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6. 진실>
"흑귀님 이상하게도 요새 모아둔 악념병이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흑귀는 그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감시카메라도 있는데 누가 빼돌리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오?"
"그것이..."
5장로의 말에 따르면 분명히 병은 사라지고 있는데, 감시카메라에는 사람이 들어온 흔적이 전혀 잡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가 입구와 병이 놓여진 쪽 둘 다를 찍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 병만 자꾸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어짜피 몇 병 안 남지 않았소. 남은 병만큼 빨리 채워 넣고, 부하 중 믿을만한 녀석을 시켜 그 방 주변을 완전히 포위해 지키도록 하시오."
알았다는 말과 함께 5장로는 흑귀의 처소에서 나가려고 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를 흑귀가 '아'하는 말과 함께 다시 불러세웠다.
"그러고보니 배신자 녀석들은 모두 잘 처리했겠지요?"
"물론입니다. 역시나 그 축에는 2장로가 있더군요."
흑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7장로는 제가 처리했으니 이제 우리의 계획을 의심하는 자는 백영 말고는 더 이상 없겠군요. 뭐 다행입니다, 어짜피 알아봤자 좋을 것 하나 없으니..."
주전자의 차를 찻잔에 따라담으면서 흑귀는 다시끔 나가려는 5장로의 발을 묶었다.
"참, 그러고보니 요새 사령이 보이지 않는데, 혹시 어디 갔는지 모르시오?"
그 말에 5장로는 살짝 몸이 떨렸지만, 그건 흑귀가 눈치챌 정도까진 아니었다. 애초에 거리가 거리인지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5장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글쎄요, 전 사령관님께서 비밀 임무라도 시키신 줄 알았습니다만."
그의 대답을 들은 흑귀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조용히 찻잔에 따른 찻물을 한모금 들이키고서 창 밖으로 심연 내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러시오."
창밖을 내려다보던 흑귀는 5장로가 나간 뒤에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자신이 총애하던 부하의 부재 때문이었는지, 그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보였다.
* * *
2032년 5월 23일.
며칠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윤하의 노력으로 장 티엔과 세빈은 과거에 다루던 힘만큼을 회복할 수 있었고 오늘은 그동안의 준비를 토대로 마침내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날이었다.
수도 없이 염원사들과의 연습을 통해 균열을 여는 준비를 했고, 어떤 장소에서 열리는 균열이 과거로 돌아가는데 적격일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었다.
"자 그럼, 다들 준비 되셨으면 이동하도록 합시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본 결과는, 세빈과 장 티엔이 미래의 같은 지역에 떨어진 것으로 보아 분명 그 장소가 과거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란 의견이었다.
세빈 역시도 그러한 의견을 에상해본 예지몽을 통하여 어느정도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준비는 됐나 장 티엔?"
"... 물론이지."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세빈은 장 티엔에게 물었다. 준비 되었냐는 말은 균열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지만, 과거로 돌아간 그가 흑귀에게 돌아가 궁금했던 점을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미 장 티엔은 흑향과 완전히 마음을 맞추고, 어떻게든 진실을 파헤쳐 볼 생각이었다. 흑귀가 자신에게 세뇌를 걸었는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
"유진아~?"
일요일이지만 당직인 재희가 집에 없어 텅 비어버린 집에 홀로 남은 건 윤하 뿐이었다.
세빈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드디어 과거로 돌아간다며 아까 작별 인사를 모두 마치고 떠났지만, 유진이는 분명 아까 인사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유진아!"
집 안을 샅샅이 뒤져봐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 유진이의 모습 때문에 슬슬 윤하는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녀가 그렇게도 분신처럼 달고 다니는 메카수트마저 함께 없어진 상태였다.
불안감을 주체할 수 없게 된 윤하는 재빨리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훈아, 혹시 유진이 거기 있니?"
[아 아줌마. 아뇨?]
그녀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한 가지 가능성만이 아니길 빌며, 그녀는 지훈이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혹시... 그럼 유진이 메카수트 거기 있니 지훈아?"
그간 자꾸 메카수트를 들고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혹시 지훈이네 집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만, 그녀의 희망과도 같았던 생각은 틀렸던 모양이다.
[아... 아뇨?]
안돼,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빌었는데. 윤하의 마지막 희망이 무너짐과 동시에 그녀의 억장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아줌마? 아줌마 괜찮으세요??]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한동안 수화기를 놓지 못한 채 일어나지 못했다.
*
사람들이 다시 모인 곳은 장 티엔과 세빈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그래 여기가 확실하군."
장 티엔은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더니 뚜벅뚜벅 걸어 어느정도 가서는 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던 혼다와 니시노는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집을 어찌하여 아직도 철거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정도면 거의 몇십년은 되어보이는 건물인데... 왜 아직도 안 부수고 그대로 둔 걸까요?"
