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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52화 (151/188)

152화

*  * *

2000년 5월 2일. 지난번 흑귀를 기습하면서 장로들을 붙잡은 백영은 비밀스런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 역시 유나가 본 예지몽을 바탕으로 한 작전이었고, 혹시모를 적의 예언몽에 따른 변수에 대비했다.

"이노우에의 의심대로, 지금 사량은 과거 소율이인 것이 분명하다."

몰래 귀능을 따로 감옥에서 불러내 지시사항을 알리는 규찬의 머리속에 이틀 전 청명과 대화했던 내용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제가 왜 더욱 반항하지 않은 채 이렇게 인고의 방에서 혼자 생각만 하고 있겠습니까 총수님.」

「잡히기 전엔 어떻게든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의탁할 곳은 백영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지요.」

이노우에에게 들었을 때의 의심은 직접 대화함으로써 거의 모두 사라졌다. 그가 흑귀에게 세뇌당해 규찬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을 확률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작전에서, 귀능이 너는 소율이를 구하는데 주력하거라."

"... 헌데 총수님, 그게 사실이라면... 저도 무사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예언몽에서 본 몇몇 장로들의 죽음, 그것은 흑귀의 처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처사였다.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자신의 부하들을 죽이는 행동 자체가 규찬에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총수님. 주제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제 더 부탁할 곳이라곤 없는걸요...」

계속 떠오르는 청명의 말을 고개를 저으면서 털어낸 규찬은, 귀능에게 어제 장로들과 한 이야기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어제 무슨 이야기를 그들과 그렇게 했느냐? 혹시 저 장로들이 단체로 흑귀를 의심하고 있다거나 한 게 아니라면 흑귀가 저들을 처단할 이유도 없을 터인데..."

귀능은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흑귀 수뇌부 안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규찬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뭐 전적으로 제 덕분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다들 저주의 정체를 모르다보니 계속 흑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한가지 더, 귀능이 가장 크게 의심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 총수님, 혼란스러우실지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드릴 말이 있습니다."

"? 뭔데 그리 어려워하느냐."

규찬이 괜찮다고 이야기해보라고 말해주었지만, 쉽사리 귀능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흑귀의 행동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총수님?"

그러나 그 말에 규찬은 그닥 놀라지 않는 듯 했다. 마치 저번에 장로들과 이야기 할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을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 귀능은 '역시 아닌가...'라고 혼자 인정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찬의 생각은 귀능의 예상과는 달랐다.

"... 귀능이 자네 이 말을 장로들과도 했었나?"

"아, 예. 그들은 살짝 반응하는 듯 하더니 이내 아닐거라며 덮어버렸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뭔가 귀능의 의심과 연결되는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는지, 손을 턱에 가져간 뒤 그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열린 그의 입에서, 귀능이 듣고 놀랄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귀능이 자네, 그 생각 얼마나 확신하나."

"그... 30퍼센트 정도일까요? 아직 심증만 있는 상태라서 말이죠..."

아마도 규찬은 귀능의 의심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과거의 흑귀,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났던 흑귀... 둘이 분명...'

이내 규찬의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은, 그의 몸을 전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부분에서 잡은 단서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났다.

"귀능아, 일단은 소율이를 구하는 것만 생각하거라. 절대로 조심하고. 이건... 가능하면 나와 이노우에가 직접 확인해야겠구나."

"알겠습니다 총수님."

돌아가려는 귀능의 손을 다시 묶으면서, 규찬은 그에게 말했다.

"정말로 귀인이구만 자네. 정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해냈어. 정말 대단해!"

"뭐... 일단은 흑영인 척 몇 년을 지내왔으니까요, 의심 안 하는게 이상한 거겠지요 총수님. 아무튼 몸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정말 조심하게... 흑귀도 아마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닫고 있을테니까."

*

그날 새벽 장로들은 포로가 되었던 흑영 병력과 함께 그냥 풀려났다. 백영은 귀능을 제외한 어떤 추가 병력도 그들 사이에 끼워넣지 않았다.

그것은 유나의 예언몽으로부터 장로들이 대거 죽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개인 부하들이 있는 장로들이 죽을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들보다 위에 있는 흑귀의 처단.

