 끌려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본 장 티엔은 그대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령까지 사라진 지금 흑귀에게 예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고, 그렇기 때문에 흑향은 절대 발각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그였다.

하지만 그가 아닐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사람, 흑향이 5장로에게 잡혀서 끌려들어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리리플

Z박령님 //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ㅠㅠ 왜 저걸 발견을 못했을까요. 2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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