세빈 역시 건물을 한번 쭉 둘러보고는 놀랍다는 감상평을 이야기했다.
"그때는 당황해서 미처 못 봤는데... 이건 마치 내가 살던 시대의 느낌이 나는 집이구나. 요새 지어진 집들과 다르게 딱 그시절 즈음의 느낌이 있어..."
그녀의 말에 장 티엔과 흑향 역시 동의했다. 건물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오래된 건물을 아직도 방치해 두고 있는 걸까?
"상태도 한 해에 몇번씩은 청소하는 것 같고 말이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인데 먼지가 그렇게 많지 않구나."
뭐 여러가지 가능성은 떠올랐지만 지금으로써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중요했던지라, 사람들은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집의 마당 한 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밖에서 누가 볼세라 대문을 걸어 잠근 채로 50명가량의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장 티엔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자 그럼, 다들 준비 되셨는지요."
장 티엔과 모든 염원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세빈은 그들의 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았다. 미래로 넘어온지 근 5달 만에 과거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 설레게 만들었다.
어젯밤 미래에서 함께했던 가족들과 안녕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찾아온 못난 아들과도 실컷 이야기했다. 그 순간만큼은 돌아가는것이 어찌나 아쉬웠던지, 그녀도 눈시울을 붉혔다.
어제 생각을 하다보니, 세빈은 끝끝내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바락바락 우기던 유진을 떼어놓느라 고생했던 것도 생각났다.
「왜요! 갈 수 있으면 돌아올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럼 돌아오면 되는데 뭐가 문제에요?!」
「하지만 언니 가서 또다시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하지만 데려갈 수 있을리가 없었다. 원래 과거의 사람이 아니었던 유진을 과거로 데려간다는것은, 꼭 다시 돌려보내야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진과, 그녀가 다루는 메카수트를 과거로 함께 가져간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으나, 미래의 사람이 과거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의 트러블을 일으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를 절대 보내줄 수 없다는 윤하와 재희의 입장 역시 세빈은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가고 싶은데... 가서 언니를 도와주고 싶은데...」
그렇기에 유진은 절대로 데려갈 수 없었다. 가족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는 기분을 절대로 윤하와 재희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유진이가 세빈을 돕겠다는 마음이 강하다고 해도, 그녀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겁도 없이 세빈을 따라가겠다고 이야기했는지는 몰라도,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빈의 설득에 결국 가겠다는 마음을 접어버린 유진이었지만, 그 풀죽은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몰래 따라나설까봐 집에서 출발 후에도 윤하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유진은 얌전히 자신의 방에 있었다.
"흐으아앗!!"
어느덧 양쪽의 힘의 부딪치며 균열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 앞에서 작은 점으로 시작한 균열의 크기는 점점 커져 어느덧 세빈의 상체를 집어삼킬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이제 조금씩 힘을 조절하세요!"
양쪽의 힘이 조금씩 안정화되가고, 빠르게 확장하던 차원의 균열 역시 그 일렁이는 어둠을 차차 동그랗게 말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차원의 균열의 모양이 칼로 찢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면, 지금의 모양은 이제 흔히 게임이나 만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타원형의 모양이었다.
"좋아요, 장 티엔 서서히 힘을 줄이면서 A조 25명은 이리로 빠르게 넘어오세요."
균열의 크기와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힘의 격돌이 필요했다. 하지만 처음 균열을 확장시키는 것과 다르게, 유지할때는 그렇게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장 티엔은 과거로 넘어가기 위해 빠져야 했으므로 50명의 염원사 중 25명이 장 티엔이 하고 있던 역(逆)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빠르게 임무의 교대가 이루어지고, 안정된 차원의 균열은 칠흑같은 그 자태를 뽐내며 하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자 그럼, 우리는 이만 넘어가도록 하겠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영수님."
세빈은 균열 앞에 서서 정말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작별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혼다와 니시노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그녀의 아들인 서진 총수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전해주었다.
"우린 먼저 들어간다, 따라서 들어와라 한세빈."
장 티엔과 흑향이 균열에 가까이 다가가자, 균열이 그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이 균열에 접촉한 장 티엔을 삼켜버렸고, 곧이어 흑향마저 삼켰다.
세빈이 혼다의 손을 놓고 균열로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대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할머니!! 혼다!!! 빨리 이 문좀 열어보세요!!"
============================ 작품 후기 ============================
슬슬 장마전선 올라오나보네요. 날이 꾸리꾸리한걸보니!
선추코는 사랑입니다 :> 클릭해주시는 독자님들 사랑해요 :D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아 그러셨군요 ㅋㅋㅋㅋhohohotoyo님 // 네 2부 7장으로 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