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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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니 유진아? 몸이 이 상태일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응응, 전혀 걱정 없어요 언니. 이정도면 완전 멀쩡한거죠."
다음 날 광백에 도착한 유진은, 뭣 때문인지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마치 잠입하는 요원들이나 입을법한 딱 달라붙는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그녀를 본 세빈은 어제 당한 상처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그런 일이 있으면 혼다나 니시노를 부르지 그랬니. 예쁜 몸에 상처가 잔뜩 났잖아."
"음... 그렇지 않아도 어떤 이상한 여자가 구해주긴 했는데, 누군지 도통 모르겠네요.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 났는데."
옷을 다 갈아입고 장갑까지 착용한 유진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요리조리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와의 결투를 준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는데 반대쪽에서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 방에 들어오는 그의 손목에 걸린 수갑이 누군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유진이 세빈에게 어제 부탁받은 것, 그리고 세빈에게 장 티엔이 부탁한 것. 그것은 바로 유진과의 대련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위험 인물이기 때문에 처음에 세빈은 수락할 생각이 없었으나, 그의 진지한 모습 때문인지 어느정도 불신감이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래도 언제 위협할 지 모르니, 절대 조심하거라 유진아."
"네 걱정 마세요."
장 티엔이 대련장에 들어오자 반대쪽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고 마주본 두 사람의 좌 우에 만약을 대비한 백영의 사람을 10명 정도가 포진하고 나서야, 장 티엔을 데려온 혼다는 그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수갑이 풀리자마자 그는 허공에 손을 휘두르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이 꼬마, 준비는 다 됐나?"
게다가 얼마 전까지 적으로만 봤던 유진에게 일부러 그녀가 싫어하는 별칭을 담아 부르는 걸 보면 어느정도 그의 적대관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 진짜 꼬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아니나다를까 바로 반응하는 유진. 장 티엔은 몸을 다 풀고는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주먹을 모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유진은 똑같이 주먹을 내밀어 맞부딪쳐 주고는 뒤로 슬쩍 물러났다. 그리고는 바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봐주는 거 없이 갈거니까 적당히 할 생각은 마세요 아저씨."
곧바로 엄청난 기세와 안광을 내뿜는 그녀의 모습에 장 티엔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지만, 그가 누구인가, 흑영 내에서 그를 이길 자 없다고 자부하던 최강의 암살자 장 티엔이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항복하라고!"
[슈팡!]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장 티엔은 바로 선제 공격으로 치고 들어왔다. 첫 주먹을 피하지 않고 가볍게 흘려버린 유진은 그대로 장 티엔에게 근접하며 가슴팍에 주먹을 꽂으려 했으나 그의 빠른 추가타에 어쩔 수 없이 굴러서 빠져나왔다.
이어지는 유진의 빠른 하단 후리기를 가볍게 피한 장 티엔은 그대로 회전력을 이용해 강한 회전킥을 유진의 등쪽에 가격했다.
[퍽!]
강한 파열음과 함께 일순간 둘이 멈췄다. 등에 맞은 줄 알았던 그의 발차기는 유진의 팔에 막힌 상태였다.
"역시나 꽤 하는구나. 널 선택하길 잘한 것 같군 꼬마."
"지금 그렇게 여유부릴 때가 아닐걸요?"
말하는 틈을 놓치지 않은 유진은 그대로 비어있는 장 티엔의 반대쪽 다리에 강한 로우킥을 날렸다.
*
"헉...헉... 슬슬 항복 하지 그래요?!"
약 20분 뒤, 간신히 가드를 올리고 있는 유진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도발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건... 헉, 내가 할 소린데...? 헉..."
그러나 장 티엔 역시 거의 한계인 듯 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공격이 들어가는 쪽이 승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헷, 그럼 먼저 갑니다-?!"
[슈팡!]
유진이 성격에 참고 기다리는 게 가능할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엄청난 기세로 남은 힘까지 모두 짜 내어 장 티엔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빠른 공격을 대부분 막아내곤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지 못한 나머지 공격들이 약한 건 아니었다.
"큿, 크읏! 타앗!"
[퍽!]
막고만 있던 장 티엔은 굉장히 가까워진 거리가 되자 빠르게 몸을 틀어 철산고로 유진을 멀찌감치 날려버렸다. 자신의 빠른 공격 때문에 중심을 쉽게 잡지 못한 유진은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아와 목에 손을 들이댄 장 티엔, 결국 승자는 그가 되려는 모양이었다.
"아.. 젠장. 졌다아-!!"
