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 *
[타앙!]
[깡!]
"이게.. 끝이냐 청명?"
"무.. 무슨!!"
청명이 품에 숨기고 있던 권총이 불을 뿜었고, 그와 동시에 바람같은 몸놀림으로 한바퀴 빙글 돈 이노우에는 칼을 그의 목에 들이댔다. 칼이 목으로 날아듬과 동시에 서 총수와 함께 달려온 호위병들이 발로 그의 손을 차 권총을 멀리 날려버렸다.
"총을 칼로 막아내다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마지막 발악마저도 실패하자 청명은 팔을 힘없이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제... 끝이구나. 죽여라..."
배신자의 말로는 결국 이런 비참한 것임을 통감하며, 청명은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그는 신임받았다고 생각했던 흑귀에게도 버림받았고, 오늘 일로 완전히 백영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신세, 차라리 목숨을 구걸하느니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젠장... 내가 원하던 목표는... 이제 이루지 못하는건가...!'
"청명, 네 녀석의 죗값이 얼마나 큰 줄은 알고 있겠지? 나도 굉장히 최근에 알게 된 너의 배신이었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나나 이노우에나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서 총수는 청명의 앞에 뒷짐지고 서서 그를 질타했다.
'소율아... 내 너를 구하지도 못한 채 이대로 죽는구나...'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청명은 자신이 구하려고 했던 단 한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죽여라...! 어짜피 아무 곳에도 갈 곳 없는 몸..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런 말에 날아든건, 서 총수의 강력한 따귀였다.
[짜악!]
강한 파열음이 광장을 울렸고,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힘 없이 앉아있던 청명은 그대로 옆으로 넘어졋다.
"감히 네 녀석 목숨 하나로 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으려 하느냐? 네 녀석이 우리의 정보를 적에게 제공한 탓에 죽어간 우리 백영의 사람들의 목숨값이 청명 너 하나의 목숨값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
"...."
바닥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엎어져 있는 청명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네 녀석 때문에 백영의 영수였던 내 아내마저 행방불명이 되었다. 게다가 네 녀석은 내가 흑영의 저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걸릴 저주를 막을 성물마저 파괴하려고 했지. 네가 해하려 한 목숨값만 해도 수만이 넘는다!!"
분노한 서 총수는 이노우에게 청명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명령했다.
"감히 네 녀석을 죽여주길 바란다면, 네 녀석이 저지른 말도 안되는 행위들에 대해 모두 반성하고 나서야 죽여주도록 하지. 물론, 그 날까지 네 녀석이 절대 죽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이노우에! 이 녀석을 당장 광백의 인고의 방에 처박아라..!"
"..!! 차라리 죽여라.. 아니, 제발, 죽여주십시오!!"
인고의 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청명은 애타게 매달렸지만 서 총수는 강건했다. 그는 청명으로부터 고개를 홱 돌린 채 다시 군중들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3만 일이다. 그보다 더 많은 목숨을 위협했지만, 하루에 한 명 씩 해서 3만 명분의 목숨만 네녀석이 애도하고 반성하도록 3만 일동안 가둬둘 것이다."
"총수님... 총수님 제발!!"
"당장 끌고 가라 이노우에. 절대 이 녀석이 혼자 죽지 않도록 24시간 교대로 철저히 감시하도록 해라."
"예, 총수님."
애걸복걸하는 청명을 뒤로한 채 서 총수는 서서히 그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안돼.. 안 돼에에에--!! 제발, 제바아알... 으아아아!!!"
* * *
"이렇게 된 이상 네년이라도-!!"
"꺄악-!!"
그러나 장 티엔이 권총으로 세빈을 또다시 인질로 잡으려던 바로 그 때였다.
{모델 MS-D102-LA,RA,LL,RL, 모델XX-X000-LA,RA,LL,RL 연계기동 시작}
"어딜 감히!!"
[퍽! 퍼퍽!!]
"커헉-!"
연계기동 메시지가 들리더니 빠르게 세빈이 차고있던 수트가 기동했고, 누워있다고 생각했던 유진이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연계기동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장 티엔에게 순간적으로 얼굴과 복부에 주먹을 날리고 정강이를 강하게 걷어찼다. 아무 반격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세빈의 공격으로 인해 그는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세빈의 몸이 연약해서 출력을 약하게 해뒀기 때문에 대미지는 크지 않았고, 장 티엔은 어지러운 와중에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으려 했다. 자세를 가다듬으며 허리춤을 뒤적거리는 그를 본 유진은, 그가 총을 꺼내려한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모델 MS-D102RA, 엔진출력 200%, 경고, 부상 주의}
"이거나 먹어라-!!"
하지만 그 찰나를 놓칠 유진이 아니었다. 어느새 연계기동을 꺼버린 유진은 순식간에 장 티엔에게 날아들어,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 그의 배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그것도 평소의 2배 출력으로.
[퍼억!]
"끄억.... 컥..."
결국 그는 먼지를 일으키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다. 유진에게 달려왔던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빠르게 장 티엔에게 수갑처럼 보이는 도구를 채웠고, 지친 유진 역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후아... 끝났다."
"유진아!!"
세빈이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왔고, 바닥에 대자로 누운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총상은, 총상은 없는거니??"
"아아... 그건 걱정 마세요 언니."
