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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40화 (139/188)

140화

*

한 1시간 정도 후에 유진과 니시노가 광백에 도착했다. 유진은 생전 처음보는 난데없는 굉장한 지하시설을 보더니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바빴다. 지금 본 것을 절대로 밖에 누설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굉장히 기뻐하는 듯 했다.

"왔구나 유진아, 지금부터 장 티엔과 이야기를 하러 갈 거란다."

"앗 그렇군요. 어서 가요, 빨리 돌아가야죠!"

유진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우리가 우위에 섰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독방 1호 문이 열립니다.]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천천히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자 구속 도구로 발이 구속되어있는 그가 보였다. 독방 치고는 넓이가 꽤 넓었던 탓에, 4명이나 되는 사람이 들어갔음에도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영수님 혹시 모르니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아니다, 이제와서 무슨 위험이 있겠느냐. 걱정 말거라."

세빈의 보호 담당인 두 사람이 약간 뒤로 물러나서 경계 할 것을 권했으나 세빈은 구속되어 있는 그가 위협을 가할거라곤 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이구나 장 티엔. 무얼 말해주면 되겠느냐."

무릎꿇려 앉아 있는 장 티엔의 앞에 서있는 세빈의 모습은 오늘따라 유달리 존재감이 엄청났다.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장 티엔은 어짜피 여기서 일 벌려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제 처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흑향의 예지몽은 정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네녀석의 예지몽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패한 것이다."

그가 그토록 아끼는 부하가 드디어 능력을 발휘했건만 운 나쁘게도 하필 그 타이밍에 세빈의 예지몽이 돌아왔던 건 맞다. 그 덕분에 유진이 저격탄을 막아내고, 장 티엔을 쓰러트림과 동시에 경호원들이 윤하를 구해냈으니까.

"이번일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다. 원인은 흑향을 무조건 신뢰했고, 네 녀석 둘 중 누가 진짜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데 있다. 설마 세 번째 도청기를 몰래 한세빈에게 붙여뒀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장 티엔은 책임전가는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기계들... 우리에겐 굉장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지. 특히 저 꼬마가 사용하는 이상한 도구는 여러번 나를 놀라게 하는군. 난 분명 한 사람만 착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하나가 더 있었고, 그걸 같이 움직일 줄이야."

그러면서 유진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유진은 그 말을 듣더니 씨익 웃었다.

"어떠한 이유를 대던간에, 운명의 신이 우리의 손을 들어준 건 절실함의 차이였을 걸요? 그쪽이 세빈언니를 해코지하려는 생각보다 내가 지키려는 마음이 더 강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거죠."

"... 틀린 말은 아니군."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에 장 티엔은 허탈하게 웃었다. 듣기에 따라 굉장히 기분나쁜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며칠간 죄인의 신분으로 붙잡혀 있어서인지 상당부분 체념한 것으로 보였다.

"이 내가 적에게 훈계를 듣다니, 웃긴 일이군. 과연, 한세빈의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로 오게되었고, 그로인해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인가."

분명 그는 처음 어려진 세빈을 찾았을 때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말도 안되는 시간 이동 후에 외모마저 변해버린 자신의 타겟을 그리도 쉽게 발견한 것은 정말 쉽게 일어날 수 없는 행운이 분명했다. 게다가 유진이를 세빈으로 착각해 납치했을 때도 손쉽게 성공, 결국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운명의 신이 함께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운이 좋았던 것은 네녀석들이었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실수를 한탄하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더니 혼다에게 물었다.

"흑향의 상태는 어떤가."

"지금은 편하게 자고 있다. 처치가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했겠지만 빠르게 제지한 덕에 상처가 깊지 않아 살 수 있었지."

"그렇군... 적이지만 고맙다."

대충 얘기가 끝나고 분위기가 조용해지려고 하는데도 네 사람이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장 티엔이 먼저 물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뭔가 원하는게 있다는 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뭣 때문에 그러지?"

세빈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요구사항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칼을 맞대던 철천지 원수의 사이에 요구하기엔 좀 뭣하긴 했으나, 그녀도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염원의 힘은 돌아왔나?"

"글쎄.. 미래로 넘어온 뒤 한번 시험해보고 그 뒤로는 딱히 시도해 본 적 없다. 지금은 내 힘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군. 힘을 제대로 못 쓴다는건 한세빈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맞는 말이었다. 강한 예언의 힘을 사용하던 세빈도 최근에야 겨우 다시 예언몽을 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장 티엔이 아무리 염원력이 강했다고 해도 쓰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안 해봤나?"

장 티엔은 그 말에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 역시 세빈을 납치하거나 처리한 뒤에는 당연히 과거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미래로 넘어온 이유를 모르는 이상 시도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었기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

"만약 가능하다면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군."

그러나 그의 입장에선 그 얘기는 상당히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였다. 과거로 돌아가는 즉시 적으로 돌아설 텐데 함께 과거로 돌아가도록 노력하자니?