"크윽... 역시 네 녀석은 진짜 사령관님이 아니었던...건가!!"

이미 1장로와 4장로는 죽었고, 3장로는 깊은 상처를 입은 탓에 움직이지 못하고 벽에 기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백영으로부터 귀환한 자들의 시체뿐이었다. 간신히 도망쳤는지 몇몇 사람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게 무슨 소리시오 3장로? 혹시 백영에 갔다오더니 혹시 흑영을 배신하려는 생각이라도 든 게요? 하하."

3장로를 앞에 두고 흑귀는 엄청나게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봐도 광기에 가득찬 그 모습은 죽음을 앞둔 사람을 더욱더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역시, 장로들 중에서 쥐새끼가 하나 있었던 게 분명하군. 장로들끼리만 떨어트려 놓으니까 바로 반응이 오는군 그래... 도대체 백영에 같혀서 자기들끼리 뭔 얘기를 했을까 말야? 엄청 궁금하단 말이지요~?"

"흐...흐하하 이 자식, 역시 우리 생각이 맞았-"

[촤악]

그러나 부들부들 떨던 그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흑귀의 검에 순식간에 베이고 말았다.

"이런... 말을 안 했으면 가는 길에 좋은 거라도 보여줄까 했더니만..."

그는 칼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내고는 죽어있는 장로들의 옷가지를 대충 뜯어 칼날을 닦기 시작했다.

"쥐새끼 둘이 도망갔지만, 도망가봤자 손바닥 안이지..."

칼이 말끔해지자 그는 다시 칼집에 칼을 넣고는 허리춤에서 폭탄 하나를 꺼내 타이머를 설정했다. 아무래도 폭탄에 의한 테러로 위장하려는 속셈이었던 모양이다.

*

심연 내 깊은 곳, 사람의 발길이 드문 구역에서도 외진 곳에 귀능은 간신히 숨어 있었다. 이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치고 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일단 몸을 숨겨야만 해. 지금 이 상태론 소율이를 구하긴 개뿔, 아무것도 못하고 개죽음 당할 확률이 더 높겠군!'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의 난이도가 갑자기 세 갑절은 상승했음을 느끼며, 그는 조심스레 주변의 인기척을 살폈다. 한 곳에 계속 머물렀다간 들킬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조금씩은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그동안 의심해왔던, 바로 그 의구심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필시 오늘 이 사실은 백영에도 장로들의 몸에 붙여둔 도청기를 통해 바로 전해졌을 것이고, 규찬의 귀에 들어가면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었다.

'일단 한동안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본 뒤... 경계가 조금 느슨해지면 그 때 소율을 구한다...!'

소리하나 없이 움직이는 그의 뒤로 검은 어둠만이 드리우고 있었다.

*  * *

2032년 5월 9일.

"안녕하십니까 영수님."

광백의 넓은 실험실에는 어느덧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들어오는사람마다 입구에 서서 반기는 세빈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 반 경외심 반이었는지 악수하며 인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세빈의 마음은 편치많은 않았다.

강한 능력을 가진 장 티엔을 섭외하긴 했으나 아직 그의 능력이 온전치 못하고, 나머지 모든 사람의 능력을 합쳐도 장 티엔과 비슷하거나 약한 부족한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50명 가까이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 그럼 시작하자. 모두들 대피할 준비는 항상 해 두도록 하거라."

*

그러나 예상대로 역시 균열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도 장 티엔의 힘이 돌아오지 않은 원인이 가장 컸던 모양이다. 장 티엔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의지를 반반 나눠 충돌시켜봤지만, 균열의 티끌만 약간 발생할 뿐이었다.

"장 티엔, 힘은 돌아왔나?"

"흠... 그게 문제군, 느낌이 아직도 전혀 틀리다. 뭐가 문젠진 모르겠지만 과거 쓰던 힘에서 정말, 정말로 아주 약간만 쓸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예 막힌 기분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빈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현상이기도 했다. 다만 그녀의 경우 장 티엔보다는 좀더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한세빈, 어떻게 힘을 회복한거지? 아무래도 혼자 수련으로는 절대 무리인듯 싶은데 방법을 찾아볼 수 없겠나."

