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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37화 (136/188)

137화

샤워를 마치고 나서 윤하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아 유진과 세빈은 아까 못한 대화를 마저 나눴다.

"아까 도대체 예지몽에서 뭘 봤던 거에요?"

"언제?"

"그때요, 저녀석들이 날 언니로 착각해서 자기 쪽으로 부르려 할 때 저한테 그랬잖아요. '지원군'이라고."

유진이는 왼팔에 붙여둔 충격 흡수 소재를 떼어냈다. 제발 메카수트엔 이상 없기를 바랬는데, 역시나 저격탄이라 그런지 안쪽에 약간의 손상이 존재하긴 했다.

"아, 그때... 전에 봤던 피흘리는 여자는 윤하였다. 출혈이 적어 천만다행이었지. 그때 공원을 따라 걸으면서 내 머리속의 그 예지몽이 확장되어 갔는데,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단다. 장 티엔의 뒤쪽에서 등장하는 경호원들, 그리고 나한테 접근하는 장 티엔까지."

"아따땃! 따가-!"

"어머 미안, 많이 아프니?"

아무리 메카수트를 입고 있었다고 해도 아까 저격탄을 막느라 바닥에 데굴데굴 구른 탓에 타박상과 찰과상이 그녀의 팔 다리에 잔뜩이었다. 유진이 메카수트를 점검하는 사이 세빈이 상비약으로 치료를 해주고 있었는데 소독약을 뿌릴 때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었다.

"아뇨.. 그냥 따.. 따가워서, 았뜨-!"

세빈은 엄청 엄살부리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더니 곧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이다. 저격이 날아오는 것까진 미처 보지 못했거든. 도대체 어떻게 막은 거니 그걸?"

"아.. 그거 말이죠. 사실은 늘 학교에서 연습하는거라서요. 생각보다 그렇게 엄청 어렵진 않아요 메카수트만 입고 있으면!"

의외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유진 때문에 되려 세빈이 놀랐다. 저격탄을 막는게 쉬운 일이라니... 날아오는 속도가 권총에 비해 몇 배가 빠른건데 단지 그걸 감 만으로 막는다는 게 세빈은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기본적으로 저희가 입는 메카수트는 왼팔이 충격흡수소재가 달려있어서 늘 그걸로 방어훈련을 하거든요. 물론 나머지 파츠에도 다 달려있으면 좋겠지만 이게 워낙 단가가 비싼 거라서.. 여튼, 제가 이 메카수트 이용해서 경호대라던지에 취직하고싶어서 이 학교에 진학했고 훈련을 받기 시작했지만, 오늘 같이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는 역할을 내가 한다면 정말 기쁠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왼팔엔 멍, 온몸에 찰과상과 타박상으로 온몸이 알록달록했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만은 상당히 기뻐보였다.

"근데 전 아직 아빠처럼 되려면 멀었나봐요."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세빈의 손을 잡고 손 등을 어루만졌다. 아마도 아까 일평생 써본 적 없었을 그녀의 주먹으로 적을 가격했으니 혹시나 부러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엄청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으나 많이 부어있는 세빈의 양 손과 발을 보며 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보호해야 될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쳐줬는데. 더 열심히 훈련받아야겠어요."

"이정도면 약과다 얘. 완전 멀쩡하잖니 나머지 부분은. 게다가 적의 도청기를 그런식으로 역이용하다니... 우리 모두가 놀랐단다 그 부분은."

"아녜요, 제 궁극적인 목표는 절대 보호해야할 목표가 하나도 다치지 않는 거니까요..!"

붓고 살짝 까진 세빈의 양 손등에 약을 발라주며 유진은 앞으로 더 열심히 수련해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내 꿈의 실현을 위해서 난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돼. 이번엔 지훈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언젠가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나 혼자서도 막을수 있도록..!'

"아자."

크게 소리내어 말하긴 부끄러웠는지 작은 소리와 함께 주먹을 꽉 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세빈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  * *

2000년 3월 12일. 서울 강남의 유흥가.

"모두 잠들었습니다 장로님."

"어허 이 사람이... 밖에선 그 명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않는가."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즉시 시작하시지요.'

박영건 사장. 대한민국 모 대기업의 사장이지만 그것은 사회에서의 그의 가면용 명함이었고, 그 가면에 감춰진 그의 진짜 모습은 바로 흑영의 핵심 인물인 제5장로였다.

"진(陳)의 원리를 통해 이들의 악념(惡念)이 한데 모일지니... 전념집일(全念集一)!"

5장로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진 안에 눕혀진 사람들로부터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구름처럼 방안을 가득 채운 검은 연기는 이내 동그랗게 뭉치더니 진 가운데에 조용히 떠서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됐다. 이제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겨들 놓거라."

그는 작은 병을 하나 꺼내들더니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검은 구를 병 안에 집어넣었다. 마개로 병 입구를 막자, 곧 구는 파괴되어 병 안을 검게 가득 채웠다.

"좋군. 이것으로 15병 째다. 300병 남짓만 더 모으면 되니, 앞으로 모든 장로가 빠르게 움직인다면 6월 즈음엔 저주의 준비도 끝나겠지."

"사장님께서 지금 단연 선두이십니다."