땀을 훔치며 탄성을 내지르는 그녀 위에서 장 티엔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갑자기 유진의 상의 지퍼를 내리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헉, 자, 잠깐 잠깐!! 뭐하는거에요 아저씨!!!"
당황한 유진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미 가슴께까지 내려진 지퍼로 인해 그녀의 상체에 있던 멍들이 훤히 드러났다.
"너, 이거 언제 다친거냐?"
갑작스런 장 티엔의 질문에 유진은 순간 당황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유진의 옷을 벗기려는 줄 알고 달려와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 다쳤는데요..."
"젠장 다쳤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장 티엔은 살짝 화가 난 듯 벌떡 일어나서 유진에게 소리쳤다.
"페널티를 혼자 안고 하다니. 내 패배다!"
그러자 뜬금없는 기권에 유진 역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아니 왜요?! 이럴까봐 내가 일부러 숨기고 한건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말싸움 때문인지, 혼다는 먼저 대기중이던 열 명 정도의 백영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리고는 어서 자신을 다시 구속하라고 손을 내민 장 티엔의 손을 그냥 내린 채로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이동하면서도 장 티엔과 유진은 계속해서 티격태격댔고, 두 사람 사이에서 그만 하라고 말리느라 세빈만 진땀을 뺐다.
얼마 후 도착한 곳은 방의 좌우가 수족관으로 되어 있는 2층 높이의 천정을 가진 접견실. 아마도 평상시에 자주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인지 굉장히 깔끔했다.
장 티엔을 앉힌 뒤 유진은 오른쪽 테두리에, 세빈과 혼다는 그와 반대편에 앉았다.
"장 티엔, 어찌 생각은 좀 바뀌었나?"
앉자마자 세빈은 그에게 물었다. 오늘 유진과 대련을 하겠다고 부탁한 것도 그렇고, 대련 후에도 구속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일 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세빈과 혼다도 마음을 꽤나 놓은 듯 했다.
"흠..."
한참동안 고민하는 듯 하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저 꼬마 덕분에, 마음이 굉장히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이 의문점이 궁금해서 나도 정말 미칠 지경이란 말이지."
그의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 바로 흑귀의 세뇌에 대한 진실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흑향의 편지로 증폭된 바로 그 의혹에 대한 진실을 얻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려면 나도 과거로 가야만 한다. 흑영 백영을 떠나서... 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의 사령관인 흑귀에게 직접 듣고싶다."
세빈은 그 말을 듣더니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청명에게 그와의 대담을 요청한 것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수락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네. 장 티엔."
그 말이 나오자 혼다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고 누군가가 오기까지 그 찰나의 시간에도 장 티엔과 유진의 말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꽤나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건만, 이 두 사람만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영수님, 니시노입니다."
"들어오거라."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을 본 장 티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 달이 넘게 따로 떨어져 보지 못했던 그가 정말이지 아끼는 부하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니시노가 흑향의 구속 도구를 풀어주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격하게 껴안았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고, 서로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들의 행동만 봐도 잘 알수 있었다.
"정말...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다 흑향..."
흑향을 안고 있는 장 티엔의 머릿속에, 며칠 전 청명이 해주고 갔던 말들이 스쳐갔다.
「내가보기엔 자네도 아직 그대가 아끼는 부하를 구하지 못했다네.」
「쉽지 않은가, 자네가 취해야 할 행동은.」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또다시 한 가지 던져졌다.
'청명, 내가 바라는대로 난 흑향을 구해냈습니다. 이제 난 과거로 돌아가, 내게 남겨진 이 한가지 의문을 해결해야 합니다...'
"대장... 죄송합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흑향의 온기를 느끼다 보니, 처음 흑향을 만났을 때가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능력이 없어 가족에게, 친지들에게 버림받은 그녀가 홀로 울고 있던 그 때,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이끌었던 자신의 과거 모습 역시 떠올랐다.
「오빠, 오빠는 뭐 때문에 그렇게 강해지려고 해?」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녀를 이끈 자신의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옆에서 계속해서 도왔던 흑향. 애초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떨어질 수 없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글쎄... 내 소중한 걸 지키고 싶어서일거야 아마.」
============================ 작품 후기 ============================
늘 선추코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
리리플-
Z박령님 // 전지적 시점으로 쓰다보니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많아지는 시점에는 주인공들 존재감이 흐려질 수 밖에 없나봅니다... 거기까진 제 한계인듯하네요 ㅠ. 주변인물 이야기도 거의다 끝나가기 때문에 곧 다시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갈 듯 싶네요.
신의탑hello님 // 으아, 남부지방 쪽 사시나보네요. 서울쪽은 비가 요새도 거의 안오다시피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