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갑작스러운 소리에 혼다가 놀라 대문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니, 윤하가 지훈이를 데리고 와 있었다.
"아니 누님, 여기 어떻게 찾아오신거에요?"
그들이 윤하에게 위치 자체를 알려준 적이 없었기때문에, 어떻게 찾아왔는지가 더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짜고짜 혼다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온 윤하는 균열 앞에 서 있는 세빈을 보고 소리쳤다.
"할머니, 유진이, 유진이 못 보셨어요?!"
그러나 유진이를 데려온 적이 없는 세빈이 그녀의 소재를 알 리가 없었다.
"무슨 소리니 데려온 적이 없는데."
하지만 이어지는 지훈의 말에, 세빈은 기겁을 했다.
"하지만 유진이 메카수트에 달린 GPS장치의 위치가 여기란 말이에요!!"
'이곳에? 하지만 어떻게? 위치를 알려준 적도 없고 데려오지도 않았는데-'
세빈과 혼다가 놀라 주변을 살핌과 동시에 달려온 윤하가 실수로 집중하고 있던 B그룹의 염원사들을 밀고 말았고, 결국 그로인해 다수의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균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놀란 염원사들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균열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한번 흐트러진 균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요동치던 균열은 다시 그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큭, 큰일이다! 영수님 어서 들어가십시오!!"
"하지만 유진이가 이 근처에 있다는건...!
바로 그 때였다.
니시노가 집 안을 확인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지붕 위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언니!! 가요!!"
익숙한 기계소리, 그리고 익숙한 기계에서 방출되는 배기음. 세빈과 지훈은 그 소리를 듣는 즉시 누가 나타나는 지 알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날아든 그림자가 곧 세빈을 덮쳤고, 햇빛때문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 눈에 들어온 세빈은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그대로 낙하한 사람에게 안기고 말았다.
"유진아!!"
"갑니닷-!"
윤하가 그 모습을 보고 그녀를 붙잡으러 달려갔지만, 이내 혼다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안돼 윤하야-!!"
"누님 위험합니다! 가까이 가면 안돼요!!"
제지당한 윤하를 보며, 유진은 끼고 있던 고글을 들어올린 뒤 윙크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손을 뻗으면서 소리치며 어떤 기분인지도 모른 채.
"걱정 마세요 엄마, 다녀올게!"
점점 작아지는 균열로 먼저 세빈을 들여보낸 뒤 유진은 다시 고글을 썼다.
"안돼애-!!!"
사라져가는 균열 속으로 유진이 몸을 던졌고, 염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균열은 유지되지 못한 채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듯한 그 자리에서, 모두가 침묵을 지킨 가운데 오열하고 있는 사람은 윤하 한 사람 뿐이었다.
* * *
2000년 5월 25일.
"..."
자신의 처소에서 자다가 깬 흑귀는 침대에 앉아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생각을 정리한 뒤 5장로에게 연락했다. 그렇게 만날 약속을 잡아두고 나서 두 사람은 대회의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젠 정말로 조용하군... 둘뿐이라니."
"뭐 어떻습니까. 처음 시작할 때 느낌 나고 나쁘지 않습니다만."
뭔가 둘만이 알 법한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은 곧 한 가지 주제로 말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역시 범인은 2장로 같습니다. 예언몽에 따르면 말이지요..."
계속해서 사라지는 악념병, 그로인해 맞춰지지 않는 500병째로 인해 그들은 위기 아닌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5장로, 분명 해치웠다고 하지 않았소?"
예언몽에 의한 확실한 증거를 통한 흑귀의 그런 의심은 5장로를 살짝 동요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해치웠습니다. 창 밖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확실히 해치웠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5장로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그 날 소율이가 있던 방에서 귀능을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기억으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뭐 5장로님께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신다면."
흑귀는 믿는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그 표정 안에 자네를 신뢰하고 있으니 우리의 일이 방해받지 않도록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럼 나는 슬슬 진(陳)을 준비하러 가겠소. 뒷일은 맡겨두지."
