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 *
2000년 4월 22일.
저주의 날을 늦추거나, 혹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귀능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백영의 정예병력들은 흑귀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준비중이었다. 비록 아직 저주의 날은 한참 멀었지만, 그 뒤 계속해서 유나의 예지몽은 암담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행동이라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였다.
"다들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귀능이 함께 동행한다고 했으니 이는 결정적인 정보나 다름없다. 이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잠입중인 귀능이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 절대 성공만을 목표로 한다. 알겠느냐 이노우에, 그리고 귀술아."
"염려 붇들어 매십시오 총수님. 이 목숨 바쳐서라도 성공해내겠습니다."
귀능이 준 정보에 따르면 흑귀가 흑영의 세력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제5장로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 이동에는 흑귀를 포함한 나머지 다섯 장로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규찬이 이끄는 부대는 장로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굉장히 어려운 작전이고 위험한 작전이었으므로 실제 토벌 병력은 굉장히 소수였다.
"불과 50명에 불과하지만 적 호위병력도 수십에 불과하다. 전투가 시작되면 난 즉시 흑귀를 치러 갈 것이니 너희들은 호위병력과 장로들을 먼저 제압한 후 날 돕도록 해라."
대장급인 두 사람에게 작전설명을 모두 마치고 나서 규찬은 본격적으로 작전에 투입될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흑귀가 지나갈 조용한 외곽도로에 진을 치고 나서 십여분 뒤, 드디어 계획대로 흑귀와 장로의 무리가 그들의 포위망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 일제히 달려나갈 준비를 마친 병사들은 드디어 목표 지점에 타겟이 도착하자 규찬의 수신호와 함께 일제히 조용한 발소리만 내면서 순식간에 적 무리를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멈춰라, 적들이 근처에 있다. 모두 전투준비!"
허나 흑귀도 빠르게 알아차린 듯, 습격해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모두를 그 자리에 세웠다. 하지만 규찬이 절대 근접 병력만 데리고 왔을 리가 만무했다.
[슈아악!]
동시에 화살이 열개씩 날아오더니 정확히 흑영 호위병력들의 몸에 꽂혔다. 화살을 맞은 자들이 쓰러지자 곧바로 경계 태세가 무너져내렸고, 백영 부대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적을 재빠르게 완전 포위해버렸다. 순식간에 포위 상태와 동시에 흑영과 백영의 병사들의 충돌이 시작되었고, 습격에 놀란 장로들은 허둥지둥대다가 전투중 한두명씩 생포되기 시작했다.
"차하앗-!"
흑귀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규찬이 불쑥 튀어나와 곧바로 그에게 칼을 휘둘렀다.
[까앙-. 깡!]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흑귀의 상체와 다리를 노렸지만 방어가 만만치 않았다.
"이게 누구신가, 규찬 자네 아닌가?"
흑귀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규찬의 검을 모두 막아내고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검을 받아낸 뒤 그대로 그의 몸 쪽으로 밀어붙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노려보는 두 집단의 우두머리들의 눈 사이에 전기가 튈 정도였다.
"흑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 순간을! 오늘이야말로 네 녀석을 저 세상에 보내버리고 이 지독한 전쟁을 끝내고야 말겠다!"
[촤악!]
합을 품과 동시에 규찬은 다시끔 흑귀의 빈틈을 노렸으나 그의 검은 옷을 베었을 뿐 직접적인 상처는 내지 못햇다.
"하하, 천하의 자네도 이젠 늙었나보군 그래."
여유있게 그의 검을 모두 쳐내면서 되려 규찬을 압박해 나가는건 흑귀 쪽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검을 맞댈 때마다 규찬은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노우에가 이끄는 부대들은 나머지 흑영 잔당들을 처리한 뒤, 장로들을 모두 포박하고 흑귀를 둘러싸버렸다. 검을 맞대고 있는 규찬과 흑귀 주변을 둘러싼 백영 부대원들로 인해 이제 더는 움직일 곳도 없어져버렸다.
"이런, 이렇게 빨리 포위될 줄은 몰랐는데. 큰일이군."
흑귀는 그 와중에도 여유를 보이며 앞의 규찬을 상대하면서도 후방에 있는 백영의 병력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조금씩 길을 트려고했다.
"지금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옆에서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이노우에로 인해 흑귀는 그를 막다가 함께 들어오는 규찬을 미처 견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이노우에를 그대로 흘려보내면서 규찬을 막으려다 보니 그는 어쩔수 없이 들고 있던 칼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흠. 이거야 원. 이렇게 다같이 덤벼드니 나로써도 방법이 없구만..."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흑귀. 네 녀석만 없어진다면 이 길었던 전쟁을 끝내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규찬은 그를 겨누고 있는 칼을 풀지 않은 채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또 어떤 수를 써서 빠져나갈 지 모르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는 확실하게 끝을 보고자 했다.
