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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44화 (143/188)

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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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뒤, 누군가와의 만남을 약속한 세빈은 니시노를 대동해 한강 둔치로 이동했다. 만남 장소로 한강 둔치라니, 만남을 약속한 사람의 취향이 독특했음은 분명했다.

유진이 혹시모르니 따라가겠다고 떼썼지만 그녀는 학교에 가야 했기에 윤하에게 가로막혀 포기하고 학교에 간 뒤였다. 한강 둔치에 앉아 만날 사람을 기다리며 니시노와 녹차캔을 마시던 세빈은 이내 멀리서 한 명의 노인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근처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 사람에게선 뭔가 과거에 만났던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 났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영수님.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반반 섞인 회색빛 머리를 반쯤 가린 중절모를 쓴 노인은 딱 봐도 60대는 넘어보였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젊은 모습을 한 세빈에게 존대를 하며 인사를 하는 모습은 굉장히 이지직인 느낌을 풍겼다.

"혹시...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저 말이지요? 물론입니다 하하. 소개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이거 참.. 나이가 먹어서 원...!"

그는 세빈 옆에 털썩 앉더니 쓰고있던 중절모를 옆에 벗어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이름은 최진명. 과거 백영에서는 청명, 흑영에서는 탁암으로 불리었던 사람입니다."

세빈은 소개의 앞 부분은 끄덕끄덕하면서 듣다가, 뒷부분의 흑영 얘기를 듣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청명이 스파이로 밝혀지기 전에 미래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청명 역시 순간 세빈이 자신의 과거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부연설명을 했다.

"하하.. 사실 저도 다시 세상에 발 딛은진 5년정도밖에 안 됬습니다 영수님. 제가 저지른 죄로 인해서 계속 '인고의 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죠."

"인고의 방이라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거기에 갇혓단 말이냐?"

인고의 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세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도 그 방이 엄청난 중죄인을 다루는 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남편과 함께 여러가지 백영의 임무를 수행했던 그가 왜 그곳에 들어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전, 백영을 배신했습니다. 그 대가로 벌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흑귀에게 휘말려 흑영의 스파이 노릇을 했으나, 인고의 방에 갇힌 27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인 청명이 스파이였다니, 세빈은 그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놀랐으나 그가 30년이나 같혀 있었다는 사실에 또한번 놀랐다. 자신이 미래로 떠난 시간동안 꽤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청명을 통해 대신 들으니 그 또한 새로웠다.

"27년이라니.. 그대의 운명도 참 기구하구나.."

"하하 27년만에 끝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안그랬으면 죽을때까지 갇혀 있을 뻔 했습니다 영수님."

원래 갇혀있어야 할 3만일이 아닌 1만일만 갇혀있었기에 27년만에 그는 인고의 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1만 일이나 갇혀있었던 것은, 서규찬 총수의 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바로 풀어주지 않고 1만 일로 줄여주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1만 일이라니.. 굉장히 긴 시간이었구나."

"그렇지요. 밖에 나오니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지 뭡니까. 2000년 봄에 갇혀서 2027년 여름에 나왔으니... 과거에 사람들이 들고다니던 전화기가 아닌 뭔 판때기를 들고다니는데 처음에 뭔가 했다니까요."

"허허, 뭐 그럼 32년을 넘어온 나와 거의 비슷하게 느꼈겠구만. 나도 뜬금없이 미래로 넘어와서 처음에 적응하느라 정말 힘들었지..."

혹시나 그와 대화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했던 세빈은, 곧 그 생각이 기우였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겪어온 시간대가 비슷했던 덕분인지 두 사람은 금방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그러고보니 절 만나고 싶어하신 이유가 있었다고 했지요."

"그래요. 진이에게 대강은 전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청명은 껄껄 웃더니 어떤 부탁이든 마음껏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주의 날을 겪고 나서, 전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협박에 의해 잡혀있던 것이긴 하나 제가 그동안 따르던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었는지, 얼마나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는지를 말이죠. 풀려난 뒤 5년간, 전 다시 진이, 지금의 총수님과 힘을 합쳐 이 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감히 어리석게도 백영을 배신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실수나 다름없습니다 영수님."