유진은 왼팔을 슬쩍 들어보였다. 팔등 쪽에 오백원 동전 크기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연기가 살짝 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 보니 옷이 찢어져 나갔지만, 안쪽의 메카수트는 멀쩡했고, 메카수트 위에 살짝 덧씌운 무언가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저격총알을 어떻게.."
"어.. 음 요새 워낙 기술이 좋아져서요. 사실 메카수트만으로 대부분 총알은 막는데.. 저격소총 총알은 워낙 관통력이 좋아서 나노탄소체를 덧씌워둔거에요."
"그래.. 그래 정말 다행이다. 무사해서... 마지막에 정말 어쩌나 싶을 때에 예지몽이 딱 보이다니, 하늘이 도왔어."
뭐 두 사람의 역할이 크긴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도 엄청난 빈틈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유진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세빈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그녀는 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나저나.. 누구신가요들?"
"아, 소개가 늦었군요. 경호실장님의 요청으로 안전본부에서 잠깐 나왔습니다."
"에... 아빠가요?!"
"네, 경호실장님께서 며칠 전부터 서윤하 사모님을 경호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계속해서 근처에서 잠복중이었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았군요, 아가씨께서 시선을 끌어 주신 덕분에 무사히 사모님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굉장한 실력이더군요, 나중에 저희 쪽에서 근무하실 생각 혹시 없으신가요?"
뜬금없는 스카웃 제의에 유진은 좀 얼떨떨했다. 유진이는 '굉장히 바쁜 몸일텐데 이렇게 사적인 요청으로 이 곳에 와도 되는거야?! 아무리 아빠가 경호실장이라지만 권력남용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하하하.. 그건 좀.. 앗 그러고보니 엄마는요!!"
"걱정 마십시오, 이미 지혈 및 응급처치까지 완료했습니다. 큰 부상은 없지만 놀라서 기절하신 것 뿐이니 금방 일어나실 겁니다. 저희가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휴... 정말 감사합니다."
경호원 중 한명의 등에 업혀 곤히 자고 있는 듯한 엄마를 보며 유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호원 두 사람이 결박된 장 티엔을 끌고 가려는데, 혼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무사하십니까?!]
"혼다씨! 네 이쪽은 다들 괜찮아요. 그쪽은 어떻게 됬나요?"
[그게...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네?! 설마..!"
[아 생명은 걱정 마세요. 빠르게 응급 처치를 했기 때문에 아직 숨은 붙어있습니다. 그렇지만 과다 출혈로 인해 위급한 상태기 때문에 저희가 황급히 저희 쪽에서 치료하기위해 저희 쪽 비밀 거처로 옮기는 중입니다. 장 티엔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진은 기절한 채 경호원들에게 부축되고 있는 상태인 장 티엔을 살짝 본 뒤 경호원들에게 혼다와 얘기해 보라고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이 사람의 동료를 지금 데리고 있어요, 얘기해서 이 사람도 그쪽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 쪽에서 이런 위험한 자를 데리고 있을 만한 여건이 되나요?"
"아마 저희 아버지께 '혼다'씨가 데려갔다고 말씀드리면 알아 들으실 거에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경호원은 얼마 간 혼다와 재희 사이에서 이야기를 하더니 알았다는 말로 통화를 마친 뒤 스마트폰을 다시 유진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군요. 어떤 조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 쪽에서 처리할 문제라고 하시니 믿고 맏기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뭐 어짜피 저희들도 정식 임무로 나온 것이 아니라서... 경호실장님 외의 상관들에게 이 얘기가 들어가면 안되니까요, 피장파장이죠.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 친구 따라서 댁으로 돌아가시면 될 것 같네요."
재희가 보내준 경호원들이 굉장히 믿음이 갔기에, 유진은 더 이상 장 티엔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
집에 돌아오자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메카수트를 끌 겨를도 없이 유진은 재빨리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유진이니?! 너희 엄마는!! 할머니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재희가 엄청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몰래 사람을 보내 놨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이 못 미더웠는지 연신 안부를 물어댔다.
"아웃! 귀 떨어지겠네!"
[괜찮냐고 이것아!!]
"아우 다 멀쩡해요!!! 진짜, 실망이야 아빠. 난 걱정도 안되요?!!"
유진의 한 마디에 재희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버렸다. 분명 아차 싶었을 것이다, 가장 아끼는 딸의 안위를 깜빡하다니.
"정말 아무리 내가 메카수트를 다루고 과격해도 그렇지, 나도 연약한 딸인데.."
[미안-! 못난 아빠라서 미안하다-!!!]
그 후에도 재희는 수많은 사과를 한 뒤에야 스스로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유진은 메카수트를 벗을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유진아, 정리하고 쉬어야지."
어느새 세빈이 메카수트를 거실에 잘 벗어두고 유진이 곁에 돌아왔다.
"앗, 언니."
"네 엄마는 방에 그 경호원이 잘 눕혀주고 갔으니까 걱정 말고, 너도 어서 다 벗어봐라. 크게 다친 데는 없니?"
자신도 많이 놀랐을 텐데 그새 진정해서는 자신을 챙겨주는 세빈을 보며 유진은 굉장히 놀랐던 모양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움직이게 한 단 한마디, 그것을 바로 세빈이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게.. 과거에 영수라고 불렸던 세빈 언니의 힘인가. 모두에게 믿음을 주고 모두를 이끌어주는 바로 그런 존재...'