"애석하게도 나도 그냥 잡힐 생각은 없다네."
"끄악!"
그런데 그가 무방비인 흑귀를 베려는 그 순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 중 한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니 단검이 심장을 직격으로 꿰뚫고 있었다. 순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규찬은 다시 앞을 봤지만, 이미 흑귀는 바닥에 뭔가를 던져 놓고 단도 하나를 꺼내들어 규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채앵!]
"크읏!"
힘겹게 습격을 막아냈지만 흑귀는 빠르게 무너진 포위망 사이로 빠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그가 바닥에 던져둔 물체가 엄청난 섬광을 뿜어냈다.
"5장로가 괜히 혼자 있었겠는가 규찬. 나중에 보세."
모두들 어떻게든 눈을 가려서 시력을 잃는 것은 면했지만, 워낙 섬광탄의 위력이 강했던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방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달려드는 흑귀를 막아내느라 등을 돌렸던 규찬은 저 멀리 도망가는 흑귀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젠장...!"
겨우겨우 모든 사람들을 추스린 규찬은 이노우에와 귀술을 모아 놓고 잠깐이나마 회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애초에 실패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결국 장로들을 생포하는데 그치고 말았구나."
"혹시 부영수님이 이미 예측한 결과입니까?"
규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예측한 것과 그들이 실제로 마주한 오늘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필시 흑영에도 미래를 보는 강력한 예지몽을 꾸는 사람이 있었음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전부터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흑영 내에도 부영수님과 버금가는 예언의 힘을 다루는 자가 있는 모양이군요.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오늘 흑귀를 습격함으로써 이제 확실해졌군요."
"그렇지. 앞으로는 움직이는 데 더 신경을 쓰도록 해라 이노우에."
다만 그 예지몽이 주로 흑귀를 보호하는 데만 쓰이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 것은 서 총수 뿐이었던듯 하다. 그동안 어떤 작전에서도 실패했던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흑귀를 처치하려는 작전에서만 실패한 것은 그러한 느낌을 확신시켜주는 증거였다.
"아군 피해가 생각보다 막심하니... 돌아가면 그들의 장례부터 치러야 하겠구나."
전사자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서 총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덕분에 흑귀는 잡지 못했으나, 장로들을 생포하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라는 기도였다. 그것은 암영전이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 온 사상자들을 위한 수도없이 반복되었던 기도이기도 했다.
* * *
2032년 4월 24일.
홀로 광백을 방문한 청명은 안내역으로 나온 혼다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이야.. 그 이후 한번도 이곳엔 와보지 않았는데 그 사이 엄청나게 변했구만그래."
"뭐 본격적으로 변한건 인고의 방에 계실 때지만요."
워낙 세월이 지날수록 세상이 변하는 것도 빨라졌기 때문에 청명의 그 말이 틀린것은 아니었다. 인고의 방을 나간 뒤 그는 백영을 위해 일하기는 했으나 광백에 다시 돌아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5년의 세월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혼다는 세빈으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청명을 장 티엔에게 데리고 갔다. 가뜩이나 저번 흑향의 편지로 복잡한 심경이었던 그는 청명을 만나고나서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물론 그가 32년 뒤의 청명에 대해 잘 알고 있을리가 없었으므로, 처음 대면하고 난 뒤 한동안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쪽이 3대장이었던 탁암이라.. 이겁니까?"
몇 번 정도 자신이 누구였음을 말해주고 나서야 장 티엔은 조금 이해가 됬는지 대화를 시작할 의향을 보였다.
"살아있는 걸 보니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알고 계시겠군요."
"허허, 모두는 아닐세. 내가 아는 거라곤 그대가 사라지고 난 뒤 몇 달 간 뿐이니까."
그러나 여전히 왜 청명이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장 티엔은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당혹스러워 했다.
"그래, 자네 함께 잡혀온 부하가 한 명 있다고 들었네."
"... 흑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흑향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보아 이자 역시 분명 저번에 한세빈이 말했고 계속해서 그에게 제안해왔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제안을 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장 티엔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청명의 말을 끊으려 했으나 그가 생각한것과 달리 청명의 이야기는 제안과는 무관했다.
"물론 제안을 할 예정이지. 하지만 난 그 이야기 전에 장 티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온 걸세."
청명은 굉장히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고, 순간 그 눈빛에 압도당한 장 티엔은 거절할 생각을 접어둔 채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럼 한번 천천히 이야기해 보겠네. 이야기는 1990년으로 거슬러올라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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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6연참 무사 종료!
오늘 일이 있어서 먼저 업로드 해 둡니다.
일요일 하루 쉬고 월요일날 다시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