세빈도 이상하게 느끼고 있었던 점이 그것이었다. 자신은 분명 미래로 넘어온 뒤 처음에는 힘을 쓸 수 없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그 제한이 풀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장 티엔에게 해주자 그는 뭔가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레... 풀렸다? 그렇다면 한세빈 너의 주변에 막혀버린 능력을 해금해준 누군가가 있었단 이야기가 아닌가?"

장 티엔의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에 세빈은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적이었던 자가 임시일지라도 동료가 되니 생각 외의 지원이 생겨난 탓이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그 질문을 들은 세빈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자신의 능력 해금의 원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세빈은 그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워야만 했다.

"그럴리가... 유진이가 나와 내내 같이 다니긴 했었지만, 녀석에게는 꿈꾸는 힘은 거의 없을 텐데...?"

"그 꼬마 말인가?"

분명한 사실 하나는, 유진에게 예지몽을 보는 능력은 절대 없다는것이다. 마치 흑향과 비슷한 상태, 타고난 능력이 부족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이다.

"하지만 유진이와 동행함으로써 힘이 회복되었다는 건-"

그렇게 또다른 가능성을 고려해보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이는 전달하는 역할일 뿐, 그녀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거지요."

장 티엔과 세빈, 그리고 혼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고 혼다를 제외한 두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여성을 보고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참, 누님 여긴 뜬금없이 언제 온거에요? 말도 없이!"

혼다만이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얼마전 유진이를 구하러 나타났을 때 입고 있었던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커다란 알의 선글라스를 끼고서.

"혼다 오랜만이다. 못보다가 한국에서 다 보게되네 후후."

"이미 얘기 들었어요, 유진 양 구하러 나타났다는거."

이미 유진에게 이야길 전해들었는지, 혼다는 실소를 띄웠다. 그녀는 높으신 영수님 앞에서까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 순 없었는지, 머리 위로 올리고 맨얼굴을 드러냈다.

얼굴을 본 세빈은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진한 아이라인과 섀도우로 진짜 눈매를 감추고 있었지만, 화장한 것 나름대로 굉장히 매력적인, 과거 일본 아키하바라의 메이트 카페를 주름잡았던 CEO,

"소개하겠습니다 영수님. 이쪽은-"

"영수님 미래에서 다시 뵙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노우에 레이입니다."

이노우에 레이, 바로 그녀의 등장이었다.

"레이? 설마 이노우에의 딸이니 네가?"

32년 전에는 학생일 때의 모습만 봐서 그런지 약간 어색함을 느끼는 세빈이었다. 게다가 화장 때문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이노우에의 딸이라는 말에 장 티엔이 기겁을 했다. 하필이면 철천지 원수의 딸을 미래까지 넘어와서 만나게 되다니, 그가 기뻐할 리가 없었다.

"여튼, 두분 다 힘의 회복이 필요하실테니 어서 집에 있는 윤하에게 가 보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레이의 한 마디로 정리가 되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세빈은 저번에 진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약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시면, 제 딸아이 윤하에게 말씀해보십시오.」

그와 동시에 아까 유진에게서 힘이 넘어왔다는 생각을 하자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힘을 가진 윤하와 자주 접촉하는 유진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조금씩 흘러들었을 테고, 그 흘러든 힘이 다시 세빈에게 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윤하는 어디서 그 힘을 얻었단 말이니? 우리의 막힌 능력을 해금해 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도대체 어디서..."

레이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미소지었다.

"그건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영수님. 윤하와 대화를 나누시면 바로 아실 수 있을 거에요."

============================ 작품 후기 ============================

늘 선추코 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ㅁ'/prolog > prologue로 수정했습니다. 사실 뭐 prolog나 prologue나 그게 그겁니다만은... (영,미식 표기차이라서요) 몇년째 생각없이 prolog,epilogue로 쓰다보니 귀찮아서 고칠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듯 하네요 -_-ㅋ이참에 미국식 표기로 통일했습니다.

리리플-

신의탑hello님 // 회개했죠. 아무래도 세뇌에대한 궁금증이 더 컷겠죠.

은하수보며님 // 걱정 마세요 저보다 잘 쓰시는 분들이 넘치는걸요 ㅠㅠ !

hohohotoyo님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한다고 수정했는데 역시 약간 억지스러운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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