"하.. 힘을 합치자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돌아온 대답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 세빈도 그가 순순히 수락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일단은 한발 물러날 생각인 듯 했다.

"웃기는군.. 서로 만나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인간들끼리 연합이라니."

"하하.. 뭐 맞는 말이긴 하군. 뭐 간단히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 안 했다."

그녀는 싱긋 웃더니 독방에서 나가려고 뒤로 돌았다. 그녀가 나가려고 하자 혼다와 니시노도 함께 문 쪽으로 향했다.

"잠깐!"

의외로 세빈의 담담한 태도가 먹혀든 건지 장 티엔이 약간 당황하는게 아닌가? 갑자기 그들을 불러세운 그는 쉽게 입을 떼지 못 했으나, 결국 원하는 한 마디를 입 밖으로 힘겹게 꺼냈다.

"그.. 흑향은 언제 볼 수 있지?"

그러나 네 사람은 이미 흑향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대충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세빈은 그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사실을 이용해 그의 마음을 움직여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장 티엔의 한 마디는 확실히 세빈이 승기를 잡는 계기나 다름없었다. 다만 승기를 잡았다고 승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녀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가기로 했다.

"그건, 자네가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든다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확실히 고민하는 듯 한 그의 표정을 본 세빈은 원하는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어느정도 확신하며 그대로 방을 나갔다. 의외로 혼다와 니시노가 나간 뒤에도 유진은 바로 따라나가지 않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따로 떨어져 있는 흑향이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쉽게 세빈의 제안을 수락할 수도 없는 장 티엔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고민으로 인해 앞에 누군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아직 유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나가고 뭐하냐 꼬마?"

당연히 장 티엔이 유진이 꼬마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꼬마라는 말을 아까부터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유진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으나 구속되어 있는 사람에게 폭력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꼬마라는 말은 웬만하면 빼 주시죠..?"

"흥, 당돌한 녀석. 살면서 너처럼 겁 없는 꼬마를 보는 것도 처음이군."

장 티엔은 아랑곳하지않고 유진을 꼬마라고 불렀다.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낸 유진은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덕분에 훈련 잘 했네요. 이 쪽 일은 아무래도 실전이 생명이니까... 덕분에 내가 원하는 일에 한 걸음 더 다가섰으니, 아무리 내 가족의 목숨을 위협했다지만 적으로써 감사를 표하는거에요."

그녀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흥 하고는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장 티엔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뭔 목적으로 자신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투에서 저런 꼬마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지금 자신이 굉장히 무기력하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

집에 돌아온 네 사람을 윤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마 전 목에 칼이 들이닥치는 극한 상황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 충격은 오래 가지 않았던 모양.

"어서들 와~ 저녁들 먹어야지?"

그러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풍기는 카레 냄새에 유진은 질색을 했다.

"악, 카레야?!"

허나 그 말을 하고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엄마에게 한 대 맞았다. 힘들게 차려놨더니 불평하는 딸내미의 모습을 보면 어떤 엄마인들 기분이 안 나쁠까.

"요뇬이. 언능 옷 갈아입고 와서 밥이나 먹어 요것아."

"우씨이..."

유진이 말고 나머지 세 사람은 메뉴 선정이 굉장히 맘에 드나보다. 혼다는 들어오자마자 마이를 소파에 던져 두고는 재빨리 식탁에 앉았고, 니시노는 어디서 앞치마를 가져와서는 블라우스 위에 두른 뒤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역시 너희들 밖에 없다. 세빈이도 어서 와서 먹으렴."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세빈은 윤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그나저나... 윤하는 인질로 잡혔었는데 트라우마 같은 건 안 남은 모양이구나."

"아아, 얼마전에요?"

걱정되서 말하는 세빈과 다르게 윤하는 되려 별일 아니라는 듯 배시시 웃었다.

"뭐 그 순간에는 진짜 놀라긴 했지만 사실 20년 전에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아마 그녀가 말하는 건, 22년 전 운명의 날 직전이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운명이 윤하를 덮치기 직전, 그녀가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는지는 혼다 역시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하긴, 누님 그 때에 비하면 이번건 약과네요."

아무리 그런 일을 겪었다지만, 세빈은 담담한 윤하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목에 칼 들이댈 때는 진짜 무섭긴 하더라. 그래도 진짜 나도 강심장 다 되긴 했어, 그 순간에도 내 걱정보다 유진이랑 세빈이 걱정을 하고 있으니 참."

강인한 모습의 윤하를 보며, 세빈은 얼마 전 습격사건 때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두려움으로 인해 힘이 다시 각성하긴 했으나, 그 모습이 자신의 나약함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다시한번 마음에 새기면서, 그녀는 오늘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옆에서 윤하에게 혼나가며 밥을 먹고 있는 유진을 보면서 다시한번 다짐했다. 지금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든 자신은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4. 촉발> END

============================ 작품 후기 ============================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ㅅ'/내일 5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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