"하하하하. 당연한 소릴... 이번 계획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나는 백영이 무너지고 난뒤 다시 재편될 흑영의 계급도에서... 사령 때문에 거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2장로를 제치고 난 그 자리를 꿰차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방 안에서 사람들이 모두 치워지자, 그는 곧 피로 그려진 진을 지우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난 뒤 그는 거울을 보며 옷가지와 넥타이를 정리했다.

'이렇게 쉬워서야 원...'

*

다음 날 광백.

[똑똑]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다시 같은 자리에서 만난 총수와 유나는 얘기할 것이 많아졌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갈수록 유나가 꾸는 예지몽도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술은 유나를 모셔놓고 잠시 다른 일을 보러 간 상태였다.

"총수님, 거의 가닥이 잡히고 있습니다. 6월 22일 경 저주가 완성됩니다."

"그렇군. 어제 속도가 조금 늦춰진 것 같지 않더냐?"

"아.. 그러고보니 약간씩 빨라지던 기세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뭔가 처리하신 일이 있으신 거겠지요?"

서 총수는 조용히 품에서 병 한개를 꺼냈다. 병 안은 빨려들어갈 정도로 짙은 검은 색으로 가득 차 있었고 유나는 병으로부터 나오는 알수없는 나쁜 기운에 기분이 나빠졌다.

"이게 대체 뭔가요 총수님.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흑영 녀석들이 지금 만들고 있는, 원념의 결정체다. 어제 흑영의 제8장로가 진을 통해 악념을 수집하고 난 뒤 이노우에가 습격해서 탈취해 온 것이다."

총수가 조심스럽게 병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마개를 열자, 안쪽의 검은 것은 마개가 열림과 동시에 위로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두 사람의 눈높이 즈음에 하나의 구를 형성했다.

"이런 걸 만들고 있었군요. 이게 바로 운명의 날에 닥칠 저주의 재료인 것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이노우에가 그들이 스스로의 피를 이용해 금지된 저주의 진을 그려 이렇게 악념을 수집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분명 우리에게 꿈꾸는 힘이 주어진 이래 저주를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거늘, 흑귀 녀석이 얼마 전 그 규율까지 깨트린 것이다."

검은 구는 공중에 조용히 부유하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유나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조금 그 모양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저주의 원천은 악념.. 그러니 그와 반대되는 선념(善念)이 바로 저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유나 네가 몸에 두르고 있는 그 기운이 바로 선념이다."

"백영 사람들이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여 모이는 영력인 거군요."

"그렇지. 자, 이제 너의 손에 그 선념을 모아 이 구를 소멸시켜 보거라. 굉장히 작지만 이거 하나에 20명의 악념이 가득 들어있다. 게다가 주로 평소에 고된 일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괴로움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내는 기운이기 때문에 굉장히 악하다. 잘못하다간 네가 이 악에 물들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고."

유나는 손을 조심스럽게 구 양쪽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굉장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분명 영수님이라면 아무 문제 없이 잘 해결해주셨을 텐데..."

"믿어라. 너의 믿음이 깨어지면, 악에 물들 확률도 높아진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매우 옳은 일이며, 올바른 길을 걷고 있음을 확신하고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네, 아버님."

이윽고 유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에 감긴 금빛 기운이 조심스럽게 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손에 기운이 모일수록 검은 구체는 더욱 찌그러지고 있었다.

"자 이제, 합장하거라."

[짝]

그녀가 손바닥을 겹치며 합장함과 동시에, 하얀 빛이 손 안에서 터져나왔다. 몇 초간 지속된 빛은 금세 사라졌고, 그녀가 모은 두 손을 다시 벌리자 그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지 아주 잘했다."

유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대로 손을 탁자에 떨어트렸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는 다시 한 번 몸에 선념이 충만한지 확인했다.

"제가 갖고 있던 기운이 꽤 사라진 것이 느껴집니다. 하나 없애는데 이렇다면.. 굉장히 어렵겠군요 앞으로."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생각보다 녀석들이 굉장히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어 한 곳 한 곳 찾는것이 굉장히 힘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헌데 이런 방법 외엔 소멸시킬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규찬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병을 파괴하거나 할 경우, 근처의 사람들에게 옮겨붙어 인륜적으로 저지를 수 없는 나쁜 행동들을 하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써 별다른 방법은 없구나."

얼마간 대화를 이어가던 두 사람이 자리를 뜰까 하고 조심조심 채비를 정리하며 대화를 마무리짓고 있는데 누군가가 찾아왔다.

[똑똑]

따로 부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언제 올지 날짜를 알려드리고 왔었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조급한 마음에 이렇게 급히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분명 목소리는 굉장히 익숙했으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 총수는 자신과 약속했던 사람이 있는지 잠깐 생각해보고는, 한번 방문하겠다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참, 이 모습으로 뵙는건 처음이시겠군요. 잠시만요."

[찌이익]

"... 엇?"

그런데 그는 뜬금없이 이마 끝을 손톱으로 살살 긁더니 얼굴에 붙은 무언가를 쭈욱 떼어내는 것이 아닌가? 변장 마스크라고 생각되는 그 가죽이 벗겨지고 나니 드러난 모습은 굉장히 두 사람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설마 당신이, 방문하겠다던 그 사람이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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