그 말은 세빈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 이 사람에게 무엇을 부탁해도 너끈히 들어주고, 어떤 문제도 너끈히 해결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래로 함께 넘어온 장 티엔, 저를 암살하려 했던 이 사람의 도움이 지금 필요합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야만 하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도 없이 생각해 봤지만 지금 2032년에 존재하는 꿈꾸는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저를 과거로 돌려보내줄 만한 커다란 차원의 균열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과거로부터 넘어왔을 때처럼 서로 다른 미래를 지향하는 염원몽의 충돌이 있어야만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는데, 그 힘이 약하면 저번 같은 커다란 균열을 만드는것은 어려다는 것이었다.

넉넉잡고 생각해 본 결과 아무리 지금 존재하는 염원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도 힘들기 때문에, 강한 염원의 힘을 가진 장 티엔이 도와준다면 가능 할 지도 모른다. 때문에 세빈은 어떻게든 장 티엔이 힘을 되찾게끔 하고 싶은 것이고, 어떻게든 그가 협력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그 자를 설득해 주면 되겠습니까?"

"네. 정말 어려운 역할이겠지만...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정을 듣고 난 청명은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될 거라고 말하고는, 일이 잘 풀리면 바로 장 티엔의 힘이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말했다.

"헌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하하하하, 그점은 염려 마십시오 영수님. 제가 그자와는 꽤나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합의점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세빈은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나이든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기는 미안했는지, 그녀는 식사를 대접하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허 그런데 돈은 있으시구요?"

"몸이 어려졌다고 그런 것 까지 걱정하시는건가요?"

슬쩍 재희가 만들어 준 카드 한장을 들어보이면서 그녀는 방긋 웃어보였다.

*

한편 학교에서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업들을 들으면서 유진이는 완전 정신은 딴데다 팔아먹은 상태였다. 메카수트 운용 수업에서 평소같으면 하지도 않을 실수들을 연발해대자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도 굉장히 놀랐다. 결국 하교 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녀는 지훈이 덕분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와.. 오늘 뭐했는지 아무것도 기억 안 나."

그녀가 이렇게 맹했던 이유는 지훈이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생각, 그리고 홀로 보낸 세빈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니시노 누나가 따라갔잖아?"

"아니.. 그래도! 걱정되는 걸 어떻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지훈이는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세빈과 그 주변 인물들을 노리던 사람들이 모두 붙잡혀 있는데 또 누가 튀어나와서 그들을 위협한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아냐, 분명 언젠가 악의 무리들이 나타날 거야...!"

존재하지도 않는 적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강한지... 지훈은 사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연계기동 수트를 착용하게 하는 그것조차도 상당히 불편한 상태였기에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지훈이가 총상을 입고 난 뒤부터 유진이의 과잉보호가 도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든 자신도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해야만 했다.

"이.. 있잖아. 그럼 유진이 너가 나한테 호신술 좀 가르쳐줘."

"하아-?"

솔직히 유진이가 좋긴 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남자 취급도 안해주는 건 지훈이로써는 굉장히 아픈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는 어떻게든 생존법을 배워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번에 개발중인 작동 프로토콜이 완성되면 나 혼자서도 도주나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될테니 메카수트 사용법도 좀 알려주고!"

"어.. 어 그래."

지훈이가 강하게 나가니 되려 유진이가 당황했다. 역시 이런 방법이 먹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지훈이는 쾌재를 불렀다. 이번 일을 통해 여자가 된 유진과 좀더 가까워지면서도 과잉보호 받지 않고 지훈이가 유진을 지켜줄 수 있다는 멋진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유진이네 아저씨랑도 어떻게든 친해져야겠어. 여러가지 알려달라고 부탁드려야지.. 아! 혼다 씨랑 니시노 씨 돌아가기 전에도 열심히 배워둬야겠다.'

너무나도 확실한 동기부여 덕분인지, 지훈이는 새로운 프로토콜 개발 와중에도 어떻게든 호신술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했다.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가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는..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유진이 때문이었지만.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는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ㅇㅅO/드뎌 1부 리뉴얼이 끝이 났군요... 생각보다 오래걸렸습니다.

워낙 손볼데가 많아서 그런지 함부러 크게 고칠 순 없더라구요.. ㅠㅠ 여튼 이제 1부 끝났으니 2부 간단히 검토 및 오타 수정하고 2부 연재에 집중해야겠네요!

모두들 불금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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