5장로는 알았다며 가볍게 목례했다. 인사를 받은 뒤 흑귀는 바로 회의실에서 나갔다.
홀로 회의실에 남은 5장로는 굉장히 화가 난 듯 했다. 아마도 자꾸만 악념병을 없애고 있는 범인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어떤 자식이... 감히 2장로의 탈을 쓰고 귀찮게 하는 것인지..."
* * *
한편 2032년의 같은 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재희는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자신도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지만, 윤하의 죽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재희 역시 죽을맛이었다.
"저기... 여보. 그래도 밥은 좀 먹는게..."
그 엄청나게 무거운 분위기도 문제지만, 윤하가 아예 식음을 전폐해 버렸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유진이가 시공의 균열을 통해 세빈을 따라간 지 이틀째, 그동안 6끼니를 먹을 기회가 있었지만 윤하는 그 시간동안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아..."
하루종일 소파에 걸터앉아 허공만을 바라보는 윤하를 보고 있는 재희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여보 나 어떻게 하면 좋아..."
마치 죽은 사람처럼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는 윤하의 옆에 앉아 그녀를 조용히 안을 뿐, 재희는 딱히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시간이 흘렀다.
약 두 시간이 흘러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질 무렵, 누군가가 조용한 집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어이, 두 사람. 왜 그래 둘 다?"
윤하를 안은 채로 깜빡 잠이 들었던 재희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집안에 들어온 사람을 보니, 전에 봤던 트렌치 코트가 보였다.
"아, 레이 누나. 어쩐 일.... 이 아니지 집엔 어떻게 들어온거에요?!"
분명 집 전자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도 없건만 집에 들어와 있는 그녀를 보며 재희가 화들짝 놀랐다. 그 소리에 윤하 역시 정신이 퍼뜩 들었는지 레이의 존재를 눈치챈 듯 했다.
한참동안 윤하의 상태를 지켜보던 레이는 굉장히 서글픈 듯한 표정을 짓더니, 윤하가 앉아있는 자리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윤하야, 그런 표정 하고 있어도 내 말 다 들리지?"
역시나 윤하는 반응이 없었다. 유진이가 없어졌다는 충격을 받은 이후로 그녀는 외부의 어떤 정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걸로 알고, 말할게."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유진이가 차원의 균열을 넘어 과거로 가버렸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문제는 윤하가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더이상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유진이 얘기야."
그리고 유진이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너무나도 민감한 윤하로써는, 레이의 입에서 나온 유진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이제야 좀 사람 같구나... 걱정 마 윤하야. 내 예지몽이 말해주고 있으니까."
"그게, 그게 진짜야 언니...?"
이틀만에 처음으로 말한 윤하는 옆에 앉아 있는 재희 역시 놀라게 만들었다.
"유진이는, 반드시 6월 11일. 정확하게 이 자리로 돌아올 테니까."
힘이 담겨 있는 레이의 말을, 윤하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확신할 수 없어도 실낱같은 희망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내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아니 믿는다면, 유진이가 너의 품으로 돌아올 때 까지 절대로 약해지지 마."
"언니..."
레이가 마주잡은 윤하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두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힘내. 서윤하. 더 긴 시간도 참아왔잖아? 딱히 이런 말로 위로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난 확신할 수 있어."
"응, 믿을게... 진짜 다 믿을게, 믿고 버틸게."
어떻게든 다시 삶의 의지를 이어가겠다고 말하는 윤하를 보면서 재희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미소짓고 있었다.
"힘내, 어-... 아니 윤하야."
간신히 일어선 윤하를 꼬옥 안은 채, 레이는 굉장히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하루종일 비가 오는군요! 비피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선추코 항상 감사합니다 'ㅅ'/
+추가 : Z박령님 세상에, ㅋㅋㅋ 2틀이라고 오타를 냈네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업로드하기 전에 검토 하는데 이걸 못봤네요 ㅠㅠ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두고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